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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아이돌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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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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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랩 배틀

DUMMY

치코는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 헌서를 무시하며 팔짱을 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이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까짓 게 나한테 되겠냐?’


치코의 노골적인 제스처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오, 치코가 약 올리네!”

“치코 불 붙었다.”


도웅은 헌서가 얼마나 무대를 망치는지 보겠다는 듯이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어서 배틀을 시작하자고 분위기를 띄웠다.


“드랍 더 비트!”


쿠웅- 쿵 칫- 따-


비트가 시작되자, 치코는 랩을 했다.

그런데 가사가 예사롭지 않았다. 누군가를 저격하는 것처럼 공격적이었다.


“wierd clothes wired manners

이상한 표정에 더 이상한 말투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날아온 fly”


치코는 헌서를 겨냥한 가사를 준비한 것 같았다.

힐링 파티에서 랩 배틀을 하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헌서를 디스하려고 벼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꿀단지처럼 보이겠지만 여긴 volcano

가까이 오면 타 죽지 bro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부지

멋도 모르면 밟히지

아무도 반기지 않는 uninvited(불청객)

분위기 파악 못 하면 끝이지

내 벤츠에 치이기 전에 돌아가

여긴 우리 구역

없어 네 자리”


원래 취지는 즐기자는 랩 배틀이었는데, 치코는 헌서를 저격하는 디스 랩으로 준비해왔다.

도웅이 판을 깔고, 치코가 나선 걸 보면, 3라운드에서 청팀이 패배한 게 헌서 때문이라고 여겨서인지, 아니면 헌서를 그들의 서바이벌 경쟁자로 여겨서인지, 헌서에게 복수를 하려고 짠 듯했다.


사람들도 치코의 랩이 헌서를 디스하는 거라는 걸 눈치챘는지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헌서가 눈치없는 불청객이라며 대놓고 까자, 너무 직설적인 가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우, 심한데?”

“헌서 우는 거 아냐?”

“아직 고등학생인데.”

“한 마디도 못하고 내려갈 것 같은데?”


헌서는 치코의 유려한 혀놀림과 바이브에 살짝 기가 죽었다. 연륜에서 나오는 짬이 무시할 수 없었다.


“괜찮아. 져도 되니까 편하게 해.”


온제가 헌서가 긴장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네가 치코를 상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온제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헌서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할 가사를 되짚으며 정리하려고 했지만,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중하자, 집중!’


헌서는 치코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점점 입안의 침이 마르는 것 같았다. 가사를 떠올리려고 할수록 눈앞이 캄캄해졌다.


‘뭘 해야 하지?’


지금까지 쓴 가사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되면서 왱왱거리며 귀에 울렸다.


‘이건 라임이 안 맞아. 이건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헌서는 얼굴에 피가 몰려서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안 돼. 이건 별로야, 이것도 이상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거렸다.

그때, 누군가 헌서의 어깨에 턱 하고 팔을 얹었다.

윌비였다.

그는 헌서에게 눈을 맞추고 물었다.


“야, 너 랩 한 지 얼마 안 됐지?”


무표정한 얼굴로 다짜고짜 묻는 윌비의 질문에 헌서는 벙쪄서 그를 쳐다보았다. 윌비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넌 초보니까 라임 맞추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말 다 해. 괜히 그딴 거 신경 쓰면 될 것도 안 돼.”


윌비의 말에 헌서는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라임 필요 없어. 아무것도 개의치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말 해. 참지 말고 뱉어. 그게 랩이야.”


랩의 고수인 윌비가 그렇게 말해주자, 헌서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것은 열정이었다. 랩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지면서 윌비와 자신만 빼고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알겠어요, 형.”


헌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윌비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네가 지면 다음에 내가 나가면 되니까, 그냥 너 평소에 해보고 싶은 거 다 해.”


윌비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자, 헌서는 등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무대에 올라가 랩을 하는 헌서를 막을 수 없었다.


치코는 랩을 마치고 양팔을 뻗었다. 박수와 환호를 온 몸에 받겠다는 듯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헌서를 가리켰다. 어서 덤비라는 뜻이었다.


헌서는 마다하지 않고 성큼성큼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진짜 나왔어.”

“어떤 랩을 할까?”


관중은 헌서가 치코의 디스에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해했다.


헌서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일부러 치코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상대 페이스에 말려 들어가지 말자.’


오로지 자신의 음악과 가사에 집중했다.


“드랍 더 비트!”


슈릉- 쿵 따- 슈릉- 쿵 따-


헌서의 음악 비트가 흘러나왔다.

낯선 비트에 가사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가사를 쓰며 연습했던 게 효과가 있었다. 박자를 타며 몸을 움직이자, 입에서 가사가 술술 흘러나왔다.


“혹시 저 유모차가 형 벤츠?

데뷔도 안 했는데 김치국?

이긴 적도 없이 위너 행세

현실은 그냥 2 3 라운드 루저”


헌서의 거침없는 랩이 시작되자, ‘와아’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디영은 커진 눈을 한 채, 더 커진 입을 손으로 막았다.


“허, 헌서 형, 설마...”


온제는 못 말린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다른 사람들도 헌서의 대담한 랩 가사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엥? 치코 선배한테 루저라니. 패기 지리네.”

“헐, 김치국 마신다니. 치코가 한 방 맞았네.”

“헌서 배짱이 두둑한데? 어떻게 저런 가사를...”


데뷔도 하기 전에 허세만 부린다는, 팩트로 뼈 때리는 헌서의 가사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치코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저, 저 녀석이? 감히 나한테?”


헌서의 랩 실력이 그저 그렇다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들어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초보 티가 나긴 하지만, 플로우를 보면 급조한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가사를 쓰는 습관이 배어있었다.


“뭐 저렇게 헷갈리는 놈이 다 있어?”


헌서의 종잡을 수 없는 실력에 도웅도 끙 하고 신음했다. 분명히 초보 래퍼로 알고 있었고, 블랙 울프 공연때만 해도 그렇게 유창하지 않았는데, 오늘 보여주는 포스는 완전히 래퍼의 그것이었다.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헌서의 디스 랩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놀이 팀 공원 팀 할 것 없이 몸을 들썩이며 플로우를 탔다.


“나는 본 투비 래퍼

윈드밀하면서도 랩 해

모두 고개 숙여

어리지만 다 이겨

덤비지 마 너는 져”


헌서의 랩에 웃음 소리와 환성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이어졌다.


“야, 제법인데?”

“랩 잘한다.”

“스웩 있어.”


헌서는 청중의 반응에 자신감을 찾았다. 열광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지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바이브를 타며 랩을 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어

어딘지 몰라도 계속 달려

날 건드리지 마 어디로 돌지 몰라

round 2 and round 3 위너

round4 승자도 나야”


헌서는 가사대로 마지막 랩을 마치고 재치 있는 퍼포먼스로 마무리했다.

그 자리에서 바닥에 머리를 대로 윈드밀을 빙글빙글 돌았다.


“캬하하, 진짜 윈드밀 돌았어.”

“이 돌은 녀석아!”

“돌아! 더 돌아!”


헌서가 가사에 맞춰 관객과 호응하는 퍼포먼스를 보이자, 조금 전보다 한 옥타브는 더 높은 탄성이 터졌다. 도웅과 치코는 동시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졌다.’

‘젠장.’


실력으로 정석적인 랩 배틀을 했으면 치코가 이겼을 것이다.

그런데 치코가 디스 랩으로 포문을 여는 바람에, 치코의 디스를 디스로 받아쳐 역공으로 짜릿한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간 헌서가 주도권을 잡았다.


윈드밀을 돌고 일어서서 인사를 하자, 심사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게 헌서지.”

“저 생동감. 저 카리스마.”

“쟤는 설명할 수 없는 뭐가 있어.”

“오늘은 헌서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네.”


순발력있게 기세를 몰아서 자신의 특기와 본모습을 보여준 헌서에게 점수를 주었다.

치코가 노련하지만, 프리스타일만의 살아 숨 쉬는 즉흥성과 바이브를 살린 헌서가 무대를 씹어먹었다고 인정했다.


“랩 배틀은 백팀의 승리입니다.”


판정이 나자, 온제와 디영이 헌서에게 달려와서 끌어안고 기뻐했다.


“잘했어, 형.”

“헌서, 진짜 멋있었다.”


무뚝뚝한 윌비도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랩 좀 하네?”


윌비가 나갈 필요도 없이 헌서가 랩 배틀을 정리했다.

헌서가 무대를 휘어잡아 치코를 누른 걸 본 청팀에는 더 이상의 도전자가 나오지 않았다. 헌서를 이긴다 해도 다음에 윌비가 버티고 있으니 더욱 승산이 없었다.


“오늘 배틀에서 이긴 온제와 이헌서 참가자는 4라운드에서 순서 지정권을 받을 예정입니다.”


‘순서 지정권이라.’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나쁘지는 않다.


“좋겠다.”

“헌서가 또 이겼어.”

“3번 연속 이긴 거잖아?”


참가자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헌서에게 쏟아졌다.


공식 촬영은 종료되었고, 이제 남은 사람들끼리 파티를 즐기다가 가면 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젋은이들의 밝은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끼가 많은 아이돌 연습생을 한자리에 모아놓자, 저절로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파티가 이어졌다.


‘아, 즐겁다.’


처음에 메기로 아이돌 놀이공원에 참여했을 때의 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이제는 참가자들이 서로 헌서와 대화하고 싶어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승권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병진이 형은 어디서 몬스터에게 감염되었을까요?”


“병진이가 다니던 헤어샵에 빈혈로 쓰러진 직원들이 있는 걸 보면, 거기서 감염된 게 아닐까.”


병진은 몬스터에게서 얻은 외상은 치유되었지만, 후유증으로 우울증에 시달라고 있다고 했다.


“체내에 여러 호르몬을 축적하던 몬스터가 몸에서 빠져나가면 호르몬 불균형이 올 수 있지. 극심한 호르몬 변화로 우울증이 오는 것 같대.”


헌서는 그 가설이 맞을지 알아보기 위해서 병진와 같은 소속사이고 룸메이트였던 참가자의 옆자리로 슬쩍 가서 앉으며 그에 대해서 물었다.


“병진이 형이랑 친했죠? 형 괜찮대요?”


룸메이트는 탄산수로 입술을 적시더니 컵을 내려놓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나마 내가 친하긴 했는데, 나도 여기 온 후에는 병진이랑 잘 안 붙어다녔어. 원래도 까다로운 성격이었는데,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너무 예민해져서.”


“왜요?”


“감정 변화가 너무 심해서 맞춰주기 힘들었어. 기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어서,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기도 하고, 의욕에 넘쳐서 밤새 연습한다고 사라져서 안 들어오기도 하고.”


“맞아. 약간 조울증 같기도 하고. 감정 변화를 따라가기가 힘들더라고.”


옆에 있던 같은 소속사 참가자가 동의했다.


“원래도 좀 주위 사람 피곤하게 하는 성격이었는데, 놀이공원에 참가하고 나서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더 이상해지고 성격이 변했어.”


병진에게 기생한 몬스터가 뇌신경을 조종해서 유별나게 행동했을 것이다. 마치 최면에 걸리거나 세뇌된 것처럼 몬스터의 의지대로 움직였을 터.


‘성격이 변한다. 감정변화가 크다. 이거 몬스터에 감염된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열쇠가 될 수 있겠네.’


룸메이트는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한 번은 단둘이 방에 있는데, 나를 빤히 쳐다보더라고. 그래서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했더니, 할 말이 있다면서 내 옆에 와서 앉더라고. 그런데, 그때 누가 들어오니까 갑자기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도로 자기 침대로 가더라.”


헌서가 조금만 몬스터를 늦게 잡았더라면, 그들도 몬스터에게 피를 빨아먹혔을 수도 있었던 위급한 상황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 헌서의 옆에 누가 와서 앉았다. 명품 옷에 명품 향수의 냄새가 났다.


“앗, 선배님.”


헌서는 벌떡 일어나서 인사했다. MC인 대선배 아이돌 산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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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새로운 출발 24.03.26 219 6 13쪽
38 놀이공원 종영 24.03.25 213 6 12쪽
37 수상한 데뷔조 24.03.24 212 6 12쪽
36 파이널라운드 롤러코스터 24.03.23 205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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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조작 24.03.21 223 7 13쪽
33 드림팀 24.03.20 226 8 12쪽
32 타겟 24.03.19 225 7 12쪽
31 격투 +1 24.03.18 226 6 13쪽
30 생존자와 탈락자 24.03.17 227 8 12쪽
29 희비교차 24.03.16 231 8 13쪽
28 언밸런스 +1 24.03.15 228 7 12쪽
27 포그 24.03.14 228 7 13쪽
26 스윗 테이스트 +1 24.03.13 230 8 12쪽
25 shadow(그림자) 24.03.12 235 7 12쪽
24 번지점프 +1 24.03.11 236 7 12쪽
23 4라운드 범퍼카 24.03.10 240 8 13쪽
22 일유의 제안 24.03.09 242 7 12쪽
21 설계 24.03.08 244 8 12쪽
20 악마의 편집 24.03.07 247 8 12쪽
19 팀 조합 24.03.06 267 7 12쪽
» 랩 배틀 24.03.05 258 7 12쪽
17 힐링 파티 24.03.04 270 9 13쪽
16 보컬 조 평가 24.03.03 288 9 12쪽
15 3라운드 바이킹 24.03.02 292 8 13쪽
14 세탁실의 습격 24.03.01 283 8 12쪽
13 보컬 연습 24.02.29 292 6 12쪽
12 조 편성 24.02.28 309 8 12쪽
11 팀 배틀 +1 24.02.27 331 9 12쪽
10 첫 무대 24.02.26 339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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