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7장.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4) - Que sera, sera.
"Greed makes a man blind and foolish, and makes him an easy prey for death." - Rumi
"낙담하지말라. 포기하면 지는 거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방향이란다."
2008년, 나의 MBA 유학 꿈이 좌절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급변하는 시장 상황과 가족의 어려움으로 인해, 열정 가득한 나의 유학 계획은 무산되었다. 슬픔에 잠겨 있는 내게 아버지가 건넨 말이었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겨우 8살이던 나이에 할아버지를 여의게 되었고, 장남으로서 다섯 형제들을 돌보고 친척들의 관혼상제도 챙겨야 했다.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사업에서 안정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인간답게도라고 표현을 해야할까... 아버지는 슈퍼맨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었고, 고난은 여전히 찾아왔다.
아버지의 말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어려움을 마주치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방향을 되돌아보며, MBA 유학을 통해 얻고자 했던 지식과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찾기로 했다. 그러한 결심 속에서 나는 국내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다양한 업계에서 경험을 쌓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의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내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 나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아버지의 끈질긴 정신력과 지혜 덕분에 나는 결국 인생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변동성이 높은 시장에서 선물 옵션 트레이딩에 관심을 가졌다. 이때, 헤지펀드 매니저 마이클 버리의 대담한 투자 전략을 알게 되었고, 그의 성공 사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는 금융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수천억 원의 이익을 거둔 인물이었다. 마이클 버리의 전략을 보고 옵션 트레이딩에 대한 흥미를 가졌다. 시장이 하락하더라도 옵션을 잘 활용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적극적으로 투자 전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떠한 시장 상황에서도 기회를 찾아내고 성공적인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갈 수 있었다.
금융 위기가 점차 회복되고 시장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세상이 내게 준 도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옵션 트레이딩을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길을 찾아 계속 나아갔다. 아버지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불굴의 정신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로 다짐했다. 주식시장의 파도 속에서도 기회를 발견한 나는 이 경험을 무기로 삼아 더 큰 세상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도전하여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기로 의지했다. 이렇게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가며,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이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해피엔딩으로 진행 될 것 같은 이야기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은 결국 회복되지 못했고, 형과 나는 대출을 받아 도움을 드렸지만, 오히려 빚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고, 아버지의 사업은 침체된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경쟁업체들에 대처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데 늦어진 부분이 문제였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형제는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리고 지원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은 결국 내 일에 몰두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것은 슬프지만, 그로 인해 얻은 교훈들은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희생과 노력은 우리 형제에게 강한 의지와 책임감을 심어주었으며, 결국 이러한 경험이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인생에서 겪는 역경들은 결국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며,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된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 상황을 극복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아간다. 결국 그 경험이 지금의 성공을 만드는 것이며, 역경은 성공을 위한 길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내 인생에서도 수많은 역경을 겪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좋아지지 않았을 때, 예나와의 헤어짐, MBA를 포기한 시점 등 그 순간들은 나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좋아지지 않았더라도, 나는 트레이딩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그로 인한 수익률에 대한 집념을 키웠다. 예나와 헤어진 후에, 성공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 MBA를 포기한 것은 결국 나의 전문성을 국내에서 더욱 키우고, 다양한 업계에서 경험을 쌓는 길을 찾게 되었다. 역경들은 과학적으로 해석될 때 우리가 경험한 모든 시련들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지는 시간선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성공을 만드는 데 기여한 역경들을 고맙게 여기며, 어떠한 어려움도 결국 성공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론적으로, 인생에서 역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공의 길을 찾아 나아간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나는 불굴의 정신으로 어떠한 역경도 이겨내고 성공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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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한강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입에서 나오는 입김은 열기로 바뀌며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한강변에 남겨진 빗방울이 아직도 반짝이며, 잔잔한 물결이 강물을 따라 흐르는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기며 음악에 맞춰 속도를 올렸다. 비트가 빨라짐에 따라 이마에 땀이 맺혔고, 감정의 고조됨과 동시에 나는 점점 더 빨리 달렸다. 그리고 음악의 클라이막스에 도달하자 나는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내 심장은 요동을 쳤고, 숨은 가빠왔다. 나는 숨이 차고 땀이 흘러내리는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잊고, 오롯이 달리는 순간에만 집중했다. 강렬한 베이스와 드럼의 킥은 나를 계속 자극했다. 과거의 나를 극복하며, 나는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노들섬 공원에 보이는 I-SEOUL-YOU 조형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가 내린 뒤의 노들섬 공원에는 아직 잔디에 물기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앉아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조용한 대화와 웃음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거닐고 있었다. 한강변의 야생화와 포근한 갈대들은 시원한 바람에 소리 없이 흔들리며, 한강의 평온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구름이 점차 걷혀지며, 태양이 서서히 드러났다.
노들섬 공원의 작은 보물 같은 곳, 노들서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예술가들의 작품들과 다양한 책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서점 안에 들어가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술가들의 손길이 닿은 곳곳의 작품들이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책장들 사이를 둘러보며 다양한 책들과 마주했다. 책들의 향기와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은은한 조명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항상 책을 선물로 주셨다. 어린 시절에 다른 친구들은 장난감, 게임기, 운동장비 등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 까닭에 어릴 때는 독서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대학 수능 시험과 논술 교재 같은 필수적인 도서만 진학을 위해서 암기식으로만 읽었었다. 나중에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런 관점이 바뀌게 되어 책을 즐기며 서점을 자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릴 때 항상 책만 선물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사업 전에 해외 수출선의 기관장으로 일하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해외에서 근무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면 당시 선진적인 제품들을 선물로 가지고 오셨다. 그때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으로, 대한민국이 물류 중심지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일본 닌텐도 게임기인 현대 컴보이가 한국에 출시되기 전이었는데, 아버지는 미국 출장 후에 당시 가장 핫했던 닌텐도 게임기를 사다 주셨다. 그 당시 우리 형제에게 그 게임기는 엄청난 이슈였고, 동네 아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때 처음 접한 게임은 '수퍼마리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질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화려한 색상의 마리오가 불꽃을 먹으면 불을 뿜고, 버섯을 먹으면 커지고, 별을 먹으면 강력한 슈퍼맨이 되었다. 어릴 때의 아버지는 별을 먹은 슈퍼마리오처럼 슈퍼 영웅이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는 동생을 임신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기관장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가 외삼촌의 보증을 서주다가 큰 돈이 물려버려서 그 사업을 인수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원하던 삶과는 다르게 동생이 태어나고, 보증 문제로 인해 아버지의 인생은 갑작스럽게 변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처럼, 90년대는 자영업자들의 전성기였고, 인수한 사업은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몇 년 안에 아버지의 꿈이었던 건물을 짓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IMF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 부채를 가지고 있었고, 거래처가 도산하거나 돈을 갚지 않고 야밤에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 대부분의 돈이 건물 건축에 쓰여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일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다행히 IMF 위기를 잘 극복해 가족의 경제 사정은 호전되었다. 하지만 세 남매가 자라면서 한국의 높은 교육열 때문에 대부분의 자금은 교육비로 사용되었고, 이로 인해 자금 스노우볼 현상은 계속해서 개선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자아 성취를 위해 사업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사업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과도한 소비수준으로 인해 투자금 회수보다 미술품 구입이나 옷 구입 등으로 어머니의 소비 패턴이 변했다. 더구나 형과 나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업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여 소비 패턴은 거기에 불을 더 부어버렸다.
우리 형제는 상대적으로 걱정 없이 살아갈 것 같은 안일한 생활에 만족해, 미래를 위한 준비보단 지금의 순간을 즐겼다. 대학교 초기, 우리 형제는 2000년대 초반 학번의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와우(World of Warcraft)에 푹 빠져 게임 속 세계에 몰두했다. 그곳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한 세계였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도 불합리한 상황은 존재했다. 당시 나는 드루이드라는 캐릭터를 선택했는데, 이 캐릭터의 디자인이 부적절한 탓에 플레이어들이 소수였다. 이러한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결책을 찾았고, 그것은 명예 계급의 보상을 통해 아이템을 얻는 것이었다.
명예 계급을 획득하려면 2~3개월 동안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것은 매우 빠른 시간 기준이었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든 계급 승급이 어려웠다. 계급은 시스템에 의해 정해지는데, 이 시스템은 무한 경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계급은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구조였으며, 남들보다 더 많은 명예 승수를 얻어야 했다. 따라서 더 많은 시간과 효율성을 투자해야 하는 독특한 구조였다. 상위 계급으로 오를수록 승급 속도가 빨라졌고, 최상위 계급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최상위 그룹을 유지해야만 계급을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붉은 여왕의 가설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공간이었다. 겨울 방학 때였기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을 모두 투자하여 명예 계급을 달성했다.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은 매우 값졌지만, 목표를 이룬 후엔 무언가 허무함이 남았다.
그쯔음에 재상 선배의 E46 M3 대리운전을 하게되었는데, 이게 내 변화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을 배우고자 학교에 복학한 뒤부터, 착실하게 LBS (London Business School) MBA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다. IELTS, GMAT를 공부도 하고, 그리고 실정경험을 쌓기 위해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 전 세계적으로 닷컴버블이 생겼고, 한국에도 버블이 생겼다. 그때 아버지가 비상장 주식을 천만원정도 구입을 했던 적이 있다. 허나 그 주식은 나중에 상장 사기로 투자금이 공중으로 증발했었기 때문에, 그전에는 주식은 다소 멀게만 느껴지고 사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MBA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제와 금융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주식 투자의 중요성과 함께 실질적인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 나갔다. 처음엔 그저 재미와 공부를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빠르게 나의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내게 호기심을 일으켰고, 한국의 성장과 함께 주식시장은 매우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장난을 치기로 한 것인지, 대학 졸업이 눈앞으로 다가온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폭발했다. 리만 브라더스의 몰락과 함께 금융시장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주식은 매일 폭락을 반복하며 증시의 공포감은 급격히 상승했다. 그동안 수익을 거두었던 주식들도 곤두박질 쳤다. 나는 이 흐름을 이해하고자 기술적 분석에 관한 수많은 책을 헤쳤다. 그 전에는 차트가 과거 지표의 기록일 뿐이라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펀더멘탈보다 매크로 경제의 영향력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업도 주식처럼 곤두박질을 쳤다. IMF 시절부터 흔들리기는 했지만, 결정적으로 건물 건축에 대한 자금 순환 문제와 높은 이자율은 스노우볼이 되어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초래한 경기침체는 우리 가족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나중에 아버지가 은퇴할 때쯤에는, 집안의 재산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시장의 흐름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포자기한 상태로 낙심했다. 가족 앞에서는 강인한 모습을 보였지만, 가슴 속에는 깊은 슬픔이 숨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혼자 그 슬픔을 감추며 가족을 위해 씩씩하게 살아갔다. 그때 내게 해준 말은 바로 자신에게 다 독이는 말이였던 것이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언덕 위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와 같았다. 그의 품에서는 안전함과 온기를 느꼈다. 아버지의 힘은 무한한 듯 보였고, 그의 손길은 세상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거대한 나무도 서서히 그늘이 짙어졌다. 나이가 들어, 아버지와 나는 거울에 비친 듯 서로의 모습이 되었다. 그 원래의 위용은 옅어지고, 대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커져갔다. 시간이 더 흐르자, 아버지는 한 줄기 강물처럼 흘러갔다.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거대한 나무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그림자와 같았다. 그 그림자 속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삶의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힘들게 애썼다. 그 무거운 짐을 견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아버지는 결국 세상의 풍파에 꺾였지만, 그의 헌신과 사랑은 한 줄기 빛처럼 항상 나를 비추었다. 그저 아버지가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알고 싶다. 그 무거운 짐을 나누어서 드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그늘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그를 떠올리며 영원히 고마워할 것이다. 아버지의 모습은 나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그의 사랑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리라.
그리고,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나는 굳건하게 서 있으리라,
그것을 도구로 삼아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렇죠. 아버지... 포기하면 지는 겁니다. 저는 그래도 운명의 파도 앞에 이겨낼 겁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구, 과연 그것이 행복으로 이끄는 길일까?
- 작가의말
BGM 1. Gorillaz - Feel Good Inc. (Big Short OST)
2. Michael Jackson - Man in the Mi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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