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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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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작품등록일 :
2024.03.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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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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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1)

DUMMY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1)


나는 다시 한번 차원이동에 성공했다.


* * *


숨을 쉴 수 있어?

숨을 쉴 수 있다고!


허공에서 뚝 떨어졌지만,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게걸스럽게 공기를 들이킬 뿐.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시야는 흐릿하고, 머리는 멍했다.

제대로 생각이 이어지지도 않았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나서 어리둥절한 기분이랄까.

아니면 사고로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뜬 직후의 느낌?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방금 차원이동을 했으니까.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서, 내가 나인 듯 아닌 듯 기묘한 상태로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한 채 흘러 다녔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면서.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차원이동의 부작용은 점점 사라져갔다.

정신이 맑아지고 시각과 후각, 촉각까지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도 헷갈리던 머리가 비로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주변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

습기 찬 풀에서 느껴지는 축축함.

흙과 나뭇잎이 함께 어우러져 발산하는 숲의 냄새.

손에 쥔 검의 손잡이까지.


살았구나.

차원이동에 성공했구나.


나는 기쁨과 안도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쁨과 안도감은 잠깐이었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인가가 거슬렸다.


뭐지?

차원이동은 성공한 것이 아니었나?


나는 내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다시 훑었다.


어두운 밤하늘, 별, 달.

달.

달이 둘?


왜 달이 둘이야!!


순간 정신이 번쩍 깨어나는 느낌으로 눈을 크게 떴다.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나는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내가 무엇인가 착각했기만을 바라며 밤하늘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은 여전히 둘이었다.


셋이 아니잖아!


흑마법사인 말론으로부터 얻은 정보대로라면 이곳, 테라의 밤하늘에 떠 있어야 할 달은 셋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달의 숫자는 둘.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야?

······설마 차원이동에 실패한 건가?


공간마법에 대한 권위자임을 자처했던 흑마법사 말론.

지금도 내 머릿속에 있을 나노머신 기반 인격AI인 나노.


이번 차원이동을 설계하고 시뮬레이션 한 자들이었다.

둘 모두 자신만만하게 차원이동의 성공을 장담했다.


나는 그들의 설계도에 따라 차원이동마법진을 건설했다.

조금의 오차도 없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달의 숫자는 둘.

그들이 뭐라고 하든 결과는 실패였다.


도대체 어디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일까?


일회성이라고는 하지만 차원이동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막대한 양의 금속과 인력은 개인이 감당할 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거기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그런데 그 고생을 하고도 엉뚱한 곳에 떨어지다니!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다니!


그러나 이대로 화를 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예정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왔다면 과연 내가 이곳에서 생존이 가능할지부터 따져야 했기 때문이다.


호흡?

호흡은 가능했다.

그렇지 못했다면 벌써 죽었겠지.


그렇다면 물은? 식량은?

숲이 있고, 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보니 설마 목이 말라서 죽는 일은 없을 것 같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확신은 아직 일렀다.

무엇보다 사람이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생명체가 있기를.

이왕이면 문명을 건설했을 정도로 발달했기를 바라지만 과연?


······이곳이 테라일 가능성은 정말 없는 것일까?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이십 미터가 넘는 높이의 나무들이 방사형으로 쓰러져 있었다.

공중에서 거대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차원이동의 영향으로 생긴 충격파 때문에 벌어진 일이 분명했다.


나무가 쓰러져서 생긴 공터의 반경은 수백 미터에 달했다.

그 너머로는 계속 숲이었다.

인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눈에 닿는 범위 내에서 인공적인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이 없지는 않았다.

멀리서 다양한 새소리가 들리고, 종류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도 들려왔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 풀이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평범하게 들을 수 있는 숲의 소리였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걸으면서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확인했다.

나무, 풀.

모두 눈에 익은 형태였다.

지구에서도 한제국에서도 보았던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오랜 세월을 보냈던 한제국은 내공을 기반으로 하는 무공이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지구와 무척 닮은 꼴이었다.

심지어 역사까지 흡사할 정도로 말이다.

말론은 테라 역시 마법이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사람이나 자연은 한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무엇인가 착오가 생겨서 차원이동마법진이 엉뚱한 곳으로 나를 보내기는 했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곳으로 보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한제국이나 테라처럼 이곳 역시 지구와 닮은 꼴의 평행우주일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물이나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죽을 일은 없을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바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옷이 바스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움직인 것만으로도 옷이 사각거리며 찢어지는 모양새가 얇은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보호대와 흉갑 역시 쿠크다스와 별로 다르지 않은 꼴이 되어 버렸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뚝뚝 부러지고, 세게 쥐면 가루로 변해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유일한 예외는 검뿐이었다.

정확히는 검신만 멀쩡했다.

검집이나 검손잡이처럼 검신과 다른 재질을 가진 부분도 변질을 피해가지 못했다.


내 육체와 검신을 제외한 모든 것의 물성이 변화한 것이다.

아무래도 차원이동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이래서는 나뭇잎으로 스커트부터 만들어야 할 판이다.

다행히 이곳이 숲이라서 급한 대로 대충 몸을 가릴 수는 있었다.


그 과정에서 버섯뭉치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화려한 모양새가 아무래도 독버섯처럼 보였지만, 붉거나 노란 색의 버섯이라고 해서 반드시 독버섯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독버섯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치료용 나노머신이 있는 이상 독은 내게 위험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차원이동을 겪은 직후이니 전문가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나노, 이거 먹어도 괜찮겠지?”


조용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또? 진짜?


사실 이곳에 온 이후로 아무런 말이 없었던 나노가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말을 걸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나노머신이 차원이동에 취약하다는 것은 이미 경험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나노는 내 질문에도 불구하고 대답이 없었다.

만능비서 시스템의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노. ······나노? 이런 젠장. 또 다운이냐? 나노!”


나노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먹통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한제국으로 떨어졌던 최초의 차원이동 과정 중에 다운 되었던 것처럼, 이번 두 번째 차원이동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다.


한제국에서 경험했던 온갖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쾌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것들이었다.


한제국은 내공과 무공 그리고 무림까지, 상상만 하던 무협 소설 속의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현대 지구에 비해 문명 수준이 떨어졌을 뿐 확고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굴러가는 행정체계가 제법 치밀한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내공이 없는 일반인의 처우가 어떨지는 약간만 상상해도 금방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피지배자.

그것도 저항 수단이 없는 피지배자다.

얼마나 뜯어먹기 좋겠는가.


그곳에서는 나 역시 일반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에서 규격 외의 용병으로 활동했다고 해도,

기관에서 내 몸을 개조해서 절대 부러지지 않는 뼈로 갈아끼웠다고 해도,

내공이 없는 이상 나는 그냥 일반인이었다.

지나가던 무공 고수의 손짓 한 번에 끝장나기는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나노머신 시스템까지 다운되었으니 기댈 수 있는 것은 그때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뿐이었다.


나는 낯선 땅에 던져진 외노자답게 튼튼한 몸과 약간의 지식을 밑천으로 바닥부터 굴러야 했다.

생존과 귀환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명확했다.

거기에 하필이면 권력투쟁에 휘말리기까지 했었으니······


결국 나는 암습으로 인해 죽기 바로 직전까지 갔었다.

만약 그때 나노가 내 상태에 따른 기계적 절차로 긴급구조 프로토콜을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분명히 죽었을 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노머신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보호 마법진을 중첩했는데도 다시 이런 꼴이다.


물론 말론은 아직 시험 단계였던 기관의 차원이동과 달리 자신이 시도하는 차원이동은 절대로 안전하다면서 큰소리를 쳤었다.

이론적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보호 마법진의 성능은 자신들이 무사히 한제국에 도착한 것으로 증명이 끝난 것이 아니냐면서 말이다.


애초에 흑마법사를 믿는 것이 아니었다.

흑마법사가 차원이동마법은 무슨!


몇 차례 나노를 호출하던 나는 결국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두 번째 차원이동에서도 나노머신에 문제가 생겼음을.


여기서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나노머신의 비상 생산을 통한 나노의 재부팅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나노머신의 비상 생산을 위한 발동 조건은 죽음 직전의 상태다.

평소에 나노머신을 제약하고 있는 기능적, 윤리적 제약을 무시하려면 사용자의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나노머신의 완전 소실 가능성이었다.

아니, 완전소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노머신의 숫자가 너무 줄어서 외부 탐지기능이 먹통이 되었을 가능성도 무시 못한다.


어쨌든 이유는 상관없다.

죽음 직전으로 나를 몰아넣었음에도 나노머신의 비상 생산이 안 이루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지기는 마찬가지니까.


급속 치료?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있나.

나노머신이 없는데.

죽음 직전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었으니 죽겠지.

보통 사람처럼.


멍청한 짓으로 죽은 사람에게 준다는 다윈상의 수상후보가 될 정도로 어이없는 자살이 될 거다.


결국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너무 위험했다.

예상 밖의 장소에 떨어져서 곤란하기는 했지만 생명을 걸고 도박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별로 확률이 높은 도박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생존을 위해서는 나노머신 이외의 다른 수단에 기대야 할 것 같았다.


내공.

한제국에서 익힌 또 다른 가능성 말이다.


작가의말

오늘 자정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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