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5장. 탐욕의 송곳니, K9 (1) - Chasing the Almighty Buck.
"Greed makes a man blind and foolish, and makes him an easy prey for death." - Rumi
5장. 탐욕의 송곳니, K9 (1)
- Chasing the Almighty Buck.
출판사에서 파주에 위치한 마장호수 인터뷰 장소까지는 차로 약 40분 거리였다.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진 탓에 차 안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인터뷰 장소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창밖에 만개한 벚꽃이 보였다.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시려왔다. 떨어지는 벚꽃은 과거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족쇄 같은 내 삶에서 그녀는 따스한 햇살처럼 내 마음이 시들지 않게 해주었다. 그러나, 벚꽃이 떨어지듯이 그 따뜻한 햇살마저도 결국 서서히 희미해져 사라지는 빛처럼 사라졌다.
우리는 20대 후반의 결혼 적령기에 만나 청춘의 한 순간을 보냈다. 그녀의 이름은 예나였다. 예나는 영화 '500일의 섬머'의 쥬이 디샤넬을 연상시키는 여자였다. 매력적인 눈매와 선명한 이목구비, 독특한 패션 감각을 가졌다.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에 능통하여 외국어를 잘했기에 그녀를 더 동경했던 것도 있었다. 그녀는 세상의 굴레에서 자유로웠고, 똑똑하며 야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혼자서도 취미생활을 즐겼다.
벚꽃이 가득한 선유도 공원에서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아름다운 흩날리는 벚꽃이 우리를 감싸며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날의 날씨는 완벽했다. 마치 오늘처럼...
"나 이제 해외로 갈 거야."
그녀의 결심은 이미 굳건했고, 목소리는 담담했다.
"왜 갑자기 해외야? 어느 나라?" 물었다.
"내 꿈을 이루려면 여기서는 안 돼. 해외에서 더 큰 기회가 기다리고 있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냐, 미국과 싱가포르의 지사에 자리가 생겼어. 제의도 온 상태야."
그녀의 눈에는 꿈에 대한 열정이 넘치기도 했다.
"그럼... 우리는...?"
나는 실망하고 슬픈 마음을 감추려고 애썼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미안해.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의 기회야."
그녀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동공 너머에선 한편으로는 우울함이 느껴졌다.
"여기 있으면 안 되고?"
"난 한국에서 떠나고 싶어. 그렇다고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 결혼할 수는 없잖아..."
나는 그때 도저히 할 말이 없었다.
"안 갈 수도 있지않아? 만약 가게 된다면, 넌 잘 될거 같아...."
결국 나는 힘 없이 말을 했다. 그녀의 입술은 굳게 닫혀있었고 눈동자의 미동도 안 보였다. 때마침 하늘에서 흩날리는 벚꽃들은 내려오는 추억의 조각처럼 우리의 환희의 시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땅에 닿는 순간 사라져버리고, 그 순간의 슬픔의 깊이는 오히려 소박한 벚꽃과의 대조를 이루며 더욱 깊게 느껴졌다. 그이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생각을 정리하고,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IMF 이후로 경제적으로 흔들리던 우리집의 경제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대학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 위기에 처하고, 어머니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결국,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며 부도가 이루어졌고, 빚은 우리 형제에게 전가되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만난 그녀는 나에게 기쁨이자 고민이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지만, 동시에 현실과의 거리감이 커졌다. 썸을 타던 시절에 같이 제주도로 세미나를 갔던 일이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날에 태풍이 몰아쳤고, 비행기가 결항되어 그녀와 제주에서 하루를 보낼 기회가 있었다.
폭풍우 속에서 찾아간 제주의 한 술집은 인도풍 느낌으로 인테리어되어 있었고, 물담배 연기와 조명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로 분위기에 취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우리 사이가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나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답했고, 그녀는 기쁨과 놀라움이 섞인 눈치였다. 그렇게 분위기와 서로의 마음이 이어져 친구에서 연인으로 관계가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집과 나의 경제적 상황을 숨기며 미래에 더 큰 일을 할 것이라는 포부만 털어놓았다.
그녀를 만나는 동안 무너져가는 집안 상황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고, 그로 인해 그녀에게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 '500일의 썸머'의 주인공 톰과 썸머처럼, 서로에게 집착하지 않고 친구처럼 지내는 연인 같은 관계로 지냈다. 이런 관계는 둘 사이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우리의 관계도 연인과 친구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발전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그녀와의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시간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나를 점점 더 괴롭게 했다. 집안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내가 그녀에게 제대로 된 응원이나 지지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이런 상황은 둘 사이에 불안감과 억눌린 감정을 쌓아놓았고,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그대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의 일이 있고난 뒤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그녀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이러한 거리와 시간의 벽 앞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둘 사이의 갈등도 점차 커졌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점점 더 애매한 존재가 되어 갔다.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서운함을 터놓았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녀의 말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약속을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모든 걸 해결하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게."
그러나 먼 거리와 바쁜 일정 탓에 그녀를 위로하거나 곁에 있어주기 어려웠다. 전화와 메시지로 연락하던 것도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그녀는 해외로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 같았다. 서로의 거리가 더욱 늘어나며 사이가 서먹해져갔다. 그러나, 집안 상황이라는 핑계로 그녀를 압박했던 나의 행동이 후회되었고, 그녀와 화해하며 함께 한국에서 살아갈 마음을 전하고자 결심했다. 그녀와 화해를 위해 다시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잘 지냈어? 요즘 밤낮이 계속 바뀌다보니 연락하기가 힘들었어. 미안해..."
"그냥저냥."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예전의 생기가 돌던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해외 발령 준비는 잘 되가니?"
"아.. 해외 발령 취소됐어. 다른 내정자가 있었더라..."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매우 기뻤다. 그리고 화해를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건넸다.
"그날 이후로 우린 연락도 잘 안 됐어.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어. 우리 사이는 현재 어떤 사이일까? 우리가 이렇게 되기 전의 모습을 되찾고 싶어. 서로에게 더 시간을 투자하고, 다시 잘 해보자."
"그래, 나도 그걸 깊이 생각해왔어."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그날 이후로 많이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 우리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내 마음도 변했고, 그리고 나 이제 만나는 사람이 생겼어..."
"누구니?" 애써 괜찮은 척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달 전 결혼식 피로연 갔을 때, 만나게 됐어. 지난번에 친한 언니 결혼식 피로연으로 부산 하야트 간다고 했던 거 기억나지? 그날 만나게 됐어..."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좋아하니?"
나는 그 말을 듣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근데 편안해.. 그리고 외국인이야."
"나, 한국을 떠나서 살고 싶어. 너는 내가 한국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걸 잘 알잖아..."
"그럼... 그 사람하고 결혼할 거야?"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듯한 느낌에 목이 메였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편안해... 근데 우린..?"
그동안 싸웠던 시간들과 연락이 뜸해졌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미안해, 하지만 나는 더 큰 세상을 꿈꾸고 있어. 내 인생에서 이런 기회는 단 한번도 오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는 나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아. 정말 잘해줘..."
그녀가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안 간다는 생각보다, 우리가 정말 끝났다는 절망적인 생각만 앞섰다. 나는 이별의 슬픔을 숨기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해해.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지내자. 그래도 함께한 시간은 소중했으니까."
그녀는 미소를 띄우며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너도 행복하길 바랄게. 앞으로도 서로 응원하며 살자."
"마지막으로 포옹하자. 잘 지내. 그동안 너를 동경했었어..."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결국 그 외국인과 결혼을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나는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나는 그녀를 동경했었고, 남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슬프고 자책감이 들었다.
그녀가 사실 해외로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나를 위해 자신의 소망을 억눌렀던 걸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녀가 그렇게 결혼을 원했다면, 왜 그때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그 때 더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가정 환경이 좋았다면 그녀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 내가 왜 그때 내 자신을 믿지 못했을까? 해외로 같이 가자고 제안할 걸 그랬나? 그녀가 싫어했던 건 내 망설임 때문일까? 어쩌면 그때 당시 나와 헤어지게 된 것도 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던 것일까? 혹시 그녀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배려하려고 한 걸까? 서로의 마음을 잘못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하려다가 결국 갈 길을 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참 안타까웠다. 애초부터 선유도에서 말했던 해외 발령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에 끝없는 의문과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망할! 비치(Bitch)"
그 감정을 견디기 어려워, 해변가로 차를 몰고 갔다. 이곳에서 기분전환을 하고자 했지만, 마음은 좀처럼 진정 되지 않았다. 시원한 바다 바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어수선한 채였다. 결국 그 의문과 자책감은 나를 괴롭히며 끝없는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랑보다는 성공에 몰두하게 되었다. 선물 옵션 트레이더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순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와의 이별은 내 인생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했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아픔과 후회는 여전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날 벚꽃이 흩날리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을 강하게 후벼팠다. 언제나 그녀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그녀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나는 무수한 시련을 이겨내며 바닥에서부터 거침없이 올라왔다. 결국 내가 꿈꾸던 성공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그 의문에 답을 못 내렸다. 그녀와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풀지 못 한 질문에 답변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여전히 우리를 분리시켰다. 그녀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는 동안 합병증이 발생했고, 그 후로는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내가 그녀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은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되었다. 영화 '500일의 섬머'에서 섬머가 톰에게 마지막에 "너는 아니였어..."라는 대답의 여운처럼, 난 그 질문에 항상 답을 얻지 못 한채 살아가게 되었다. 슬프게도 그날의 마지막 포옹은 추억으로만 간직해야만 했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동안 벚꽃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다운 벚꽃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모습은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제 이별과 성공의 여정을 돌아보며 극복하고,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시작에 마음을 담아 인터뷰에 참여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과 아픔은 내 안에 남아있겠지만, 이제 나는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투지와 끈기로 나아갈 것이다.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위해 먼 길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잡지사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깊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시며,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악수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가 더 감사해야죠."
인간의 끝없는 욕구, 과연 그것이 행복으로 이끄는 길일까?
- 작가의말
BGM: 1. Carla Bruni - Quelqu’un m‘a dit (Days of Summer OST)
2. Lauv - Never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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