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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르미의 서재입니다.

금발마녀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녀르미
그림/삽화
Copilot GPT
작품등록일 :
2024.02.19 17:43
최근연재일 :
2024.05.06 20: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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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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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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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0장. 화월루주

DUMMY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도 짐을 싸는 것에 대해 한참을 의논하던 중에 장환이 예전 수하들을 데려와 함께 짐을 싸게 하자는 의견을 내놓자, 세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와중에 내일 당장이라도 불러야 한다는 설연의 말은 또다시 묵살 당했고, 고작 세 식구가 살던 집이니 정리할 짐도 별로 없으리라 여긴 양현과 장환은 이사 전날 그들을 부르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 후로도 설연은 하루도 빠짐없이 해오던 단공의 연공을 대주천까지 하고, 그 옆에서 양현과 장환 두 사람도 최근 들어 시작한 각자의 연무를 마치고 난 후에야 늦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는데,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장환이 해준 귓속말 덕분에 설연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모든 근심을 털어버리고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 * *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친 설연은 꼭 보여줄 것이 있다는 말을 하며 양현과 장환 두 사람을 데리고 뒷마당 안쪽의 창고로 갔다. 항상 열려있는 작은 창고와 달리 설연이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그 옆 창고는 문이 자물통으로 굳게 잠겨 있었고 그 크기도 옆의 창고보다 훨씬 더 컸다.

설연이 잠겨 있던 커다란 창고 문을 열어 보여주기 전까지만 해도 항상 잠겨 있던 창고 안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은, 방 세 개와 옆의 작은 창고 안의 짐 정도만 정리하면 될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짐이라고 짐작되는 서당 별채 안의 서책들이나 수십 개의 서상, 글씨를 연습할 수 있는 모래판 등과 같은 짐들은 돈을 더 받는 대신에 후일 서당을 열고 싶다고 하던 촌장의 아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기로 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의 생각은 설연이 뒷마당에서 가장 큰 창고 문을 활짝 열어 안을 보여준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양의 서책들이 천장까지 닿는 서가들에 빼곡히 꽂혀 있는 것이 둘의 시야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창고 안 서가에 꽂혀 있는 엄청난 양의 서책들을 본 양현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장환은 놀라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 이거 정말 대단하구먼. 정말 대단해. 내 평생에 집안에 이런 훌륭한 서가를 두고 있는 것은 처음일세 그려.”

“연아, 대체, 대체 이게 다 뭐냐?”

“제 고조부님과 증조부님, 조부님에 제 아버지까지 사대에 걸쳐 근 백 년 동안 모으신 서책들이에요, 아저씨. 사실 연이도 이 창고에는 거의 들어와 본 일이 없어서 더 이상은 잘 몰라요.”(아휴, 연이도 걱정이 태산이라고. 이걸 다 어떻게 싸들고 성도까지 가? 그래서 오늘 당장 그 사람들 불러와야 한다고 했잖아.)

거의 항상 문을 잠가 놓던 이 창고는 설관도 본인이 읽었던 책들 중에서 귀하거나 좋다고 여긴 책들만 골라서 보관하고자 할 때에 열었던 곳이었기에 설연도 아버지를 따라 왔다가 열린 문을 통해 안을 몇 번 들여다 본 것이 전부였다.

“이, 이걸 다 어떻게 성도까지 나르죠?”

“버리고 가긴 아깝네. 이거 귀한 서책들도 꽤 될 듯싶은데? 지금 내가 둘러본 서책 몇 권만 내다 팔아도 상당한 돈이 될 게야.”

(돈? 돈이 된다고? 그렇담 무슨 일이 있어도 싸들고 가야지. 역시 환이 아저씨 수하들을 지금 당장 부르는 수밖에 없다니깐 그러네.)

장환의 물음에 창고 안에 들어서서 먼지 쌓인 서책 몇 권을 펼쳐보던 양현이 그렇게 대답하자, 설연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아저씨, 그 수하분들 먼 곳에 계세요?”(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빨리 데려와야 해, 아저씨.)

“아니다, 데리러 가면 금방이야.”

“그래, 아무래도 환이 자네가 그 사람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좀 불러와야 할 듯싶네. 이걸 포장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겠구먼. 게다가 성도까지 실어 나르려면 수레나 우마차가 많이 필요할 듯도 하네 그려.”

그렇게 창고 안을 둘러본 양현과 장환은 원래 이사 전날이나 부르려고 했던 장환의 수하들을 바로 불러오기로 했다. 이 정도라면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예,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다녀온 다음에는 성도에도 좀 다녀와야 할 듯싶습니다.”

“성도? 성도에는 왜?”

“수레나 말들을 구하자면, 전장에 맡겨둔 돈을 찾아와야 할 듯해서요.”

“아저씨!”(아저씨 전장에 맡겨둔 돈도 있어? 어젯밤엔 집도 준다고 하더니. 아저씨 진짜 부자였구나.)

설연은 어젯밤에 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장환이 해줬던 귓속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장환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아! 자네가 그리 해주겠는가?”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장환이 성도의 집을 설연에게 준다고 했던 것이나, 방금 전에 이사하는 데 쓸 돈을 찾아온다는 말은 모두 그가 정의맹으로부터 받은 것들 대부분을 설연을 위해서 쓰기로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간 매일 같이 성도를 오가며 장을 봐올 때도 장환은 모두 자기가 정의맹으로부터 받아서 전장에 맡겨 두었던 돈을 쓰고 있었다.

“정말 고맙네 그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어르신, 그럼 저는 일단 그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연아, 너도 단단히 준비하고 있거라.”

장환은 어제 설연이 부담스러워하던 것을 떠올렸는지 걱정하는 말을 덧붙였으나, 설연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어제 밤에 장환의 귓속말을 듣는 순간에 마음속에 있던 앙금이 꽤 많이 녹아내렸던 탓인 듯했다.

“예, 아저씨, 걱정 마세요.”

“그래, 고맙다, 연아.”


그 말을 끝으로 장환이 몸을 돌려 달려 나간 지 채 이각도 안 되어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오는 장환의 기척이 설연의 감각에 잡혔다. 그들 중에는 예전의 장숙수와 위일구의 아들 위부, 용삼의 부인, 또 설연도 익히 알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몇 명의 기척들도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장환을 빼고도 여덟 명 모두가 설연에게 낯익은 기척들이라는 것에, 설연은 내심 다시 밉고 원망하는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우, 진짜 이게 마음대로 안 되네. 자꾸 보기 싫고 미운 생각만 들어.)

그 때까지 양현과 뒷마당 서책 창고에 있던 설연에게 장환이 다가오자, 설연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대체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었길래, 이렇게 빨리 돌아오신 거예요?”

“그게 화향객점에 있었거든, 하하하.”

“아휴, 그렇게 가까이 있었어요?”

완전히 허를 찔린 설연은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장을 모두 장환이 봐오면서 설연은 일전에 밭을 갈러 나갔을 때와 설관의 사십구제를 지내러 산소에 다녀올 때를 빼고는 집 밖에 나간 적이 거의 없었으니, 그들이 객점에 숨어 있는지 어땠는지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하하, 가까운 곳에 있어야 무슨 일이 터져도 나나 어르신께서 손을 쓸 수가 있었기에 그리 한 것이란다.”

“엥? 그럼 사부님도 아시고 계셨다는 말씀?”

옆에 양현이 있었지만, 설연은 대놓고 황당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연아, 너무 서운해 할 일은 아니라고 보이는구나. 다 너를 생각해서 그리 한 것이니 말이야. 필요할 때 너를 지켜주기로 하고 가까이 있었던 것이란다.”

여전히 손에 서책을 펼쳐든 채로 양현이 대꾸를 하고 나서자 장환도 용기를 얻었는지 몸을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이었다.

“그래, 방금 어르신 말씀대로 그래서 그리 된 것이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에효, 연이만 모르고 있었네요.”(에효, 진짜 너무들 하시네.)

“그래,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된 것 아닐까? 어서 가서 그들에게 얼굴이라도 한 번 보여주려무나. 다들 앞마당에 있단다.”

“예, 그럴게요.”(아휴, 이거 너무 떨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게 아닌가봐.)

그렇게 마지못해 대답한 설연은 천천히 앞마당으로 걸음을 옮겼고, 막 그녀가 부엌 모퉁이를 도는 순간 마당 한가운데에 한 줄로 무릎을 꿇고 앉아 양 팔을 땅에 짚은 채 고개까지 숙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아, 아니 이, 이게?”(뭐, 뭐야, 왜들 이러고 있는 건데?)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행동에 놀란 그녀가 걸음을 멈춰 서자 맨 왼쪽에 있던 장숙수, 장동(張東)이 고개를 숙인 채로 입을 열었다.

“설연 아가씨의 부모님을 해한 죄, 목숨으로도 갚지 못할 죄를 고하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꾸짖어 주시고, 원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저희들의 목숨을 취하시어 두 분 부모님의 원한을 갚으십시오!”

“저희들의 목숨을 취하시어 두 분 부모님의 원한을 갚으십시오!”

나머지 일곱 명은 장동이 외친 말의 마지막 말을 따라 외치며 한층 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 그만들 하세요. 그러실 필요들 없는데···”(으아, 뭐야? 왜들 이래?)

목숨을 거두라는 커다란 외침 소리에 설연은 덜컥 겁을 집어 먹고 얼굴이 굳어졌지만, 뒤에 서 있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한 양현과 장환은 무릎을 꿇고 목숨으로 용서를 비는 그들의 모습만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희들의 목숨을 취하시어 두 분 부모님의 원한을 갚으십시오!”

“그, 그만 하세요. 어서 일어나요.” (무, 무섭게 왜들 그래? 아저씨, 사부님, 이 사람들 왜 이래요?)

다시 한 번 여덟 명이 큰 소리로 외치자 이제 설연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뒤를 돌아다보았고, 그 표정을 본 양현과 장환은 깜짝 놀라 급히 그녀에게 다가섰다.

“자, 다들 그만하고 일어서거라. 연이가 많이 놀란 듯하구나.”

“연아, 괜찮으니 놀랄 필요 없단다. 무공만 익히고 딱딱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라 다른 것을 잘 몰라서 그래.”

양현은 설연의 왼쪽에 서서 마당에 무릎을 꿇은 일행들에게 그만 일어서라고 말했고, 장환은 양현의 반대편에 몸을 낮춰 앉아 왼팔로 설연의 어깨를 감싸주며 그녀를 달랬다. 요즘 들어 가뜩이나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눈물이 많은 그녀가 여기서 울음이라도 터트린다면 진정 큰 일이 날 것 같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들이 용서를 빌라고 했지, 누가 연이한테 겁을 주라고 했냐? 어서들 일어서.”

장환이 고함까지 치며 일어서라고 말하자, 꿇어 앉아 있던 여덟 명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을 본 장환은 가슴이 답답한 듯 고개를 저었다.

“으이그, 저 밥통들!”


* * *


그로부터 다시 나흘 후, 설연이 성도로 이사하는 당일 아침에 그녀의 집 안팎은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해가 뜨자마자 화향객점에 있던 장환의 수하들이 몰려와 이삿일를 시작한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장숙수로 활약했던 삼호 장동(張東)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찌감치 와서 설연과 함께 총 열한 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먹을 아침식사를 푸짐하게 준비했고, 잘 차려진 아침식사를 모두가 마친 뒤부터 본격적으로 수레에 짐을 싣는 일이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설 훈장 내외의 유일한 혈육인 설연이 사부를 따라 이사를 간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진 덕분인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도와주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설연과 장환이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등을 떠밀어 돌려보내지 않았거나, 장환 일행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고 알아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날라야 할 짐보다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장환과 그의 수하들 중, 삼호 장동(張東), 육호 추산(秋山), 칠호 모진(毛震), 팔호 마춘(馬春), 십호 등구(鄧具) 등 젊은 남자들은 장환이 전날 구해온, 무려 열 대나 되는 커다란 수레들에 정신없이 짐을 싣고 있었는데, 다들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라서 그런지 무거운 짐을 들고 움직이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뒷마당 창고 안에 있던 서책들까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짐들의 절반이 단 일각도 안 되어 대문 밖에 놓아둔 수레들에 옮겨 실렸고, 한 손에 하나씩 커다란 짐꾸러미를 양 손에 나눠 들고 나르는 그들의 모습에 아침부터 애써 찾아온 마을 사람들도 기가 질려서 설연에게 인사만 건네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짐을 싣는 일을 시작한지 이 각(30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짐이 거의 다 실린 것을 본 양현은, 방금 전까지 손에 들고 차를 마시던 찻잔을 오호 양향령(梁響鈴)에게 넘겨주면서 집과 전답 값을 받으러 촌장네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비웠다.

마당 한 쪽에서 설연과 마주 앉아 아침식사 때 쓰고 좀 전에 설거지를 마친 식기들의 물기를 닦고 깨지지 않도록 꼼꼼히 포장하고 있던 양향령은 방금 전에 양현이 갑자기 넘겨준 찻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씻어 올께”

“그냥 싸요. 어차피 성도에 가서 꺼내 쓰려면 다시 한 번씩은 다 헹궈야 할 텐데요 뭐.”

“그렇겠지? 어차피 다시 씻어야 하니깐 일단은 그냥 싸두는 게 맞겠지?”

양향령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맞장구를 쳤다.

“하여튼, 사부가 아니라 웬수라니깐요. 아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호호호, 연이 너, 말 재밌게 한다.”

“향령 언니도 겪어 보면 알아요. 진짜 웬수가 따로 없다니깐요.”

“호호호, 언니는 별로 겪고 싶지 않은데, 어떡하지?”

대화중에 설연은 양현의 흉을 보고 양향령은 자연스럽게 웃음까지 터트리는 것이 두 사람 사이가 단 며칠 사이에 꽤나 가까워진 듯싶었다. 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마당을 쓸던 소은영 조부(趙富)와 막홍(莫鴻)은 양향령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같이 미소를 짓기까지 하는 것이 두 사람도 설연과 꽤나 가까워진 듯 보였다.


잠시 후, 대문 밖에서 수레에 밧줄을 묶던 장동이 굽혔던 허리를 쭉 펴면서 크게 말했다.

“다 실었습니다, 조장님. 이제 양매가 식기 포장한 것만 마저 실어서 묶으면 되겠는데요.”

“그래, 수고했네. 다들 좀 쉬었다가 어르신 돌아오시는 대로 출발하자고.”

“예, 조장님.”

대답을 마친 사람들과 장환은 그렇게 많은 짐을 날랐음에도 힘들지도 않은지 아침에 이곳에 올 때 끌고 온 말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몰려가더니 각자 말을 한두 마리씩 끼고 갈기를 쓰다듬거나 털을 골라주는 일을 시작했다. 숱하게 말을 달려본 사람들이었던 터라 성도까지 백여 리 길을 수레를 끌고 가야 할 말들과 미리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방금 장아저씨가 양매라고 그랬죠? 언니, 설마 장아저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

설연은 식기를 싸는 것을 마무리하다가 요 며칠 동안 처음 들어보는 양향령을 부르는 장동의 묘한 호칭을 알아들었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웃으며 물었다.

“아, 아하하. 뭐···”

“아이, 그럼, 그렇다고 첨부터 말을 해줬어야죠. 손은 잡아 봤어요? 뽀뽀는요? 혼인식은 올렸어요? 설마 식도 안올리고 미리 잠부터?”

“아니, 얘가! 어린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

양향령은 자신이 대답을 얼버무리는 찰나에 갑자기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설연의 질문 끝에 이상한 말이 나오자 빽하니 소리를 질렀다.

“흥! 연이도 알 건 다 안다구요, 뭐. 근데 언니가 소리 지르는 거 보니까, 진짜 그랬나 보네요. 이히히, 확 소문내 버릴까보다, 동네사람드을, 웁, 우웁.”

“얘, 얘, 그, 그만···”

단번에 사실을 짐작해 내고 고개를 끄덕인 설연이 웃는 것도 모자라 목소리를 높여 동네사람들까지 찾자, 양향령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급히 설연의 입을 막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아휴, 내가 못살아. 연이 너! 두고 보자.”

한참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의 시야에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부리는 장동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들어오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미 다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익히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소은영인 조부와 막홍까지 키득거리며 양향령의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 못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하긴 출신부터가 살수들이고 무공을 익힌 고수들인데 귀가 좀 밝겠는가, 십중팔구 모두들 처음부터 다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흥! 두고 보면 뭐 어쩔 건데요? 이참에 빨리 식이나 올리시는 게 낫지 않아요? 그러다가 조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조, 조카? 조카라니?”

“아휴, 언니 왜 그래요? 조카 안 낳을 거예요? 언니 나이도 있는데 서둘러야죠.”

이제는 아예 열 살짜리 아이가 시어머니 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나섰다.

“크크큭.”

“와하하하하”

“역시 연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연이는 정말 대단하구나. 아하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조장님. 성도에 도착하는 대로 아예 날을 잡아 혼례식을 올려주죠. 하하하."

장환은 설연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우고는 앙천대소를 터트렸고, 육호는 아예 날부터 잡자고 운을 띄웠다. 장동과 양향령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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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장. 인과응보 24.04.26 15 0 16쪽
31 9장. 인과응보 24.04.24 17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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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8장. 내공입문 24.04.08 23 1 16쪽
23 8장. 내공입문 24.04.05 28 0 14쪽
22 8장. 내공입문. 24.04.03 27 1 17쪽
21 8장. 내공입문. 24.04.01 32 0 17쪽
20 8장. 내공입문. 24.03.29 30 0 16쪽
19 8장. 내공입문. 24.03.27 34 0 15쪽
18 7장. 단서포착. 24.03.25 28 0 14쪽
17 7장. 단서포착 24.03.22 31 0 13쪽
16 7장. 단서포착 24.03.20 34 0 13쪽
15 6장. 금선탈각. 24.03.18 33 0 18쪽
14 6장. 금선탈각 24.03.15 39 0 17쪽
13 5장. 만찬전후. 24.03.13 35 0 36쪽
12 4장. 내공심법. 24.03.11 42 0 22쪽
11 4장. 내공심법. 24.03.08 40 0 15쪽
10 3장. 부정만리. 24.03.06 41 0 13쪽
9 3장. 부정만리. 24.03.04 42 0 23쪽
8 2장. 소리장도. 24.03.01 50 0 26쪽
7 2장. 소리장도. 24.02.28 5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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