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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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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83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3.12 05:45
조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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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4)

DUMMY

카인의 말처럼 난 호버 바이크를 타고 반나절을 더 달렸다. 그러니까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온통 진한 갈색의 땅뿐이다. 얼굴도, 눈동자도 갈색으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아.


「어······.」

“왜 그래?”

「숲이야.」

“숲? 동물은?”

「글쎄. 직접 보는 게 좋겠어. 평범한 숲은 아니야.」


확신 없는 카인의 목소리가 불안했다. 시체풀이 잔뜩 난 숲은 아니겠지. 장장 8시간을 달려왔다. 적어도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어.

숲에 가까워질수록 난 눈을 의심했다. 그렇게 숲을 100m 가량 남겨두고 난 브레이크를 당겼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와······.”


왼쪽에서 파란 숲이 움직였다. 막대기처럼 길쭉하고 매끈한 파란 나무들이 모여 있었다. 2m가 훌쩍 넘는 높이에 비해 허벅지 굵기의 홀쭉한 나무들은 약한 바람에도 갈대처럼 허리를 휘청거리며 둥근 머리를 흔들어댔다.


오른쪽에서는 노란 숲이 움직였다. 물풀처럼 가느다란 줄기에 매끈한 한 줄기 잎을 가진 풀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파란 나무와 마찬가지로 2m가 넘는 높이였다. 노란 풀의 지느러미 같은 잎이 바람에 날리는 비단처럼 부드럽게 하늘거렸다.


파란 나무숲과 노란 풀숲이 움직일 때마다 숲의 경계가 녹색으로 물들었다. 허공에 에메랄드 가루를 흩뿌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이쁘다. 저거 봐.”

「아름다워. 하지만 원인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아아······.」


카인의 탄식 소리를 들었지만 난 이미 숲을 향해 뛰고 있었다. 저렇게 이쁜데 위험할 리 없잖아. 저건 오히려 오랜만에 만난 새로운 생명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닐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을 위한 환영인사!


“혹시 요정들인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요정들. 가상의 존재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한 마당에 요정이 나타난들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카인이 저렇게 사람 같은 것도 이상하니까 요정도 하나쯤 있을 법하다.


숲 안으로 들어가자 양옆에 늘어선 파란 나무와 노란 풀들이 파르르 떨었다. 날 환영하는 몸짓 같았다. 숲속은 바깥에서 볼 때와 달리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허공을 물들인 에메랄드의 정체는 파란 숲에서 날아온 가루와 노란 숲에서 날아온 가루가 모여 만든 착시현상이었다.


숨을 쉬기가 꺼림칙할 만큼 많은 양의 가루들이 날아다녔다. 꽃가루? 포자? 어쨌든 요정은 아니었다.


「그렇게 함부로 들어가면 어떡해.」


어느새 뒤따라온 카인이 책망하듯 말했다.


“괜찮아. 그보다 여기에 떠다니는 것들은 뭐야? 꽃가루? 포자? 어서 먹어 봐.”

「으음. 포자야.」

“무슨 식물이야?”

「등록되지 않은 식물이야. 변이가 너무 많이 일어나서 이전에 어떤 식물이었는지 특정 짓기가 어려워. 그래도 가장 비슷한 걸 찾아보면······ 파란 포자는 고사리, 노란 포자는 미역에 가까워.」

“저 파란 나무가 고사리고, 저 노란 풀이 미역?”

「내가 아는 고사리는 저런 나무가 아니야. 미역도 여기에 있을 게 아닌데. 바다에서 자라. 무엇보다 고사리나 미역이나 저렇게 크지 않아.」

“200년 전이랑 모든 게 다르구나. 그런데 고사리랑 미역은 먹을 수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먹을 수 있느냐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식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그런 구분을 하는 건 인간뿐인걸.


카인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궁금한 건 결국 그것뿐이냐는 눈빛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먹을 수 있어. 그렇지만 일부 국가에 한정된 식재료라서 입맛에 맞을지는 미지수야.」

“그러니까 먹을 수 있다는 거지?”

「저것들이 정말 고사리와 미역이라면. 색도 이상하잖아. 나라면 먹지 않겠어. 파란 고사리와 노란 미역이라니. 휴.」

“어······ 카인? 고사리가 원래 이렇게 끈적거려?”


고사리를 먹을 수 있다는 카인의 말에 왼쪽에 있던 파란 고사리의 나무줄기를 덥석 붙잡았더니 손이 딱 달라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쩐지 표면이 매끈해 보이더니만.


「아니. 어때? 못 빠져나오겠어? 네 힘이면 그럴 리 없을 텐데.」

“음, 억지로 떼어내면 나무줄기의 표피도 함께 떨어져 버릴 것 같아서. 표피가 떨어지면 아프지 않을까?”

「식물은 통증을 느끼지 않아.」

“그건 알지만 마트의 돌버섯처럼 날 싫어하게 되면 어떡해?”

「그것까진 장담하지 못하겠어. 분명 싫어하겠지? 자기 피부를 뜯어내는데 좋아할 리 없어.」


고사리의 함정에서 벗어나려 손을 꼼지락거리던 난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피부를 뜯어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경험한 적은 없지만 굳이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다. 무조건 아플 거야. 무조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고사리들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 돌버섯의 미움을 산 탓에 너구리판다들도 여전히 나를 피하는데 더 이상은 안 된다.


“카인, 어쩌지?”

「어쩔 수 없잖아. 고사리도 이해할 거야.」

“그랬다가 날 미워하면 어떡해? 주변에 사는 동물들도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안타깝지만······ 이 주변에 동물은 없는 것 같아.」

“여기가 동물 서식지라면서? 동물보호구역이었다며? 그런데 동물이 없다고? 다 죽었단 말이야? 고사리랑 미역도 살아남았잖아.”

「그 고사리랑 미역 때문이야. 이 포자들······ 단순한 포자가 아니야. 강한 독성을 갖고 있어. 동물들에게 너무 치명적인 독이라 조금만 들이마셔도 며칠 살지 못할 거야.」

“정말? 그러고 보니 목이 조금 껄끄러운 것 같기도 한데. 그럼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죽었겠지. 독이라는 걸 눈치 챘을 즈음엔 이미 중독되었을 테니까.」

“그럴 수가······.”


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사리를 올려다보았다. 고기를, 동물을 만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8시간을 달려왔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나다니. 세상이 원망스럽다. 어째서 세상은 내게 이토록 가혹한지.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이!”

「세상에 너뿐이잖아. 세상에 할당된 행복과 불행의 비율은 1 대 9라고 해. 한 명이 행복할 때, 아홉 명은 불행하다는 거지. 넌 혼자니까 아홉 번 불행하고, 한 번 행복하지 않을까.」

“언제는 희망 뒤에 절망이 오고, 절망 뒤에 희망이 온다면서!”

「뭐······ 희망과 행복은 다른 법이니까.」

“거짓말쟁이! 기계는 거짓말을 모른다더니.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이제 보니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구나!”

「너 지금 너무 흥분한 것 같아.」

“흥분 안 하게 생겼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화가 났다. 그래, 난 지금 몹시 화가 난 상태다. 보상 받지 못한 노력에 대한 화였다.


가뜩이나 화가 나는데 움직일 수 없게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고사리가 괘씸했다. 그러고 보니 이 고사리가 동물들을 이 세상에서 살 수 없게 만들었다고 했다. 고사리만 아니었다면 이곳에 동물들이 살았을 텐데. 난 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흔들었다. 격한 움직임에 고사리의 줄기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고사리도 벌을 받아야 해. 동물들을 사라지게 한 벌.


“앗······!”


고사리에게 벌을 주던 난 갑작스러운 해방감에 깜짝 놀랐다.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고사리 줄기에 붙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상황이 파악됐다. 너무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는지 고사리가 뿌리째 뽑혀 버린 것이다. 난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카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카, 카인. 나 모르고 고사리를 뽑아 버렸어.”

「다시 심으면 되잖아.」

“그, 그런가?”


난 바닥에 생긴 구멍과 고사리의 뿌리를 번갈아보며 고사리를 다시 심으려고 했다. 단지 자그마한 벌을 주고 싶었을 뿐이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정말이야.


고사리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2m나 되는 줄기가 자꾸만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음이 초조했다. 그럴수록 내 손도 떨려서 작은 구멍에 뿌리를 넣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

「아······!」


카인과 난 동시에 탄식을 내뱉었다. 고사리의 둥근 머리가 한순간에 힘없이 꺾이더니 2m나 되는 줄기와 머리가 파란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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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살을 구워 먹는다고? (1) +1 19.03.01 63 0 9쪽
10 1. 빵이 먹고 싶어 (9) 19.02.28 50 0 7쪽
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3 0 9쪽
8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60 1 9쪽
7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3 0 9쪽
6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2 0 10쪽
5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69 0 9쪽
4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5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6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4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31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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