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블루치퍼 님의 서재입니다.

통천일검(通天一劍)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2.01.17 23:15
최근연재일 :
2022.03.13 21:41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1,474
추천수 :
170
글자수 :
226,019

작성
22.01.18 00:23
조회
340
추천
5
글자
12쪽

사천으로 가자.

DUMMY

“꿈 참 더럽네.”


잠에서 깬 김병장은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누구나 가끔은 그런 현실감 넘치는 꿈을 꾸게 마련이었다.


김병장은 일어나려 손을 더듬었다. 이상했다. 울퉁불퉁하고 축축한 바닥. 배 위에서 무언가 만져진다. 소총이다. 경계근무를 서다 악몽을 꾼 것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꿈은 아니었다. 그는 눈을 뜰 수 없었다. 두려웠기에.


‘꿈이 아니라고?’


그의 회의적인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분명 연구실의 의료장비 위는 아니야.’


‘폭발은 어떻게 된 것일까?’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폭발에 튕겨져 나온 것일까?’


끝으로 더 이상 참기 힘든 의문에 도달했다.


‘나는 여전히 좀비의 모습인가?’


그는 머릿속 궁금증이 날 뛰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속 두려움이 침잠하자 눈을 떴다.


달과 별이 유난히 빛났다. 살면서 본 밤하늘 중 가장 찬란한 별빛들이 망막에 와 박히는 듯 했다.


천천히 팔을 들어 달빛에 비추어 보니 거무죽죽 거칠고 메마른 손등이 보인다. 그리고 전투복 소매와 붕대를 감은 손,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씨발.’


그는 오만가지 뜻을 함축한 욕지거리를 내 뱉으며 벌떡 일어섰다.


“어디냐고!”


어느 시골의 밭 한가운데, 처음부터 방향이 없었던 그의 허망한 외침이 밤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휴지기인지 다행이 밭에는 작물이 없었고 그냥 흙 바닥이었으나 정신을 차리니 거름냄새가 진동을 했다.


자신을 확인한 그는 여전히 전투복 차림의 좀비였고 연구실 기계 위에 누울 때와 똑같이 소총과 손목시계가 있었다. 즉 연구실에서와 완전이 똑 같은 상태로 어딘가로 옮겨진 상태였다.


멀리 보이는 민가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마음이 급했고 집들이 가까워질수록 수상함을 강하게 느꼈다. 포장된 길이 없고 낯선 모양의 집과 담벼락이 그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초가집이다. 시골··· 아니, 요즘은 시골에도 초가집은 없다. 민속촌인가? 민속촌에 이렇게 큰 밭은 없다. 거기다 요즘은 시골길도 다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는데 여긴 온통 흙 바닥 밖에 없잖아. 그렇다면···’


그의 직관은 이미 답을 알았으나 이성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기에 그는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추론을 거듭했다. 담장 넘어 빨랫줄과 거기에 걸린 이상한 옷가지들에 눈이 멈추자 그는 결론을 내렸다.


‘새끼줄이라니. 정말 과거로 온 건가? 아님 꿈이 덜 깬 것인가? 조선시대? 고려? 신라? 그렇다면 장소는? 병원이 있던, 아니 미래에 병원이 생길 그 자리인가?’


자살을 시도하다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그는 이상하게도 과거로 온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십중팔구 틀림없어 보였다.


얼떨결에 얻은 새로운 삶. 그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저 계속해서 번져가는 궁금증에 이끌려 충실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초가집 담벼락에 몸을 붙이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 기척도 없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겨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에게 발각되면 여러모로 피곤해 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가장 가까운 산을 바라보며 달리고 또 달려 산기슭에 이르렀다. 하지만 달빛에 의지한 야간산행은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는 백 년 이상 거슬러 왔다면 산에는 맹수가 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산 아래서 여명을 기다렸다가 다시 산을 올랐다. 산에는 21세기처럼 나무가 많지 않았고 듬성듬성 작은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모든 건축자재와 연료가 나무에서 나오는 시대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최대한 길이 아닌 곳을 찾아 이동했다. 마침내 아주 아늑하고 은밀한 동굴에 이르러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유는 모르나 나는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왔다. 가옥의 형태를 보면 우리나라인 것 같은데. 여기서 지금 모습을 보인다면 반드시 관아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본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한 이유였다. 과거로 간 내가 과거의 나를 죽일 수 있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 그것은 물리학적 인과율의 위배였다. 그가 아는 과학적인 지식으론 성립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우주가 아주 우연히 시간성 폐곡선을 가지는 모양이라 하더라도 나는 웜홀을 통과하기엔 너무 큰 개체인데··· 거기다 군복에 소총까지···’


그는 한동안 심각한 고뇌를 하며 결국 답을 내뱉었다.


“아 씨발, 온 걸 어떡하라고!”


말도 안 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그 실낱 가능성이나 원인을 찾고 싶었지만 문과인 그로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독서광 일 뿐이었다.


김병장은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만이 살아온다 해도 설명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과거로 올 수 있었던 방법이니 원인 등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단순하게 머리 속을 정리하니 또 다른 한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만약 지금 이 공간이 내가 살고 있던 우주의 과거라면 모순이 생기지만 어쨌든 나는 다른 시간으로 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만약 나로 인해 바뀐 역사가 내 조상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나는 미래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에 존재하는 나 역시 사라지는 걸까? 이건 매우 흥미로운 자살방법일 수도. 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이 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이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쉽게 떠올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아이디어는 그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한달 전 좀비 팬데믹이 시작된 무덤을 찾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면 그 후 벌어진 끔찍한 상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여기 올 일이 없으니 한달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아니 내가 좀비가 되어 과거로 오는 사건 자체도 벌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모순이 생기는 것이지만 그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절망적인 순간에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무엇보다 매우 흥미로웠다. 바로 계획을 세우며 하나하나 생각을 정리했다.


‘몇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먼저 이 시공간이 내가 떠나온 미래와 같은 우주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정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둘째로 그 미이라 묘는 지금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더 확실하게 내가 부술 수 있거나 누군가 그 묘를 쓰는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나는 다른 사건에 관여해선 안 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정치, 경제와 밀접한 일에는. 잘못 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 생길 테니.’


생각을 정리한 그는 첫 번째 계획을 세웠다.


‘중국 쓰촨으로 간다. 조선이든 고려든 어떤 것에도 영향을 줘선 안 된다. 조용히 빠져나가자.’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


이 답을 알면 좀 더 쉽게 중국으로 갈 수 있을 터였다. 평소 독서가 취미인 그의 머리 속엔 책에서 읽은 온갖 지리와 과학 지식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매우 간단했다.


‘시간여행을 했다면, 아니 내가 시간여행을 했다고 확신한다면 공간 좌표는 고정되어 있어야 시간여행을 했다고 확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간이 다른 우주로 왔다면 시간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우주로 왔을 수도 있으니까.’


그는 자신이 그저 과거로 거슬러 왔다고 믿고 싶었기에 결국 자신이 있는 장소가 미래에 병원이 세워질 자리라고 믿기로 했다. 확실하지도 않은 예측으로 막 생긴 희망을 잃을 순 없었다.


‘그럼 어떻게 중국으로 가야 하나?’


밤에만 이동하더라도 들짐승이나 화적들의 습격도 있을 것이고 중국으로 가려면 배를 타거나 북쪽으로 이동해 만주를 거쳐가야 했다. 하지만 현재가 어떤 시기인줄도 모르고 정세도 모르는데 북쪽으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이 분명했다. 특히 전쟁이 치열한 국면이라면 북쪽을 가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는 산 어귀에 숨어 다시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근처의 민가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당에 널어놓은 옷을 두 벌 훔쳐와 펼쳐 놓았다. 하나는 기와집에서 훔친 것, 다른 것은 초가집에서 훔친 것이다.


훔쳐온 옷가지를 펼쳐놓고 보아도 이것이 조선의 옷인지 고려의 옷인지 알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의복이란 건 유행이 있는 것이고, 조선 초와 고려 말의 차이보다 조선 초와 말의 차이가 더 클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다 기와집의 형태도 21세기나 사극에서 보던 양식과는 조금 달랐다. 생각 보다 꽤 먼 과거로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단 기와집에서 훔친 것을 입었다. 모두 작아서 맞지 않았으나 부잣집의 옷은 그나마 품이 넉넉하여 나았다. 무엇보다 품이 큰 겉옷이 있어 등에 소총을 메고 겉옷을 입으니 그런대로 가려지고 괜찮았다. 양민의 옷은 봇짐처럼 말아 등에 메고 길을 나섰다.


빠른 걸음. 그는 밤을 이용해 쉬지 않고 동쪽으로 걸었다. 아침 해가 떠오른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동해가 보고 싶었다. 둘째로 동쪽은 방향잡기가 수월했다. 아침 해가 뜨는 방향으로 계속 걸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해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쭉 돌면 크고 작은 나루가 나올 것이고 길 헤맬 일이 없이 적당히 중국으로 가는 배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다. 내륙을 통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무래도 헤맬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밤을 새워 걷다 보니 좀비의 몸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쉴새 없이 걷고 있었지만 피곤함도 배고픔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름하여 에너지 보존 법칙. 에너지를 섭취하지 않고 계속 에너지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괴상망측한 좀비의 몸도 우주의 섭리나 자명한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존재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는 배 고프지 않았지만 지나치는 길에 산딸기 같은 과실을 찾아 따먹었다.


‘사냥을 해야 할까?’


단백질 섭취를 위해 그런 고민도 했으나 좋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사냥은 시끄럽고 번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벗어나야 하는 지금의 처지와는 맞지 않았다. 거기다 이상하게 짐승들이 김병장을 보면 먼저 내 빼기 바빴다.


덕분에 동해로 가는 길은 닷새 동안 매우 순조로웠다. 김병장은 동틀 시간이라 숨어 잠을 청할 곳을 찾았다. 넓은 벌판에 몸을 숨길만한 산은 너무 멀었으나 다행이 가까운 곳에 작은 언덕이 보였다. 그는 그곳에 숨어 밤을 기다릴 생각이었으나 그것은 실수였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곳곳에 무너진 성벽이 보여 오래된 유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이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고 예전에는 성벽의 한 부분이었을 큰 바위도 많이 보여 숨기 좋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크르르르릉”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비의 몸이 된 후 부쩍 감각이 예민해진 김병장은 지금까지 산짐승의 기척을 느끼면 잘 피해 다녔다. 거기다 어쩌다 마주친 짐승들도 김병장을 피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가 위험을 감지 했을 땐 허공에 소총을 한 번 쏘면 어떤 큰 짐승도 도망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통천일검(通天一劍)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소림방장 혜공 22.01.18 247 4 13쪽
11 목숨 구한 대가 22.01.18 277 5 11쪽
10 황룡사구층목탑 22.01.18 325 4 12쪽
» 사천으로 가자. 22.01.18 341 5 12쪽
8 우화등선(羽化登仙) 22.01.18 420 7 15쪽
7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검 22.01.18 433 9 10쪽
6 명검 22.01.18 489 7 11쪽
5 하산 22.01.17 577 7 12쪽
4 사람으로 죽고싶다. 22.01.17 595 5 12쪽
3 탈출 22.01.17 648 6 11쪽
2 팬데믹 22.01.17 855 6 13쪽
1 서장. 검선결(劍仙決) 22.01.17 1,212 6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