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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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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91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3.05 11:34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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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2)

DUMMY

“왜 그래?”

「고기를 구할 방법이 또 하나 있어. 물론 이 방법도 가능성이 희박하긴 마찬가지라서 희망고문일 텐데.」

“뭔데? 뭔데? 고기 어떻게 구해?”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인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흥분이 돼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사람만 한 커다란 고기가 뛰기 시작했다. 고기는 힘이 드는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뛸 때마다 바닥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육즙이다. 땅이 맛있어졌다. 난 입을 크게 벌리고 고기의 뒤를 쫓아 달렸다. 바람에 날리는 육즙을 받아먹기 위해.


그때 카인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을 보니 조금 진정이 됐다.


「진정해, 피티.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야.」

“어서 알려줘. 어떻게 구해?”

「동물을 찾는 거야. 소고기를 원하면 소를 찾고, 돼지고기를 원하면 돼지를 찾아서 고기를 얻어야 해. 사실 인류에게 배양육이 대중화된 시기는 불과 1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그 전에는 동물에게 직접 고기를 얻었거든.」

“동물에게 직접 고기를 얻는다는 건······.”

「그래. 동물의 살을 도려내는 거야.」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팔을 쳐다보았다. 진짜 팔도 아니건만 살을 도려낸다고 생각하니 고통이 느껴지는 같다. 아니, 지난번 경험을 떠올리면 인공적인 피부와 살로 이루어졌어도 고통을 느낀다.


고기는 동물의 살이다. 돼지고기는 돼지의 살이고, 소는 소의 살이다. 그 당연한 것을 왜 난 생각하지 못했지? 고기는 단지 식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너무 당연한 건데. 왜 난 전혀 연관 짓지 못했을까?”

「몰랐으니까. 대부분의 지식은 알고 나면 당연해 보여.」

“동물의 살이란 말이지.”

「어쩌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어. 넌 20세기가 아니라 30세기를 살았던 사람을 토대로 만들어졌거든.」

“아닌데. 거부감 안 들어. 좀 놀랐을 뿐이야.”

「정말이야? 고기를 얻으려면······.」

“얻으려면?”

「······아냐. 흐음. 좋아. 그렇게 먹고 싶다면 직접 나가서 동물들을 찾아보는 건 어때? 가능성은······ 약 12.5%.」


심장이 요동치듯 뛰었다. 빵을 찾을 가능성이 2%라고 했었다. 12.5%면 여섯 배가 넘는다. 아주 단순히 생각하면 빵 하나를 찾을 만큼의 노력으로 여섯 개의 고기를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엄청 높잖아!”

「확률이라는 건 갖고 있는 데이터로 뽑아내는 거니까. 지금은 그때보다 새로운 지구에 대한 데이터가 좀 더 쌓였어.」

“좋아, 좋아. 당장 출발할까? 아! 캡슐 먹지 말걸. 첫 끼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앗, 나 방금 사소하지만 좌절한 거 아니야? 이제 행복이 찾아올 차례인가!”

「휴······. 진정해, 제발.」


날 쳐다보는 카인의 눈빛이 점점 한심하게 변해갔다. 고기라는 참 대단하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흥분 시킬 수 있다니. 사람들이 고기에 빠져들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인간은 고기를 먹도록 설계된 생물이 아닐까?


「진정하라고. 동물을 찾으려면 준비를 해야 해. 지금까지 했던 탐험은 산책이나 다름없어. 자칭 프로 탐험가라고 말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이 좁은 동네 주변만 돌아다녔잖아?」


고기 생각에 들떠서 발을 동동 구르던 난 가만히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두근거렸던 심장이 거짓말처럼 평점심을 되찾았다. 산책이라니? 몸이 잠길 정도로 깊은 구덩이를 파는 산책이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다고, 산책?


“다투자는 거야? 산책? 누가 산책하면서 땅속에 묻힌 마트를 발견해?”

「음, 사실 마트의 위치를 알려준 건 나잖아? 넌 내가 알려준 곳의 땅을 팠을 뿐이고. 엄밀히 따지자면 진짜 탐험가는 나고, 넌 대신 땅을 파주는 하청업체 같은 거지. 에이, 인심 썼다. 조수라고 하자, 조수.」

“너······.”


난 뭐라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전부 카인이 알려준 것은 사실이니까. 진정한 탐험가라면 스스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것인데.


프로 탐험가라 외쳤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탐험가는 무슨. 난 아직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잖아. 수습 탐험가도 아니야. 탐험가 지망생이야.


“네 말이 맞아. 난 땅이나 팔 줄 아는 탐험가 지망생이야······.”

「맞아. 넌 아직 탐험가 지망생이야. 그렇지만 너무 기죽지 마. 당연하잖아? 넌 아직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됐어.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직 말도 배우지 못했을 나이야.」

“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인걸.”

「어쨌든 그렇다는 거야.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프로가 되려면 최소한 한 분야에서 10년은 경력을 쌓아야 했어. 넌 탐험가가 되기로 결심한 지 한 달도 안 됐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렇지. 맞아, 맞아. 난 아직 생후 2개월밖에 안 됐어.”

「자만하기보다 경험을 쌓을 때야. 프로 탐험가가 아니라 지망생이니까 고기를 포기할 거야? 내일도 캡슐만 먹을래?」

“고기는 먹고 싶어.”

「그럼 이번엔 ‘진짜’ 탐험을 해봐.」

“진짜 탐험?”

「동네가 아니라 멀리 가는 거야. 아주 멀리. 200년 전 기록을 보면 동물들의 서식지는 도시에서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거든. 도시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해. 거긴 이곳과 완전히 다른 모습일지도 몰라. 정말 위험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어. 결정은 너의 몫이야. 탐험가 지망생은 너고, 고기를 먹고 싶은 것도 너니까.」


난 대답을 망설였다. 수백 킬로미터. 호버 바이크를 타고도 한참이나 가야 할 만큼 먼 거리다. 액셀을 최대로 당기고도 한 시간 가까이 가야 할 만큼.


카인이 대답을 기다리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충분히 고민하라는 듯 재촉하지 않았다. 카인도 연구소를 떠난 적이 없으니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것이다. 괜찮을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난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다시 요리책을 집었다. 요리책이 밝아지며 생생한 스테이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봐도 진짜처럼 생생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스테이크가 새로운 침샘을 유도한다.


양고기 스테이크. 커민을 뿌리거나 허브와 통후추를 뿌려 올리브유에 굽는다고 쓰여 있다. 어떤 맛일까. 양의 맛이겠지? 하지만 양에 대한 지식은 이식되지 않았는지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닭고기 스테이크. 소금과 통후추, 허브로 간을 하고 올리브유에 굽는다고 한다. 닭의 맛은 어떨까. 궁금해. 양과 마찬가지로 닭의 모습도 떠오르지 않는다.


소금과 후추, 허브, 올리브유는 요리책 어디를 봐도 늘 등장한다. 정말 맛있는 요리를 위해서는 이것들이 꼭 필요한 모양이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 고기만 있어도 감지덕지인걸.


난 요리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카인을 쳐다보았다.


“역시 난 고기를 먹어야겠어. 가자!”

「짐 챙겨.」


카인은 내 선택을 예상했다는 듯 바로 대꾸했다. 가끔 카인이 나보다 날 더 잘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날 만드는데 150년이나 걸렸다고 했으니 당연한 걸까? 난 나를 만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고.


“뭘 챙겨야 할까?”

「에너지를 보충할 캡슐하고 어둠을 밝혀줄 책. 당일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며칠이 걸릴 수도 있어.」

“이불은?”

「내려놔.」

“세면도구는?”

「여기서나 잘 씻어.」

“그럼 또······ 없네.”


뭔가를 들고 가려고 해도 난 애초에 가진 것이 없었다. 언제 한 번 날을 잡아서 지하실을 내려가 봐야겠다. 쓸 만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난 호버 바이크에 캡슐 한 상자와 책 두 권을 실었다. 그러니까 요리책과 일기장이다. 조명 대용품이자 요리탐험가의 필수품이니 꼭 챙겨야지.


진짜 탐험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잠깐 생각을 해봤다. 난 정말 탐험가인지. 탐험을 하고 싶은지. 결론은 난 세계를 탐험하기보다 요리를 탐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요리탐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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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1) +1 19.03.01 64 0 9쪽
10 1. 빵이 먹고 싶어 (9) 19.02.28 51 0 7쪽
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3 0 9쪽
8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60 1 9쪽
7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4 0 9쪽
6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2 0 10쪽
5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70 0 9쪽
4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6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6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4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32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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