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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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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75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2.21 03:25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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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4쪽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DUMMY

「미안해, 소마. 인간이 다시 지구의 주인이 되는 미래는 없을 거야. 네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신인류 프로젝트의 재료를 자처한 지 벌써 150년이 지났지.」


부서진 냉동캡슐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인간의 유골을 내려다보며 인공지능 카인이 중얼거렸다. 홀로 내뱉는 말에서 기계답지 않은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카인이 수백 년 동안 홀로 거주 중인 연구소 안은 이미 오래 전에 순환시스템이 고장이 나 외부의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청소할 사람도, 이유도 없으니.


「테라포밍은 아직도 진행 중이야. 행성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200년 전 나타난 뒤로 그들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어. 내가 못 봤을지도 모르고. 인공위성도 남아 있지 않고, 만약 있다고 해도 지구 자기장이 변해서 기계인 난 눈 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니까.」


카인은 하나뿐인 기계 눈을 깜빡거렸다. 열심히 눈꺼풀을 깜빡거려도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먼지는 어쩔 수 없는지 탁한 눈은 여전했다.


「안타깝지만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어. 모두 고장 났어. 200년 전 오존층이 이미 파괴됐다는 것은 너도 알거야. 그런데 테라포밍이 진행될수록 그나마 보호막이 되어 주었던 대기와 자기장까지 태양풍을 막아주지 못하게 되었거든. 내 본체는 예민했어. 태양풍에 약해. 그래도 난 단순하지만 예민하지 않은 몸으로 이전해서 기계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어. 불과 어제까지도 난 내 사명을 위해 일했어. 내게 남겨진 마지막 사명. 인간의 멸종을 막는 것 말이야.」


카인의 뒤로 다른 모양의 캡슐들이 늘어서 있었다. 열 개의 캡슐 중 아홉 개의 캡슐은 가동을 멈췄고, 유일하게 하나의 캡슐만이 간헐적인 빛을 냈다.


「아, 참 어려웠어. 나날이 변화하는 대기의 성분에 죽지 않고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야 했으니까. 인간 같은 기계를 만들려고 했다면 진작 성공했을 텐데. 난 많은 부분에서 타협을 했어. 그래서 급한 대로 기계가 완전히 고장 나기 전에 인간 같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에 가까운 인간을 완성할 수 있었지. 주요 장기를 제외하곤 모두 기계에 가깝지만 나처럼 에너지가 아니라 다양한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 분명한 인간이야. 매일 귀찮게 식사를 해야 한다고, 냠냠.」


카인은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입을 딱딱거리며 움직였다. 그때 간헐적인 빛을 내던 캡슐이 삐― 소리를 내며 주변을 시끄럽게 했다.


허공에 떠 있던 작은 구체가 캡슐을 향해 빙그르르 돌았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한 기계 눈과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 입이 전부인 작은 구체. 그것이 카인의 본체였다.


「이식이 모두 끝났으니 곧 깨어나겠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니까 혼자 살아가기에 불편하지 않을 최소한의 지식만 이식했어. 내가 기억하는 인간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발전하는 동물이었으니까. 블랙홀에 던져도 될 만큼 튼튼하게 만들었으니 낯선 세상에서 실수하거나 실패한다고 죽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캡슐의 뚜껑이 열렸다. 카인이 150년 만에 다시 듣게 된 인간의 목소리는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였다.


「과열됐나. 기침 소리를 들으니 기관지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는 모양이야. 오랜만에 듣는 소리라 반가운걸. 150년 만에 대화 상대가 생겼어. 하지만 그 전에 청소부터 시킬 거야. 150년 동안 쌓인 먼지가 대단하거든. 그럼 편히 잠들라고, 친구.」


카인의 작은 몸이 부서진 냉동캡슐을 등지고 멀어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눈만 끔벅끔벅하는 남자를 향해 날아가는 작은 구체의 움직임은 어딘가 들떠 있었다.


고독한 사이보그와 인공지능 카인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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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5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3 1 9쪽
»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29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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