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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타 님의 서재입니다.

라라랜드 (자고 일어나니 스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휴먼스타
작품등록일 :
2020.05.11 11:41
최근연재일 :
2020.06.12 04:18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6,197
추천수 :
634
글자수 :
144,965

작성
20.06.12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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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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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7화. 당신과 나, 우리 이야기

DUMMY

“젊은 처자인디, 어찌나 참하고 이쁘던지, 근디, 갸가 사고로다가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슈. 웃기는 게 뭔지 아슈? 감독님이 쓴 시나리오처럼 나쁜 기억을 몽땅 잃어버렸는디 죽을 둥 살 둥 해싸며 나쁜 기억을 되찾겠다고 발버둥을 쳤슈, 그래서 어찌 된 줄 아슈?”


김민수는 바로 뒤에서 타들어 가는 스테이크 따위는 눈에도 귀에도 코에도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든 오감이 지금 말한 미소의 입에 쏠려있었다.


김민수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이야기의 마지막 퍼즐을 채워줄 것 같은 헬퍼의 입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었다.


미소가 타들어 가는 고기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고기! 고기! 고기!”

“네?”


김민수가 뒤를 돌아보자 타들어 가는 고기에서 매캐한 냄새가 퍼지자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미소가 재빨리 불을 끄고 주방 후드를 키면서 프라이팬을 집어 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댔지만 프라이팬에 눌어붙은 고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주걱하고 집게요!”


미소의 외침에 김민수가 허둥지둥 댔다.


“선반 위에 있잖아요!”

“선반 위에?”


김민수가 주걱하고 집게를 들고 와서 타들어 가는 고기를 살리기 위해 집어 들고 뒤집었다.


“가위!”

“네?”

“가위 들고 자르라고요!”

“아, 네.”


김민수가 허겁지겁 가위를 들고 미소 옆에 붙었다.

미소가 고기를 집게로 잡고 김민수가 탄 부위를 가위로 잘라냈다. 서로의 머리가 맞닿을 정도로 바싹 붙어서.


사각... 사각...


탄 부위 고기가 잘려나갔다.

연기도 어느새 주방 후드를 통해 모두 배출됐다.

조금 전에 당황스러울 때는 몰랐지만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두 사람의 자세와 거리가 서로의 얼굴을 화끈 달아오르게 했다. 연인들이 요리할 때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황급히 떨어지면 더 어색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찰싹 붙어서 나머지 탄 고기 부위를 모두 잘라냈다.


“조금 전에, 당황하니까 사투리가 나오지 않으시네요.”


‘아차...’


미소는 조금 전에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심지어 20대 목소리가 그대로 나갔다. 다행히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김민수도 깊이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지가 고향은 서울이여유.”

“아, 네.”

“그치만 사투리가 편하구만유.”

“... 젊으셨을 땐 상당히 미인이셨겠어요.”

“네?”


미소는 김민수를 돌아봤다. 김민수가 미소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가깝다. 김민수의 스킨 향기에 취할 정도로 가까웠다.

서로의 호흡을 들여 마실 정도로 가까이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싸움을 했다.


“미인이시네요. 가까이서 보니...”

“지, 지가 그런 소리 쪼매 듣고 있지라...”


팔도 사투리가 뒤죽박죽 섞여서 나왔다.

눈싸움은 계속됐다.


“눈이 예쁘시네요.”

“그 소리도 쪼매 들었지라...”


‘이 시키야, 그, 그만 좀 봐라... 너 그러다 뽀뽀하것다?’


이렇게 어색할 때는 일 이야기를 하는 게 최고다.


“아까 지가 어디까정 얘기를 했쥬?”

“아, 헬퍼님이 아는 참하고 이쁜 분이 나쁜 기억을 찾으려 했다고 했어요.”

“아, 그랬쥬?

“그분은 찾았나요?”

“찾았쥬.”

“어떻게 됐나요?”

“앞으로 나쁜 기억,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했슈.”

“.......”

“나쁜 기억이 모두 사라질 만큼, 노력하고 또 노력할 거라고... 노력하면 된다구 하면서... 이겨낼 수 있다면서... 노력하는 게 진실일 수 있다고 했슈.”

“노력이었군요.”

“맞아유 노력이지유. 사람들이 노력하면 된다된다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노력이 하찮게 보일지 몰라두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잖유?”

“맞아요. 누구나 알고 있어 미처 못 보지 못하는...”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데 말이쥬. 아무나 못 하는 거잖아유?”

“아무나 못 하죠. 또 항상 잊고 지내기도 하고... 소중한 건 가까이 있는데 항상 잊고 지내는 가족처럼요.”

“맞아유, 다들 가족이 떠난 다음에 땅 치며 후회하쥬. 감독님도 그런갑유?”

“... 네.”

“가족이 멀리 떠나셨는갑유?”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근디, 왜 못가유?”

“저도 노력하면 될 겁니다. 헬퍼님이 아는 그분처럼요... 고마워요.”

“뭐가유?”

“마지막을 채울 수 있게 해주셔서.”

“시나리오 말이유?”

“네.”

“아이고 마, 지는 그런 거 잘 몰라유, 알아서 잘 해보셔유. 난 시나리오가 뭔지, 영화가 뭔지 도통 모른께.”

“좀 적어야겠어요.”

“뭘요?”

“지금 이 느낌이요! 헬퍼님, 지금 말씀하신 거 잊지 않으셨죠? 잠시만요.”


김민수가 찬장 서랍에서 포스트잇과 볼펜을 꺼냈다.


‘뭐야? 저기 있었잖아?’


“헬퍼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고기 안 먹어유? 뱃가죽이 눌어붙었구먼유! 시방!”

“아! 죄송해요.”


김민수가 구워진 고기를 접시에 올리고 미리 준비해 둔 버섯 와인 소스와 아스파라거스, 구운 마늘을 올리고 미소 앞에 내놓았다.

김민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제가 좀 적겠습니...”

“와인.”

“아, 와인도 드려야죠.”


미소가 빈 와인 잔을 눈가에 비비면서 건달처럼 말했고 김민수가 다시 벌떡 일어나서 레드 와인을 미소 잔에 따라줬다. 시중드는 사람처럼.


“일단 노력이 키워드인 것 같습니다.”


김민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눈에서 불을 뿜었고 볼펜은 종이 위를 날아다녔다. 한자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까 미소가 한 말과 그 느낌을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어찌나 긴장하며 들었던지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적어 내려갔다. 잠깐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미소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면 미소는 자신이 했던 말을 불러주고 김민수는 그것을 받아 적었다.

지금 김민수 감독의 표정은 너무 행복해 보였다.

미소는 그런 김민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당신 이야기를 세상이 폭로하려고 하나요. 당신 삶이 엉망이 될 텐데...’


미소는 김민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서 세상에 폭로하리란 걸 소희와 병원에서 연극 치료 중에 알게 됐다. 아마도 소희는 김민수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자신을 파괴할 영화를 저토록 간절히 만들려는 모습에 미소는 불쌍한 생각까지 들었다.


김민수는 다 적고 나서 메모지를 보석 다루듯이 다루며 말했다.


“소희가 불행한 기억을 찾고 나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어떤 의미와 가치가 생기는지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막혀 몇 달 동안 마무리를 짓지 못했는데... 헬퍼님 말이 맞아요. 나쁜 기억이 모두 사라질 만큼,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이겨내려 한다면...”

“.......”

“아마도 소희는 찾았을 겁니다. 불행한 기억을 이겨낼 수 있는 더 많은 행복한 기억을 만들려는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말인지 방구인지, 도통 모르갔고. 암튼 찾았다니 다행이여유.”

“아, 네, 하하하. 근데, 누구죠? 그 젊은 처자라고 하신 분이?”

“.......”


‘나야. 이미소.’


“있슈, 그런 처자.”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만났잖아. 니 앞에 있잖아.’


“죽었슈.”

“네?”


‘확실하게 보내버리자. 귀찮게 계속 물어볼 수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아픈 기억을 건드렸나요?”

“괜찮아유. 한잔해유.”

“네, 한잔하시죠.”

“지는 술 못 먹어유.”


‘와인 두 병도 끄떡없지만, 술 마시면 실수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자.’


김민수 감독은 몇 달 동안 체한 음식이 내려간 듯, 연신 와인을 마셨다.


그때부터 미소와 김민수는 잡다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는지...

그때, 6인분 한식 요리하느라 뼈가 빠졌다는 이야기 등등.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와중에 미소는 스테이크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었고 김민수는 와인 두 병을 혼자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취했다. 취했다는 사실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있었어요. 같이 영화를 공부하고 같이 영화를 만들던 친구였어요. 녀석이 여자였다면 우린 아마 결혼을 했을 거예요. 너무나 좋아하고 의지했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녀석과 끔찍한 기억밖에 없어요.”


‘그 화상 남자 말하는 건가요?’


“죽이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아니면 내가 죽을 거 같아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진짜 죽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어요.”


‘그만. 그만해.’


“친구와 안 좋은 기억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행복했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힘들어져 갔죠. 웃기지 않나요?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면 좋아야 하는데 더 힘들어져만 가는 게.”

“.......”

“후회도 소용없었어요. 녀석은 괴물이 되어 버렸으니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렸으니까. 내가 아무리 용서를 구하고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돼버렸어...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너무 후회돼.”


퍽!


김민수 손에 들렸던 와인 잔이 박살이 났다. 김민수의 분노와 후회가 유리잔을 박살 냈다.


김민수 손바닥에서 핏물이 흘렀다.


미소는 서둘러 손바닥에 상처를 살피고 유리 파편을 제거하고 지혈시켰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서 금방 지혈이 됐다. 손바닥을 소독하고 상처 난 곳에 밴드를 붙였다.



안방 침대에 김민수를 눕혔다. 상처 난 손이 걱정됐지만, 더이상 할 게 없었다.

돌아서려는데 김민수가 상처 난 손을 내밀었다.


“제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하시네유.”


미소가 김민수의 상처 난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그가 눈을 감고 잠이 들 때까지 옆에 있어 줬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김민수의 손은 깊은 잠에 빠져서 침대 위로 떨어져 내려갔으니까.


“지는 이만 갑니다.”

“.......”


김민수는 깊은 잠에 빠져 대답이 없었다.


“시나리오 잘 마무리 하셔유. 그라고 아까 내가 불러준 대로 쓰셔야 해유.”


“이제 그 시나리오를 아는 사람은 당신하고 나 뿐이여유.”


“그리고 아까 말한 이쁜 처자가 한 명 더 있지유.”


“그 처자가 당신을 찾아가면 잘 해주셔야 해유.”


“그리고 꼭 뽑아주셔야 해유. 아니, 뽑을 거여유. 갸가... 나니께.”


“편히 주무셔유.”


“아, 그라고 나도 당신과 똑 같아유. 당신과 나, 우리 이야기가 영화로 꼭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미소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당신 영화에 행복한 기억들이 조금 더 많이 담겨있으면 좋겠어요... 희망이 될 거 같아요. 지금 우린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노력했으면 해요.”


“편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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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당신과 나, 우리 이야기 +7 20.06.12 126 8 11쪽
27 26화. 이야기의 시작 +8 20.06.11 50 10 10쪽
26 25화. 악마와 손을 잡았으니까 +8 20.06.10 55 9 10쪽
25 24화. 비밀이 숨겨진 곳 +6 20.06.09 52 11 11쪽
24 23화. 반갑다, 소희야 +8 20.06.08 109 11 12쪽
23 22화. 욕망이, 그렇게 이끌었다. +13 20.06.05 165 14 14쪽
22 21화. 마지막 통과면 완벽하다 +11 20.06.04 153 15 9쪽
21 20화. 당신은 나랑 작업하게 될 거야. +10 20.06.03 151 17 11쪽
20 19화. 완벽히 속여넘길 수 있는 +13 20.06.02 146 13 11쪽
19 18화. 판타지 속 판타지 +18 20.06.01 146 18 9쪽
18 17화. 판타지가 시작됐다. 두 번째 +28 20.05.29 168 24 14쪽
17 16화. 판타지가 시작됐다 +19 20.05.28 181 18 14쪽
16 15화. 만들어진 기억 +13 20.05.27 165 18 15쪽
15 14화. 이젠 내가 당신보다 갑이야 +24 20.05.26 161 23 13쪽
14 13화.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10 20.05.25 158 16 10쪽
13 12화. 김민수 감독과 한판 대결 +11 20.05.22 154 17 13쪽
12 11화. 잠실에 있는 100평짜리 펜트하우스 +15 20.05.21 162 16 16쪽
11 10화. 다시 기어오르면 돼 +11 20.05.20 157 20 12쪽
10 9화. 미소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31 20.05.19 168 24 8쪽
9 8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29 20.05.18 172 24 13쪽
8 7화. 남자 주인공의 등장 +15 20.05.17 202 25 10쪽
7 6화. 욕망 +19 20.05.16 227 22 18쪽
6 5화. 레디, 액션. +24 20.05.15 261 24 10쪽
5 4화. 만남의 시작 +22 20.05.14 280 33 11쪽
4 3화. 무명 여배우들의 무덤 +28 20.05.13 348 31 12쪽
3 2화. 미소야, 너에게 기회가 왔어. +27 20.05.12 433 35 10쪽
2 1화. 자고 일어나니 스타 +23 20.05.11 756 47 15쪽
1 프롤로그 +21 20.05.11 861 9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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