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85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2.22 19:50
조회
85
추천
0
글자
10쪽

1. 빵이 먹고 싶어 (3)

DUMMY

“억!”


내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놀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신체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발을 디딜 곳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천재지변에 무기력한 인간이 이런 것일까. 난 이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지하 깊은 곳에 생매장이 되는 신세가······ 되지 않았다.


추락 시간은 불과 1초 남짓. 더 짧을지도. 그러니까 눈 깜짝할 사이 벌써 엉덩이가 바닥에 부딪혔다. 아프지 않았다. 가진 건 이 단단한 몸뚱이뿐이니까.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그리 높지 않았다. 힘껏 뛰어오르면 어떻게든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를 살피니 여러 가지 가정용 공구가 있었다. 여긴 아무래도 차고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수확이다. 연구소에 부서진 부분들을 고치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체면은 지켰다.”


이 정도면 수습 탐험가로서는 큰 성과다. 카인이 원했던 수준이 딱 이 정도 아니었을까. 거기에 책 두 권이 있으니까 책 두 권만큼 초과달성이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차고 안을 좀 더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시간이 너무 늦었다. 더 이상 꾸물거리다가는 돌아가는 길을 잃고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구보다 많이 가진 것이 있다면 시간이지. 조급해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공구를 챙기려는데 시선 끝에 실루엣 하나가 걸렸다. 조명을 가까이 하자 모습을 드러낸 물건에 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완전히 시선을 빼앗겨 눈도 깜빡일 수 없었다.


“호버 바이크!”


까만 호버 바이크였다. 이식된 상식으로는 200년 전에도 골동품 취급을 당하던 물건이었다. 호버 기능은 신발에도 적용될 만큼 간단한 기술이니까.


하지만 모름지기 오래된 물건일수록 가치가 높지 않던가. 호버 바이크는 흔한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 내게는 신발보다 바이크가 더 유용하지. 짐을 실을 수 있으니까.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수습이라는 수식어를 당장 떼야겠다. 프로 탐험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배터리를 확인하니 역시 옛날 물건답게 원자력 배터리다. 이 빈티지함도 마음에 들었다. 남아 있는 배터리의 용량은 10년. 반영구적인 최신 차량의 배터리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지만 뭐, 골동품이니까.


시동을 걸자 호버 바이크는 우웅―하는 소리를 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엔진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였다. 그것이 어쩐지 감격스러워 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남았구나.


시험 삼아 호버 바이크에 올라타니 서서히 지상과의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차고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적당히 몸을 데웠는지 엔진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늠름한 외관에 어울리게 과묵한 녀석이다.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호버 바이크에는 수납공간도 넉넉했다. 뒷좌석을 수납공간으로 개조한 것으로 보아 호버 바이크의 주인은 독신주의였던 모양이다. 하긴 결혼을 할 정도의 능력자가 이런 동네에 거주했을 리 없다.


난 짐을 챙기고 호버 바이크에 올라탔다. 흙구덩이의 크기가 호버 바이크로 통과하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손은 이미 액셀을 당기고 있었다.


어차피 나가야 하잖아. 절대로 기분을 내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


호버 바이크 엔진의 주행 방향을 위로 설정하고 액셀을 있는 힘껏 당겼다. 그 순간 강한 압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호버 바이크는 사방에 흙을 뿌리며 순식간에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등에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끄으윽······.”


사람이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호버 바이크가 차고를 빠져나온 뒤에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천장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등 모양으로 천장이 파여 있었다.


카인이 분명 죽지 않을 만큼 내 몸이 단단하다고 했었는데. 거짓말이다. 이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잠깐이지만 분명 영혼이 빠져나갔다가 되돌아온 느낌이라고.


천천히 호버 바이크를 아래로 향하니 부서진 천장의 잔해가 후드득 떨어졌다. 다행히 호버 바이크는 멀쩡했다. 당연하다. 천장에 부딪힌 건 내 몸뿐이니까.


몸이 뻐근하긴 하지만 나도 다친 곳은 없었다. 확실히 단단한 몸이다. 단점이라면 고통을 전혀 줄여주지 않는다는 것. 고통도 줄여주면 좋았을 것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런 수준까지 간다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니까.


난 호버 바이크의 핸들을 아주 섬세하게 움직여 계단을 올랐다. 다시 생각해봐도 방금은 너무 아팠다. 좁은 곳에서는 첫 번째도 안전운전, 두 번째도 안전운전.


그리고 출입구로 사용한 창문 앞에 도착해서 다시 액셀을 당겼다. 이번에는 적당한 세기로. 그러자 호버 바이크가 시원하게 밖을 향해 날아올랐다.


“히―야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연구소 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늘 요란하다고 생각했던 알록달록한 색의 석양마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순간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방금 석양을 가르며 날아올랐을 때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을 텐데.


허전하다고 느꼈던 대지가 지금은 광활한 고속도로로 보였다. 이곳에선 있는 힘껏 액셀을 당겨도 좋을 것 같았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민의 여지도 없이 난 액셀을 당겼다. 호버 바이크의 엔진이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호버 바이크는 대기를 찢을 것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누군가 내 귀에 입을 대고 폐가 찢어져라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연구소를 지나친 것 같은데 착각일까. 정도가 없는 무자비한 바람이 눈알을 자꾸만 때려서 앞을 볼 수 없었다.


“읍······. 으읍······. 읍······.”


난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벌어지려는 입을 단속하기도 바빴다. 거센 바람은 내 이를 털어버리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자꾸만 입술을 밀어냈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단단한 몸이고 뭐고 평생 죽이나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호버 바이크의 속력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스피드를 즐기는 것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연구소 시설들이 모두 망가진 지금 이가 날아가면 치료도 할 수 없으니까.


너무 기분을 낸 모양이었다. 서행을 하며 뒤를 돌아보니 멀리 연구소가 보일 듯 말 듯했다. 핸들을 빠르게 꺾으니 호버 바이크가 휘청거리며 방향을 틀었다.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이번에도 꽤 멋있었다고 칭찬을 했을 것 같다.


연구소 입구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카인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데 놀란 표정일까. 기계의 표정을 읽기란 어렵다.


“어떻게 알고 나왔어?”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서. 호버 바이크네. 평범한 사람이 너처럼 맨몸으로 그런 속력을 냈다면 몸이 성하지 못했을 거야. 다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렇게 몸을 함부로 굴릴 줄이야.」

“이 정도는 프로 탐험가에게 기본 소양이지.”

「프로 탐험가?」

“내가 찾아온 걸 봐. 공구들도 발견했어. 수습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아.”

「확실히 저 공구들은 굉장히 쓸 만하겠어. 어디서 찾은 거야?」

“저 산 방향으로 쭉 가니까 땅에 파묻힌 주택가가 있었어. 그중 한 곳에서 우연히 차고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이게 있더라고. 어때? 굉장한 수확이지?”

「굉장한데. 더 멀리 다닐 수 있겠어. 짐도 많이 가져올 수 있겠고. 잘했어, 프로 탐험가.」

“후, 첫날부터 너무 과중한 일을 했나. 씻고 좀 쉬어야겠어.”


난 연구소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거드름을 피울 작정이었건만 아까의 충격이 아직 남아 있는지 정말로 목이 뻐근했다. 이래서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더 무섭다고 하는가 보다.


「잠깐.」

“왜?”

「가져온 물건들은 정리하고 가야지. 이대로 둘 거야?」

“밖에서 고생하고 왔는데 이러기야?”

「난 손이 없는걸. 나중으로 미룰 생각은 하지 마. 정리정돈은 제때 하고 살기로 약속했잖아.」


난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순순히 몸을 돌렸다. 손이 없는 것은 사실이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애써 구해온 유물들을 밖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도 아주 높은 확률로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서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기계일 텐데 역할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불만스러우면 다음에는 팔다리가 달린 쓸 만한 몸체를 가져와. 그럼 청소부터 정리정돈까지 전부 내가 할게.」

“정말?”

「기계가 모르는 두 가지가 있어. 거짓말과 게으름. 기계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봐. 그런 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리 없잖아. 기계만 믿으라고. 오히려 게으름 피우는 걸 보고 있으면 내게 팔이 없다는 사실이 답답해서 화딱지가 나니까.」

“이거 참. 프로 탐험가의 의욕에 불을 지피는 말인데. 좋았어. 새로운 몸체를 구해서 각자 본성에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하자. 난 게으른 인간으로, 넌 부지런한 기계로!”

「좋아, 좋아.」

“어서 게으른 인간이 되고 싶다.”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버 바이크를 연구소 안으로 옮겼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대신해주는 미래의 카인을 생각하니 흡족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5) 19.03.14 51 1 10쪽
14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4) 19.03.12 50 0 9쪽
13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3) 19.03.07 27 0 10쪽
12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2) 19.03.05 30 1 8쪽
11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1) +1 19.03.01 63 0 9쪽
10 1. 빵이 먹고 싶어 (9) 19.02.28 50 0 7쪽
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3 0 9쪽
8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60 1 9쪽
7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3 0 9쪽
6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2 0 10쪽
5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70 0 9쪽
»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6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6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4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31 3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