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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통천일검(通天一劍)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2.01.17 23:15
최근연재일 :
2022.03.13 21:41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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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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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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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탈출

DUMMY

연구실 안은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유리문을 가린 커튼 너머로 괴물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모니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연구진들은 그대로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어갈 듯 보였다.


“실패야. 피부조직의 괴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잖아. 뇌하수체와 송과선도 정상수준 이상으로 커졌어.”


한 여자연구원의 실망 섞인 말에 남자연구원이 반박했다.


“천만에. 절반의, 아니 그 이상의 성공이라고 해야지. 피부조직 문제보다 중요한 급격한 뇌 위축과 변형을 막아냈어. 이성을 상실해 짐승처럼 물어뜯는 것만 막을 수 있으면 이 팬데믹으로 인류가 멸종하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아. 저 녀석이 일어나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지. 지금 녀석의 뇌가 정상이라고 해도 감염되고 증상이 발현되지 않은 초기에 치료제를 투여했으니 이미 뇌 위축과 변형이 진행된 괴물들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야.”


김병장을 연구실로 끌어들인 백발의 연구원은 여전히 회의적인 듯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다른 연구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구조헬기는 아직이야?”


“부대 지휘관과는 연락이 끊겼고, 보건복지부 라인으로 물어봤을 땐 오늘 내로 보낸다곤 했습니다.”


“다시 연락해봐. 이번 치료제와 연구성과도 확실하게 어필해야 해. 또 실패라고 하지 말고. 적어도 감염 초기엔 뇌를 보호할 수 있다는 건 확인 했잖아.”


그는 고립되거나 정부에서 그들을 버릴 것이 두려운 듯 어두운 목소리였다..


“이제 저 좀비도 깨워보죠.”


김병장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아니, 이 기회에 장비도 더 테스트 해보는 게 좋겠어. 임상실험을 자주 할 순 없는 상황이잖아. 좀비를 잡아서 넣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해봐서 알잖아?”


“아무리 좀비가 됐어도 얘기는 해주고 해야지.”


“지금 그런 걸 따질 때야? 그리고 우리가 테스트 한다고 하면 싫다고 하겠어? 몸이 저 꼴이 됐는데.”


그들이 갑론을박 하는 사이에도 김병장은 잠에서 깨 이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을 속일 수 없었다. 그들의 말에서 몸이 이미 좀비처럼 망가진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서글프게 흐느끼는 한 좀비의 뇌파를 표시하는 그래프가 출렁거렸고 연구진들은 그제서야 그가 깬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당신이 우리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는 건 적어도 당신의 뇌와 청각은 정상이라는 증거에요.”


여자연구원의 말도 김병장에겐 큰 위로가 되진 못했다. 그저 자신이 조금 다른 좀비가 되었다는 얘기로 들릴 뿐이었다.


“테스트 하세요. 맘대로.”


그는 겨우 울음을 그치고 입을 열었으나 차마 눈은 뜨지 못했다. 직접 좀비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더 이상의 위로는 생략하고 바로 장비를 작동시켰다. 그가 잠든 사이에 이미 연구원들은 갖가지 장치를 그의 몸에 부착해놓은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통증이 느껴지면 소리 치세요.”


김병장이 들어가 있는 터널 안에서 다시 오색영롱한 밝은 빛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으나 충분히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밝은 빛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소독약 같은 향의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의 수면가스와는 달리 조금은 거북한 향기였다. 기계에서 나는 소음은 점점 커졌고 김병장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더욱 두렵게 했다. 연구원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 통증이 수반될 수 있는 테스트일 것인데 조금의 통증도 없었다. 김병장은 이미 좀비가 되었기에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현재 느낄 수 있는 고통은 오직 정신적인 절망감과 두려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겪어본 어떤 육체적, 정신적 고통보다 극심했다.


그는 대구 위쪽이 전부 괴물들에게 떨어졌다는 뉴스에도 자신의 가족들만은 무사할 것이란 비합리적인 희망을 붙잡고 분명한 절망을 외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가득 채운 절망감은 그가 처한 상황을 시리도록 냉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더 이상 가족들이 있을 거라는 인지부조화에 빠져있을 수도 없었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 내렸다. 차라리 이지가 마비된 좀비가 되었다면 이런 슬픔과 좌절감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정신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터널 안의 불이 꺼지고 침상이 터널 밖으로 밀려 나왔다.


조금 전 울음을 그친 김병장은 마침내 눈을 뜨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유리벽 넘어 침울한 표정의 연구원이 고개를 가로저었고 김병장은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연구원들의 부산스런 움직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서류를 가방에 넣고 백업한 하드디스크와 메모리도 박스에 챙겨 담았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난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했다. 누군가는 가족사진을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기도를 했으며 또 다른 이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고 있었다.


제각각인 그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도 하나 있었는데 그들을 이 지옥에서 구원해줄 구조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과 눈빛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번엔 마이크를 껐는지 김병장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을 두고 갈 순 없어. 우리의 첫 번째 성과라고.”


“저 역겨운 얼굴을 좀 봐. 그의 뇌가 정상인지, 아니면 잠깐 증상이 지연 된 것인지 분명하지도 않아. 만약 헬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발작을 하면 모두가 죽는 거야. 이성적으로 생각해.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정말 역겨운 건 너야. 저 군인은 감정을 느끼고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야. 조금 전에도 우리와 대화하고 교감했잖아. 그가 임상 실험에 동의했다고 무슨 실험용 쥐라도 되는 줄 알아?”


“그게 아니잖아. 나도 저 놈이 불쌍해. 병장에 분대장인데 제대도 얼마 안 남았겠지. 하지만 어차피 다른 군인들도 다 좀비로 변했어. 그리고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대한민국이 걸려있어. 아니, 어쩌면 전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들이 김병장의 동행을 두고 열띤 논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한 사람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젊은 연구원이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땠다.


“구조헬기가 옥상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내려 올 순 없다고 우리 스스로 올라오랍니다.”


“뭐야? 그게 말이 돼?”


“개새끼들. 좀비가 깔려서 군인들도 오가기 힘든 곳을 우리더러 어떻게 올라오라는 거야.”


“이거 그냥 죽으라는 거 아냐?”


“이제 조금 부끄럽지 않아? 조금 전까지 저 군인을 두고 우리만 떠나자고 한 사람이 같은 신세가 되어 보니 어때?”


“너무 비꼬지 마.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네 말대로 저 군인을 데려 가야 할 것 같군.”


그는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까지 김병장을 무조건 두고 떠나야 한다던 사람이 갑자기 맘을 바꾸자 연구원들은 모두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진 않았다. 버리고 가려던 사람을 이용해 먹자는 것이 맘에 걸렸으나 누구도 그것을 반대할 수도 드러낼 수도 없었다.


김병장은 부스 안에서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들의 행동으로 곧 떠날 것을 알았다. 그는 일어나 잠든 사이 놓은 수액 주사바늘과 다른 장치들을 떼어냈다. 그리고 풀어 놓았던 시계를 차고 총을 챙겨 메고 있었다.


거무죽죽하게 말라버린 자신의 손을 보며 이미 온몸이 그리 변했을 거란 걸 알았지만 얼굴을 만져볼 용기는 없었다. 부스 안의 그를 바라보는 연구원들의 눈빛조차도 그에겐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마침내 부스의 문이 열렸다. 연구원들은 꺼림칙했지만 김병장의 도움 없인 옥상까지 갈 수 없다고 판단 한 것이다.


“옥상에서 헬기가 대기하고 있어요. 우리와 함께 갑시다.”


처음부터 그를 데려 가려던 연구원은 다른 연구원들이 아니꼬웠지만 김병장에게 티를 내진 않았다. 김병장 또한 그 말을 듣고는 자신의 역할을 알았는지 앞장섰다.


커튼을 살짝 걷어 밖에 있는 좀비수를 확인한 김병장은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먼저 나가 처리하고 엘리베이터를 잡겠습니다. 신호하면 바로 달려 와 타세요.”


그는 유리문을 가린 커튼을 살짝 걷었으나 복도가 길어 끝까지 보이진 않았다.


“총 몇 명이죠?”


“열 여섯이요.”


“엘리베이터에 한번에 다 탈수 없으니 두 번에 나눠가야 합니다. 나갈 순서를 정해 놓으세요. 연구실 비밀번호는 뭡니까?”


“0138#”


우연의 일치일까? 의미심장한 비밀번호를 들은 김병장은 예감이 좋았다. 자신이 입대 전 살던 자취방 비밀번호와 같았기 때문이다.


김병장은 연구실을 나오니 3층 복도엔 좀비가 셋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좀비들이 자신을 보았는데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좀비들은 오직 인간에게만 반응했고 그것은 좀비들이 김병장을 좀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유롭게 걸어가서 개머리판으로 좀비의 후두부를 힘껏 가격했고 대가리가 깨진 좀비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이 무가치한 존재는 인간에겐 무자비했으나 같은 좀비의 공격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 후 복도 중앙에 있는 15인승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고 7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 올 때까지도 다른 층의 좀비들은 3층 복도로 접근하지 않았다.


김병장은 연구실 유리문 앞으로 뛰어가 손가락 여덟 개를 폈다. 총인원이 엘리베이터 정원에서 겨우 두 명 초과 될 뿐이었으나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연구원 여덟 명은 문열 열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좀비들이 계단으로 뛰어 올라오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좀비와 연구원들의 달리기 시합. 다행히 좀비라고 인간보다 특별히 빠른 것은 아니었다. 중대장의 전달사항에 의하면 좀비들은 인간일 때의 운동능력을 그대로 가진다고 했으니 빠른 좀비도 느린 좀비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론 인간과 비슷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연구원들은 달리기에서 평균 이하의 인간들이었다. 반대로 지금 병원 내에 있는 좀비들의 상당수가 젊은 남자 군인이었다. 평균보다 빠른 것이다.


연구실과 계단까지의 거리는 10미터, 연구실에서 엘리베이터까진 20미터 정도였고 연구원들은 사력을 다해 달린 끝에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 있었고 김병장은 연구원들이 모두 탑승하길 기다려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누군가 얼른 닫힘 버튼을 눌렀으나 닫히는 문은 마치 슬로우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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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명검 22.01.18 489 7 11쪽
5 하산 22.01.17 577 7 12쪽
4 사람으로 죽고싶다. 22.01.17 595 5 12쪽
» 탈출 22.01.17 648 6 11쪽
2 팬데믹 22.01.17 855 6 13쪽
1 서장. 검선결(劍仙決) 22.01.17 1,212 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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