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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르미의 서재입니다.

금발마녀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녀르미
그림/삽화
Copilot GPT
작품등록일 :
2024.02.19 17:43
최근연재일 :
2024.05.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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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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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인과응보

DUMMY

맹주관에서 울려 퍼진 비상종 소리에 놀라 숙소에서 달려 나왔던 사마강은 맹주관 호위들의 제지에 맹주관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했지만,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켰다. 비상종이 울린 것은 오보이며 별 일 아니라는 맹주관 호위들의 말에 비상종 소리에 놀라 달려온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사마강은 웬일인지 자꾸 가슴이 뛰어 안절부절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맹주관에 들어갈 때를 기다렸다. 사부인 나준은 이미 며칠 전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숨어들었고, 지금 맹주관에 남아 있는 사람은 사부를 대신하고 있는 기묵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사마강은 비상종이 울린 순간부터 한시도 마음이 안정이 되질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든 사마강의 시야에 맹주관 지붕 위쪽으로 한 손에 축 늘어진 사람 하나를 끌어안고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흑의인이 보였다.

그 순간 사마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울렸던 비상종 소리는 천무황 양현이 찾아와서 울린 것이 분명했고, 방금 허공을 날아 가버린 흑의인은 자신의 사부를 대신한 기묵을 끌고 간 천무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마강이 보기에 사부 나준의 대역을 맡은 기묵이 사부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이제 천무황과 얽힌 일은 잘 마무리 될 것임이 분명했다. 사마강 자신은 아무 탈 없이 살아남았고, 그의 사부인 나준도 조금 답답하기는 하겠지만 곧 살기 좋은 곳을 골라 은거해서 살아갈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후일 정의맹주가 되고나면 다시 사부를 은밀히 이곳으로 모셔올 것이고, 사부 나준은 암중에서, 자신은 전면에 나서서 정의맹을 다스려 나가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갑작스레 자리를 비운 맹주로 인해 당장에는 맹 안팎이 혼란스럽겠지만, 잘만 처신하면 자신이 바로 다음 대 정의맹주가 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라 여기며, 사마강은 곧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나준을 한 팔로 안아 들고 일풍신으로 어풍비행을 펼쳐 하늘을 날아온 양현은 정의맹 뒤편의 이름 모를 야산 중턱에 내려서더니 조심스럽게 나준을 바위 위에 내려 눕혔다. 진원지기까지 모두 기묵에게 내어준 나준의 목숨이 곧 끊어질 듯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도 여러 가지겠지만, 자네처럼 호탕하게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내 평생에 처음 보았네.”

“천무황 어르신, 이 죄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이 있사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래, 무엇인데 그러는가? 내 어지간하면 들어줌세.”

제자와 의동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나준을 보는 양현의 눈빛은 죄인을 내려다본다기보다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친지를 쳐다보듯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그 아이, 설연이라고 했지요. 그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제가 죽으면 그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겠다고, 꼭 좀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이 사람아, 그게 마지막 소원이란 말인가?”

“꼭, 꼭 좀 부탁드립니다. 미안하다고, 죽을죄를 지었기에 마땅히 죽음으로 속죄하였노라고, 꼭 좀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런 소원이라면 야, 내 반드시 들어줌세. 걱정 말게나.”

“가, 감사합니···”

양현의 확답을 들은 나준은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그렇게 일흔다섯의 생을 마감했다. 세상의 모든 짐을 벗어 놓은 듯 편안한 표정으로 조용히 눈을 감은 나준의 옆에 주저앉은 양현은 한숨을 쉬며 해가 뜨고 있는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휴우, 마음이 이리도 무거우니··· 혹을 떼러 왔다가, 마음의 짐만 얻고 가는구나.”


곧 날이 밝고, 아침식사를 마친 사마강은 정례회의 시간에 맞춰 맹주관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막 회의실이 있는 이층에 도착한 그를 맹주관 시비가 불러 세웠다.

“밀영전주님, 맹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예? 맹주님께서요?”

사부 나준은 며칠 전에 자취를 감춘 것으로, 또 새벽에는 사부의 대역을 하던 기묵이 양현에게 끌려간 것으로 알고 있던 사마강은 맹주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소녀는 회의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정례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밀영전주님을 맹주님 집무실로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사마강은 자신을 쳐다보는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급히 계단을 내달려 삼층에 있는 맹주 집무실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어서 오게, 밀영전주.”

“사, 사부님? 아니, 아, 아저씨?”

활짝 열린 창문을 뒤로 하고 커다란 의자에 편히 기대 앉아,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는 맹주의 모습을 보고 잠시 당황한 사마강은, 곧 그가 자신을 밀영전주라고 불렀음을 상기하고 자신의 사부가 아니라 기묵(杞墨)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들어와서 앉게나. 문도 좀 닫아주고 말이야.”

“아!”

사마강은 자신이 너무 당황하고 있음을 깨닫고, 조용히 문을 닫으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기묵의 앞에 마주 앉았다.

“기 아저씨,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입니까? 사부님께선?”

“그 대답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네. 이걸 읽어 보게나, 자네 사부님께서 자네에게 남기신 것이야.”

“이, 이게?”

기묵은 품속에서 서찰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고 사마강 앞으로 내밀고는 곧 몸을 일으켰다. 몸을 돌려 열려 있던 집무실 창을 걸어 닫은 그는 집무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서찰을 손에 들고 어리둥절해 있는 사마강에게 말했다.

“그럼 난 정례회의에 내려가 볼 테니 자네는 오늘 회의에 참석치 말게나. 그리고 자네가 오기 전에 이미 호위들을 비롯하여 시비들까지 모두 물러가 있도록 했으니, 서찰은 여기서 펴보아도 되네.”

그 말을 끝으로 기묵은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더니 다시 밖에서 문을 닫아 버렸고, 사마강은 왠지 텅 빈 듯한 집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사마강은 급히 서찰을 개봉해 펼쳐 보았다. 그리고 서찰에 쓰인 첫마디를 읽자마자 기절할 듯 놀라고 말았다.

‘이, 이 무슨? 아, 아들이라니?’


사마강은 그 한 마디를 읽고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거의 일 각이 넘도록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다시 천천히 나준이 남기고간 서찰을 읽기 시작했고, 곧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내 아들, 강이 보아라.

내 친자식인 너를 제자로 삼아 이곳에 데려온 것도 벌써 햇수로 이십오 년이나 되었구나. 여태껏 강이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줄곧 숨겨 왔다만, 이제 네게 사마 씨라는 성을 물려준 자도 죽고 없을뿐더러 네게 피를 나눠준 나도 죽는 마당이니, 더 이상 네게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다고 여겨 이렇게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 강이 너도 벌써 다 큰 어른이니,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다지 충격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야. 하하하.

강이 네가 태어나기 한 해 전에, 나는 네 어머니인 소민과 만났단다. 당시 그녀의 나이가 열여덟이었고 내가 서른아홉이었으니, 무려 스물한 살이라는 엄청난 나이차가 있었지만, 우리 두 사람은 한 눈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지. 그때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왜 그리도 어여쁘던지, 하긴 강이 너를 데리러 갔던 그 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에도 그녀는 정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 사실 내 평생에 그토록 아름답다고 여긴 여인은 그녀만이 유일하단다. 그리고 내가 가슴 속에 품었던 여인도 네 어머니인 소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부족한 애비는 그녀가 너를 가진 것도 모르고, 끝내 그녀를 버리고 말았단다. 그 때문에 그녀는 너를 뱃속에 품은 채로 사마가에 시집을 가게 되었더구나. 아마도 곧 불러올 배를 숨길 수도 없었고, 엄한 집안에서 성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을 수도 없어서였을 것이다.

기우일는지도 모르겠다만, 행여라도 강이 네가 그녀를 부정(不貞)하다 탓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좋겠구나. 네 어머니는 이 못난 나에게 버림을 받아 그리 된 것이니, 탓할 것이라면 네 어머니를 버린 나를 탓하는 것이 맞을 것이야.

실은 소민이 너를 밴 채로 사마가에 시집을 갔다는 것도,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도 나중에 그녀가 강이 너의 존재를 알리는 서찰을 보내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때가 네가 열한 살이 되던 해였지. 그렇게 네 존재를 알게 된 후에는 너도 알다시피 곧바로 무한에 있는 사마가로 찾아가 너를 제자로 삼아 데리고 나왔단다. 그녀의 부담도 덜어주고 싶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내 아들을 옆에 두고 키우고도 싶었던 게지.

하루하루, 한 해, 두 해, 커가면서 나를 닮아가는 강이 너의 얼굴을 볼 때마다, 네 어머니인 소민의 얼굴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살았다. 네 어머니를 무참히 저버린 죄를, 내 가슴 속에 화인으로 남아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을 그 죄를 씻는다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너를 대했단다.

그리고 다행히 네가 잘 자라주어, 이 아비는 너무도 가슴이 뿌듯하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강이 네가 성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도 보고, 또 자식을 낳는 것도 보고 싶기는 했다만, 결국 이렇게 먼저 가게 되는구나.

누구의 잘못이 되었든지 간에 모든 것은 이 아비가 다 덮어쓰고 갈 것이니, 강이 너는 이제 네 앞길만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더 이상 이 죄 많은 아비를 생각하거나 행여 다른 마음을 먹거나 하지 말고, 정의와 협의에 모든 것을 매진하여 네 앞길을 헤쳐 나가길 바란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으로 비롯된 일이니 이 아비의 원한을 갚겠다거나 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이제 내가 없으니 강이 네가 맹 내에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일지 몰라, 나 대신에 묵이를 남겨 두었다. 묵이와는 이미 이야기를 끝내 두었으니 네가 정의맹주 자리에 오를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묵이가 나를 대신해 맹주 역할을 하면서 네 후견인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네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묵이는 정의맹주 자리 같은 데에는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이곳을 훌쩍 떠날 사람이니, 달리 신경을 쓸 것이 없을 것이야.

지난 세월, 내 뒤에서 모든 것을 나와 함께 한 묵이는, 네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저 필요한 때에 나를 대신하기 위해 키운 대역이나 내 그림자인 것이 아니란다. 오래전, 나에게 생명의 은혜를 입었다고 여기고, 그것을 갚겠다고 스스로 나의 그림자 역할을 자처했을 뿐, 그 자신이 훌륭한 무인이자 뛰어난 인품을 지닌 사람이고, 또 내가 동생처럼 아끼는 사람이니, 강이 너는 이제부터라도 숙부를 대하듯이 그를 대하였으면 하는구나.

그리고 염치없는 부탁이다만, 가능하다면 소민, 그녀에게 내가 용서를 구하더라고, 내 평생에 단 한 사람, 소민만을 죽도록 사모했다고 전해 주려무나.

내 아들 강아, 부디 몸 성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지하에서도 강이 네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니, 꼭 그리 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다지 길지 않은 서찰은 그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크흐흑, 사부님, 아니, 아버지. 소자, 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않겠사옵니다.”

서찰을 다 읽은 다음에도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던 사마강은 아버지 나준이 남기고 간 서찰을 고이 접어 품속에 집어넣고, 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조용히 집무실을 나서 맹주관을 빠져 나온 사마강은 새벽에 보았던 양현이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얼마나 달려갔을까, 거의 정신을 놓은 채로 달려가던 사마강의 눈에 흑의를 걸친 사내의 뒷모습과 갓 만든 듯한 무덤 하나가 들어 왔고, 사마강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잠시 뒤, 사마강의 귀에 조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등을 보인 채 서있는 흑의인, 양현의 물음이었다.

“네가 사마강이라는 아이더냐?”

“그렇습니다.”

사마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대답했다.

“네 사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죄라고 말하고 내게 용서를 빌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도 네 사부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제 돌아갈 것이다. 비록 내가 찾아와서 그가 죽게 된 것이니 나 스스로도 그가 내 손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은 한다만, 네가 복수를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아두었으면 하는구나.”

“예,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알고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당부하건데, 행여나 사천에서 일을 도모했던 수하들에게도 더 이상 불똥이 튀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예, 그리 하겠습니다.”

“네 사부의 시신은 내가 최대한 정성을 다해 모셔 두었다만, 그래도 가묘를 쓴 것이니, 때를 봐서 네가 좋은 곳으로 이장하거라. 네 사부는 끝까지 의인다운 풍모를 버리지 않았으니,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느니라.”

“예, 그리 하겠습니다, 크흐흑.”

사마강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래, 내 너에게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느냐. 나는 이만 물러갈 것이니, 이제 마음 편히 네 사부와 석별의 정을 나누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크흐흐흑.”

양현은 그 말을 끝으로 훌쩍 몸을 날려 사라졌고, 사마강은 무릎걸음으로 나준의 무덤에 다가가더니 그 위에 엎드려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이!”


* * *


생애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놀라운 말로 시작된 양현의 이야기는 그 뒤로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개봉에 도착한 양현이 정의맹에 잠입해서 정의맹주 나준과 만나던 부분까지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설연은 곧 부모가 죽게 된 까닭에 얽힌 뒷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설연은 양현의 말을 일부만 듣고도 그 전말(顚末)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양현의 이름으로 인해 자신이 천무황의 무공을 익힌 것이 사악한 자에게 드러나게 된 것이고, 그 때문에 자신의 부모가 죽게 된 것임을 바로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알고 나니, 설연은 꼭 자기 손으로 부모를 해친 것만 같았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하남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설연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던 양현은 이야기를 멈추고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고개까지 푹 숙인 채, 소리죽여 흐느끼는 어린 그녀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같이 양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환은 차마 그녀를 위로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붉어지는 자신의 눈시울을 들키기 싫었는지, 묵묵히 고개를 들고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코만 훌쩍거리고 있었다.

“연아, 참지 말고 마음껏 울어도 된단다.”

“흑흑, 사붓니임. 흑, 으아앙.”

양현이 참지 말라고 하자 설연은 끝내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옆에 앉아있던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래, 그래, 실컷 울거라. 암, 실컷 울어야지.”

설연은 그 뒤로 거의 일 각 동안 양현의 품에 안겨 계속 슬픔을 토해 냈고, 양현은 그런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등을 다독이며 그녀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장환도 더 이상 눈물을 참기 어려웠는지 곧 방을 나가더니 그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에 퉁퉁 부은 눈을 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설연의 울음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양현은 설연을 품에 안은 채로 다시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연아, 모든 일이 네 탓인 것은 아니니, 네 스스로를 그리 원망할 필요는 없느니라.

“흑흑, 엄마랑 아빠가 돌아가신 것은 결국 저 때문이잖아요, 흐흐흑. 엄마! 아빠! 흑, 미안해, 연이 때문에, 연이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설연은 양현의 품에 안긴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고, 양현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강한 어조로 아니라고 말했다.

“아니다, 그건 절대 아니다. 그게 어찌 연이 너 때문이겠느냐? 네 부모는 악한 마음을 지닌 타인의 손에 생을 달리한 것이지, 절대 연이 너 때문이 아니다.”

“그래도, 연이가, 연이가, 그때 비밀을 지켰더라면···”

“그렇게 말하면, 네게 도인술을 가르친 이 사부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아니지, 도인술을 가르친 다음에 나 몰라라 하고 오 년씩이나 너를 내버려둔 이 사부의 잘못인 게야.”

“흑흑흑, 연이가 그냥 도인술을 안 배웠더라면, 아니, 그때 산에서 하지만 않았어도, 흑흑, 엄마랑 아빠는 살았을 거잖아요, 흑흑.”

“연이 네가 도인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네가 먼저 다섯 살 때 죽었을 테니 자식을 먼저 보낸 네 부모들도 따라서 죽었을지도 모르지. 또 산에서 그것을 한 것도 연이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왜 그런지 알겠느냐?”

“아니에요, 연이 잘못이에요.”

“연아, 부모의 죽음이 진정 연이 너 때문인 것 같이 느껴지느냐?”

“흑, 그게, 그게···”

“연아, 이 사부의 말을 잘 들어 보거라.”

“흑, 예, 사부님.”

양현은 계속 이어지는 문답에 설연이 대답을 하며 조금씩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자, 양현은 계속 설연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연이 네가 주먹만 한 금덩이를 하나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려무나. 어떤 사람은 네가 금덩이를 가지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같이 기뻐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너를 부러워하면서 자신은 왜 금덩이를 가지지 못했는지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또 어떤 사람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무덤덤할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은 너를 해치고 네가 가진 금덩이를 빼앗고자 할 수도 있단다.”

“그, 그럼 그 사람들은 연이가 가진 금덩이를 빼앗으려고 한 사람들이란 말씀이신가요?”

이번에도 설연은 양현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고, 양현의 품에 묻었던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그렇지, 같은 물건을 보아도 사람들마다 마음먹는 것이 다른 것이란다. 여기 환이는 네가 훌륭한 무공을 배우게 된 것을 축하해주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빼앗고자 했을 뿐인 것이지. 그 차이는 총명한 연이라면 바로 알 수 있지?”

“흑, 예, 사부님.”

“그러니 연이 네가 너무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야. 네가 가진 금덩이를 노린 자들이 나쁜 것이지, 금덩이를 가지게 된 네가 무슨 잘못이라는 말이냐?”

“훌쩍, 예, 사부님.”

“아이쿠야, 우리 예쁜 연이 눈이 퉁퉁 부었구나. 어디 보자. 이야, 이렇게 많이 부은 눈은 또 오랜만에 보는구나.”

“사, 사붓니임!”

고개를 든 설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양현이 농담까지 꺼내자, 설연은 바로 양현의 품에서 벗어나며 고개를 획하니 돌렸다.

사실 오늘 하루 동안, 설연은 계속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오가고 있었다. 열 살 나이의 어린 그녀가 이겨내기에는 너무 힘든 감정의 기복임이 분명했고, 사실 이 정도로 진정된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으로 단공을 연공하며 천국을 노닐다가, 곧 이어진 사부와 장환에 대한 걱정과 마음고생에 지옥으로 떨어졌었고, 이후에는 염력을 가진 것을 알게 되어 다시 구름 위를 노닐다가 이제는 부모의 죽음이 자신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양현은 오늘,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될 잔인한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잠시 뒤, 울음을 완전히 그친 설연이 다시 두 손으로 찻잔을 쥐고 차를 홀짝거리기 시작하자, 양현은 다시 하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고, 설연과 장환은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고작 내 무공을 탐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고 정의맹주 나준을 막 다그치고 있는데, 갑자기 비상종이 울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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