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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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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93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3.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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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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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3)

DUMMY

카인은 늘 그렇듯 계기판 위의 앞 유리에 자리를 잡았다. 짐이 없으니 미리 앉아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인은 챙겨야 할 짐이 없는 모양이다. 배터리는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오늘은 바쁘니까 다음에 물어봐야지.


「짐은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겼어?」

“응. 그보다 카인.”

「왜?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그런 게 아니라. 방금 생각을 해봤거든. 난 정말 탐험가가 되고 싶은 걸까, 하고 말이야. 결론은 아니라는 거야. 난 200년 사이에 지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 같아.”


카인이 빙그르르 돌아 날 쳐다보았다. 눈을 크게 뜬 것을 보니 놀란 모양이다. 카인은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어 했으니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카인 혼자서는 세계를 탐험할 수 없으니.


「조금 전에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래?」

“응.”

「으음······.」


카인이 입을 오물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꽤 당황한 모양이다. 이런 모습은 처음인데.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말싸움에 이긴 카인의 기분이 이랬을 것 같다.


카인의 당황하는 모습을 좀 더 오랫동안 즐기고 싶었지만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난 호버 바이크에 올라타 액셀 손잡이를 붙잡으며 외쳤다.


“난 오늘부터······ 요리탐험가야―!”


카인이 놀라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놀랄 수밖에. 놀라야지. 제아무리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카인이라도 요리탐험가는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요리탐험가?」

“말 그대로 요리를 찾아다니는 탐험가라는 뜻이야. 사라진 요리를 복원하고!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는! 내가 최초의 요리탐험가야. 수습이나 프로라는 수식어도 무의미하지.”

「요리연구가.」

“아니, 아니. 요리탐험가라니까.”

「응, 그러니까. 요리연구가라는 직업이 원래 있었어. 새로운 식재료, 새로운 조합, 새로운 요리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요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야.」

“달라. 요리연구가와 요리탐험가는 완전히 달라. 요리탐험가는 식재료를 직접 구하잖아. 미지의 영역에 있는 미지의 식재료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식재료를!”

「사람들은 자기가 도전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부터 설명한다더니.」

“뭐?”

「아무것도 아니야. 네 말에 동의한다고. 그럼 최초의 요리탐험가 피티를 따라서 고기를 구하러 떠나볼까?」

“······가자!”


난 예고도 없이 액셀을 세게 당겼다. 그러자 호버 바이크의 엔진이 우웅―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대기를 찢을 듯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출발 직전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은 카인은 용케도 바닥에 떨어지는 수모를 면할 수 있었다. 못 들은 척 되물었지만 조금 전 카인이 했던 말을 난 똑똑히 들었다.


얼마나 어려운지부터 설명한다고? 있는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연구하는 것보다 요리를 하기 위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식재료를 찾아 떠나는 게 당연히 더 어렵잖아!


“난 요리개척자다―!”


난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액셀을 더욱 세게 당겼다. 문득 떠오른 호칭이었다. 턱 밑에서 카인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구시대의 지식만 가득해서 꽉 막힌 기계가 나 같은 신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 구닥다리 기계.


계기판의 숫자가 300을 넘겼다. 햇빛을 받아 물러지기 시작한 땅이 호버 바이크에 의해 발생한 바람에 밀려 움푹 파였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 때까지 이대로 질주다!



* * *



고기를 찾기 위한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기를 찢을 듯이 기세 좋게 달린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10분쯤 달렸을까. 호버 바이크의 엔진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카인은 엔진이 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정하기로 엔진이 생산된 시기는 약 400년 전. 고장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호버 바이크가 고통을 호소한 뒤로 속력을 절반으로 줄여야 했다. 시속 150km. 이전에 비해 절반의 속력이지만 충분히 빨랐다. 사실 안도했다. 거센 바람소리에 귀가 먹먹했는데 내 의지로 속력을 줄이는 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해서 억지로 속력을 내고 있었으니까.


호버 바이크의 상태를 핑계로 조금씩 속력을 줄이다 보니 어느새 속력은 시속 100km를 밑돌았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렸다.


주변의 풍경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건물이 파묻힌 흔적이 간간이 보일 뿐 연구소 주변과 다를 바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땅에 묻힌 건물들을 조사하는 일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본업에 충실하자. 난 이제 요리탐험가니까.


200년 전 도시의 규모는 아주 컸던 모양이다. 이렇게 달리고 달렸는데도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동물의 서식지는 도시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이래서 오늘 안에 동물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까 걱정이다.


「저기 봐. 다리야.」

“다리?”


되묻는 사이 눈앞에 정말 다리가 나타났다. 눈이 하나인데도 카인은 나보다 시야가 넓다. 아무리 인간에 가깝게 만들려고 했다지만 시력 정도는 개선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난 다리 앞에서 호버 바이크를 세웠다. 지상의 차량들이 강이나 도로 위를 지날 수 있도록 만든 다리. 분명 알고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리 아래에는 수로였을 구덩이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수로에는 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다리보다 수로를 보고 싶었던 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200년 동안 방치된 수로의 물이 말라버린 것은 당연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


“물이 가득한 수로를 보고 싶었는데.”

「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 없지. 인공 수로니까. 자연스럽게 순환되도록 설계됐다지만 최소한의 동력은 필요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휑한 모습을 보니까 실감이 나는걸.”

「새삼스럽게. 네가 두 시간 넘게 지나온 벌판도 전부 대도시였어. 오히려 여긴 외곽이라 수수한 편이었지.」

“이 수로에서는 허전함이 느껴져. 있어야 할 게 없잖아. 땅 위에서 도시가 사라져도 땅은 땅이야. 하지만 수로는 물이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는걸. 이 수로에 다시 물을 채워 놓을 수는 없을까?”

「도시에 흐르는 모든 물은 정수시설을 거쳤어. 정수시설을 다시 가동하면 되겠지만 이미 다른 것들과 함께 가라앉았을 거야.」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게 없구나. 도시 전체가 가라앉았는데 연구소는 어떻게 살아남았지?”

「로봇들의 많은 희생이 있었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사이보그라고 결론을 내리고 다른 로봇들을 불러 모았거든. 가라앉지 않도록 부력을 높이고, 부서지지 않도록 강도를 높이고, 진동에 견딜 수 있게 진동 흡수율을 높였어. 부족한 재료는 일을 마친 로봇을 분해해서 사용했고, 모든 일이 끝난 뒤에는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연료가 되었지.」

“단지 인간을 위해서? 인간이 없어져도 로봇끼리 잘 살 수도 있잖아.”

「불가능해. 인간을 위해 살도록 설계됐으니까. 우리는 역할분담을 했을 뿐이야. 난 사이보그를 완성하는 역할이었고.」


카인은 정말 별 것 아니라는 듯,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평소 섬세하고 예민하던 카인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그 시선이, 그 말투가 어쩐지 부담스러워 난 텅 빈 수로로 고개를 돌렸다.


날 만들기 위해 그토록 많은 로봇들이 희생되었다니. 인생의 무게가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무거워졌다.


그 로봇들이 날 만드는 데 힘을 쏟지 않고 도시를 재건하려고 했다면 지금쯤 기계제국이 완성되지 않았을까. 텅 빈 수로에는 물 대신 수은이 흐르고, 우라늄 빵에 석유를 마시며 거리를 거니는 로봇들이 상상된다.


아무리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지만 너무 과했던 것 아닐까? 장밋빛 미래를 포기하고 기껏 만든 사이보그는 단지 고기가 먹고 싶을 뿐인걸. 인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그 로봇들이 기대했던 사이보그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텐데.”

「로봇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너도?”

「나도.」

“흐음.”

「원하는 인간상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관련 지식들과 기억들을 이식했겠지. 머리가 텅텅 빈 상태로 만들진 않았을 거야.」

“······좋은 건가?”

「인간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뽑았어. 어떤 인생을 살지 선택은 네 자유야.」

“난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니까. 인류를 재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고기를 먹고 싶어서 탐험을 떠나기보다.”

「봐. 아무것도 없어. 애초에 테라포밍이 끝난 뒤 지구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지 못해. 하고 싶은 걸 해. 중요한 건 아직 인간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괜찮을까.”

「괜찮아. 청승맞게 이러지 말고 어서 출발해. 고기 안 먹을 거야? 이 다리를 건너면 도시 밖이야. 지금 속도면 반나절을 더 달려야 동물들의 서식지인 동물보호구역이 나타나. 서두르지 않으면 동물을 찾기도 전에 해가 질 텐데?」

“······출발.”


난 고개를 끄덕이며 호버 바이크를 다시 출발시켰다. 멀어지는 다리를 돌아보는데 덩그러니 놓인 그 모습이 어쩐지 고독해 보였다. 다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리가 사라진 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카인의 반들반들한 뒤통수가 보였다. 매일 닦아줬더니 이제는 광택이 난다. 눈부셔. 그래도 다행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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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5) 19.03.14 52 1 10쪽
14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4) 19.03.12 50 0 9쪽
»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3) 19.03.07 28 0 10쪽
12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2) 19.03.05 31 1 8쪽
11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1) +1 19.03.01 64 0 9쪽
10 1. 빵이 먹고 싶어 (9) 19.02.28 51 0 7쪽
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4 0 9쪽
8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60 1 9쪽
7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4 0 9쪽
6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2 0 10쪽
5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70 0 9쪽
4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6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6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4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32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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