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7장.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3) - Que sera, sera.
"Greed makes a man blind and foolish, and makes him an easy prey for death." - Rumi
아침 내내 이어진 부슬비는 가상화폐 시장이 확실히 하락장으로 전환되자마자 마치 누가 계획이라도 한 듯 그치고 말았다. 구름사이로 비쳐지는 빛 내림, 광망은 한강변에 닿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정오가 되면서 햇살이 점점 강해져 어두웠던 거실은 환한 빛으로 가득찼다. 얇은 커튼 사이로 따뜻한 햇빛이 내 얼굴을 감싸 안았고, 마치 하늘이 내게 행운의 선물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따뜻한 빛은 새로운 시작과 희망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비가 그친 뒤 쌀쌀한 바람이 눈과 귀에 닿았지만, COVID-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탓에 볼에 차가운 느낌은 없었다. 오랜만에 외부에서 운동을 하려니 적응이 필요했다. 정오가 지나 점심시간이 되자, 인도에는 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사람들로 붐벼 있었다. 근처에 하이브 본사가 있어서인지 사생팬들이 눈에 띄었고, 아직 데뷔 전인 아이돌 같은 화려한 인물들도 눈길을 끌었다.
펜트하우스에서 노들섬 공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한강변이 가까워 운동하기 좋았지만, 이곳으로 이사 온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COVID-19의 영향으로 이 시간대에는 특별히 밖에 나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아침에 건물 내의 GYM에서 루틴 운동을 하고, 서재에서 컴퓨터로 트레이딩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ZOOM을 통해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언택트 시대에 접어들어 트레이딩 상담과 투자 상담 역시 대부분 화상회의로 이뤄졌다.
"한강변에 거주한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부러움을 산다는 성공의 상징이죠. 거기에 펜트하우스라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용산의 펜트하우스 매물을 처음 확인하러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개인은 고급 주택 부동산을 주로 담당하는 '리치스홈'의 윤세은 팀장이었다. 그녀는 40대 중반이었지만 기품이 있고,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키는 160초반대로, 소녀 같은 장난기가 얼굴에 묻어 있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윤세은 팀장은 H라인 네이비 하이웨스트 스커트와 화이트톤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이 둘의 조화는 오피스룩의 정석이었고, 검정 미드힐을 신은 그녀는 탄탄한 몸매와 좋은 피부톤을 자랑했다. 부동산 업계에서 이미지가 중요하기에 그녀가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납득이 갔다. 그녀와 젊었을 때 만났다면,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 좋아하세요? 최근에 하이브가 옮겨오고 나서 여기가 굉장히 핫해졌어요. 중국인들도 관심있게 보는 매물이라, 생각보다 젊은 분이 나오셔서 중국인 또는 아랍 국가의 혼혈 자제분인가 생각했어요. 하하, 농담이에요. 미남이신 분을 뵈니 영광입니다."
그녀가 웃을 때 나타나는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목소리는 격앙됐다.
"물론 강남의 펜트하우스에는 이곳보다 좋은 오피스텔이 많지만, 이 펜트하우스만큼 웅장한 뷰는 없죠. 이 매물의 한강뷰는 정말로 최고라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용산은 이제 서울의 미래입니다. 거기다 하이브 본사도 근처에 들어왔으니, 투자 가치로도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급 오피스텔과 주택의 위치와 편의성을 고려할 때, 강남의 매물을 구매하여 거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펜트하우스를 투자 가치로 판단하는 것은 다소 복잡하다. 투자 관점에서는 가치 상승뿐만 아니라 환매성이 중요한데, 펜트하우스는 일반적으로 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계층에서는 투자가치가 있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이며, 차라리 자금을 변동성이 높은 시장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그녀가 이 매물을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서 과장된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관으로 들어가 거실로 진입한 순간, 기대치가 낮았던 상황에서도 눈앞에 펼쳐진 여의도의 웅장한 고층빌딩과 한강대교, 노들섬, 그리고 반짝이는 한강변의 풍경에 마음이 설레였다. 건물이 지어진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인테리어가 다소 낡아 보였지만, 이는 리모델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였다.
펜트하우스를 구경하며, 생각보다 넓은 공간과 개방감 있는 구조에 만족감을 느꼈다. 침실에서도 한강 뷰를 감상할 수 있었고, 큰 거실과 주방은 멋진 파티를 열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또한, 건물의 상태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잘 관리되어 있어 크게 걱정할 부분은 없어 보였다. 이 펜트하우스를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투자적인 측면에서는 더 안전한 선택이 있지만, 나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장소로서 이 곳이 가진 매력을 간과할 수 없었다.
결국, 이 펜트하우스에 매력을 느껴 그 매물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자산에 대한 가치는 나의 삶에 얼마나 큰 만족감을 주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펜트하우스는 삶에 큰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주는 가치 있는 투자가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도, 강남의 번잡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학교 졸업 후 나는 가족의 경제적인 몰락으로 인해 빠르게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취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일을 찾아 증권사,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의 면접을 보았다. 운이 좋게도 빠르게 연락이 온 곳은 강남에 위치한 자산운용사였다. 대학교 졸업 이후 인턴으로 시작해 근무지를 옮기며 강남의 반지하에서 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돈이 없었기에 2룸의 반지하 건물에 1.5평짜리 방에서 룸메이트와 같이 지냈었다. 침대, 책상, 책장, 행거만 걸어놓으면 더 이상 들어갈 공간도 없었다. 방 안에는 낡은 가구들이 오래된 먼지와 함께 어수선하게 쌓여 있었고, 심지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건들마저도 빈약했다.
"여기서 살다 보니.. 우리가 사는 곳이 예전 조선시대 외거 노비촌 같지 않냐?"
강남에서 같이 살던 룸메이트 이준호 형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준호형은 입사 동기였고, 서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같이 거주하게 되었다. 준호형은 특이하게도 의대 진학했다가 중퇴한 이력도 있어서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대답은 상당히 자학적 개그로 들리긴 했지만, 꽤 정곡을 찌르는 듯한 이야기였다.
강남의 구조가 압구정-대치동-청담-도곡동으로 원형을 이루는 아파트 단지와 테헤란로 주변의 화려한 고층빌딩인 느낌과 달리, 고층빌딩 안으로 들어가면 원룸, 빌라촌이 있다. 조선시대도 양반의 마을은 외곽으로 원형을 만들었고, 조선시대 외거노비촌을 연상시켰다. 또한 역삼동의 강남 경찰서 근처에 있는 헤어숍에는 저녁만 되면 출근 준비를 하는 여성들이 조선시대의 매음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양반집 마을에 일하러 가는 외거노비의 신세가 딱 내 처지가 된 것처럼 느껴졌었다. 심지어 돈이 없었기에 2룸의 반지하 건물에 1.5평짜리 방에서 룸메이트와 같이 지냈었다.
하류인생 한복판에 추락한 듯한 느낌이었다. 대학생 시절, MBA 유학을 통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반대로 심지어 아직 사회로 제대로 발걸음을 하지도 못 했는데, 바닥으로 끌려가는 느낌은 나를 옥죄어 왔다. 이러한 삶은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그때 살던 집은 영화 '기생충'처럼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반지하에서의 생활은 눅눅한 분위기와 함께 그 처참함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집안 사정은 갈수록 더 안 좋아져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아무리 제습기를 돌려도 거기에 있는 옷에는 그 퀘퀘한 냄새가 새어들었다. 그 곳에서 지내다보니 부르주아를 위한 외거노비가 된 듯한 느낌은 나를 더 괴롭혔다.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이 말한 "냄새가 선을 넘지... 냄새가 씨발!..??? 존나게 나는 냄새가 있어. 암튼 말로 설명하긴 힘들고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가 있어, 그런거랑 비슷해. 지하철 타는 분들 특유한 냄새가 있거든"에 대해서 어떤 느낌인지 매우 잘 알고 있고, 영화의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그 알 수 없는 분노에 대해서 깊이 공감을 했었다.
반지하에서의 삶은 언제나 어둡고 우울했다. 그 누구도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을 곳이었다. 그 곳의 냉기와 습기가 스며들어 늘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았고, 아침마다 기상할 때마다 그곳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곤 했다.
"끝없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높은 지위를 유지하며 내려오는 것은 참 어렵다."
특히 나의 처지와는 상반된 재상 선배의 말이 내 마음을 자극했다. 대학 시절, 선배의 집을 본 적이 있어서 좋은 집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다. 이 시기에 결국 예나와 이별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나는 내 꿈을 향해 힘겹게 나아갔다. 그리고 바닥에 있을수록 더 열망은 커져갔다.
예나와의 헤어짐은 오히려 성공에 더 목마르게 되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나의 진보적 정치 성향도 어느새 '자본주의의 충성스러운 개'가 되었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되리라 다짐했다. 그 어두운 일상을 악으로 삼아, 나는 더 큰 열정과 노력으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일상의 어려움을 견디면서, 나는 MBA 공부에 깊이 몰두했다. 나는 새벽까지 공부하며, 강의를 듣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결과, 나는 꾸준한 노력 끝에 학교에서 인정받는 성적과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트레이더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빠른 손절과 익절의 타이밍을 아는 것이다. 풋옵션 타이밍은 바로 정점을 캐치하는 능력이었고, 매입의 시점은 익절의 여유자금만 있다면 피보나치로 매수를 하면 자본의 심각한 손실 없이 중요한 지점에서는 매입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빠른 손절의 금액만큼 다음 번 지지에 매입을 강하게 할 수록 상승확률은 더 높아지게 된다. 나의 이 신내린 촉은 제타 능력이 발휘될 때마다 선물트레이딩으로도 실적이 좋아졌고, 특히 풋옵션의 타이밍은 기가막히는 촉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한 기업의 경영진과의 네트워킹 기회를 얻게 되었다. 헤드헌터들은 내 신들린 촉에 관심을 보였고, 내 차트 패턴 분석능력을 특히 높게 평가해주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회사에 대한 연구를 깊이 해 나갔다.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고, 기대에 부풀어올랐다. 나는 기업의 경영진들과 소통하는 데 성공하고, 그들의 인상을 얻었다. 그 결과로, 나는 그 회사로 스카웃되어갔다.
그렇게 'K9, 탐욕의 송곳니'가 시작되었다.
특수자산운용사의 부띠끄에 들어가, 관련 지식을 습득하여, 나는 주식 조작 세력의 중심에서 개인투자자들을 위 아래로 털어먹었다. 아더왕이 엑스칼리버를 뽑는 것처럼, 추세를 읽는 능력을 활용해 시장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마치 흥미진진한 그래픽 리듬 게임을 즐기듯 차트를 그렸다.
이 과정에서 얻은 부와 그것이 선사한 즐거움은 나에게 끝없는 만족감을 줬다. 첫 성공 수당으로 BMW M4를 구입했지만, 어릴 적에 보았던 E46 M3만큼의 만족감은 느끼지 못했다. 이후, 나는 더 고급 시계와 차량에 눈을 돌렸다. 브라이틀링 시계와 M4는 내 젊음을 상징하는 듯 했지만, 그 느낌은 금방 사라졌다. 사람들은 롤렉스와 같은 고급 브랜드를 선호했고, 나도 결국 차를 박스터로 바꾸고 시계를 더 고급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거래에서 성공을 거둘 때마다 탐욕의 불길은 더 거세졌다. 나의 탐욕은 잠시 해소되었지만, 곧 다시 높은 갈증이 생겼다. 오마카세와 파인 다이닝을 추구하는 미식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고급 호텔에서 와인과 위스키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여들었으며,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야망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나에게는 인생을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춰진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결국 외로움과 회의감이 찾아왔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진 나는 외로움에 시달렸고, 남은 것은 탐욕뿐이었다. 그래서 K9의 삶에 극도의 회의감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타인의 불행을 밟고 올라간 것이었다. 나의 칼춤에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묻혀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눈물과 절망을 되새겼다. 그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좀 더 스스로의 능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경지를 탐구하기로 했다. 이때, 나는 그 회사에 그동안의 세부적인 주가조작 기업들에 관한 일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의 기밀사항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사실, 둘 다 다치는 일이기 때문에 비밀 조항이 없다 해도 죄수의 딜레마로 인해 발설될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떠한 안전장치라도 갖추고 싶었다.
"빠아아아아앙"
도로의 인도를 따라 걷던 중 갑작스런 경적소리에 문뜩 정신이 들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어려웠던 시간은 현재 추억으로 남았을 뿐, 어떠한 분노도 슬픔도 안타까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버텨왔다. 열망이 결국 현실을 바꾸는 의지를 만들어 주었고, 기회는 결국 찾아왔다. 마침내 운명의 여신이 나를 꼭 안아주었기에, 이제 나는 좋은 공간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과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큰 꿈을 향해 도전하며, 나의 성장과 발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그렇죠. 아버지... 포기하면 지는 겁니다. 저는 그래도 운명의 파도 앞에 이겨낼 겁니다.'
한강변 공원에 도착한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런닝을 시작했다.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이 아름다운 날씨는 마치 나의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마음도 활력을 되찾았다. 한강을 따라 달리면서, 나의 인생에서 다음 목표를 향한 열정을 느끼며,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결심을 다지기로 했다.
인간의 끝없는 욕구, 과연 그것이 행복으로 이끄는 길일까?
- 작가의말
BGM. 1. Maroon5 - Lost stars
2. Jung Jae-il - The Belt of Faith (Parasite. OST)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