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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통천일검(通天一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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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2.01.17 23:1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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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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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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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소림방장 혜공

DUMMY

“허허. 중악의 고승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오? 설마 숭산을 품에 안고도 면산의 절경을 탐하시는가?”


천수신의 백리평은 면산의 협곡을 찾은 늙은 중을 보더니 농을 던졌다.


“아미타불. 빈도가 수십 년을 수행하였으나 삿된 욕심을 버리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그 욕심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면 부처께서도 이해하시겠지요.”


“소림이 예전 같지 않다더니 이제 욕심 많은 땡추까지 나오는구나. 허허허허허.”


두 사람은 제법 친한 듯 농담을 주고 받았다. 천수신의의 웃음소리가 골바람을 타고 절벽을 넘어가는 듯 했고 승려 또한 담담한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고쳐 청을 했다.


“백시주. 청컨대 저와 함께 소림으로 가주실수 있겠습니까?”


승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고 위엄이 있어 백리평은 이상함을 느꼈다.


“귀사에 무슨 일이라도 있소? 이렇게 혜문대사께서 친히 걸음하시다니.”


“천수신의를 청하는데 어찌 제자를 보낼 수 있겠습니까? 실은 방장사형께 병환이 있으신 듯 한데 통 말씀을 않으시니 신의께서 진단 해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방장께선 공력이 이를 때 없이 심후하고 소림의 의술이 천하제일인데 어찌 이 백모를 찾으셨소?”


천수신의는 뜻밖에도 정색하며 차갑게 답했다.


“방장사형의 거동과 안색을 보면 분명 큰 병환이 있으신데 통 말을 안으시니 사제된 입장에서 답답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이 늙은이가 간다 한들 장문방장께서 말을 안으시면 정확한 병을 알아내기 힘드오.”


백리평의 말에 혜문은 뭔가 말하기 힘든 사정이 있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신의께서 보시고 방장사형께 병환이 있는지 만 알려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신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혜문의 이야기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것이었다. 소림 또한 의술에서 높은 경지를 이루었는데 어찌 외부의 인사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방장의 병환 여부를 묻는단 말인가?


또한 방장처럼 중요한 사람의 병환은 비밀에 부쳐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곰곰이 생각한 신의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혹 방장대사가 중독되었는지 봐달라는 말이오?”


천수신의의 충격적인 이야기에 혜문은 침묵했다. 그것은 동의나 마찬가지였지만 감히 긍정의 표시를 할 수는 없었다. 소림이 어떤 곳인가? 중원의 선종이 시작된 곳이었고 무림의 태산북두로 강호의 협의지사라면 우러러보며 경외심을 감추지 않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소림의 방장은 생불로 칭송되고 산사 외부의 일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가 중독이라면 내부에 흉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천수신의는 다시 담담하게 스스로 말을 이었다.


“달마의 역근경과 세수경을 일견 할 수 있다면 도와드리겠소이다.”


달마가 직접 저술했다고 알려진 역근경과 세수경은 소림이 외부인 뿐만 아니라 내부의 승려들에게조차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 소림의 비서이자 보물이였다. 그것을 외부인인 천수신의가 보여 달라는 것은 상당히 무리하고 건방진 요구라 혜문이 거부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혜문은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방장의 안위와 독을 쓴 흉수를 찾는 것이 그만큼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장경각주 원지가 제자이니 그렇게 일러두겠습니다. 꼭 한 번만 보시는 겁니다.”


혜문은 말을 마치고 앞장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거의 날아간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오셨습니까?”


“산사의 문을 지키던 젊은 승려는 혜문을 보고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사숙조와 함께 온 백발의 늙은이를 경계하고 있었다.


“천수신의 백의원이시다. 내 손님이니 무례를 범하지 말라.”


“좁은 식견으로 귀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아미타불.”


그는 손바닥을 세우고 신의에게 예를 표했다. 백리평은 별다른 말 없이 문지기를 살피다 혜문을 따라 산문을 넘었다.


“근자에 사찰행사라도 있었습니까?”


혜문은 백리평의 생각을 읽었는지 소상하게 밝혔다.


“방장사형께선 최근 석 달 동안 면벽동에서 좌선에 드셔서 외부인을 만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방장께서 좋지 않다는 것은 어찌 아신거요?”


“방장을 직접 대면 하는 것은 수발 드는 사미승 넷 뿐이나 사실 면벽동은 사대금강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의술은 모르나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방장을 오랫동안 수행하였으니 방장의 환우를 금새 알아차리는 것이 당연하지요. 자연히 방장사형과 가장 가까운 저에게 귀뜸을 해주었고 저는 방장의 제자이자 약왕당주인 원적과 함께 찾아가 뵈었소. 역시 사형의 안색은 참담했고 약왕당주와 빈승은 중병이 아니면 중독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챙기는 제자들은 추궁해 보셨소?”


“방장사형께선 자신은 건강하시다며 환우나 중독을 극구 부인하셨으니 우리는 누구도 추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을 마친 혜문의 안색이 어두웠다. 그는 중독이라면 소림제자 가운데 흉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 대사께선 제가 방장을 접견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실 수 있소?”


“면벽 중엔 누구도 만나지 않으시나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백시주께선 숭산에 오신 것이 처음이지요?”


숭산의 웅건한 기개와 딱 어울리는 기품과 활기를 가진 산사. 마치 부처의 위엄과 광명을 보이는 듯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사람의 숨을 조여왔다. 특히 무림인이라면 종파를 막론하고 경외하는 곳이 바로 소림사였다. 하지만 백리평은 혜문과 거래를 할 때와는 다르게 농담을 하며 평소의 여유를 보였다.


“평생 많은 죄를 지어 감히 부처님 손바닥 위로 오를 수는 없었소. 허허.”


“아미타불. 지나친 겸손이십니다. 천수신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베푼 자비를 부처께서 모르실 리가 없지요.”


“지난 젊은 시절 소림에 큰 죄를 짖고 도망쳐 나온 사람도 구한 적이 있는데 여기 온 김에 부처님 앞에 다 털어놓고 가고 싶구려.”


백리평은 혜문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 짓궂은 농담을 이어 갔다. 하지만 혜문의 수양은 보통이 아니었다.


“태어나 업을 짖지 않는 사람이 없고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사람도 없지요. 하지만 모든 것을 참회하면 극락이 있으니. 아미타불.”


혜문은 소림에 죄를 지은 사람과 그를 고쳐준 백리평을 한데 묶어 애매모호하게 말을 받았다. 이에 백리평은 다시 혜문을 도발했다.


“허허. 그렇다면 대사께선 어떤 업을 지어 매일 조석으로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시는 것이오?”


“아미타불. 빈도는 부덕함이 많습니다.”


두 노인이 경내에 들어서 걷고 있자 지나치는 승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혜문에게 예를 표했다. 그 정도로 혜문은 소림 내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고승이었다.


“바로 약왕당으로 가시지요.”


혜문은 접객에 대한 겉치레는 생략하고 거침없이 일을 진행하고자 했고 천수신의는 깜짝 놀랐다. 약왕당은 소림 의술을 책임지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외부 의원인 백리평을 안으로 들인다는 것은 소림사의 자존심이나 비밀유지를 완전히 내려 놓은 것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미 방장의 중독을 의심하고 천수신의에게 알리는 시점에서 더 내려놓을 자존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합당했다.


“사숙. 오셨습니까?”


약왕당주 원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약왕당 앞에 나와 있었다.


“천수신의 백의원이시네.”


“천수신의를 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숭산에서 뵙는 것은 처음이지요. 허허허. 살아생전에 의원으로서 소림 약왕당을 구경할 수 있어 영광이오.”


천수신의와 원적은 구면으로 둘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어 보였으나 긴 얘기는 서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왕당주 원적의 표정은 편치 않아 보였다. 그것은 자신이 맡은 약왕당을 외부인에 보여주어야만 하는 처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백의원께서 약왕당에 혹 중독 될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주십시오.”


원적의 부탁에 백리평은 약왕당으로 들어가 약초와 집기들을 꼼꼼히 살폈지만 오히려 매우 잘 정돈되고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어 놀랐다. 중독이 될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둘러본 백리평은 약왕당을 직접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도 뭣해 그저 말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러자 혜문이 원적에게 명을 내렸다.


“준비되었으면 앞장 서거라.”


“예.”


혜문의 하명에 원적은 약사발을 쟁반에 받쳐들고 장문방장에게 향했다. 그는 장문인의 직계제자였고 혜문은 장문인의 바로 손아래 사제라 소림에선 방장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으니 방장을 접견하여 탕약을 올릴 생각이었다.


“신의께선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구려. 방장사형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혜문의 말에 천수신의는 반신반의 했다. 고승들은 면벽에 들면 수개월에서 수년을 꼼짝 않는 것인데 이미 면벽에 들어간 방장을 어떻게 모시고 올지는 그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방장이 약왕당으로 행차할 것인가?’


백리평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더 이상한 것이 떠올랐다. 소림의 방장이 면벽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소림은 엄청나게 큰 사찰이고 불가에서나 무림에서나 매우 중요한 곳이다. 장문직을 가진 채 면벽수행에 들어간다면 이 큰 고찰이 장문 없이 잘 돌아갈 것이라 생각할 순 없었다.


백리평이 회의하는 사이에도 혜문과 원적은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방장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기를 띤 방장과 그를 위시한 혜문과 원적이 약왕당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약왕당을 시찰하기 시작했다. 방장 혜공은 매우 엄한 눈빛으로 약왕당의 곳곳을 살피며 모아놓은 약재와 조제 시설까지 빠짐 없이 훑었다.


그의 표정에선 매우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자 원적은 어찌 나를 기만하여 엉터리 탕약을 올렸는지 아뢰거라.”


방장의 불호령에 곁에 있던 모든 승려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왜 방장이 면벽수행을 파하고 약왕당을 살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원적은 이미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었는지 바로 나와 술술 얘기하기 시작했다.


“불충한 제자 원적은 스승님께서 환우를 숨기시는 것을 알았으나 미력하여 그 원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혹시나 중독되시거나 깊은 병을 얻으셨다면 마땅히 직계제자이자 약왕당주인 저의 부덕함이니 그것이 첫 번째 죄이옵니다. 또한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약왕당주로서 두 번째 죄, 스승을 속여 면벽수행을 방해하였으니 그것이 셋째요, 끝으로 방장을 이곳에 걸음하게 하기 위해 엉터리 탕약을 올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계율의 엄함을 제자는 이미 알고 있사오니 스승님께서는 제자에게 마땅한 벌을 주십시오. 하나 방장께서 직접 임명한 약왕당주로서 스승님은 반드시 진맥을 받으시어 병환을 치유하시기를 간곡하게 청하는 바입니다.”


그는 비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마지막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혜문과 원적은 면벽에 들어간 장문방장을 끌어내기 위해 엉터리 탕약을 올리는 격장지계(激將之計)를 쓴 것이었다.


전임 약왕당주였던 방장대사는 약왕당에 큰 애정이 있었다. 그런데 방장된 입장으로 병을 얻고 부상을 당한 소림의 제자들이 그 따위 엉터리 약을 먹게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약왕당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면벽을 깨고 나왔으나 약왕당은 문제가 없었고 제자와 사제가 짜고 자신을 꾀어 낸 것이었다.


“계율원은 있는가?”


“방장대사께선 아뢰십시오.”


계율원의 승려가 나와 하명을 기다렸다.


원적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모두 자복하였으니 계율원은 소림의 계율대로 그를 벌하라. 약왕당주라는 그의 위치를 고려해선 안 될 것이다. 다만 약왕당주는 당주로서 방장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한 일이니 그 업을 충실히 다 했으므로 마땅히 그 직은 유지해야 할 것이다.


“방장의 명을 받자옵니다.”

“방장의 명을 받자옵니다.”


방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계율원 승려에게 명했고 계율원의 승려와 원적은 함께 답했다. 그리고 방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백시주께선 이미 저의 진단이 끝났을 테니 나오시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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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목숨 구한 대가 22.01.18 277 5 11쪽
10 황룡사구층목탑 22.01.18 325 4 12쪽
9 사천으로 가자. 22.01.18 341 5 12쪽
8 우화등선(羽化登仙) 22.01.18 420 7 15쪽
7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검 22.01.18 433 9 10쪽
6 명검 22.01.18 489 7 11쪽
5 하산 22.01.17 577 7 12쪽
4 사람으로 죽고싶다. 22.01.17 595 5 12쪽
3 탈출 22.01.17 648 6 11쪽
2 팬데믹 22.01.17 855 6 13쪽
1 서장. 검선결(劍仙決) 22.01.17 1,212 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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