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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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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84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2.23 11:10
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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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9쪽

1. 빵이 먹고 싶어 (4)

DUMMY

「아침밥 먹고 나가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카인이 날아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화장실에 어제 유적지에서 찾은 책 한 권을 들고 간 뒤부터 난 그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요리책이잖아? 그걸 왜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야?」

“······카인, 왜 말해주지 않은 거야?”

「뭘 말이야?」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맛있는 걸 먹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왜 내 기억에는 이런 음식들이 하나도 없는 거야?”

「음식과 관련된 지식은 이식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하지.」

“어째서!”

「밖을 봐. 어디서 식재료를 구하겠어? 인간의 식욕은 엄청나. 맛있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곤 했으니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어.」

“난 이런 맛있는 음식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매일 캡슐만 먹었던 거야? 아······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본 기분이야.”

「내 말 듣긴 한 거야? 식재료를 구할 수 없어서 모르는 편이 낫다니까. 캡슐이라도 먹을 수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해.」

“난 첫 번째 페이지의 이 빵이 먹고 싶어. 다른 요리에도 이 빵을 같이 먹더라고.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맛이 무난하고 구하기 쉬워서 주식이 된 거야. 지금은 구할 수 없어. 지구의 동식물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멸종했을 거야.」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 변종이라던가. 어떻게든 살아남은 개체가 있을지도 몰라.”

「없을 거야. 너도 땅의 상태가 어떤지 두 눈으로 확인했잖아. 지구의 식물에게는 너무 낯선 환경이 되었어.」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믿고 싶지 않아.”

「그럼 오늘은 밀을 찾으러 나가면 되겠네.」

“밀만 있으면 빵을 만들 수 있어?”

「아니, 효모균이 필요한데. 게다가 빵을 구우려면 오븐도 필요하지. 옛날 방식으로 하자면 화덕을 만들거나. 어쨌든 운 좋게 밀을 찾더라도 그 책에 나온 것 같은 빵은 기대하지 마.」


난 다시 첫 페이지로 책을 넘겼다. 은은한 노란색을 띠는 하얀 바닥과 보는 것만으로도 바삭해 보이는 윗면이 신이 심혈을 기울여 빗은 걸작 같았다. 빵의 단면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먹어본 적 없는 맛이다. 하지만 본능이 외치고 있다. 이건 이유를 불문하고 맛있다고.


“캡슐 먹기 싫어. 아무 맛도 없는 캡슐. 이건 맛있을 텐데.”

「비상용 식량이라 그래. 비상용 식량을 맛있게 만들면 금방 바닥이 나. 누구나 자제력이 높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만든 거야.」

“이런 걸 먹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너무 불행해.”

「지금까지 잘만 먹어 놓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쳐다보는 카인을 무시하고 난 다시 요리책에 빠져들었다. 배가 고팠지만 도저히 캡슐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빵이 먹고 싶어.”

「아침밥 먹고 찾으러 가. 정말 운이 좋으면 비슷한 거라도 찾을 수 있겠지.」

“내 다음 첫 끼는 빵이 될 거야. 이 맛없는 캡슐이 아니라.”

「고집부리지 마. 네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아니, 난 먹을 거야. 카인,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내가?」


난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푹신하고 따뜻한 빵을 양손에 쥐고 베어 먹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우선 연구소 밖으로 나갔다. 아침의 촉촉한 공기가 얼굴을 뒤덮었다. 아침에는 유독 대기가 촉촉하다. 맨손으로 세수를 하면 물기가 묻어나올 정도다.


이른 아침에 밟는 땅은 낮보다 단단하다. 햇빛을 받은 대낮의 대지가 끈적거리는 타르 같다면, 밤새 차가운 달빛을 머금은 대지는 소복하게 쌓인 눈밭 같다. 그 부드러운 땅 위에 뒤꿈치로 작은 네모를 그렸다.


“여기에 화덕을 만들 거야.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옆에서 알려줘.”

「재료도 없는데 화덕부터 만들겠다고?」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야. 애써 재료를 구해왔는데 화덕이 없으면 그게 더 곤욕일 거야. 어서 알려줘.”

「······뭐가 잘못된 거지. 너무 급하게 만든 게 화근일까. 경험을 통해 인격을 생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식을 너무 최소화한 것이 문제였나. 어린아이를 만들 계획이 아니었는데.」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난 빵이 먹고 싶을 뿐이란 말이야.”

「본성인가. 인간은 늘 무모한 도전을 하곤 했지. 알았어. 어차피 우리에게 남는 것이 시간이니까.」


카인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카인의 행동을 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바로 화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자 귀를 쫑긋 세웠다.


화덕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먼저, 바닥에 평평하고 단단한 돌을 깔고 그 위에 돌과 진흙을 쌓아 이글루 모양의 봉긋한 산을 만든 뒤 단단하게 굳히면 끝이었다.


너무도 간단한 방법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엄청 쉽잖아?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떤 거야?”

「돌은 어디서 구하고, 진흙은 어디서 구할 거야? 네가 지금 밟고 있는 흙으로는 절대 화덕을 만들 수 없어.」

“돌은 어제 갔던 유적지에 많아. 조금 부수고 가져오지, 뭐.”

「진흙은? 그리고 빵을 구우려면 오랫동안 불을 땔 수 있게 땔감이 필요한데 땔감은? 빵의 재료만 구하기 어려운 게 아니야. 우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명심해.」

“인정해. 하지만 네가 간과한 게 하나 있어.”

「내가? 그게 뭔데?」

“내가 프로 탐험가라는 사실이야. 이 척박한 땅에서 호버 바이크도 찾아냈는데, 진흙? 땔감? 식은 죽 먹기지!”

「하고 싶은 대로 해. 천 년 전의 한 발명가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했었지. 인간에게는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되고는 하니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난 실패할 생각이 없다. 그것은 곧 빵을 먹지 못한다는 의미니까. 반드시 먹고 말테다. 그렇게 다짐을 하며 호버 바이크에 올라탔다. 오늘이 가기 전에 빵을 먹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돌은 유적지에서 언제든 구할 수 있으니까 땔감이랑 진흙부터 구해볼까. 카인, 화덕을 만들 수 있는 진흙은 어디서 구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 깊게 땅을 파면 나올지도.」

“땅도 언제든 팔 수 있으니까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남은 건 땔감인가? 땔감이라······. 저 산은 너무 멀어. 나무를 구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카인, 이 주변에 숲은 없었어?”

「여기서 96km 떨어진 곳에 작은 숲이 하나 있었어. 숲은 아니지만 공원은 10km 반경 안에 몇 군데 있었고.」

“좋아, 그럼 가까운 공원부터 돌아보자. 어서 타.”


난 계기판 위의 앞 유리를 가리켰다. 카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안락해 보였다. 위성이 없어서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지만 대신 더 똑똑한 카인이 있으니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문제없다.


「타라고? 내가 굳이 따라가야 해?」

“공원이 어디 있는지 알려줘야지. 쓸 만한 흙인지도 땔감인지도 알려줘야 하고. 밀도 발견하면 알려줘야지. 그러게 그냥 이식해주지 그랬어.”

「그렇지 않아도 후회하는 중이야.」

“어서 타. 가자!”

「삐빅―.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삐빅―.」

“뭐야, 갑자기?”

「고민하지 않고 설계된 패턴대로만 움직이는 단순한 기계가 되고 싶어서. 내게 지능을 줘서 이런 고통을 받게 하다니. 인간 놈들······.」


카인은 옛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앞 유리 앞에 자리를 잡았다. 상상했던 그림 그대로였다. 마치 호버 바이크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잘 어울리네, 뭘. 어디로 가?”

「저 산을 기준으로 왼쪽 40도 방향 8.5km 떨어진 곳에 공원이 하나 있었어.」


난 대답 대신 액셀을 당겼다. 이미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액셀을 최대로 당기는 짓을 하지 않았다. 8.5km. 적당히 속도를 내도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지붕의 모서리만 남기고 땅속으로 가라앉은 집들이 장애물처럼 서 있었다. 장애물의 크기는 천차만별이었는데 어떤 것은 조약돌 수준에 불과했고, 어떤 것은 커다란 바위 같았다. 유일하게 남은 도시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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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4) 19.03.12 50 0 9쪽
13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3) 19.03.07 27 0 10쪽
12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2) 19.03.05 30 1 8쪽
11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1) +1 19.03.01 63 0 9쪽
10 1. 빵이 먹고 싶어 (9) 19.02.28 50 0 7쪽
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3 0 9쪽
8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60 1 9쪽
7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3 0 9쪽
6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2 0 10쪽
»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70 0 9쪽
4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5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6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4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31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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