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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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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작품등록일 :
2024.03.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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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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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해하는 사람들 (2)

DUMMY

2. 오해하는 사람들 (2)


피우트는 이곳, 레슈나의 영주였다.

30년 전에.

그는 젊은 나이에 영주가 되었고, 불과 몇 년 만에 후사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피우트가 죽은 이후로 폴레비아 왕국의 변경을 아우르던 레슈나 영지는 완전히 몰락했다.

한때는 국왕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동맹이었지만, 지금은 용병들의 공급처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야쿠프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만약 피우트가 죽지 않았다면 레슈나가 지금의 이 꼬라지는 아니지 않았을까?


물론 레슈나의 몰락 원인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피우트에게도 책임의 큰 부분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사방에서 뜯겨 먹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피우트는 기사 중의 기사, 티탄급의 기사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뜬금없이 피우트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오래 전의 전우에 의해.


야쿠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윌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자네도 알잖는가.”


“설명이 필요해.”


“나도 처음에는 몰랐네. 그런데 그분에게 갈아입을 옷을 갖다드리러 갔을 때 그분의 검 중 하나에 시선이 확 빼앗겼지. 뭐지? 왜 이러지? 하면서 멍청하게 검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기억났다네. 피우트 님이 늘 가지고 다니시던 검. 하늘에서 떨어진 철로 만든 검. 바로 그거였네. 그 특이한 검신의 색이나 손잡이를 보니까 확실하더군. 그것은 행방불명된 피우트 님의 검이 분명했네. 피우트 님이 갖고 계셨던 검을 그분이 갖고 계셨던 거지.”


“피우트 님은 돌아가셨네.”


“그건 아니지. 그분의 죽음을 확인한 자는 아무도 없었어. 그분도, 그분의 기사들도 모두 행방불명되었을 뿐이야.”


윌텀의 눈에는 기이한 열기가 서려있었다.

아무래도 윌텀은 그의 영주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기사단의 종자였던 자신이나, 경비대의 막내였던 윌텀 뿐 아니라 당시를 기억하던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는 집착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냉정을 지켜야 했다.

자신마저 희망에 들떠 사실과 믿음을 헷갈려서는 곤란했다.


껍데기만 남은 상단이라고 해도, 명색이 영주 직속의 어용 상단을 총괄하는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대리영주가 그를 불러서 질문 할 때 어버버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윌텀의 말을 반박했다.


“마경을 지나가던 귀족이 우연히 피우트 님의 유해를 발견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


“나도 그분의 말과 행동이 모두 귀족다웠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분의 행동은 그렇지 않았어. 천박하거나 무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귀족의 예법을 체화한 분은 아니었네. 그거 말이야, 귀족으로 가정 교육은 받았지만 평민들 사이에서 자랐다면 그럴듯하지 않나?”


“자네의 말은 마경 저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거라네. 그 거대한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말이지. 그래.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은 많았지. 사기꾼도 많았고. 만약 자네가 저 사람이 피우트 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좀 더 그럴듯한 증거가 필요할 걸세. 검 하나로는 부족하네.”


“이봐. 야쿠프. 30년이야. 30년이 흘렀다고. 다른 증거가 있을 수 있을까? 설사 증거가 있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


야쿠프는 윌텀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그에게 동조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타협을 선택했다.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는 말게. 소스노비까지 가는 데에 여러 날이 걸리니까 그사이에 내가 그를 떠보겠네. 말을 섞다 보면 어떤 사정인지 알게 되겠지.”


“만약 그분이 피우트 님의 아들이라는 희미한 증거라도 나온다면 어떻게 할 건가?”


“대리 영주님께 알려야겠지. 판단은 그분이 하셔야 해.”


“그건 그렇지.”


흥분이 지나가자, 과거의 전우였던 둘은 다시 촌장과 상단주의 관계로 돌아갔다.

곧이어 공적이고 건조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자네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아직 하지 못했군.”


“?”


“개척 마을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 예정일세. 메버리의 철수를 고려하게나.”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영지의 사정이 안 좋아졌네. 상단의 사정은 더 안 좋아졌고.”


야쿠프의 말에 윌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리 영주가 병으로 칩거한 이후로 몇 년간 계속 안 좋다는 말만 들어왔지만, 개척 마을의 철수를 고려하라는 말까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현상유지도 안 되나?”


“재무관도 두 손을 들었다네. 우리가 팔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는데, 다들 영지를 이어받고 싶다는 욕심에 헐값으로 피를 팔고 있거든. 마레크, 타데우쉬, 심지어 가장 유력하다는 보그만까지. 모두 수도의 귀족을 하나씩 끼고 난리도 아니라네. 다들 미친 것 같아.”


“이래서는 정말 간절하구만.”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무엇이 간절한지는 구태여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상행은 개척 마을에서 이틀을 머무른 후 출발했다.

처음에 각오했던 것과 달리 여정은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길이 험한 것이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길은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망가진다.

과거 한때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중요한 도로였다고 해도,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망가지기 시작하고, 그것이 수십 년 단위가 되면 길이었다는 흔적이나 남고 만다.

지금 편력 상인들이 가고 있는 길이 바로 그런 식으로 망가진 길이었다.

듣자 하니 한때는 마경의 개척을 위해 길을 냈지만, 이제는 손을 쓸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렇게 산사태로 길이 끊어진 곳도 생길 수밖에.


“산사태 때문에 완전히 길이 막혔어.”


“일부로 지름길로 가로질러 왔는데 이러면 어떡하나. 빨리 가려다가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게 생겼군.”


“어쩔 수 없지. 다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길을 내는 수밖에.”


상인들은 바위를 굴려서 치우고 바닥을 골랐다.

적어도 수레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는 길을 뚫어야 했다.

대략 이삼일 정도면 길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물론 나는 작업에 동원되지 않았다.

평범한 용병으로 동행했다면 어쩔 수 없이 삽과 지레를 들었겠지만, 거금을 내고 손님으로 합류한 것이라서 특혜를 받은 것이다.

대신 주변 경계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거부할 일은 아니기에 경력이 오래되었다는 중년의 상인, 벤제크와 함께 짝을 지어 주변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상행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은 도적단과 야생동물이었다.

이곳에서는 특히, 야생동물.

벤체크에 의하면 다른 곳에서는 도적단이 문제라지만 이 지역에서는 도적단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습격이 훨씬 문제라고 한다.

마경에서 흘러나온 야생동물이 얼마나 영악하고 지독한지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나.

이미 체르니마스의 마경을 경험한 나로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경계를 위해 자리 잡은 내 감각에 걸린 것은 야생동물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개와 비교해서 내려치기를 당해서 그렇지 사실 사람의 코도 그렇게까지 성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 km 떨어진 곳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

더구나 나 같은 경우는 내공 수련에 의해 육체가 좀 더 이상적인 상태로 변화하는 중이었다.

인간의 육체가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상태가 되어간다고 이해하면 정확할 것이다.

보통의 사람보다 눈도 좀 더 멀리 보고, 귀도 더 잘 듣는다.

냄새를 맡는 것 역시 그렇다.


바람의 방향이 변한 순간 갑자기 코에서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사람의 체취.

기름과 철의 냄새.

오랫동안 세탁하지 않은 옷의 쩔은 내.

그리고 피냄새.


바람이 상단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불고 있으니, 상단 사람들의 냄새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다. 무장을 한 사람들. 적어도 다섯 이상. 아니 일곱 이상이다. 당신은 상단주에게 알려라.”


나는 벤체크가 가지고 있던 쇠뇌를 챙긴 후 바람을 거슬러 움직였다.


숲의 그늘에 몸을 숨기며 이동한 지 십여 분 만에 냄새의 원인이 되는 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모두 8명.

중구난방의 무장이었지만, 이동하는 모습에서 제법 노련한 티가 나는 집단이었다.


나는 슬쩍 옆으로 빠져서 그들의 이동 선상에 비켜난 채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숲에서 무장을 하고 단체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자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니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야쿠프 이자는 늘 다니던 길로 다니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다 망가진 길로 간다는 거야.”


“멍청한 놈들이 젤라자 마을에서 어설프게 덮쳤다가 되려 잡아먹혀서 그런 것 아니겠나. 셋이나 죽었다고 하니 지름길로 해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겠지.”


“그런 것치고는 메버리를 거쳐서 갈리노까지 다 방문하려고 하다니. 이건 뭐 겁이 없는 건지, 무모한 건지.”


“야쿠프가 기사 수련을 받은 적이 있어서 용병 출신치고는 좀 고지식해서 그래. 실력도 제법이라고 들었는데?”


“그래봐야 그 상판을 보는 것도 조만간 끝이야. 진작 보그만 님께 줄을 서지 뭐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늙은 여자 밑에서 아직도 그 고생을 해?”


노골적인 뒷담화였다.

야쿠프 상단주가 영주에게 인가를 받고 편력 상단을 운영한다고 하더니, 이리저리 얽힌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보그만이라는 사람이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다 망가진 길로 간다는 거야’라는 부분.

이거 상단에 지금 내통하는 놈이 있다는 소리 아닌가?


8명의 무장 집단이 야쿠프의 상단을 발견한 것은 잠시 후였다.

훌쩍 앞으로 떨어져서 먼저 선행하고 있던 자가 손을 올리며 주저앉자 지금까지의 방만했던 모습은 싹 사라지고 언제라도 전투에 돌입할 수 있는 자들로 변모했다.

그들은 선행하고 있던 자 근처로 조용히 모여들어서 각자의 무기를 빼 들었다.


검, 철퇴, 활.

활을 든 자는 하나.

마음에 드는 조합이었다.

상대하기에 한결 편하겠다.


나는 그들의 뒤편에 숨어서 전투를 준비했다.

쇠뇌의 살을 잰 후, 다시 한번 검을 확인했다.

두 자루의 검 모두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끔 잘 고정되어 있었다.


내 경고를 받은 야쿠프 상단이 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8명의 무장집단은 공격을 시작하지 못한 채 당황해 했다.

몸을 숨기고 숨까지 죽이며 기회를 엿보았지만, 기대와 전혀 다른 상황에 그들의 인내심은 금방 바닥났다.


야쿠프에 대해 노골적인 뒷담화를 하던 자가 손짓을 하자 활을 들고 있던 자가 화살을 여러 개 땅에 박은 후 몸을 일으키며 활을 당겼다.

속사로 상인들을 공격하는 동안 나머지는 일제히 돌격하려는 심산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계획.

나는 그들의 계획이 그대로 실행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규모의 전투에서 한번 어그러진 계획은 치명적이다.


나는 그들이 볼 수 있게 몸을 일으키며 쇠뇌의 방아쇠를 당겼다.

팔뚝 길이의 볼트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가서 활을 당기던 자의 등을 꿰뚫었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엎어졌고, 그가 반쯤 당기던 활에 재고 있던 화살은 어설프게 앞으로 날아갔다.


“내가 한 놈을 죽였다! 남아 있는 놈들은 모두 일곱이다! 일곱! 일곱! 일곱이 남았다!”


나는 고함을 지르며 쇠뇌의 앞에 붙어 있는 고리를 밟아 당겼다.

시위를 당겨 볼트를 다시 장전하려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한발 늦게 깨달은 자들의 눈이 놀라움과 분노로 커지는 순간, 상단이 있는 쪽에서도 호응하듯 외침이 들려왔다.


"저쪽이다! 죽여라!"


앞뒤로 포위된 자들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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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 영주가 해야 할 일 (3) +4 24.05.13 2,706 10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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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4) +4 24.05.09 3,028 119 11쪽
19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3) +4 24.05.08 3,101 121 12쪽
18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2) +1 24.05.07 3,314 120 12쪽
17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1) +3 24.05.06 3,425 120 12쪽
16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4) +6 24.05.05 3,447 130 12쪽
15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3) +4 24.05.04 3,480 132 13쪽
14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2) +3 24.05.03 3,495 122 12쪽
13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1) +6 24.05.02 3,672 123 12쪽
12 3. 결정은 내가 한다. (4) +4 24.05.01 3,813 1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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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 결정은 내가 한다. (2) +6 24.04.29 3,987 141 12쪽
9 3. 결정은 내가 한다. (1) +4 24.04.28 4,206 133 12쪽
8 2. 오해하는 사람들 (4) +4 24.04.27 4,291 141 12쪽
7 2. 오해하는 사람들 (3) +6 24.04.26 4,378 1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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