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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영칠 님의 서재입니다.

너만 보여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사자영칠
작품등록일 :
2023.03.15 11:22
최근연재일 :
2023.03.31 20:23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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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
추천수 :
12
글자수 :
92,909

작성
23.03.2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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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사랑

DUMMY

공작가의 그간에 사정과 납치된 셀린느 하멜의 능력까지 알게 된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문제이긴 했다. 


윤허하긴 했으나 어느 정도까지 일이 진행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없었다.


약혼자를 찾고 가담자의 처형 정도를 예상했는데. . . 아예 발칸의 식량을 쓸어버리고서는, 공작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공작, 이제 발칸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네. . 내 간자들이 보내오는 소식에 따르면 그냥 두어도 스스로 붕괴할 정도로 식량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야. 척박한 기후가 한몫한 것도 있지만! 자네, 모래 폭풍의 힘을 쓴 것이지?”


“어차피 끊임없이 저희 엠피스 제국을 넘보던 자들입니다. 이 기회에 정리된다면 제국민들이 더 이상 전쟁의 위험에 놓일 일은 없게 된 셈이니. . 나쁠 것은 없습니다.”


엠피스 제국 입장에서도, 황제 입장에서도 이번 일은 나쁠 것은 없었다. 


그는 그저 황자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사트헨릭이 한번 돌아버리고 저지른 일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그나마 그의 충성심은 황권에 대한 도전이나 역심을 의심할 필요 없는 것이기에 다행인 건지. . . 


“약혼식을 했으니 결혼을 허락하기 전에 소공작과 그 여인을 데리고 황궁에 입궁토록 하게! 얼굴은 봐야겠지. . . 할 이야기도 있고!”


황제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공작은 알겠다는 말을 남긴 채 알현실을 나섰다. 





* * *





셀린느의 건강은 오히려 납치되기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혈색이 돌아오고 피부에도 윤기가 흘렀다. 굽이치는 탐스러운 은발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공작가의 모든 사용인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셀린느의 건강을 살피고 살찌우는 것에 경쟁이라도 붙은 듯했다. 


더구나 하멜 백작가의 마차는 하루에도 여러 번 하멜가와 바렌가를 오가며 백작의 지시에 따라 온갖 진귀한 약재와 식재료까지 들여오고 있었다.


거기에 질세라 바렌가 주방장도 더 귀한 식재료와 황제도 보기 드문 음식까지 만들어가며 경쟁 구도에 한몫했다. 


셀린느는 아름다운 숲의 정원에서 티타임중이었다. 그 자리에는 어머니와 이젤란 남작 부인도 함께였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젤란 남작 부인과 어머니 사이가 부쩍 친해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은 내 약혼식과 관련해서 세부적인 사항을 체크하며 사용인들에게 지시할 것을 논하고 있었다.


비록 황제에게는 이미 약혼을 한 사이라고는 했으나, 길리아드와 나는 어떠한 언약식도 없었다. 하여 양쪽 가문의 사람들만 조촐히 모인 자리에서 약혼식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에 따라 아버지는 공작과 응접실에서 준비사항을 논의하게 되었고, 우리도 이렇게 숲의 정원에서 약혼식 세부 사항을 상의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심 해상 무역으로 온갖 화려한 것을 구해올 수 있는 분이기에, 내 약혼식이 너무 조촐한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연신 쏟아내셨다.


공작님과 약혼식 관련해서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을지 사실 걱정이 되었다.


내가 대화에 끼지 못하고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때마침 세라가 길리아드의 방문 소식을 전했다.


길리아드가 회색 망토 안으로 흰색의 수트를 입고, 걸어오는 모습은 그의 흑발과 대비되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손에 한가득 붉은 장미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벌써부터 얼굴에 홍조가 어리고, 어머니와 이젤란 남작 부인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셨다. 


“티타임을 제가 방해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길리아드의 인사에 어머니께서 아니라며 자리를 권하셨다.


길리아드가 앉기 전에 나를 바라보더니 들고 있던 장미꽃다발을 건네며, “셀린느보다 아름다운 꽃은 없더군요. 보잘것없지만 장미라도 받아주시겠습니까?” 


길리아드의 말에 이젤란 남작 부인은 흐뭇하게 웃으셨고, 어머니께서는 본인이 선물 받는 것처럼 얼굴이 불그레하셨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며 어정쩡하게 꽃을 받아들었다. 장미꽃 색이 붉은지 내 얼굴이 더 붉은지 잘 모를 지경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연애할 때가 생각난다면서 웃으셨고, 그 말에 이젤란 남작 부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셨다.


차를 마시는 내내 길리아드의 시선은 변함없이 나만을 향했고, 난 중간중간 시선을 돌리다 그를 볼 때면 여지없이 시선이 맞닿고 미소 짓고 있는 그가 보였다. 


잘생긴 얼굴도 자체로 빛이 나는데, 미소 짓는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 걸어두고 싶게 했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그 그림을 본다면 다 풀릴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날이 좋은데 산책이나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고, 그에 길리아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지는 우리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두 분은 말을 이었다.


“셀린느와 길리아드를 보고 있자니 너무 잘 어울려서 보는 제가 더 설레네요.”

이젤란 남작 부인의 말에 어머니께서는 처음 낙마사고때부터 길리아드의 눈빛이 사뭇 불타올랐다며 이야기를 꺼내셨고, 궁금해하는 남작 부인에게 그 뒤로 한참을 우리의 첫 만남에 관해서 이야기하셨다. 중간중간 소녀 같은 웃음소리들이 주변을 감쌌다.


길리아드와 내가 산책하며 향한 곳은 본성 서문 쪽에 있는 정원이었다. 


그곳은 길리아드와 내가 공작가에 초대되어 온 후 처음으로 이능력 연습을 위해서 찾아가던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정원은 우리 둘만의 정원 같았고, 우리 둘의 비밀을 담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없었고 조용했다.


난 자연스럽게 이곳에 들어서면서 손을 뻗어 분수를 가리켰다. 그러자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르며 내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졌다. 그리고는 내가 마음속에 떠올린 것을 그대로 형상화했다. 그것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분수 주위를 돌며 달렸다.


“셀린느, 이능력을 이젠 더 잘 이용하시는군요. 지난번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네. 맞아요. 이제는 숨의 이능력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거든요. 꼭 여신님께서 도와주시는 것 같아요.”


난 꿈의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때 길리아드가 내 손을 잡았다.


“셀린느, 힘드시지는 않으십니까? 이능력의 사용이 그대에게 몸에 무리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아직 상처도. . . ”


난 힘을 갈무리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길리아드. 걱정하지 말아요. 상처는 매일 매일 눈에 띄일 정도로 좋아지고 있고, 의원 말로는 흉도 지지 않을 거래요. 그리고 이능력을 사용한다고 힘이 드는 건 전혀 없는걸요.”


“그대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그런데 방금 그것은 혹시 셀린느의 말? 아닙니까? 예전에 화이트 벨이라고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


“네 맞아요. 길리아드 기억력이 무척 좋으신데요. 따로 말씀드린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 . 17살때 생일 선물로 아버지께 받은 아이랍니다.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아버지께서 저와 어울릴 것 같다면서 긴 시간 찾아다니시고, 고르고 골라 선물해 주신 거였어요.”


우리는 분수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길리아드는 이능력에 관한 말들을 들려주었다.


지금의 황제는 물의 이능력자로 해양과 접해 있는 엠피스 제국을 거대한 물의 장벽을 이용해 지키기도 했다는 것과 전쟁 때 불이 붙어 마을 전체가 위험할 때도 마을을 구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숨의 이능력이니 황제만큼은 아니어도 물을 다룰 수 있음에 어려움이 없을 거란 거였다.


난 정원 꽃들이 심어져 있는 화단에 손을 뻗으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아직 활짝 피지 못한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꽃잎을 벌리며 만개했다. 


순간, 길리아드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대지의 이능이에요. 전 흙같은 것이나. . . 모래를 움직이는 단순한 거로 생각했는데. . 지난번 길리아드가 말한 수정구를 생각하고 깨달았어요. 대지에 움트는. . 기력을 도와주는. . 생명을 도와주는. . 거라고 말했잖아요.” 


아마도 길리아드는 대지의 이능력자인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니. . 이런 것은 처음 접할 터였다. 그러나 공작님이라면 알지도. . . 모를 일이었다.


“대지의 힘과 물의 힘을 함께 자유롭게 운용한다는 것이 합친다는 단순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힘을 그 상황에 따라 운용하여 어우러짐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 아직 불의 힘은 연습해보지 않았지만,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셀린느의 말을 듣는 길리아드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어찌 보면 좋아해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인데. . . 길리아드는 불안했다. 그녀가 점점 자신의 품 밖으로 벗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셀린느, 이능의 발현을 황제가 알게 됐으니. . 약혼식이 끝난 후, 황궁으로 갔을 때는 그대의 생각을 알려야 할 겁니다. 조용한 삶을 원하는지. . . 아니면 제국에 알리고 쓰임이 있을 때 나설 것 인지를요. 황제는 분명 물을 것입니다.”


“길리아드, 전 정했어요. 바렌 공작가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우리 자식. . 들을 돌보고. . . 종종 백작가에 들러 어머니, 아버지를 뵈며. . . 이런 소소한 행복을! 가족 간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요.”


셀린느의 수줍지만 분명한 말에, 길리아드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길리아드는 셀린느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녀린 몸이 그의 가슴에 다 들어오고도 남았다.


그동안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은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긴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고통도 익숙해졌고. . . 그 무렵 기적처럼 셀린느를 만나게 되며, 각인도 이루어졌다.


이런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자식은, 아니 결혼은 꿈꿔보지도 못한 삶이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그녀와의 삶과 자식들. . . 그리고 그 아이들이 온전히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랑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 .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셀린느는 빙의 전, 서울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혜정이는 호강에 겨운 불평이라며 내 말을 무시하고는 했지만. . . 엄마 아빠가 있다고 꼭 행복한 가정이 될 수는 없었다. 


늘 싸우며 술을 마시고는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는 아버지와, 그런 아빠를 멸시하며 모든 게 너 때문이라며 나를 원망하는 어머니. . . 


결혼 전 임신 먼저 하게 된 엄마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 틈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만들어 냈다. 자신들의 자식이라고 다를까. . . 역시나 나에게도 부모님은 늘 무관심했고 자신들의 감정만이 중요했다. 보잘것 없는 전문대를 학자금 대출받아 가며 가까스로 졸업한 나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변두리 다세대주택 2층 쪽방 하나를 얻어, 집으로부터 독립도 했다.


그런 나에게 꿈이란! 사랑받고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어쩜 가장 최고의 꿈이었는지도 몰랐다.


“길리아드, 앞으로 내가 많이 사랑해줄게요. . 대신 길리아드도 나를. . . 많. . 이 아껴주실 거죠?”


길리아드 나를 더 힘주어 껴안았다.





* * *




공작가의 서재에서는 바렌가 집사장과 하멜가 집사장이 나란히 자신의 가주 옆에 서서 계속해서 말하는 것들을 받아 적고 있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한다고 해도, 너무 수가 적으면 초라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 공감되는 말이오. 제국의 대표 귀족들과 가신들, 영지민들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공작의 말에 얼굴이 밝아진 백작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앉는 의자에는 공작가의 늑대 문양과 하멜가의 독수리 문양을 넣는 것이 보기에 좋을 듯합니다.” 


“손잡이에는 공작가 영지 내 광산에서 생산되는 블랙 다이아몬드를 장식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군. 약혼식에서 의자부터가 편하고 격에 맞아야 할 테니 말이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공작의 가치관과 생각이 너무나 마음에 든 하멜 백작은 지당한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양쪽 가주 옆에서 준비사항들을 받아적는 집사장들은 조만간 일리아 백작부인과 이젤란 남작 부인에게 자신들의 가주가 한심하다는 지적을 받게 될 거란 사실과 모든 것이 그녀들을 통해 대폭 수정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후 모든 것은 그들의 예상대로였고 공작님과 백작님은 적지 않은 반항을 했지만 이내 굴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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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함정 23.03.28 34 0 14쪽
13 약혼식 23.03.27 34 0 13쪽
» 사랑 23.03.26 41 0 13쪽
11 걱정 23.03.25 32 1 12쪽
10 분노 23.03.24 37 1 13쪽
9 사라진 그녀 +1 23.03.23 44 1 13쪽
8 연습 23.03.22 63 1 12쪽
7 비밀 23.03.21 40 1 12쪽
6 바렌 공작가 +1 23.03.20 49 1 13쪽
5 초대장 23.03.19 46 1 12쪽
4 숨의 이능력자 +1 23.03.18 53 1 12쪽
3 여신의 축복 +1 23.03.17 56 1 12쪽
2 운명의 그대 +1 23.03.16 74 1 13쪽
1 첫 만남 +2 23.03.15 1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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