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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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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87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2.25 17:54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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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 빵이 먹고 싶어 (6)

DUMMY

마트 안은 동굴처럼 어두웠다. 드높게 달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몇 가닥만이 주변을 밝혀주었다. 해가 지기 전에 재료를 찾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탐색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내일 다시 온다는 선택지는 내게 없으니까.


계산대를 지나 마트 안으로 들어가자 쓰러진 진열대와 쓰레기들이 우리를 반겼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곳에서 과연 빵을 만들 재료를 찾을 수 있을까.


「이미 한바탕 털린 모양이야. 막바지에는 전 세계가 무정부상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당연한 결과지.」

“아무도 여기를 지키지 않은 거야?”

「더 이상 주인이 없는데 누가 지키겠어. 이런 마트를 운영하던 기업의 총수와 임원들은 가장 먼저 지구를 탈출했으니까. 주인 잃은 로봇들이 일을 멈췄으니 열린 곳간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으음. 그랬구나. 설마 전부 가져가진 않았겠지.”

「VIP 10만 명을 태운 제1방주가 격추된 직후에 개인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난 사람만 한 달 동안 30억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어. 이미 죽은 사람은 배가 넘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었으니 대다수가 마트를 털 만한 기력도 없었을 거야.」

“휴우. 지옥이 따로 없었구나.”

「이상한데. 그런 정보는 이식했어.」

“가물가물해. 듣고 보니 생각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역시 제대로 된 환경에서 이식을 진행한 게 아니라 문제가 있었나.」

“뭐, 이식이 됐다면 차차 기억이 돌아오겠지. 어쨌든 충분히 재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200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만큼 포장 기술이 완벽하다면 그럴 거야. 하지만 밀가루를 굳이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포장하는 경우는 드물어.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비용 면에서도 낭비니까.」

“찾아보면 알겠지. 빈손으로는 돌아갈 생각 없어.”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마음가짐이 달라지잖아.”


난장판인 마트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 중에는 일단 성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마트에서 일을 하던 로봇들의 잔해도 보였다. 화풀이를 했던 모양인지 성한 로봇은 없었다. 카인은 쓸 만한 부품을 찾으려는지 로봇의 잔해 곁을 서성거렸다.


난 그런 카인을 내버려두고 식재료가 있었을 진열대를 찾아 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창문과 멀어져 주변은 점점 어두워졌다.


마트 안쪽 공기는 입구와는 달랐다. 지독하게 찌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난 냄새가 심해지는 곳을 따라가기로 했다. 냄새의 원인은 아마도 부패일 테니 냄새가 나는 곳에 식재료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성한 것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 여정은 험난했다. 코가 무뎌질 만하면 더욱 강렬한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마트의 규모만큼 식재료의 종류도 다양했던 모양이다.


손등으로 코를 막으며 걷던 난 걸음을 멈췄다. 눈앞의 어둠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진열대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말라붙은 고목나무의 껍질 같은 질감의 무엇인가가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야 끝까지 이어져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트의 한 공간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인! 이리로 와 봐!”


난 어딘가에 있을 카인을 소리 높여 볼렀다. 카인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순간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난 고개를 돌렸다.


“······카인?”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카인은 공중을 날아다닌다. 바닥이 아무리 난장판이라도 소리를 낼 리 없었다.


등골이 싸늘해졌다. 살아남은 동물이 있었나? 시체풀을 발견한 이상 살아남은 생물이 더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두려운 것은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이면 대답해 봐요!”

「혼자 뭐하는 거야?」

“카인!”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난 반갑게 카인을 반겼다. 위기의 순간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테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됐다.


“여기 우리 말고 다른 생명체가 있는 것 같아.”

「저 벽에 달라붙은 버섯들 말하는 거야?」

“버섯? 저게 버섯이야?”

「등록된 개체는 아니야. 버섯은 확실해. 방금 저 버섯이 날린 포자가 내 입으로 들어왔거든.」

“버섯에게 지능이 있었던가?”

「그럴 리가. 대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야. 우리가 말하고 움직일 때마다 일어나는 공기의 떨림 같은.」

“먹어도 돼?”

「쓸 거야. 혀를 긁어내고 싶을 만큼.」

“뭐, 처음부터 빵을 먹을 생각이었어. 그럼 저건 저대로 두고 찾아보자. 이 근처에 밀가루가 있을 거 같거든.”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버섯이 살고 있으니까? 버섯도 뭔가를 먹고 자랐겠지. 그 말은 즉, 근처에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잖아.”

「버섯이 자라는 것과 식재료는 관련이 없어. 하지만 버섯이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닐 테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그래. 내가 하려던 말이 그거야. 어서 찾아보자.”


난 다시 희망을 품고 더욱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섯으로 둘러싸인 풍경은 마치 동굴 같았다. 이름 모를 버섯의 표면은 돌과 흡사했다.


“돌버섯이라고 부르자.”

「이미 돌버섯이라고 부르는 버섯이 있어.」

“이제는 없겠지.”

「하긴. ······저건 뭐라고 부를 거야?」

“여기 왜 정글이 있어······?”


돌버섯 밭을 지나자 뜬금없이 나타난 것은 정글이었다. 정글이라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천장과 벽을 타고 자란 거무튀튀한 색의 넝쿨들이 머리 바로 위까지 늘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아무렇게나 그려 넣은 것 같은 지저분한 얼룩을 가진 마른 잎사귀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손을 대는 것조차 꺼려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아. 난 머리 위에 길게 자라난 넝쿨 한 줄기를 잡아당겼다. 넝쿨은 힘없이 끊어졌다. 끊어진 넝쿨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카인에게 건네자 잠시 망설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가져다댔다. 카인의 날카로운 이가 넝쿨을 잘근잘근 조각냈고 이내 덩어리째로 바닥에 버려졌다.


「여기서 자란 건 더 이상 맛볼 필요 없을 것 같아. 하나같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야.」

“익혀 먹는다거나······.”

「마음대로. 난 경고했어.」


너무 섬세한 인공지능이다. 아무리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인격을 구현해야 했을까. 겉모습만 아니었다면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을 텐데. 의심을 하기에는 너무 완벽한 기계의 모습이다.


난 얼룩덜룩한 잎을 가진 식물을 아쉽게 쳐다보았다. 카인에게 성분을 분석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마트를 떠나기 전에 조금 뜯어가는 편이 낫겠다.


“그런데 돌버섯이나 이 넝쿨들은 어떻게 200년 동안 죽지 않고 번성할 수 있었을까?”

「마트 안에 있던 식료품들이 썩어서 비료가 된 것 같아. 그중에 감마선 폭발과 테라포밍의 영향을 받아서 생존에 유리하게 변화한 몇몇 식물이 그 비료를 양분 삼아 자라났을 거야.」

“그런 식으로 살아남은 사람도 있으려나.”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는 법이니까.」


훗날 생존자를 마주하더라도 사람이라고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은 차치하더라도 지능은 온전할까? 거미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으로 땅속에서 생활하며 말조차 배울 수 없는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는 인간이 나타난다면, 난 그 생명체를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단 카인에게 성분 분석을 부탁하겠지.


반대로 행성 전체가 변하는 상황에도 아주 운 좋게 벙커 안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는 희망찬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첫 대면에서 하고 싶은 질문은 아마 이것이겠지. 다음 식사에는 뭘 먹을 건가요?


잡생각을 하며 밀가루를 찾고 있을 때였다.


“앗!”


너덜너덜한 쓰레기뿐이었던 바닥에 포장이 뜯어지지 않은 물건이 하나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난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달려가서 그것을 손에 넣었다.


“찾았다―!”


겉면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난 환호성을 질렀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희열이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분명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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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1) +1 19.03.01 6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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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3 0 9쪽
8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60 1 9쪽
»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4 0 9쪽
6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2 0 10쪽
5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70 0 9쪽
4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6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6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4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31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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