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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통천일검(通天一劍)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2.01.17 23:15
최근연재일 :
2022.03.13 21:4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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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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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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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황룡사구층목탑

DUMMY

개 비슷한 짐승 떼가 어느새 그를 둘러 싸고 있었고 입가로 흘러내리는 침이 달빛에 반사되어 번들거리며 흘러내렸다.


“개새끼들이!”


김병장이 일갈하자 한 놈이 번개처럼 달려들며 그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놈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 미지의 먹잇감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퍽”


개머리판에 개 대가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뭐 이리나 들개나 비스무리하니 그렇게 표현해도 별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봉이 한 순간에 죽어 나자빠지는 것을 보고도 무리는 겁을 먹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만큼 굶주린 탓이리라.


이미 깊은 밤 산을 넘을 때부터 그는 총기사용을 염두에 두고 원칙을 정한 터였다. 최대한 자제하되 목숨이 걸린 시점에선 망설임 없이 쏘기로.


그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이리 무리를 보고는 숨을 죽이며 조정간을 자동에 맞췄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타탕탕”


잠깐이었지만 엄청난 화력이 쏟아졌다. 천둥이 잇달아 치는 듯한 총성은 녀석들이 결코 감당 할 수 없는 공포였다. 뒤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이리떼가 눈에 들어왔다. 또한 숨어 있던 나무 위의 새와 설치류 등 크고 작은 금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아났다.


“오늘은 단백질 섭취다.”


혼자 신이 난 그는 주변에서 불쏘시개와 장작이 될 만한 것들을 주워 모았다. 숲에 지천으로 널린 것들이라 순식간이었다.


다섯 구의 사체 중 하나를 집어 든 김병장은 허리의 탄띠에서 대검을 뽑아 목을 땄다.


“왈컥.”


이미 죽어 심장이 뛰진 않았지만 상당량의 피가 쏟아졌다.


‘작전투입 시 지급받은 대검을 이리 모가지 따는데 처음 쓸 줄이야. 좀비 목보단 이리 목이 나은가···’


이리떼에게 총을 쏘는 것과 칼로 목을 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어차피 모두 쳐죽이라고 만든 무기였으나 사용할 때 감정소모의 차이가 컸다. 대검이 이리의 가죽을 지나고 뼈를 스치는 느낌에 소름이 돋는 듯 했다.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로 손쉽게 불을 피웠고 이리를 굽자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며 기가 막힌 냄새가 진동했다.


주변은 사방이 들판이라 범이나 곰 같은 큰 짐승들은 없었으나 혹시 모를 일이었다. 김병장은 급한 마음에 충분히 기다리지 못하고 뒷다리를 뜯어 한 입 베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에 풍미 넘치는 육즙이 좔좔 흐르며 입안 가득 채우자 그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천상의 요리라 느꼈다.


‘음. 육즙의 풍미가 기가 막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육즙보단 피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게 3일 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리 사체 주변으로 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바위에 기대 앉아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이미 세상은 푸르스름하게 물들고 있었고 곧 해가 얼굴을 내밀 것이었다.


김병장은 밝아오는 동쪽을 바라보다 자신의 행운에 깜짝 놀랐다. 그의 시야에는 하늘을 뚫을 듯이 높이 올라간 목조건물이 서 있었다. 그가 알기로 저렇게 높은 목조건축은 단 하나, 황룡사구층목탑 밖에 없었다.


“미친, 와아, 진짜, 엄청나게 높네!”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하던 김병장은 목탑의 웅장한 위용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한동안 넋을 놓아 버렸다. 그때 멀리서 들리는 인기척에 정신이 돌아왔다.


좀비가 된 후 그의 청각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지경이라 아주 멀리서도 한 사람이 언덕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10분쯤 지나 한 승려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에 분명 용 울음이 들렸는데.”


고어(古語)를 알아 들을 리 없었던 김병장은 몸을 숨긴 채 승려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혹시라도 발각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두리 번 거리던 승려는 결국 네 구의 이리 사체를 발견했다. 자신이 먹은 것만 묻고 다른 이리 사체를 묻지 않은 김병장은 아차 싶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끔찍한··· 설마! 정말 황룡(皇龍)이 승천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승려는 부러진 나뭇가지며 피흘리고 끔찍하게 죽은 이리 사체를 보다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잠시 후 승려는 한 마디를 뱉고 경쾌한 몸놀림으로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불길한 징조다. 일을 앞당겨야···.. 서둘러 자장(慈藏)의 법보를 찾아야 한다.”


승려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고 내려가자 김병장은 안도하며 다시 황룡사구층탑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졌다.









해가지고 언덕을 내려온 김병장은 탑을 가까이 보고 싶은 욕심에 조심스레 황룡사의 담을 넘었다. 가까이서 보니 탑은 더욱 웅장하고 우아했으며 탑의 상륜부에 걸려있는 반달 덕분에 형용하기 어려운 고상한 정취가 느껴졌다.


하지만 한 승려가 그의 감상을 한 순간에 깨버렸다. 갑자기 승려 하나가 3층 추녀마루에서 뛰어 내린 것이다.


‘새벽에 봤던 승려다.’


좀비가 된 후 부쩍 시력도 좋아진 김병장은 밤에도 또렷하게 승려의 인상착의를 볼 수 있었다. 승려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가볍게 내려선 후 귀신같이 움직여 황룡사의 구석으로 이동했다.


김병장은 깜짝 놀랐다. 승려가 자신이 숨어 있는 그림자 속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설마, 들켰나?’


김병장은 처음에 승려가 황룡사의 담을 넘은 자신을 보고 쫓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겨우 절에 몰래 들어온 불청객 때문에 3층에서 뛰어내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승려가 더 가까이 오자 방향이 자신이 숨은 곳과 조금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김병장은 또 다른 추리를 했다.


‘설마 화장실이 급했나···’


여전히 승려의 의도는 알 수 없었으나 김병장은 몸을 움츠리고 눈으로는 승려를 쫓았다. 승려는 너무 급한 마음에 열 걸음 앞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김병장을 보지 못했고 바로 몸을 날려 담장을 뛰어 넘었다.


단 번에 담장을 넘어 사라진 승려의 놀라운 도약에 김병장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그럴 능력이 없었고 들어올 때 넘었던 가장 낮은 담장을 간신히 넘어 그를 찾았으나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도둑?’


김병장이 한참 승려에 대해 추리하는 사이 다시 멀리서 승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다시 뒤쪽 어딘가를 힐끗힐끗 돌아다보는 것을 반복했다.


김병장은 이미 절에서 상당히 벗어나 한 나무 뒤에 숨어 있었는데 귀가 밝아 승려가 오는 것을 먼저 알아채고는 그의 수상한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 보는 것은 목격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분명하다. 똥을 싸고 오는 것이라면 황룡사 안에도 해우소가 있을 터. 분명 무언가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저런 추리 끝에 그가 힐끗힐끗 돌아본 방향으로 가 보기로 결심하고 승려가 다시 절 담장을 넘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김병장은 삼십 분을 더 기다려 승려가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승려가 계속해서 돌아보던 곳이었다.


그 방향엔 큰 버드나무가 있었고 김병장은 그곳에 멈춰 섰다. 아무리 둘러 봐도 그 방향엔 수상한 것이 그 나무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 그는 버드나무 아래에서 색이 다른 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파헤치고 다시 덮은 것이 틀림 없었다.


‘무언가 숨겼다.’


허리춤에서 대검을 뽑아 한 자 정도 파헤치니 나무 상자가 하나 나왔다.


‘도둑이었구나. 절의 보물을 훔쳐 빼돌린 것이다.’


그의 추리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곤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불경일 서적 몇 권과 서적을 싼 가사, 그리고 청동거울 하나가 있었다.


그는 좀비 팬데믹으로 도굴꾼에 대한 감정이 매우 나빴다. 그런데 절의 보물을 훔친 승려를 보자 도굴꾼에 대한 감정이 그에게 이입되며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그는 이 물건들이 분명 갚진 보물이라는 생각을 했고 승려에게 절대 넘겨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자에서 보물을 꺼내 품에 갈무리한 김병장은 텅 빈 나무상자에 똥을 싸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크크크크크. 황당할거다. 도둑놈아.’


그는 동쪽으로 가는 중에 상자를 열어본 승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 동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후 첫 일탈의 즐거움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하하하하하”


황룡사에서 사흘을 더 걸어 어느 바닷가에 도착한 그는 진동하는 바다내음을 맡으며 크게 기뻐했다. 조금 더 가자 백사장이 나왔고 그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박장대소 했다.


“하하하하하하하. 바다야. 귀신도 무서워 피하는 이 경주 김씨 좀비가 왔다.


그는 자신이 경주나 울산 어딘가에 있다고 추측하면서 숨기 좋은 곳을 찾아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어느 때 보다 힘들게 동해까지 와서 일출을 보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먼 바다가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는 소원을 빌었다. 황룡탑을 보며 빌었던 소원이었지만 그는 다시 한번 쓰촨에 무덤을 불태우는 모습을 떠올렸다.


다음날 밤 다시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향한 그는 다시 나흘을 더 걸어 큰 항구에 도착했다. 이미 여러 번 백사장과 나루를 지나쳤고 강을 건너왔다. 특히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이 언젠가부터 해가 지는 방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남쪽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그는 황룡사를 봤을 때 자신이 이리떼를 죽인 곳이 신라의 옛 궁궐터였으며 황룡사 인근이 폐가가 즐비한 쇠락한 마을이 된 것을 보고는 몽고 침입 전의 고려시대임을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지금 다다른 남쪽 바다에서 큰 교역선들을 마주하니 그가 오는 내내 목표로 했던 곳에 도착 했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다.


‘합포!’


그의 머릿속엔 국사 교과서에서 본 “고려의 교역” 라는 지도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고 국제무역은 주로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통했지만 남쪽 합포도 국제 무역항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국사시간에 배웠던 대로 일본과 송, 멀리 아라비아의 교역선이 합포를 드나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만 잘 골라 탄다면 드디어 중국에 갈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기대감과 두려움이 섞인 복잡한 감정에 대한 반응이었다.


‘배에 타기 전에 알아봐야 한다.’


그는 즉시 옷을 벗고 얕은 바다에 뛰어들어갔다. 혹시나 좀비의 신체가 물에 취약한지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수영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물에서 나온 후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떤 배가 중국행일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깊은 밤이라 선원도 보이지 않았고 어느 나라의 배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단순히 한자가 수놓아진 깃발만으로는 그것은 중국인지, 일본인지, 혹은 고려의 배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교역선이 매일 들어오는 것은 아닐 테고 이 배들이 떠나버리면 언제 다시 교역선이 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가장 큰 배를 찾아 그 앞에 섰다. 송나라와 교역규모가 가장 클 것이니 배도 가장 큰 배를 가져왔을 거라는 간단한 추리였다. 먼 바다를 항해 하는 아라비아상인도 큰 배가 필요 할 것이고 일본의 배도 한자를 쓰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배에 한자 깃발을 쓴다면 그 배가 중국의 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배엔 형형색색의 깃발이 꽂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보라색 비단에 금실로 장(張)자가 수놓아진 깃발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베풀 장자는 21세기의 중국에서도 가장 흔한 성씨 중 하나였기에 중국 배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장씨 상단. 뭐 그런 느낌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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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림방장 혜공 22.01.18 247 4 13쪽
11 목숨 구한 대가 22.01.18 276 5 11쪽
» 황룡사구층목탑 22.01.18 325 4 12쪽
9 사천으로 가자. 22.01.18 340 5 12쪽
8 우화등선(羽化登仙) 22.01.18 420 7 15쪽
7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검 22.01.18 433 9 10쪽
6 명검 22.01.18 489 7 11쪽
5 하산 22.01.17 577 7 12쪽
4 사람으로 죽고싶다. 22.01.17 595 5 12쪽
3 탈출 22.01.17 647 6 11쪽
2 팬데믹 22.01.17 855 6 13쪽
1 서장. 검선결(劍仙決) 22.01.17 1,212 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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