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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영칠 님의 서재입니다.

너만 보여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사자영칠
작품등록일 :
2023.03.15 11:22
최근연재일 :
2023.03.31 20:23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863
추천수 :
12
글자수 :
92,909

작성
23.03.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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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운명의 그대

DUMMY

바로 이웃 영지이지만 예로부터 북부 공작가는 사교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

따라서 공작가의 그 누구와도 왕래한 적이 없었고, 친밀한 관계조차 아니었다.


이웃이긴 하나 남보다 못한 이웃이랄까?


제국 영토의 3분이 1 이상을 차지하면서 영지의 대부분이 바다가 아닌 대륙과 접해있어, 제국민들에게 북부 공작가는 제국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방패였다.


실제로 북부 공작가와 경계를 이루는 대륙의 발칸 제국은 늘 엠피스 제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대대로 막아내고 지켜준 것이 바로 북부 공작가! 사트헨릭 바렌 공작 가문이었다.


발칸 제국은 척박한 환경과 추위 탓에 따뜻하고 바다가 접해있는 엠피스 제국을 탐했는데, 바렌 공작가의 월등한 군사력과 충성심으로 엠피스 제국은 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엠피스 제국의 떠오르는 태양! 여신의 축복을 받은 황제!

트란에실 시투아 머레스 황제는 두 명의 공작 가문이 기둥처럼 떠받들고 있다.

더불어 황제의 권위 또한 드높아 누구도 넘볼 수 없었다.

수많은 귀족 가문들의 야욕에도 사교계의 폭풍 같은 입질에도 변함없는 권력이었다.


다만 늑대 후손이라는 신화와도 같은 전설이 북부 공작가의 출생에 곁가지처럼 붙여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교활동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신비스러운 궁금증을 유발한 것도 한몫했던 것이리라.


그런 북부 공작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길리아드 바렌 소공작을 지금 바로 코앞에서, 아니 그의 가슴에 기대어진 상태로 내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흑마도 이제는 걷는 것을 멈추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렸고

길리아드 소공작은 자신의 출신과 이름을 밝힌 뒤 괜찮은지 묻고는 어떠한 애정도 관심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 하멜 백작가의 여식 셀린느 하멜이 소공작님을 뵙습니다."

낙마 위기에서 벗어난 뒤라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나는 인사를 더듬더듬 올렸다.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화이트 벨이. . 아니 제가 타고 있던 하얀색 말이 그만 흥분을 해서. . 아직 제가 승마 연습이 부족하여. . 하멜가는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인사를 거듭하면서도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말하면서도 온 몸이 잔잔하게 떨리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조금만 가면 숲의 샘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내려 휴식을 취하시면 제가 하멜 백작가로 연락을 넣어 드리겠습니다."


내 몸의 떨림을 읽은 것인지 바로 쉴 곳을 찾아 이동 후 연락을 넣어 준다고 하니

냉정한 말투와는 다르게 따뜻한 사람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긴 특별히 무례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없었으니 나쁘게 생각할 일도 아니고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하니 나는 그저 감사하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었다.


바로 조금만 이동하니 정말 작은 맑은 샘이 있었고, 그 옆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한 모습의 오두막도 있었다.


훌쩍 흑마에서 뛰어내린 소공작이 나를 내려주고자 두 손으로 허리를 잡고 붕 띄우며 사뿐히 내려 주었다.


내려 주고서도 혹시나 내가 휘청 거릴까봐 손을 떨어 뜨린 후에도 바로 치우지는 않았다.


"감사합니다."

짧게 인사 한 후 나는 여기서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발바닥에 힘을 주어 휘청거리지 않게 또박또박 걸어가 샘의 옆 가장자리 바위에 살포시 걸터 앉았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소공작은 말의 안장 옆에 메달려 있던 가죽 물통을 풀렀다. 그리고 샘으로 가서 물을 담은 후 나에게 가져와 마실 것을 권했다.


한 모금 두 모금 천천히 마시자 온몸의 떨림이 사라지고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자세히 좀 더 자세히 소공작을 보게 되었다.


저녁이 되면서 달빛이 내리고 샘물에 반사된 흑발은 더 없이 광채가 돌았다.

바렌 공작가의 늑대 문양이 들어간 외투는 소공작의 넓은 어깨와 함께 찰떡같이 어울렸다.


순간 샘을 바라보던 소공작이 숲 너머로 시선을 돌리고, 허리 춤에 차고 있던 검의 손잡이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나도 따라서 소공작이 바라보던 곳으로 시선을 틀었다.


하지만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 숲이라 그런지 어떤 소리도, 어떤 모습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잠시 후 소공작이 나직이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셀린느 영애, 숲 안쪽의 마물 한 마리가 이쪽으로 이동해 오고 있습니다. 놀라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나는 그 순간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이 되어 굳어 있었다.

마물이라니. . 살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소공작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 걸이로 숲을 향해 몇 발자국 걸어가더니 검 손잡이를 잡고 칼을 빼어 들었다.

달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의 면이 섬뜩했다.


순간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점점 심해지더니, 이내 쿵쿵 거리는 소리로 변하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소공작보다 훨씬 더 큰 마물 한마리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입을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위협하며 특유의 음산한 소리를 내었다.


"크르르르~~"


그 찰나 소공작이 검을 치켜 들고 손살같이 달려나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마물을 베어 넘겼다.


나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검법에 대해 잘 모르는 나였지만 하멜 백작가의 기사들과 비교해 볼 때 그 실력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뒤돌아선 소공작은 방금 마물을 벤 사람같지 않은 평온한 눈빛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뒤늦게 쿵 소리를 내며 마물이 쓰러졌다.


검에 묻은 마물의 파란색 피를 한번 휘둘러 흩뿌린 후

다시 검집에 넣고, 나에게로 다가오려는 순간!


쓰러졌던 마물의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져서 소공작의 등으로 내려쳐지고 있었다.


내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며,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소공작에게로 뻗었다.


그 때 알 수 없는 빛이 손에서 갈무리 되어 환하게 나오며 소공작의 몸을 감싸고 빛의 장막을 형성했다.


마물의 꼬리는 빛에 닿자마자 녹여지듯 사라지고, 심지어 꼬리로 이어진 몸통까지 연쇄적으로 사라져갔다. 종국에는 마물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고 있었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소공작의 붉은 눈동자도 짙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급격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의식이 암전되었다.




* * *



셀린느 하멜이 이능력을 쓰고 바로 의식을 잃었다.


난 그녀가 쓰러지자마자 바로 인간의 모습이 풀리며 늑대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이럴수가!!!. . . .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내 운명의 상대가 저 여자였단 말인가!


늑대 후손인 바렌 공작가는 선조때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여신의 축복을 받은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면. . .


보름달이 뜬다 해도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며


각인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더 강해진 늑대의 기질과 인간의 능력이 정점을 이루게 된다.


오로지 자신을 늑대의 모습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보름달이 뜬 밤이 아닌, 바로 그 운명의 상대일 뿐인 것이다.


운명의 그녀!


셀린느 하멜인 것이다.


순간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내 주위를 따뜻한 빛이 감싸고 돌고 있었다.


빛의 서클인 것이다.


보름달 밤의 강제적인 변화를 이겨낼 수 있는 힘!


늑대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힘!


그녀의 기운을 닮은 힘!


숨의 이능력이었다.


난 바로 서클을 몸 안에 갈무리하여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보름달이 뜨지 않았는데도 늑대의 모습을 한 것도 처음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도 처음이다.


사실 내 능력이 아닌 나의 유일한 구원자! 각인자인 그녀에게 받은 숨의 이능력!


그 중의 하나인 빛의 서클로, 다시 인간이 된 것이지만.


여신의 축복은 여러 세대를 통해 간혹 내려지는데 그것이 희박한 경우라


제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여신의 축복은 물, 불, 대지, 숨으로 일컬어지며 그 중 숨의 기운을 가진 이능력은


물과 불, 대지의 기운을 아우르는 능력이기에 가장 큰 축복으로 여겨진다.


현 엠피스 제국에서도 트란에실 시투아 머레스 황제만이 물의 이능력만을 받았을 뿐이다.


심지어 그의 직계 적황자인 데스칸 시투아 머레스 조차도 물의 이능력을 이어받진 못했다.


난 그녀에게 다가가 흘러내린 은발을 정리하며 품에 안았다.


다시는 내 품 안에서 떠나지 않을 그녀를!






* * *





내가 의식을 잃고, 아니 정확히는 원작 소설의 여주인 셀린느 하멜이 의식을 잃고 내가 빙의되며 깨어난것 같은데. . .


그럼 대체 셀린느 하멜의 영혼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 .


서울 구석 진 동네 불량 가로등 밑에서 차에 치인 나! 김희정은 죽은건지. . .


셀린느 하멜의 영혼과 내 영혼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나는 이제 왜 저 소공작이 나를 저런 열망어린 눈빛과 다정한 말투로 걱정하는지 한번에 알 수 있었다.


"혹시 영애께서는 쓰러지시기 전 상황이 기억이 나십니까?"


소공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 . 네"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빛 같은 것이 손안에서 퍼져서 길리아드 바렌 소공작님께로 향했던 것 까지. . 기억납니다."


늑대로 변했다가 내 빛의 서클로 다시 인간이 된 건 아는 척 할 수 없으니 최대한 내가 소설 줄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답을 했다.


"길리아드. . 길리아드라고 불러주십시오."


소공작이 입술 끝을 올려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하~~~ 타 죽을 것 같은 저 붉은 눈동자와 눈빛!!


너무나 나를 열렬히 원하는 걸 티내고 있잖아~~!!!!


그 때 어색한 분위기를 살려주는 노크소리!


똑! 똑! 똑!


"아가씨~! 쥬시입니다. 약을 가지고 왔어요."


"들어와." 나는 약만 기다린 사람처럼 바로 대답해주었다.


너무 크게 소리쳤나???


옆에서 살포시 웃음짓는 길리아드 소공작의 얼굴이 보이니 괜시리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쥬시는 역시 영국 여왕이 쓰던 것 같은 약사발을 사뿐히 내밀었다.


사약인가? 콜라인가? 너무 까매서 마시고 싶은 마음이 완벽히 사라지는데. . . .


더구나 이 스멜은 첫 키스도 못해 본 김희정 인생에 전혀 도움 되지 않을 냄새!


저런 걸 마시면 향후 백년 간 그 누구와도 입맞춤 할 수 없으리라는 굳센 믿음이 생겼다.


"아가씨, 한스 의원님께서 특별히 아가씨 기력을 위해서 귀한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니 남기지 말고 쭉 다 마셔야 합니다! 이건 다 드시고 입안에 넣으시고요."


사약같은 사약아닌 사약을 건네주며 알량한 사탕하나 주는 건가?


내 눈빛에 나타난 극도의 실망감을 느낀 길리아드 소공작은 아까와 같은 그림같은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금빛 바탕에 가장자리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린 것 같은 장식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었다.


"다 드시고 이걸 드셔 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건네 준 보기 좋은, 아니 황홀한 비쥬얼의 상자.


"이것이 무엇인가요?"


"열어보십시오." 정말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정하다.


수줍게 건네받아, 열기도 아까운 상자를 열어보니, 세상에나~~~


초코렛이 먹기도 아까운 모양으로, 예술품의 경지로 자리하고 있었다.


아홉 개. 아홉 개였다. 이 사약같은 약을 마시면서 나를 버티게 해줄 구원같은 아홉 개의 예술품이었다.


"감사드립니다. 길리아드. . . "


소공작이라는 칭호를 빼고 이름으로 부르니 그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절대 초코렛 때문에 부른 건 아니다.


난 그렇게 쉬운 여자가 아니다.


자고로 내가 살던 서울에서는 더 희귀한 디저트들이 즐비했고


특히 내 최애는 뚱뚱한 필링이 가득찬 마카롱이다.


쥬시는 옆에 있다가 눈을 크게 뜨고, 나와 길리아드를 번갈아 바라보며, 손을 입에 갖다 대고는 킥킥 웃고 있었다.


저 푼수~!


자동 설정한 이야기 상자마냥 줄줄줄 얘기할 때부터 알아봤다.


소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쥬시의 캐릭터는 익히 알 것 같았다.


약 한 모금 초코렛 한 개. . 무한 계단처럼 반복하다가 기어이 다 마셔 버리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찍고 난 길리아드를 바라보았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겠나? 셀린느 영애와 나누고 픈 말이 있는데."


쥬시가 내 눈치를 봤다.


내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쥬시가 재빨리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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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죄와 벌 (완결) 23.03.31 30 0 10쪽
16 잠들지 못하는 밤 23.03.30 3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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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걱정 23.03.25 33 1 12쪽
10 분노 23.03.24 38 1 13쪽
9 사라진 그녀 +1 23.03.23 45 1 13쪽
8 연습 23.03.22 66 1 12쪽
7 비밀 23.03.21 40 1 12쪽
6 바렌 공작가 +1 23.03.20 51 1 13쪽
5 초대장 23.03.19 46 1 12쪽
4 숨의 이능력자 +1 23.03.18 53 1 12쪽
3 여신의 축복 +1 23.03.17 56 1 12쪽
» 운명의 그대 +1 23.03.16 76 1 13쪽
1 첫 만남 +2 23.03.15 1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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