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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의 서재입니다.

고독한 사이보그의 요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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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꾼2
작품등록일 :
2019.02.21 03:23
최근연재일 :
2019.03.14 05:3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080
추천수 :
7
글자수 :
57,670

작성
19.02.24 19:14
조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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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 빵이 먹고 싶어 (5)

DUMMY

「여기야.」


카인이 도착을 알렸다. 브레이크를 잡으며 둘러본 주변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조차 없는 불모지.


“없네, 아무것도.”

「말했잖아.」

“좋아, 그럼 다음 공원.”

「다시 저 산을 기준으로 뒤로 돌아서 오른쪽 15도 방향 5.6km. 좀 더 오른쪽, 좀 더. 그래, 그 방향으로.」


난 어느 내비게이션보다 정확한 카인의 지시를 따라서 두 번째 공원을 향해 달렸다. 가까운 거리였으니 목적지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도 공원은 없었다.


「그대로 오른쪽으로 조금 틀어서 7km.」


카인이 즉각 지시를 내렸고, 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쉽게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실망하지 않았다. 이 호버 바이크를 마지막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쉽게 얻을 수 없으니까 귀한 것이다.


그렇게 세 군데를 더 지나쳐 여섯 번째 목적지를 향해 갈 즈음에는 마치 한 몸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호흡을 발휘하게 되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길이 있는 것처럼 정해진 경로를 따라서 움직였다.


여섯 번째 목적지를 500m 앞에 두고 난 급격하게 속력을 줄이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눈을 깜빡거리며 카인에게 눈앞의 광경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카인, 저게······ 뭐야?”

「공원······이었겠지. 아마도.」


카인도 답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 200년 전에는 공원이었을 장소에는 지옥의 늪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장소가 펼쳐져 있었으니까.


가까이 다가가자 석유를 들이부은 듯 끈적끈적해 보이는 검은 땅 위에 짙은 보라색과 회색이 뒤섞인 줄기들이 물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겉보기와 달리 냄새는 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 뼈 없는 팔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식물이야?”

「기록에 없는 식물이야. 식물이 맞는지도 모르겠어.」

“독을 갖고 있으려나.”

「무슨 독이든 피부를 뚫진 못할 거야.」

“아니, 먹을 수 있을까 해서.”

「저걸······?」

“맛은 겉보기로 판단할 수 없잖아. 성분 분석 좀 해줘. 밀 대신 쓸 수 있을지도 몰라.”


호버 바이크에서 내린 나는 무릎 높이까지 자란 흐느적거리는 줄기 하나를 꺾었다. 줄기의 감촉은 아주 부드러웠고, 꺾은 단면에서는 점성을 가진 검은 액체가 길게 흘러내렸다.


난 카인의 입으로 그것을 가져갔다. 카인은 불만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입을 오물거렸다. 잠시 뒤 성분 분석이 끝났는지 잘게 잘리고 뭉개진 검은 덩어리를 내뱉었다. 그것을 본 난 카인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저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이야. 그런데 인간에게 알려진 식물은 아니야. DNA 구조가 비슷한 식물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없어. 분명 지구에 있던 식물이 변형된 것일 텐데 이미 원형을 추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형된 것 같아.」

“먹을 수 있는 거야?”

「인간이 이걸 먹는다면 이미 세포에 흡수된 것까지 전부 토해낼 수 있을걸. 삶이 무료해져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면 먹도록 해.」

“······부작용인가? 너무 까칠해.”

「잊지 말라고. 난 인간에 가깝게 만들어진 섬세한 인공지능이야. 이런 썩은 시체 같은 걸 맛보고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잖아.」

“옛날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기계에 인격을 부여했지?”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인간의 모든 면을 뛰어넘게 됐을 때, 인공지능이 인간의 논리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말하자며 융통성 있는 인공지능이 필요했던 거지.」

“기계가 왜 인간을 이해해야 하는데?”

「일상은 물론이고 법의 판단과 집행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시대가 다가오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됐어. 인간은 일관성이 없거든.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도 수많은 규칙들과 제한들을 평생 지킬 수는 없는 법이야. 만약 기계가 인간을 이해하도록 만들지 못했다면 인간은 두 가지 미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거야.」

“두 가지 미래라. 어떤 미래인데?”

「하나는 고전영화나 소설에서 주로 등장하는 기계에 의해 대다수의 인간이 멸종하는 디스토피아.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멈춰 문명이 정체된 미래. 인간이 후자의 선택을 했다면 인류의 발전은 지금보다 800년 이상 늦춰졌을 거야.」

“인간이 멸종할 일도 없었겠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

“요리를 먹어 보지 못한 가련한 사이보그도 태어나지 않았을 테고.”

「빵에 집착하는 기분 나쁜 사이보그도 없었을 텐데.」


난 대답 대신 바닥의 검은 흙을 한 움큼 집어 카인의 입에 밀어 넣었다.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날 쳐다보지만 손발이 없으니 저항하지 못했다. 기계가 인간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화덕 만들 때 쓸 수 있는지 확인해줘.”

「퉤. 진흙이랑 비슷해. 쓸 수 있겠어.」

“말했지? 식은 죽 먹기라고. 참, 땔감도 필요하다고 했지. 이 식물을 쓰면 안 되려나.”

「땔감으로는 나쁘지 않겠네. 기름기가 많아.」

“좋아, 전부 해결이다. 돌아가서 화덕부터 만들자.”


난 호버 바이크의 수납공간에 검은 흙과 팔처럼 생긴 식물을 가득 담았다. 화덕을 만들려면 몇 번인가 다시 와야 할 것 같았다.


“타. 가자.”

「다음부터는 좀 더 정중하게 넣어줬으면 좋겠어. 아니, 손에 들고 있으면 내가 내 의지로 먹을 테니까 다신 그러지 마.」

“알았어. 말을 너무 못되게 해서 그랬어. 어차피 숨 쉬는 것 말고 할 것도 없잖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싶을 뿐인데 왜 그렇게 예민한지 모르겠어.”

「······뭐, 직접 경험해보는 게 좋겠지. 하고 싶은 대로 해.」


카인은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먹는 것이 좋지 않다는 투라서 난 호버 바이크를 출발시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잘못된 것일까. 단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뿐인데.


화덕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연구소로 옮기는 사이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 있었다. 연구소 앞에는 검은 흙과 부서진 건물파편이 키만큼 높이 쌓였고, 그에 못지않게 쌓인 시체풀이 검은 진액을 흘렸다.


검은 숲에서 발견한 풀을 시체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보라색과 회색이 뒤섞인 기묘한 색감과 사람의 팔을 닮은 모양을 보면 이보다 어울리는 이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재료는 다 구했어. 이제 어떻게 해?”

「일단 벽돌이랑 진흙으로 바닥을 만들어. 그 위에 둥글게 벽돌을 쌓고 진흙을 덧붙여서 이글루 모양을 만드는 거야.」


난 팔을 걷어붙이고 카인이 일러주는 대로 화덕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적지에서 가져온 돌들이 뼈가 되었고, 검은 숲에서 가져온 흙은 살이 되었다. 완성된 화덕의 모습은 아주 그럴싸했다.


완성된 화덕을 뿌듯하게 내려다보며 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훔쳤다. 유적지를 파헤칠 때만도 흘리지 않았던 땀이었다.


“이게 이렇게 힘든 작업이었어?”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잖아. 넌 어쨌든 사람이야. 움직이려면 뭔가를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해야해.」

“빵 만들기를 서둘러야겠어. 어딜 가면 밀이 있을까? 사람들은 밀을 어디서 얻었어?”

「밭에서 얻지.」

“주변에 밭이 있었어?”

「없어. 그리고 밭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밀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집집마다 냉장고를 뒤져봐야 하나.”

「냉장고를 뒤질 바에는 마트나 물류창고가 낫겠어.」

“마트! 마트로 가자! 주변에 마트는 있겠지?”

「3.3km 떨어져 있어. 조금 전 공원을 찾으러 돌아다녔을 때 보지 못했던 걸 보면 땅속에 파묻혔을 거야.」


땅속에 묻힌 것이 무슨 대수랴. 난 땀에 젖은 소매를 끌어내리며 호버 바이크 위에 올라탔다. 이제는 카인도 알아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지금 캡슐을 먹어 버리면 아침부터 했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오늘의 첫 끼니는 빵으로 예정되어 있다.


마트가 있어야 할 장소에는 예상했던 대로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았다. 카인은 마트의 입구가 있었던 자리를 어림잡아 말해주었고, 난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머리가 잠길 정도로 깊이 땅을 팠을 때 단단한 건물의 외벽이 손에 걸렸다. 난 외벽을 따라서 구멍을 점점 넓혀갔다. 타르 같은 땅의 특성 때문인지 옆으로 터널을 만들려고 하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구를 찾으려 구멍을 넓히다 보니 달 표면의 크레이터처럼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몇 번인가 호버 바이크의 주차 위치를 바꿔야 했을 만큼 대규모 공사였다.


땀으로 온몸이 젖었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지만 마트의 입구를 보니 없던 힘도 생겨나는 것 같았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털어내며 난 호버 바이크에 있을 카인을 불렀다.


“카인! 입구를 찾았어!”

「보고 있었어. 정말 열심히 파더라. 결국 찾았네.」

“따라와. 내가 앞장설게.”


마트로 들어가는 일은 수월했다. 입구는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부자연스럽게 부서진 모습과 여전히 남아 있는 그을린 흔적들은 실제로 폭탄을 사용한 듯했다. 당시 혼란했던 시대를 보여주는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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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빵이 먹고 싶어 (8) +1 19.02.27 43 0 9쪽
8 1. 빵이 먹고 싶어 (7) +1 19.02.26 59 1 9쪽
7 1. 빵이 먹고 싶어 (6) 19.02.25 63 0 9쪽
» 1. 빵이 먹고 싶어 (5) 19.02.24 62 0 10쪽
5 1. 빵이 먹고 싶어 (4) 19.02.23 69 0 9쪽
4 1. 빵이 먹고 싶어 (3) 19.02.22 85 0 10쪽
3 1. 빵이 먹고 싶어 (2) 19.02.21 95 0 9쪽
2 1. 빵이 먹고 싶어 (1) 19.02.21 104 1 9쪽
1 프롤로그. 고독한 요리사의 탄생 +1 19.02.21 231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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