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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타 님의 서재입니다.

라라랜드 (자고 일어나니 스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휴먼스타
작품등록일 :
2020.05.11 11:41
최근연재일 :
2020.06.12 04:18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6,157
추천수 :
634
글자수 :
144,965

작성
20.05.1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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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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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화. 무명 여배우들의 무덤

DUMMY

‘아냐··· 아냐··· 그럼 안 돼.’


미소가 머리를 흔들었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번엔 끄덕이기 시작했다.

눈빛도 변했다.


‘그래, 그게 뭐 어때? 시나리오 좀 살짝 훔쳐보고 오디션 볼 수 있지, 뭘 그 깐 거 갖고 고민이야?’

‘아냐··· 아냐··· 그럼 안 돼 이 빙신아.’


미소가 머리를 다시 흔들었다.

다시 끄덕였다.

흔들었다.

끄덕였다.

흔들.

끄덕.


정애는 벌러덩 누워서 다리 한 짝을 미소 다리에 올려놨다.

미소는 얼음주머니로 정애 다친 발목을 얼음찜질하는데.

정애가 그런 멍한 표정의 미소를 보더니.


“이게 미친나···”


미소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김민수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모두 외워서 오디션에 참가하는 상상을 했다.

심사위원들이 질문하기도 전에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말하는 멋진 상상을.

너무 똑같이 말하면 의심받을 수 있으니까, 살짝 돌리고 빼고 감추고 비틀어서 말하면.


‘심사위원들은 날 보고 준비된 배우라며 기립박수를 치겠지?’

‘1차, 2차 합격해서 3차에는 김민수 감독과 단둘이 오디션을··· 아이 좋아라···’


‘딱’

‘악!’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고 미소는 비명을 질렀다.

정애가 벌러덩 누워서 미소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다.


“미친년처럼 혼자 비실비실 웃고 난리야? 복권 맞았냐?”

“아, 엄마··· 아이씨, 그래! 복권 맞았다!”

“허이구··· 니깐게? 딴 생각 말고, 잘 좀 문질러. 차가워 죽겠어.”

“엄마 땜에 등에 손바닥 문신 새기겠어! 여배우 등짝에 손바닥 문신 있으면 사람들 참 좋아하겠다?”


정애가 쪼금 미안했던지 얼음주머니를 미소 등짝에 가져다 댔다.


“엄살은··· 그냥 톡 건드렸는데. 이리 대봐.”

“앗 차가! 됐어 하지 마! 미안은 한가 보네?”

“여배우 등짝이 예뻐야지, 니 등짝하고 방댕이는 날 닮았는데. 나랑 똑같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마! 방댕이 엄마 닮았단 소리!”

“방댕이만 닮은 줄 아냐? 너랑 나랑은···”

“그만! 그만··· 거기까지.”

“등 돌려봐 자국 남았나 보자. 이리 와봐··· 아야, 아이고···”


정애가 움직이다가 발목에 통증을 느끼고 아파했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그러게 병원 가자니깐, 왜 사서 고생이야! 말은 하여튼 왜캐 안 들어?”

“이렇게 얼음찜질하면 되지, 병원은 왜 가? 돈 나가게.”

“이러다 덧나면 돈 더 들어, 허리 수술 한 거 벌써 까먹었어?”

“······.”


정애가 말이 없어졌다.

정애는 허리 수술 얘기만 나오면 말이 없어졌다.

3년 전, 아픈 허리를 참고 파출부 일을 하다가 결국 수술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차가운 수술대 위.

전신마취.

너무 무섭고 끔찍했다.

처음 허리통증이 왔을 때, 쉬면서 치료를 받았으면 수술까지 가진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그리고.

정애의 엄마도 수술 도중 사망했던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괜찮아 엄마?”

“어? 어···”


미소는 말없이 정애의 부어오른 발목을 얼음으로 살살 문질렀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 정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허리 수술 얘기 괜히 꺼냈나?’


미안했다.

맏딸로서 집안에 경제적으로 보태준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이 미소를 또 위태롭게 만들었다.

배우 지망생 생활을 그만두자는 생각이 함께 밀려왔으니까.

그럴 때면 딱 1년만 더 하고 포기하자는 다짐으로 끝을 냈다.

10년째 그랬다.


미소는 정애 발목을 정성스럽게 얼음찜질해주었고.

정애는 미소의 등짝을 쓰다듬어 주었다.

누가 봐도 사이좋은 모녀처럼 보였다.


“미소야?”

“어?”

“담 주부터 니가 가서 일 좀 할래?.”

“무슨 일?”

“엄마 일.”

“파출부?”

“가사 도우미!”

“파출부 하란 소리잖아.”

“가사 도우미 하라고!”

“그 말이 그 말이지!”

“싫어?”

“내가 그걸 어떻게,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잘 하드만.”

“엄마 따라서 시키는 것만 하니깐 하지, 혼자 어떻게 해?”

“모르는 거 있음, 엄마가 전화로 알려줄 게··· 그 집, 놓치기 아까워서 그래 이것아.”

“무슨 집? 그 감독님 집?”

“........”

“........”

“감독이었어?”

“어? 뭐가?”


미소는 순간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정애는 아직 몰랐다.

그 집이 김민수 영화감독 집이란 사실을.

만약 알았다면 당장 전화를 했을 것이다.

전화해서 우리 맏딸 이미소를 잘 부탁한다며 사정사정했을 것이다.

영화에 캐스팅 해 달라고.

스타를 만들어 달라고.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오늘 카페라떼 커피를 떨어뜨린 거에 한··· 백배 정도.


메이저 기획사 대표가 고급 일식집에서 근사한 요리를 대접해도 될까 말까 할 텐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출부 아줌마가 부탁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비명이 목구멍을 타고 나올 뻔했다.


“너 방금, 감독이라고 했냐?”

“.......”


‘이미소, 정신 차려! 눈치 백 단 엄마한테 걸리면 끝이야.’

‘엄마 손에 붙들려서 김민수 감독을 만나게 될지 몰라.’


“아··· 배구 감독?”

“배구 감독?”

“어, 배구 감독.”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


미소는 뻔뻔한 여자 연기를 이어갔다.


“집주인, 키가 큰 거 같던데?”

“······.”

“싱크대 선반 높은데 물건을 잔뜩 올려다 놨잖아.”

“.......”

“엄마 그거 꺼내려다 다친 거고.”

“.......”

“배구 감독 집, 부르기 어울리지 않아?”

“키 크다고 배구 감독이라고 한 거야?”

“어, 귀에 쏙 들어오잖아.”


지금은 논리가 필요 없다.

사람을 믿게 하는데 논리보다 분위기가 훨씬 더 강력한 무기다.

사이비 교주들이 쓰는 수법이다.

사이비 교주들은 논리로 사람을 믿게 하지 않는다.

강력한 분위기로 믿게 한다.


미소가 사이비 교주 역할 공연 때 공부했었다.


지금은 뻔뻔한 분위기로 밀고 가야 한다.

사기꾼보다 더 뻔뻔한 여자로.


“하이고, 이 뻔뻔한 년. 거짓말하려면 좀 그럴싸하게 해보라 이것아. 거짓말 티가 팍팍 나.”


뭐 이렇게 실패도 한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성공만 하겠나?

암튼 엄마 앞에서는 무슨 연기를 해도 먹히질 않았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날 믿지 않으니까.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관객이기도 하다.


“방에 들어가서 뭘 봤냐?”


‘이렇게 된 이상 묵비권이다.’

‘주리를 틀어봐라. 내가 얘기하나.’


“기껏 방에서 사진 봤겠구먼, 지가 무슨 탐정인 줄 알고 잘난 척은... 그래갖고 연기 참 잘도 하겠다. 때려쳐! 연기!”

“... 하여튼 엄만 못 속여.”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배구 감독 집 청소.”

“아 그래, 그 배구 감독 집이 일하기 제일 쉬워, 집주인 얼굴 볼 일도 없고, 청소, 밥, 빨래만 하면 끝이야. 그리고 어쩌고저쩌고 이렇고 저렇고···”


미소는 정애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잘 넘어갔다는 생각밖에 없으니까.


‘내 연기가 먹힌 건가?’

‘아닌가?’

‘아... 이거 헷갈리네.’

‘뭐 어쨌든, 잘 됐잖아?’


미소는 살아가면서 연기 기술만큼 쓸모없는 게 없다고 생각해왔다.

요리기술은 요리사가 되지 못해도 쓸모가 있다.

외국어 역시 번역가나 통역사가 되지 못해도 어딘가 쓸모가 있다.

자동차 정비 기술 또한 그렇다.

모든 기술이 배워두면 어딘가 쓸모는 있다.

하지만 연기 기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딱 한 군데 있긴 하지.’


나와 다른 사람처럼인 척하고 싶을 때.

약해도 센 척하고 싶을 때.

없어도 있는 척하고 싶을 때.

못나도 잘난 척하고 싶을 때.

성격도 확 바꾸고 싶을 때.

지금처럼 사기꾼 뻔뻔녀가 돼야 할 때.


연기 기술은 그것을 해 낼 수가 있다.

뭐,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영화 NG처럼.

더 엉망이 되는 때가 있기도 했다.


이제 말실수 위기를 넘기자 정애 말이 귓가에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다쳐서 일 못 나간다면 그 성깔머리 소장이 가만있겠냐?”

“... 지가 어쩔 건데.”

“배구 감독 집, 당장에 딴 아줌마한테 넘겨버리지 가만있겠냐?”

“그럼 됐네, 딴 아줌마가 일하게 해··· 엄마는 며칠 쉬어.”

“그 집이 제일 짭짤해. 가끔 팁도 주더라.”

“팁?”

“그래··· 요새 딴 집들은 그런 거 없어!”

“몸 생각 먼저 해!”

“그럼 돈은! 돈은 누가 벌고!”

“내가 벌면 될 거 아냐!”

“니가 무슨 돈을 벌어!”

“내가 왜 못 벌어!”

“알바? 그깐 커피숍 알바해서 언제 돈 버냐?”

“... 다른 일도 있어!”

“피팅모델 그것도 일거리 확 줄었다며? 있긴 뭐가 있어!”

“.......”


엄마랑 말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서는 꼭 지게 된다.

너무 아픈 데를 찌르고 들어오면 죽을 수밖에.

능력 없다는 말은 정말이지 엄마라 해도 아프게 다가왔다.


“쓸데없이 돈 벌 생각 말고 넌 니 화장품값이나 벌고 배우 일이나 신경 써! 집 걱정은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깐!”

“······.”

“그리고 하기 싫음 하지 마! 발모가지 뽄질라저도 내가 가서 일 할 테니깐.”


휙 돌아앉는 정애.

자신을 닮았다는 정애 등짝.

미소는 엄마 등짝을 그냥 콱 스매싱하고 싶었다.

이렇게 한바탕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왜 엄마랑 대화만 하면 꼭 이러는지...’

‘쌔근쌔근 자고 있을 땐 정말 천사가 따로 없는데.’


가끔 착한 딸 연기라도 해 볼 생각을 했지만.

3초면 바로 포기가 된다.

울화통이 터져서.

정애 앞에서 착한 딸 연기만 할 수 있다면 미소는 연기의 신이 되어 하산해도 될 것 같았다.


미소는 엄마의 휘어진 등을 보며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아온 흔적을 느꼈다.

엄마의 휘어진 등을 살며시 손을 댔다.

정애는 가만히 있었다.


미소는 엄마의 휘어진 등에 손을 대면서

김민수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지 않기로 최종 결심을 했다.

반칙 없이 정직하게 살기로 했다.


엄마 처럼...



***



어릴 때 미소는 정애의 돈타령이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해가 갔다.

혼자서 딸 둘에 아들 하나를 키우려면 자신의 모든 걸 버려야만 했을 테니까.

자기 삶은 없었을 테니까.


미소는 그런 정애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20대 후반을 보내는 지금, 1년만 더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연기를 포기하고 돈을 벌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됐다.


‘근데 뭐하면서 돈을 버냐?’


할 건 많다고 큰소리쳤지만 막상 할 게 없었다.

미소 나이에 들어갈 변변한 직장은 없다.

배운 기술이라고는 연기뿐이다.

연기 학원 강사 자리가 아니면 어디에도 경력직으로 받아줄 곳이 없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태자. 조금이라도 맏딸 역할을 하자.’


미소는 정애의 잔소리를 한 바가지 먹고, 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아는 미소의 대학 동창이다.

학창시절 수지와 함께 셋이서 늘 붙어 다녔다.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서 연락도 뜸해졌다.

미소는 계속 연기 쪽 길을 걸었고.

민아는 일찍 포기하고 직장을 다니다 화류계 쪽에서 일을 시작했다.

화류계, 일명 텐프로라고 불리는 룸살롱이었다.


무명의 여배우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무덤 같은 곳이다.


“이미소!”


민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소가 돌아봤다.


길을 못 찾고 두리번거리는 미소를 민아가 먼저 발견했다.

강남 뱅뱅 사거리 근처 주차장.

민아는 고급 승용차를 멋지게 주차하고는 미소에게 걸어왔다.


미소는 무명의 여배우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무덤 위에 서 있었다.


작가의말

하루에 한 자라도 쓸 수 있을 때까지...  

<선호작> <추천부탁드립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sns 로 주변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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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주소는 카피가 되질 않습니다.)

https://blog.munpia.com/silaso01/novel/206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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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당신은 나랑 작업하게 될 거야. +10 20.06.03 148 17 11쪽
20 19화. 완벽히 속여넘길 수 있는 +13 20.06.02 144 13 11쪽
19 18화. 판타지 속 판타지 +18 20.06.01 145 18 9쪽
18 17화. 판타지가 시작됐다. 두 번째 +28 20.05.29 166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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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이젠 내가 당신보다 갑이야 +24 20.05.26 159 23 13쪽
14 13화.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10 20.05.25 155 16 10쪽
13 12화. 김민수 감독과 한판 대결 +11 20.05.22 153 17 13쪽
12 11화. 잠실에 있는 100평짜리 펜트하우스 +15 20.05.21 161 16 16쪽
11 10화. 다시 기어오르면 돼 +11 20.05.20 156 20 12쪽
10 9화. 미소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31 20.05.19 166 24 8쪽
9 8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29 20.05.18 171 24 13쪽
8 7화. 남자 주인공의 등장 +15 20.05.17 201 25 10쪽
7 6화. 욕망 +19 20.05.16 226 22 18쪽
6 5화. 레디, 액션. +24 20.05.15 260 24 10쪽
5 4화. 만남의 시작 +22 20.05.14 279 33 11쪽
» 3화. 무명 여배우들의 무덤 +28 20.05.13 346 31 12쪽
3 2화. 미소야, 너에게 기회가 왔어. +27 20.05.12 432 35 10쪽
2 1화. 자고 일어나니 스타 +23 20.05.11 755 47 15쪽
1 프롤로그 +21 20.05.11 858 9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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