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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영칠 님의 서재입니다.

너만 보여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사자영칠
작품등록일 :
2023.03.15 11:22
최근연재일 :
2023.03.31 20:23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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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
추천수 :
12
글자수 :
92,909

작성
23.03.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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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사라진 그녀

DUMMY

특별히 오늘 아침은 더 일찍 눈이 떠 진것 같았다.


뱃놀이 갈 생각에 소풍을 앞둔 사람처럼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세라와 제니는 뱃놀이 할 의상으로 활동성과 아름다움을 감안해 골라야 한다며 아침부터 결의에 찬 표정으로 드레스 룸을 오가고 있었다.


결국, 종아리까지 오는 진한 남색 플리츠 스커트에, 연한 핑크빛 실크 블라우스, 머리는 전부 올려서 목선을 돋보이게 하고, 헤어밴드로는 진주가 알알이 박힌 것을 골랐다.


이젤란 남작 부인은 나보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는 화장대에서 내가 단장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다.


준비가 다 되어갈때 쯤, 길리아드가 엘레네 성으로 와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다함께 길리아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 탔다.


포레스 호수까지는 거리가 있어서 마차를 이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큰 마차안에는 여분의 숄과 간단한 다과와 음료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잠시 후, 도착 했는지 마차가 멈추었고, 길리아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내려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잔잔한 호수를 둘러싼 숲이 그대로 물에 투영되며, 또 하나의 숲을 만들어 냈다.


나무들이 표현하는 아름다운 색채들은 어떤 유명한 화가가 와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호수의 반대편이 하멜 백작가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문득 아버지 어머니께도 이 그림같은 곳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이 나루터로 보이는 곳에는 이미 사용인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티테이블과 의자에 케노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지나치면 주위 경관을 해할 수도 있는데, 적절한 선을 지켜 편의를 도모한 것이 현명해 보였다.


사용인들의 수 또한 적어서 숲의 고요를 깨뜨리지도 않았다.


이젤란 남작 부인은 의자에서 차 한잔 마시며 호수를 보고 싶다고 하기에, 길리아드와 나만이 배에 올랐다.


자신은 이미 여러번 포레스 호수에서 뱃놀이를 해봤다며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길리아드와 나만이 배를 탄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간질거렸다.


배를 탈때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길리아드의 도움으로 배 안쪽, 방석이 놓여진 곳에 무사히 앉을 수 있었다.


길리아드는 맞은 편에 앉았고, 이내 직접 노를 잡았다.


나뭇가지들과 나뭇잎들이 가벼운 바람에 '사사삭'거리며 부딪히는 소리마져 무척이나 자세히 들렸다.


이런 자연의 소리를 그동안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 .


길리아드가 노를 저으며 물이 찰박대는 소리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길리아드, 너무 좋아요. 눈도 제 마음도 즐거워요. 데리고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내 말에 길리아드 귓볼이 빨개지는 것이 보였다.


"그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 . 행복합니다. 셀린느"


진심이 담긴 한마디가 갑자기 훅 들어온다.


길리아드도 참. . . 사람을 너무 부끄럽게. . . 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어도 분명 붉어졌을 것이다.


노를 저으며 순간순간 드러나는 그의 팔 근육들도 내 얼굴이 홧홧해지는데 한 몫 거들었다.


"셀린느, 자주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배고프지 않으십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간단하게 요기할 것이 차려져 있을 겁니다."


다시 방향을 틀어 천천히 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주위를 돌아보고, 간혹 시선도 맞추어가며 자연이 주는 여유를 즐겼다.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가지 않았으나, 이미 충분했다.


티 테이블에는, 잘라놓은 스테이크와 구운 야채들, 그 옆에는 꽃잎 모양으로 멋을 낸 쿠키와 초코렛이 자리하고 있었다.


손쉽게 포크만 사용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한 입 크기로 썰어놓은 것에, 세심한 배려가 느껴져 마음이 따뜻했다.


고기를 굽고 있는 것도 보이지 않았고, 굽는 냄새와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따뜻한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니. . .


길리아드가 호수를 온전히 감상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신경 써 줬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


"이곳은 언제봐도 아름답고. . . 그대로네요"


이젤란 남작 부인은 과거를 회상하듯이 나직이 말하였다.


대답이나 호응을 바라는 말이 아니었다.


떠나보낸 친우인 멜리나를 그리며. . .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 했다.


길리아드도 나도 그것을 알기에 그져 가만히 호수만을 바라보며 자연이 주는 위안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세명은 누구하나 튀는 사람이 없었다.


침묵을 불편해하며 대화를 억지로 꺼내지도 않았다.


자연이 주는 빼어난 경관과 고요함을 온전히 담아내며 그것만으로도 충만했다.


돌아가는 길이 아쉬울 것 같았다.





* * *





어둠속에서 움직이는게 오히려 편했다.


엠피스 제국의 경계를 넘어 바렌가 영지로 들어 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분명 그 여인은 엘레네 성에서 머물 것이다.


본성을 지나 엘레네 성까지 들키지 않고 가야하는 것이 조금은 번거롭지만,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여럿이 움직이면 흔적이 노출 될 수도 있기에, 이번에는 혼자서 은밀히 움직였다.


하루 지켜보니 그림자 기사 하나가 귀신같이 붙어 있었고, 여성 기사 두명은 거리를 두고 호위를 하는 듯이 보였다.


문제는 그림자 기사인데. . . 실력이 뛰어난 자이다.


그 여인도 숨의 이능력자이니 쉽사리 끌려오진 않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침실에 들어가는 물에 미리 손을 써 놓았다.


오히려 오늘 뱃놀이를 나가주어, 일이 더 쉬워진 것도 한 몫 했다.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그 여인을 문제없이 발칸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그 그림자 녀석만. . . . . . . . . . . . .





* * *





밤의 고요한 시간, 난 아가씨의 침실이 보이는 테라스 앞, 나무 위에서 방안을 지켜보았다.


하녀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아가씨는 크게 웃기도 했고, 도도하게 턱을 치켜 들기도 했다.


첫날과는 다르게 많이 편안해지신것 같다.


하녀들이 잠자리 준비를 돕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침구를 정리하고, 침대 옆 탁자에는 물 주전자와 컵이 놓여지고, 커튼이 닫힌다.


얼마후 나는 나무위에서 테라스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지켰다.


주군을 모시면서, 보름달 뜬 밤의 고통을 덜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었다.


강제로 변화되고, 밤새 숲을 헤매이며. . . 다음 날 상처 가득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묵묵히 다시 일상을 이어나가는 주군의 모습은. . .


옆에서 항상 붙어 있는 나만이. . . 모든 것을 일찍이 경험해 보았을 공작님만이 알 것이다.


바렌 공작가 사람들은 단순히 늑대 후손이라는 것을 영광된 전설 쯤으로 치부해버리지만. . . 소수의 몇 명은 알고 있다.


대를 이어나가는 공작가문의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숨의 이능력자만이 모든 굴레를 끊어 낼 수 있다지만, 이능력자가 발현되는 것조차 쉽지 않거늘!


그것도 숨의 이능력자는. . . .


그런데 지금 내가 지키는 분이 바로 숨의 이능력자이다.


주군의 반려! 그러니 지켜야 한다. 내 목숨이 다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주군께 받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길이리라!


제국 사이의 경계지역에서는 작은 마을들이 생겨난다.


바닥에서 더 이상 떨어질 것이 없는 가진게 없는 이들이 모여사는 버려진 마을!


병든 부모님과 내가 하루를 버티는 것 보단 죽음만을 기다리며 있던 날들이었다.


발칸과 엠피스의 전투가 벌어졌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잡초같은거였다.


그때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지키라 명하며 전투를 하는게 보였다.


'마을 사람들'


'우리가 사람이라고?'


'우리를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남자는 바렌 공작가의 소공작 '길리아드 바렌' 이었다.


주군은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고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원한다면, 영지민으로 받아들여 준다고 했다.


병든 부모님은 비록 오래 사시지는 못했지만, 가시기 전 몇 해 동안은 사람이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도 있구나 하시며 행복해하셨다.


바렌 공작가의 영지민들의 충성심이 유독 높은 이유는 공작님과 나의 주군인 소공작님 때문이다.


권력과 힘으로 평민들을 벌레보듯 하며 억압하고 군림하는 것이 대부분의 귀족 나부랭이들인데. . . 공작님과 주군은 모두를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우하고 능력에 따라 기회를 주었다.


군림하기 보다는, 지켜주었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것은 힘있는 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톡"


누군가가 있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엘레네 성의 끝자락에서 검은 인영이 모습을 감추었다.


침입자다!


난 바로 따라 붙었다.


빠르다.


너무 빠른 것이 기괴 할 정도이다. 저리 빠른데 발에 닿는 소리가 없다는 것이. . 믿기 힘들 정도. . . ??


설마?


다시 아가씨의 침실로 방향을 틀었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기분이 좋지 않다.


'테라스가 열려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끝자락이 보였다!'






* * *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머리가 무겁고, 셀린느의 감정의 흐름이 뚝!하고 끊어져 버린 것 처럼 사라졌다.


각인된 이후 한 번도 그녀를 느끼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긴장감, 설레임. . . 잔잔하게 전해져 오는 감정의 흐름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달려 나갔다.


엘레네 성으로 가는 숲속 정원에서 달려오는 레작이 보였다.


그녀 옆에 있지 않고 왜. . . ?


"주군! 아가씨께서 납치되셨습니다. 환영마법이 있어서. . . . 제가 그만. . . . . . 죽여 주십시오!!"


빌어먹을!!


"당장 블랙 다이아 몬드 기사단을 전부 소집해라!"


"영지의 경계를 강화하고 성과 모든 길을 봉쇄해라!"


나는 그 길로 아버지를 찾아 뵙고, 셀린느의 납치를 알렸다.


숨의 이능력자인 그녀가 쉽게 당할 순 없는 일이니, 분명 약을 사용했겠지. .


예상대로 물 주전자 안에 약의 흔적이 나왔다. 이능력을 무력화 시키는 약인데. . .


벌써 그녀가 숨의 이능력자인것이 드러난 것인가!


"난 지금 황궁으로 갈 것이다!"


아버지가 정복을 입으시며 말씀하셨다.


"이능력을 무력화 시키는 약은 발칸에서만 나는 독초가 들어가야 한다. 엠피스 황제의 윤허를 받고 발칸을 칠 것이다."


"제 반려를 찾는 일에 황제의 윤허따위는 필요없습니다."


"길리아드!!"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를 죽이셔야 할 겁니다."


". . . 가거라! 꼭 그 아이를 무사히 데려오너라!"


대답하지 않고 거침없이 뒤돌아선 그의 눈은 핓빛으로 날이 서 있었다.


복도를 빠르게 빠져나가는 나에게 기사단 부단장인 럭스틴이 다가와 알렸다.


"소공작님! 영지의 경계를 강화하고 모든 길을 이미 봉쇄했습니다. 하지만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성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감히! 내 영지에서!'


'내 반려에게. . . 죽여버리고 말테다!'


붉은 눈동자가 더 깊어지며 동공이 바짝 좁아졌다.


셀린느의 감정이 약으로 인해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 막혀 있지만. . .


각인자로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선연히 가르키고 있었다.


"포레스 호수로 갈것이다. 레작, 럭스틴 따르라!"





* * *






길리아드가 나간 후 방을 나서는데 이젤란 남작 부인이 급하게 왔는지 큰 숄을 두르고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전 지금 황궁으로 향합니다. 셀린느 영애의 납치에 발칸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더이상 그 아이의 이능력을 숨길 수 없으니 길리아드와 약혼한 것으로 황실에 알리고 발칸을 칠 명분을 가져올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이젤란 남작 부인이 살짝 휘청였다.


숄을 잡고 있는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거동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젤란 남작 부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이 한 번 숨을 들이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하멜 백작가로 가주십시오. 남작 부인께서 백작가에 상황을 알리시고 협조를 구해놓으면, 제가 황궁으로 가는 길이 빨라질 듯 합니다."


"네. 지금 바로 출발할께요." 대답을 마친 이젤란 남작 부인이 바삐 움직였다.


어미를 잃고, 보름달이 뜬 밤 마다 홀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들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아비의 심정이 얼마나 지옥이였는지!!!


이제야 짐승의 굴레에서 벗어나 반려를 찾고 행복이란 것을 알아가는 아들에게. . . 발칸을 대륙의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공작의 손 안에서 바람의 기운이 매섭게 뿜어져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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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죄와 벌 (완결) 23.03.31 29 0 10쪽
16 잠들지 못하는 밤 23.03.30 35 0 11쪽
15 23.03.29 36 0 11쪽
14 함정 23.03.28 34 0 14쪽
13 약혼식 23.03.27 35 0 13쪽
12 사랑 23.03.26 41 0 13쪽
11 걱정 23.03.25 32 1 12쪽
10 분노 23.03.24 37 1 13쪽
» 사라진 그녀 +1 23.03.23 45 1 13쪽
8 연습 23.03.22 64 1 12쪽
7 비밀 23.03.21 40 1 12쪽
6 바렌 공작가 +1 23.03.20 50 1 13쪽
5 초대장 23.03.19 46 1 12쪽
4 숨의 이능력자 +1 23.03.18 53 1 12쪽
3 여신의 축복 +1 23.03.17 56 1 12쪽
2 운명의 그대 +1 23.03.16 74 1 13쪽
1 첫 만남 +2 23.03.15 1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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