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녀르미의 서재입니다.

금발마녀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녀르미
그림/삽화
Copilot GPT
작품등록일 :
2024.02.19 17:43
최근연재일 :
2024.05.06 20:15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1,388
추천수 :
5
글자수 :
292,754

작성
24.04.12 20:15
조회
25
추천
1
글자
20쪽

8장. 내공입문

DUMMY

“허허, 그래, 구결을 다 외우고, 일부는 이해를 했다?”

오랜만에 설연이 차려준 점심밥을 맛있게 먹고 난 양현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양현의 오른쪽 옆에서는 장환이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홀짝홀짝 차를 마시고 있었고, 설연은 맞은편에 앉아 찻잔을 돌리며 그런 장환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표정이 수상하네. 안되겠어, 주의를 좀 줘야지. 그나저나 사부가 예상 밖으로 빨리 오는 바람에 미리 입단속을 못해뒀으니 어떡한다?)

“예, 사부님.” (에헴, 뭐 어쨌거나 연이 아니었으면 고작 한 달 남짓해서 이렇게 잘 외웠겠어?)

“그래, 수고가 많았구나. 이제 연이 네가 단공에 입문할 때가 된 것이구나.”

“예, 사부님. 제자, 사부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첫 연공을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여태껏 거듭 구결을 외우고, 또 열심히 공부하였사옵니다.” (좀이 쑤셔서 죽는 줄 알았다구. 뭐, 덕분에 이것저것 손봐서 집도 깔끔해지고, 밭도 갈아 뒀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키키키.)

‘크윽, 이, 이제 보니 백년 묵은 여우가 따로 없구나. 어쩌면 저렇게 눈빛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는 말인가. 이제 고작 열 살인데··· 조만간 강호에 요녀가 하나 탄생할지도··· 어르신께서 부디 연이의 이런 모습을 아셔야 할 텐데.’

오늘 아침까지 지난 오 일 동안, 아침만 되면 단공을 연공하겠다고 마당 가운데서 척하니 자세를 잡으며 자신을 협박해 온갖 궂은일을 시키던 설연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능청을 떠는 모습을 보며, 장환은 드디어 설연의 본성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하온데 사부님, 가셨던 일은 잘 되신 것이옵니까?” (그래, 나한테 말도 안하고 하남까지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온 건데?)

“그래, 내 원하던 일을 잘 마무리하고 왔느니라. 나중에 그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마.”

‘잘 마무리하셨다면, 그럼 맹주를 처단하셨다는 말인가?’

양현이 하남에 갔던 이유를 알고 있는 장환은 묵묵히 차를 마시면서 설연의 눈치를 살피다가 양현의 말을 듣고 퍼뜩 궁금증이 일었지만, 곧 이어진 설연의 말에 궁금증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예, 사부님. 그럼 두 분께선 말씀 나누시지요. 연이는 마저 할 일이 있는 터라···” (아저씨, 지금 하던 일 내팽개치고 차가 목으로 넘어가? 마저 일을 해야 할 것 아냐.)

“응? 무슨 일인데 그리 서두르느냐?”

설연이 차를 마시다 말고 일어나려 하자, 양현은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사부님께서 하남에 가시기 전에 이 집을 내어 놓았으니, 이곳저곳 손을 마저 보아야 할 것이기에.” (아저씨, 후딱 안 일어나?)

‘나보고 나가서 하던 일을 마저 하라는 말이구나. 크윽.’

설연의 말뜻을 알아들은 장환은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하하, 그것이 그리 급하더냐? 그리고 있는 그대로 팔면 새로 들어올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맞게 손을 볼 것인데, 굳이 손을 볼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망가진 곳은 손을 봐서 넘기는 것이 사람 된 도리 아니겠습니까?” (사부, 망가진 채로 팔면 돈이 줄어들잖아. 사부가 차이 나는 만큼 메꿔줄 거야?)

‘어서 일어나지 않으면 나중에 연이한테 한 소리 듣는 건 둘째 치고 어르신께 혼이 날 수도 있겠구나. 아니, 아니지, 이제 어르신도 오셨으니 연이도 연공을 할 것이고, 굳이 내가 일을 계속할 필요는 없지. 방금 어르신 말씀도 그렇고.’

양현의 말을 들은 장환은 이제 자신이 직접 집을 수선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여겼다.

“흐음, 그래, 연이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하지만, 어린 네가 굳이 고된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여기 환이도 있고, 또 힘든 일이면 사부도 같이 하면 되고 말이다.”

‘헉, 어르신마저! 아니, 아니다! 여기서는 선수를 쳐야 한다. 어차피 일은 내가 다 했으니, 이참에 치사라도 해두어야 하는 법!’

양현은 장환의 기대에 바로 찬물을 끼얹어 주었지만, 장환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 양현에게 자신의 공을 내세우기로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불과 수일 만에 설연에게 물이 든 것인지 장환도 조금씩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 어르신.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동안 제가 여기저기 손을 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좀 전에 어르신께서 오시기 전까지도 객방 쪽 기와가 낡은 듯하여 기왓장을 갈아 끼우고 있었는데, 이제 식사도 했으니 차를 다 마시고 나서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오호라, 이 아저씨가 선수를 치고 있네. 뭐, 좋아. 고생했으니 응당 칭찬 정도는 받아야지. 연이가 적당히 마무리 해주면 되겠네, 히히히.)

설연은 장환이 말을 꺼낸 이유를 바로 눈치 챘지만, 요 며칠 장환이 고생한 것을 봐서 봐주기로 마음먹었다.

“허허, 그래? 역시 환이 자네가 해주었구먼. 자네 같은 사람이 연이 옆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일세 그려, 참으로 다행이야.”

“예, 사부님. 아저씨가 먼저 나서서 집 안팎 정리도 다 해주고, 밭도 갈아 주고 해서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저씨, 무슨 뜻인지 알지? 이쯤에서 정리하자구, 키키키.)

설연은 장환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양현에게 장환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허허, 밭까지 갈았어? 정말 애썼네, 이 사람아. 허허허, 나 없는 동안 자네가 연이를 그리도 챙겨 주었다니 내 자네 공은 잊지 않음세.”

설연이 장환을 칭찬하고 나서자 기분이 좋아진 양현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오른손을 들어 장환의 어깨를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

‘크크크, 연이 네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구나. 어르신께서도 만족해 하시니 이쯤에서 정리하자는 얘기지? 그래, 나쁠 건 없겠지, 그렇게 하자고.’

설연이 자신을 칭찬하고 나서는 까닭을 대번에 눈치 챈 장환은 설연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고는 양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덧붙였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어르신. 마땅히 제가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자네가 그리 말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네 그려. 자, 차나 마저 드세나. 비록 배가 조금 부르기는 하지만 차를 다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연이가 연공하는 모습을 보기로 하세.”

‘휴우, 드디어 연공이구나. 참으로 긴 닷새였다.’

“예, 어르신.”

“예, 사부님.” (히히히, 드디어 연공하네.)

설연과 장환은 연공을 보자는 말에 순간 안도와 기쁨을 느꼈으나, 다음에 이어진 양현의 말에 그만 속이 뒤집어 지고 말았다.

“내 다른 것은 백 번 양보해도 연이의 첫 연공을 보는 것만은 놓치기 싫어 꼭 내가 돌아온 뒤에 연공을 시작하기를 바랐는데, 연이가 때마침 구결도 다 외우고 일부는 이해까지 했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구만 그래.”

‘커헉! 고, 고작 그런 이유셨습니까? 그런데 왜 비밀로 하라고 하셔서?’

(뭐야? 고작 그런 이유였어? 연이가 닷새나 연공을 못한 게 고작 그런 이유였다고?)

“혹시, 어르신께서 안 계신 사이에 연이가 연공하다가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걱정이 되셔서 그런 것이 아니옵고···?”

장환은 정녕 그런 이유에서 양현이 설연의 연공을 말리도록 한 것인지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단공은 그런 허술한 공부 따위가 아니야. 비급에 적힌 대로 잘 따라만 하면 되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내가 비급을 얼마나 상세히 적었는데 그런 말을 하는가? 내공에 입문할 때의 주화입마 같은 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부로 연공을 시작할 때나 있는 것이지. 암, 그렇고말고.”

양현은 그렇게 다시 한 번 장환의 여린 가슴에 비수를 꽂아 넣었고, 그 말을 들은 장환은 속으로 새된 비명을 토했다.

‘크윽, 어르시인!’

설연은 왠지 억장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장환을 보고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

(흑, 장환 아저씨, 왠지 많이 불쌍해 보여.)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설연이 첫 연공을 하는 순간이 왔다. 양현의 방 앞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앉은 양현과 장환은 두 사람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마당 가운데에서 단공의 연공 자세를 잡는 설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온데 어르신, 단공은 왜 연공 자세가 저런 것이옵니까?”

장환은 매번 설연이 연공 자세를 취할 때마다 그 특이한 동작이 궁금했었는데, 마침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양현에게 물었다.

“그거야, 단공이 동공(動功)이니까 그런 것이지.”

“동공이요?”

“그래, 단공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정공(靜功)이 아니라 정해진 동작에 따라 팔다리와 온몸을 움직여 가면서 하는 동공이 주된 연공 방법이라네. 일정한 동작을 취하면 그에 따라 정해진 길로 내기가 움직이고, 동작이 틀리면 내기는 아예 움직이지 않으니, 애초에 연공 중에 내기가 잘못 움직이거나 하는 일 같은 건 없지.”

“그, 그런 것이었군요.”

‘그런데 나는 자칫하면 연공 중에 큰일이 난다고 연이한테 말했으니, 크으, 얼굴을 들지를 못하겠구나.’

양현의 말이 이어질수록 장환은 심장이 비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거듭 느끼고 있었다.

“저번에도 얼핏 말한 적이 있네만, 내가 연이에게 가르친 도인술이 바로 단공의 기초 공부라네. 도인술의 예비 동작부터 시작해서 도인술의 전체 동작 일흔두 가지 형(形)을 마치고 거기에 추가된 서른여섯 개 형(形)으로 이루어진 동작들을 연달아 하면 백여덟 개 동작으로 완성되는 소주천이 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전체 삼백육십오개 형(形)으로 이루어진 동작들을 연달아 할 수 있으면 대주천이 완성되지. 물론 그 때마다 구결은 있네만.”

‘크윽, 도인술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소주천이라고?’

장환은 정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도인술은 체조에 불과하다고, 연공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던 자신의 입이 원망스러웠다. 도인술 동작도 다 알고 있고, 소주천 동작도 다 외우고 있었을 설연이 자신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십중팔구 자신을 부려먹을 욕심에 그런 것이리라.

“예비식이네, 연이가 시작할 모양이구먼, 우리도 집중해서 보세나.”

“예, 어르신.”

작게 대답하는 장환의 음성에 살짝 물기가 묻어나는 듯했다.

“그럼, 사부님 시작하겠습니다.” (사부, 나 잘봐둬, 히히히.)

“그래그래. 어서 시작하거라.”


설연은 약간 몸을 낮춘 자세에서 시작하는 예비식(預備式)을 취하고 있다가, 양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첫 번째 동작인 기세(起勢)로 반듯하게 일어섰다. 공작이 꼬리를 떨치듯 한다 하여 람작미(攬雀尾)라 이름 지은 두 번째 동작이 이어지고, 짧은 채찍을 후려치는 듯한 세 번째 동작 단편(單鞭), 네 번째, 제수(提手), 다섯 번째, 백학량시(白鶴亮翅), 여섯 번째, 좌루슬요보(左樓膝腰步), 일곱 번째, 수휘비파(手揮琵琶)까지 이어지자 양현은 설연의 깔끔한 형(形)의 연결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탄성을 터트렸고, 장환은 의아함을 느꼈다.

“정말 연이가 대단하구나. 도인술을 정말 열심히 했어.”

“어르신. 저건 권각법이 아닙니까?”

“아, 연이의 움직임 말인가?”

“예, 어르신. 마치 태극권을 보는 듯합니다.”

“하하하, 동공의 형(形)을 만들다 보니 그리되더구먼. 그러다 보니 각각의 형(形)의 이름도 태극권을 비롯한 여러 권각법에서 따왔네.”

“어찌 그런?”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리 되었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타 문파의 절기를 베낀 것은 아니야. 그저 비슷한 형(形)에 해당하는 이름만 따다가 붙였을 뿐, 그 안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네. 초식명 짓기가 어디 좀 어려운가 말이야, 허허허.”

그렇게 말하는 양현도 잠시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역시 그도 조금은 쑥스러운 듯 보였다.

“그런데 내공을 연공하는데 어째서 권각법의 자세를 쓰신 것인지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내공 따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권각법 따로 이렇게 익히면 시간 낭비이지 않은가. 기왕에 동공으로 만드는 것, 단공을 대성하고 나면 총 삼백육십오 초로 이루어진 권각법을 익힌 것과 같이 되고, 또 필요하면 각 초식을 분리해서 시전할 수도 있도록 하다 보니 그리 되었네. 뭐 어차피 나중에 가면 초식에 구애받는 경지도 뛰어 넘을 것이고, 내공에 기반을 둔 강기무공을 쓰게 되겠지만 말일세.”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장환은 양현의 말에 감탄하고 말았다. 단순한 내공심법이 아니라 권각법을 응용한 동공이라니, 역시 단공은 상식을 깨는 신공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문답을 주고받는 사이, 설연은 벌써 서른다섯 번째 동작인 횡단편(橫單鞭)을 마치고, 서른여섯 번째 동작인 좌우야마분종(左右野馬分鬃)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시선을 설연에게 고정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어르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언가? 말해보게.”

“보통의 내공심법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좌공(座功)이나 누워서 하는 와공(臥功), 서서하는 입공(立功) 등의 정공(靜功)이 주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겐가?”

“만약에 단공으로 요상결을 운공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요? 가벼운 내상(內傷) 정도야 참고 동공으로 운기한다고 쳐도, 극심한 내상이나 골절상(骨折傷), 자상(刺傷), 창상(創傷)을 입은 경우라면 동공으로 운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장환은 동공으로 요상결을 운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어차피 단공을 대성하기 전까지 연이는 강호에 나가지 않을 것인데 말이야. 단공을 대성하게 되면 굳이 저렇게 연공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자연스레 운기와 축기가 계속될 것이고, 또 몸도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줄 것이니 굳이 따로 요상결을 운기하거나 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 그리고 사실, 동공이 효율적인지라 주된 연공법으로 택한 것일 뿐, 좌공이나 와공, 입공으로 연공할 수도 있도록 만들었네. 내가 괜히 백 년 세월에 걸쳐 만든 것이 아니야.”

단공에 대한 양현의 말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부심이 가득했고, 장환은 양현의 내심을 알고 보조를 맞춰 주었다.

“역시 어르신이십니다. 아, 그런데 정녕 단공을 대성하기 전에는 연이를 강호에 내보내지 않으시렵니까?”

“그렇다네. 연이가 단공을 대성하기 전까지, 나는 연이를 강호에 내보낼 생각이 없네.”

“연이가 단공을 대성하는 데는 엄청난 세월이 걸릴 텐데요. 그 오랜 세월을 수련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장환의 상식으로는 어지간한 신공을 완성하는 데에도 족히 수십 년 세월이 걸리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가 익힌 건곤조화신공 같은 경우는 수십 년이 아니라 족히 수백 년 세월을 요하는 신공이었다.

“허허허, 자네, 연이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닌가?”

“예? 얕잡아 보다니요?”

“장담 컨데, 연이는 앞으로 아무리 늦어도 십 년, 빠르면 오륙 년 안에 단공을 대성할 것일세.”

“예? 아무리 연이가 뛰어난 아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단공과 같은 개세(蓋世)의 신공을 대성하는 데 그 정도 밖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자네는 연이가 내공심법도 아닌 도인술만으로 사 갑자 내공을 모았다는 것을 모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구먼.”

“예? 연이가 사 갑자 내공을 모았다니요? 그것도 도인술로요? 어찌 그럴 수가? 이제 겨우 열 살인데···”

장환은 설연이 사 갑자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양현의 말에 거의 기절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자신은 천고의 영약을 무려 두 가지나 취하고 이룬 내공을 열 살짜리 어린 아이가 도인술 만으로 이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연이만큼 자연의 기운을 잘 느끼고, 또 기운을 끌어 모으는데 탁월한 아이는 내 평생에 본 적이 없네. 지금 사 갑자 내공을 이루는 데도 오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 믿겠는가?”

“그, 그럴 리가···”

장환은 아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단공의 동작과 구결을 외우고 이해하는 데만 해도 범인(凡人)은 수년이 걸려도 못할 일인데,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만에 다 외운 것도 모자라 이해하기까지 한 그 오성도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야.”

“예, 그건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에 단공의 비급을 보고 그 엄청난 내용에 깜짝 놀란 정도가 아니었지요.”

양현과 장혼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설연은 점점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연공은 어느새 도인술 마지막 동작인 일흔두 번째 삽화개정(揷花蓋頂)을 지나 설연도 처음 하는 일흔세 번째 금병도수(金甁倒水)에 접어들고 있었다. 비록 처음 하는 동작임에도 오랫동안 도인술을 수련한 덕분인지 설연은 무리 없이 동작을 이어가고 있었고, 앞의 일흔두 가지 동작을 통해 자연의 기운을 끌어 모은 그녀의 내부에서는 단공의 운공 경로에 따라 슬슬 내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 벌써 일흔세 번째 형에 접어들었구먼, 이제 연이의 연공에 집중하세.”

“예, 어르신.”


그 뒤로 거의 반 시진 가까이 양현과 장환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설연의 연공에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처음 내공을 연공하는 경우에는 스승이 따로 내공을 불어 넣어 준다고 하더라도, 소주천을 이루기는커녕 내기를 느끼는 데서 그치는 것이 다반사였으나, 지금 설연은 소주천을 마친 것도 모자라 대주천의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 삼백마흔일곱 번째 형(形)인 저규쌍방주(底叫雙邦肘)를 무리 없이 펼친 설연은, 부드럽게 몸을 돌려 삼백마흔여덟 번째 형(形)인 회신전당권(回身轉堂圈)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설연의 주위로 엄청난 기가 요동치며 설연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크윽, 어르신. 제 내공이 연이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단전에서까지 내기가 빠져나가 설연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을 느낀 장환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 나도 그렇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로구먼. 연이는 완전한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은데 중간에 멈춰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큰일일세.”

“어르신, 아무래도 저는 이 자리를 피해야 할 듯합니다. 빠져 나가는 내공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되네, 지금 자네가 자리를 뜨면 십중팔구, 가까운 이웃들 중에 기운을 빼앗겨 몸을 상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야. 조금만 더 참게 이제 곧 끝나네.”

“크윽, 그, 그런···”

주변에 미칠 영향이 걱정된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고, 얼마 후, 설연의 연공은 삼백예순한 번째 형(形)인 기신창배(起身搶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주변에서 요동치던 기운이 순간 멈추는 듯하더니 설연을 중심으로 팟 하고 퍼져 나갔고, 곧 설연을 중심으로 반경 이 장 안의 작은 돌멩이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윽!”

“이, 이게 무슨!”

장환은 둘째 치고, 양현조차 처음 보는 기사(奇事)였다. 더 이상 설연에게 주위의 기운이 빨려 들어가지도 않고 있었고, 돌멩이 주변에는 어떤 내공의 작용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아 내기를 움직여 허공섭물을 시전한 것도 아닌데, 설연 주변의 돌멩이들이 마치 누가 들어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허공에 떠오른 것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겪는 황당한 기사에 정신을 놓고 있는 동안, 허공에 떠오른 돌멩이들은 곧 이어진 삼백예순두 번째 등복퇴(蹬扑腿), 삼백예순세 번째 찬도주출(窜跳走出), 삼백예순네 번째 요보정신(腰步挺身)에 이르기까지 설연의 움직임에 따라 허공에서 움직이더니, 설연의 연공이 마지막 삼백예순다섯 번째 형(形)인 수세(收勢)에 이르자 바닥에 후드득 떨어져 내렸고, 설연은 어느덧 대주천까지 완벽히 마치고 예비식(預備式)을 취하고 있었다.

“휴우.” (이히히, 사부, 연이 잘했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발마녀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정기 연재입니다. 24.03.28 22 0 -
35 10장. 화월루주 24.05.06 4 0 17쪽
34 10장. 화월루주 24.05.01 9 0 22쪽
33 9장. 인과응보 24.04.29 15 0 20쪽
32 9장. 인과응보 24.04.26 14 0 16쪽
31 9장. 인과응보 24.04.24 16 0 19쪽
30 9장. 인과응보 24.04.22 13 0 17쪽
29 9장. 인과응보 24.04.19 19 0 21쪽
28 9장. 인과응보 24.04.17 14 0 19쪽
27 9장. 인과응보 24.04.15 21 1 18쪽
» 8장. 내공입문 24.04.12 26 1 20쪽
25 8장. 내공입문 24.04.10 21 1 15쪽
24 8장. 내공입문 24.04.08 22 1 16쪽
23 8장. 내공입문 24.04.05 27 0 14쪽
22 8장. 내공입문. 24.04.03 25 1 17쪽
21 8장. 내공입문. 24.04.01 31 0 17쪽
20 8장. 내공입문. 24.03.29 29 0 16쪽
19 8장. 내공입문. 24.03.27 33 0 15쪽
18 7장. 단서포착. 24.03.25 27 0 14쪽
17 7장. 단서포착 24.03.22 30 0 13쪽
16 7장. 단서포착 24.03.20 33 0 13쪽
15 6장. 금선탈각. 24.03.18 32 0 18쪽
14 6장. 금선탈각 24.03.15 38 0 17쪽
13 5장. 만찬전후. 24.03.13 34 0 36쪽
12 4장. 내공심법. 24.03.11 41 0 22쪽
11 4장. 내공심법. 24.03.08 39 0 15쪽
10 3장. 부정만리. 24.03.06 39 0 13쪽
9 3장. 부정만리. 24.03.04 41 0 23쪽
8 2장. 소리장도. 24.03.01 48 0 26쪽
7 2장. 소리장도. 24.02.28 50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