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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영칠 님의 서재입니다.

너만 보여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사자영칠
작품등록일 :
2023.03.15 11:22
최근연재일 :
2023.03.31 20:23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839
추천수 :
12
글자수 :
92,909

작성
23.03.15 17: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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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첫 만남

DUMMY

느릿느릿.. 한참 동안 눈을 떠보려고 인상을 쓰고 있다.


분명, 쓰고 있는 작품에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통을 부여잡고 씨름하다가 단골 커피숍을 나왔다.

그 후, 집으로 걸어가던 중 차에 치였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

의식을 잃었다.


평소 집으로 가는 방향 쪽에 있는 가로등이 자꾸 정신 나간 년처럼 깜빡거리더니 이내 내 인생까지 말아먹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시청에 민원이라도 넣을 것을 뒤늦은 후회가 치밀어 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병원이 아니고 다른 곳, 그것도 엄청나게 화려한 무늬의 천장이 보이고

하늘하늘한 캐노피가 처진 침대 속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은근슬쩍 발가락과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아픈 곳 없이 움직인다.

목도 살짝 돌려보니 통증도 없다.

우선 다행이다.

후~~~ 긴 숨이 나온다.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잡기도 전에 방문이 열리더니


"아가씨~~!!'

놀라움과 울먹거림이 적절히 썩어 있는 말이 귀에 꽂혀온다.


'누구지?'

아직 목소리를 낼 정도의 정신이 아니라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단박에 그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밖에 다 소리치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깨어나셨어요! 어서 의원을 불러주셔요~!"


저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여자는, 아니 소녀쯤 되려나 대체 누구길래 날 보자마자 저리 난리를 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 후 우당탕 여러 명의 긴급한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울리는 것 같더니

이내 방문을 거칠게 열고서 들어오고 있었다.


혹시 나를 친 사람이 재벌이었나? 그래서 이 사람들이 합의 전에 이리 귀하게 모시는 코스프레라도 하는 건가 쓸데없는 재벌비하인드 추리를 하던 나에게.


"셀린느, 아버지를 알아보겠느냐?"

그중 가장 덩치가 크고 비싸 보이는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말했다.


"아가, 내 사랑하는 아가! 어미다. 어미를 알아보겠느냐?"

벌써 눈이 빨갛게 짓물러서 부어버린 아리따운 여인이 흐느끼며 말했다.


무슨 소리지? 아버지? 어미? 셀린느?

그 순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라는 말이 딱 떠오르며 입을 더 다물게 되었다.

자고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고 상황 파악이 먼저였다.


"일리아! 진정하시오. 이러다 그대마저 쓰러지겠소.

한스는 뭘 하느냐 어서 셀린느를 진찰하지 않고!"


분위기상 가장 지위가 높은 것 같은 덩치 큰 남자의 말 한마디에 뒷줄에 있던

멸치같이 빼빼 마른 남자가 서둘러 나온다.


그러더니 그 멸치가 내 손목을 잡고 안색을 살피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라고 하고

한참을 귀찮게 하더니


"다행히 아가씨께서는 외상은 없으신 듯합니다.

하오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고 기력을 회복하는 약을 지어 올릴 터이니 복용하시면 될 듯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일리아라고 불린 여성이 휘청거렸다.

"아가, 내 소중한 딸! 네가 낙마했다는 소리를 듣고서 이 어미는 너무 놀라고 걱정이 돼서. . . "

분위기로만 본다면 저 여자가 어머니라는 셈이고

나보다 먼저 쓰러질 것 같아 보였다.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덩치 큰 미남자가 아버지라는 셈인데. . .

이건 무슨 상황이지?


머릿속이 복잡하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모두 셀린느가 쉴 수 있도록 나가고

쥬시는 꼼짝 말고 셀린느를 옆에서 살피도록 해라! 알겠느냐?"


"네~!! 아가씨를 정성껏 보살피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방안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쥬시라고 불린 소녀가 바짝 다가와 서는 것 또한 느껴졌다.


살포시 눈을 뜨고 쥬시라는 소녀를 바라보니


언제 가져왔는지 적당한 온도의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세심하게 닦아내 주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하나 까지도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이 정성을 다해서 닦아주는데


마음이 차츰 가라앉고 따뜻해지고 있었다.

나를 아껴주는 아이인가 보네. . .

가족들한테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받아본 적 없는 나에게 이런 호의는 간지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으니 쥬시라는 아이가

"아가씨 물 드릴까요" 하면서 어느새 영국 여왕이나 쓸법한 물잔을 가져오고 있었다.


어기적어기적 부축을 받으며 반쯤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려한 침대와 황금색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천장!

고풍스럽고 꼭 디자이너 한정판 같은 가구들까지, 이방만 보더라도

이 집안에 부가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았다.

그전에 받아본 물잔만 해도 알 것 같았다.


"아가씨, 정말 다행이에요.

길리아드 소공작님 아니셨으면 정말이지 큰일 날 뻔하셨어요."


'길리아드 소공작?'아까부터 말투나 의복, 호칭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


내 번잡한 생각을 모르는 쥬시라는 아이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 소공작님께서 아가씨를 안고 들어오시는데 다들 난리도 아니었어요.

크게 다치신 것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지만 그래도 낙마란 것이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낙마?"내가 깨어나고 처음으로 한 말 이였다.


"아가씨, 기억나지 않으세요?

소공작님께서 화이트 벨을 타고 달리시는 아가씨를 겨우 따라잡았고

급하게 방향을 트는 말 등에서 떨어지시는 아가씨를 몸으로 받쳐서 받으셨대요"


'뭐야 슈퍼맨이야? 떨어지는 사람을 몸으로 받아?'

듣고도 이상해서 가만히 있으니 쥬시라는 아이는 자동 설정된 이야기 상자처럼

계속해서 줄줄 내뱉고 있었다.


길리아드 소공작이니 그럴 수 있었다. 부터 해서

내가 이틀 동안이나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그 이틀 동안 소공작이라는 사람이 집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해서

내 안위를 살폈다는 일까지. . .


그 덕에 북부 공작님과 소공작까지 얼굴 보기 힘든 분들을

죄다 볼 수 있었다며 집안에 하녀들이 셀레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역시 제국의 제일가는 미남이라는 둥. .

혹시나 길리아드 소공작님께서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게 아니냐는 둥. .

온갖 말들을 들으며, 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길리아드 소공작? 북부공작가. . 셀린느. . 셀린느. . 설마??'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들은 것들을 종합해보면

이건 내 친구가 쓴 소설 '북부공작가의 안주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였다.


맙소사 설마 빙의? 그것도 내 단짝 친구의 첫 소설인 '북부공작가의 안주인'이란 소설로?


말문이 막혔다. 제국 제일가는 미남자이자 북부를 다스리는 늑대 후손!


혜정이가 이 소설을 쓰면서 첫 소설이라고 흥분해서

매 순간 순간을 지겹도록 상의하고 물어본 통에 내가 쓴 소설로 착각할 정도였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비밀까지도 다 기억하는 나로서는 길리아드 소공작이라면

자신의 수인화와 동시에 각인자로 셀린느 하멜이라는 백작의 외동딸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것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맹목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20대 여성들의 이상형인 능력있고 잘생긴 남주와 아름다운 여주의 케미로 유명해서 나름 인기몰이를 한 작품이였다.


그런데 내가, 그것도 현재 서울에서 모태솔로로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본 내가, 아직 첫키스도 못해본 내가 연애 소설로 빙의?


이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쥬시는 실컷 긴 이야기를 마치고는 약을 가지러 간다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혼자 남게 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했다.


낙마라면 그 소설에서 분명히 길리아드 소공작이 꾸며낸 이야기다.

사실은. . .


똑!똑!똑!

"일어나셨습니까? 셀린느 영애.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길리아드 소공작입니다."


순간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다시 울리는 목소리

"셀린느 영애! 하녀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일어나셨다고요. 잠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목소리는 중저음에 매력적이였다.


어쩔 수 없었다. 우선 상황 파악이 먼저이니 피하기만 한다면 답은 없었다.


"네. 들어오세요."


아픈 사람처럼 작게 대답하자마자 문이 열렸다.


성큼 성큼 걸어 들어오는 남자를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시선을 올려 쳐다 보았다.


긴 다리로 넓게 걷는 보폭, 늘씬하면서도 적당한 근육질로 뒤덮여 보이는 허벅지.

타고 올라가는 시선이 가슴에서 멈추었다.


팽팽한 가슴 근육이 조끼를 입었어도 그려질 듯 했다.

넓은 어깨와 단단해 보이면서도 근육으로 짜임새 좋게 잡힌 긴팔도 그림 같았다.


목선을 타고 올라가 날카로운 턱선과 구릿빛의 피부, 광채나는 흑발까지


혜정이와 상의하면서 만든 남주의 이미지는 딱 내 취향과도 일치했다.

'위험해 위험해 진정하자 진정해.'


가까워지면서 길리아드 소공작의 얼굴과 눈빛을 본 나는

순간 심장이 발밑으로 내려 앉는 줄 알았다.


세상에 잘생겨도 정도가 있지. 이건 이 세상 미모가 아니었다.

너무 훌륭했다.


흑발 밑으로 보이는 짙은 눈썹과 타는 듯한 눈빛. 그것도 빨간색 눈동자라니.

오똑한 콧날과 붉은 빛의 매혹적인 입술까지.

너무나 비현실적인 외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셀린느 영애. 이틀동안 누워계셔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역시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문밖에서 허락을 구하던 목소리보다

가까이에서 듣는 목소리는 짐짓 다정하면서도 한층 더 부드러웠다.


인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뻗어온 손은 내 손을 조심스레 잡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손등에 담백하게 입술을 대었다.

입술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기도 간질 거리기도 했다.


흠짓 놀라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릇 다정하면서

좀 더 짙은 붉은 빛을 띄는 것 같았다.


"켄트럿 하멜 백작님께는 낙마했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 날, 저 때문에 많이 놀라시진 않으셨는지. . 걱정 때문에 이틀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 * *




원작소설에서 내가 낙마했다고, 아니 내가 빙의 된 셀린느 하멜이라는 여자가 낙마했다고 다들 알고 있는 이유는 지금 바로 앞에 서 있는 길리아드 소공작때문이다.


화이트벨이라는 흰색의 종마를 17세 선물로 받은 셀린느는 백작가 영지의 승마장에서 종종 말타는 연습을 했다.


이날도 가문의 기사 중 엘리엇 경과 첸트 경의 호위를 받으며 말타는 연습 중 이였다.


나름 익숙해져서 승마장 밖에도 달려보고 싶다는 내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나왔다가

그만 화이트벨이 흥분해 버린 것이었다.


달리면서 즐거움에 취해 주위를 살피는 걸 등한 시 한 것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호위 기사인 엘리엇 경과 첸트 경이 뒤 따라 소리치며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화이트벨은 이름 난 종마처럼 번개같이 달렸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내가 계속해서 화이트벨의 목을 쓰다듬고 두드리면서 진정시켰지만 역부족이였다.


때마침 이웃하고 있는 사트헨릭 바렌 공작가의 영지 관할 숲으로 화이트벨이 뛰쳐 달려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길리아드 소공작이 그때 숲에서 나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정말 낙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흑마를 타고 나타난 그는 빠르게 접근해서 화이트벨의 목줄을 잡아채고

짐승같은 움직임으로 내 허리를 감아 들어 올렸다.


남자의 한팔에 들어 올려져서 어느새 나는

그의 흑마에, 그것도 그의 가슴 앞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이트벨은 내가 사라지자 순간 속도를 차츰 줄이면서 진정하기 시작하고 이내 멈추었다.


흑마 위에서 그는 나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놀란 것을 진정 시켜주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영애. 저는 바렌 공작가의 아들, 길리아드 바렌입니다."


그 순간 길리아드 바렌 소공작과 셀린느 하멜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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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라진 그녀 +1 23.03.23 44 1 13쪽
8 연습 23.03.22 63 1 12쪽
7 비밀 23.03.21 39 1 12쪽
6 바렌 공작가 +1 23.03.20 49 1 13쪽
5 초대장 23.03.19 45 1 12쪽
4 숨의 이능력자 +1 23.03.18 53 1 12쪽
3 여신의 축복 +1 23.03.17 55 1 12쪽
2 운명의 그대 +1 23.03.16 74 1 13쪽
» 첫 만남 +2 23.03.15 1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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