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SF

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0.05.20 17:38
최근연재일 :
2022.04.29 18:53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81,699
추천수 :
1,330
글자수 :
441,145

작성
21.03.31 18:57
조회
501
추천
13
글자
21쪽

파병 -1-

DUMMY

조선과 몇 차례 서신을 주고받으며 조선의 현 사정에 대해서 잘 알게 된 영락제는, 곧 조선도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 또한 그가 알던 이제 막 일어나서 크기 시작하던 그 조선이 아닌, 쇠락하고 힘 빠져 오늘내일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이미 망해 없어졌던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조선 대신 힘이 될 수 있을 법한 세력에 대한 정보를 아는 한도 안에서 최대한 영락제에게 제공해주었던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영락제는 조선 공충도 마량진에 있다는 그 기계인간과 거대한 배에 대해 깊은 관심과 기대를 나타냈다. 아직 칙사를 정식으로 보낼 정도로 힘이 돌아오지 않은 명은, 대신 밀사 몇 명을 보내왔고 조선은 그 밀사들을 정중히 모시고 공충도로 향했다.


십여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였던가.


이양선이 도래한 것은 그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나, 공충도 마량진 일대의 강산은 어마어마하게 변해 있었다.


”이게 머선 일이고..“


한양에서 명 황제의 밀사를 모시고 온 자들과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내려온 갑사 수십여 명이 일행의 전부였으나, 그들도 한양과 중원에서 크고 화려하다고 하는 곳은 꽤 다녀본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도 그 변화된 모습에 놀라워하고 있었으니, 밀사의 놀라움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이양선이 왔다고 듣기는 하였는데.. 이곳이 그 작은 바닷가 마을이라는 곳이란 말인가.“

”허, 이거 크기로만 따지면 한양보다도 크겠군요.“

”크기로만 봐서는 그렇지만, 저기 다니는 저 기물들과 저 거대한 돌기둥은 어찌 만들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군요.“


멀리서 한눈에 보기에도 마을, 아니 이제는 어지간한 도성보다도 크게 변한 그 곳 주변에는 낮은 토성이 둘러쳐져 있었고, 그 곳에서 사방으로 쭉 뻗어나가는 철도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그 토성 안쪽으로는 높이 20여 길(약 24m)은 될 법한 거대한 잿빛 돌기둥이 눈에 먼저 띄었고, 그 외에도 2~3층짜리 조선식 건물과 서양식 건물들이 즐비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저 멀리 바다에 보이는 것이 소문의 그 이양선과 영길리 함선들이리라.


철도뿐 아니라, 그 마을로 향하는 길 또한 넓고 단단하게 쭉 뻗어 있는 것이, 폭은 좀 좁을지라도 한양의 운종가만큼이나 잘 다져진 길이 있었다. 그러나 길의 너비에 비해 오가는 사람은 그닥 많지는 않아 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기에 길이 이렇게 잘 닦였다는 말이오?“

”글쎄요... 지금 다니는 사람들을 봐서는 그리 왕래가 많은 길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말입니다.“

”수레라도 다니는 것 아니오?“

”수레.. 그럴 수도 있겠군요. 바퀴 자국 같기도 한 것이 나 있기는 한데 말입니다.“


땅은 상당히 단단히 굳어있었기에 발자국이나 소, 말의 발굽 자국은 남아있지 않았으나, 대신 묘한 바퀴 자국 같은 것은 남아있었다. 허나, 바퀴 자국이라고 보기에도 묘한 것이, 분명 바퀴가 지나간 흔적처럼 긴 줄이 얕게 패인 흔적은 있었으나, 그 안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네모난 자국이 도장처럼 또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묘한 흔적을 낸 것이 무엇인지는 곧 알게 되었다.


”두두둥, 두두둥, 두두둥, 두두둥“


얼핏 듣기에는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하고, 심장이 뛰는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 그들의 눈에 기묘하게 생긴 수레 비슷한 것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차도, 달구지도 아닌 것이 거의 말이 달리는 것과 비슷한 속력으로 오고 있었다.


”저...저게 무엇인가?“


철로 된 앞바퀴 하나에 뒷바퀴는 여럿이 달렸는데, 그 뒷바퀴들은 땅에 직접 닿지 않고 쇠로 만들어진 띠 같은 것을 돌려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띠에 마디가 있고, 마디마다 툭 튀어나온 부분이 땅에 박히며 그 네모난 도장을 찍은 듯한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한 대에 사람 셋과 짐들을 싣고 달리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죽은 호랑이를 싣고 있는 것도 보였다.


타고 있는 사람들의 복장도 특이했다. 망건에 상투만 틀거나 가죽으로 된 두건을 쓰고, 역시 두터운 가죽으로 지은 듯한 갈색이나 검은 색 옷을 입었는데, 한 손으로는 타고 있는 이상한 것을 잡고, 다른 손에는 담뱃대나 총을 들고 있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덩치들도 다들 범상치 아니하였으나, 햇볕을 받아 짙게 탄 얼굴에 있는 작은 눈에서는 형형하게 안광이 빛나는 것이, 온 몸으로 강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범 사냥꾼들인 것 같습니다.“

”범 사냥꾼이 언제부터 저런 기물을 타고 다녔다는 말이냐?“


그들도 이쪽을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지, 점차 속도를 줄이면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보시오!“


밀사를 모시고 온 자가 달려오는 그것들 앞에서 손을 크게 흔들자, 마침내 그들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세우자마자 바로 총과 창을 꺼내어 흉험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밀사단에게 겨누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살기가 넘쳤던지, 눈 앞에 다가온 거대한 총구 두 개보다 사람들의 눈에 피어오르는 기세가 더 오금을 저리게 만들고 있었다.


갑사들도 침착하게 창과 방패를 펼쳐 밀사단을 보호하는 형태로 진형을 갖추었으나, 이쪽으로 겨누어진 저 쌍열 산탄총의 위력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총을 거두시오. 귀한 객들을 모시고 왔소.“

”귀~이한 손님? 무슨 낮짝으로 조정에서 ‘손님’을 내려보낸 것이오?“

”무엄하다! 포수 따위가 감히!“

”무엄은 니미. 싹 다 갈아서 두엄밭에다 던져 썩히면 쓸만해질 것들이.“


오고 가는 대화를 직접 알아듣지는 못하였으나, 그 분위기가 흉흉한 것을 본 밀사단이 말을 건넸다.”


“저들의 세력이 강하다고 하더니, 조정의 힘이 여기까지는 미치지 않은 것이오?”

“송구스럽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저들의 세력이 강성하고 아국의 힘은 약하여 사실상 저 곳은 조선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외국말로 나지막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본 포수들의 분위기가 더더욱 험악해졌다.


”뙤놈들까지 끌고 온 것을 보니 아주 단단히 벼른 모양인가보지? 왜, 평양 이북을 초토화시키고 염병까지 끌고 온 것만 가지고는 피가 부족하더냐?“

”죄없는 사람들을 역적으로 몰아 목을 베어 탑을 쌓던 것이 지난해였거늘, 기억이 나지 않는 가베?“

”거 머릿통 대신 쓸데없는 것을 달고 다니는 것 같은데, 숨구멍이라도 머리에 두어 개 더 뚫어주면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대굴빡을 쪼개서 안쪽에 뭐가 들어있는가 직접 들여다봅시다.“

”아바이, 긴 말 할 것 없이 고조 머리 끄대기 잡고 반으로 똑 갈라서 소금에 절여 보내주면 될거웨다.”


개중에 성미가 급한 몇 명은 산탄총에서 붉은 탄을 꺼내고 회색 탄을 끼운 후 기회만 노리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조정에서 내려온 갑사들 또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활로를 뚫고 일단 탈출할 각을 보려 했다.


그러자 포수들의 우두머리쯤 될 법한 늙수구레한 자가 말을 꺼냈다.


”일단 끌고 가서 사영께 바치고 처분을 기다려보자.“

”어, 일단 말로...“


그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산탄총에서 발사된 모래주머니 수십여 발이 갑사들에게 적게는 두어 발, 많게는 서너 발씩 박혀 들어갔고, 개중에 방패로 막거나 급히 몸을 피하고 창과 칼을 내지르려는 자들에게도 제 2파로 탄이 박혀 들어갔다. 아예 목숨까지 뺏을 생각은 없었는지, 대부분 다리와 팔, 엉덩이 등등에 집중된 사격을 피한 자는 밀사들을 제외하면 채 다섯도 되지 않았고, 그렇게 탄을 피해간 자들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손 빠른 포수들은 비어버린 탄피를 빼내고 재장전과 조준까지 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슬슬 탄피 주워둘까요?“


심지어 포수 중 짬이 되지 않는 자들은 탄피 회수를 걱정하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포수들은 호랑이 몇 마리와 밀사단을 잡아 그 기묘한 탈것에 싣고 돌아왔다.


한편,


공충도 마량진은 지금 공충도 사상 유래 없는, 아니 조선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유래 없는 대 호황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영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청에서 털어온 귀금속, 철, 서적, 약재 등등 돈이 될 만한 것들과 저 아래 인도차이나에서 생산되는 쌀, 각종 원자재를 가져왔다. 그것으로 항생제, 터빈엔진, 선박의 수리와 개조, 신형 포와 포탄의 개발 및 제작비용을 지불했고, 이것은 다시 공장과 발전소, 철도, 각종 공작 기계의 복제, 개발, 제작, 설비 등등에 들어갔다. 청 황제가 예전에 제시했었던 ”인력과 자원의 무한 투입“ 대신 영국과 몇몇 유럽 국가들의 ”자원과 자본의 무한 투입“상황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미 먹고 살 길이 막막하던 조선 내 유민과 빈농들이 상당수 유입되어 있던 공충도 마량진 일대였으나, 이제 유입되는 사람의 숫자는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식량과 자원이 쏟아져 들어오고, 일거리가 폭발하자 작게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게는 꿈과 희망을 찾아 사람들이 더욱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저번 청의 침략과 흑사병의 창궐으로 삶의 기반이 박살난 서북 지방 사람들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했고, 일단 들어온 사람들은 어딜 가도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는 일거리가 있었기에 가족과 친지들까지 불러들여 정착하는 자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양선과 사사로운 교류를 했다는 이유로 얼마 전 역적으로 몰려 조정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를 받아 쳐서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승리를 한 이후에는 조정의 영향 또한 거의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에 있는 자들 중 8할 이상이 농사로 먹고 살고 있었다. 지금 농민으로 살기 위해서는 일단 기근과 전염병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며, 일단 살아남더라도 각종 세금과 노역을 버텨야만 했다. 원래대로라면 농사짓는 땅에 메겨져야 할 세금, 전정(田政)은 땅이 없는 자들도, 험한 땅이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을 가진 자들도 죄다 토지세를 내야 했다. 군포 또한 법도대로라면 군역을 몸으로 때우는 자들 외에는 정(丁) 즉, 16~60세 남성 1인당 1년에 1필씩 내는 것이어야 했으나 실상은 훨씬 더 가혹했다. 어린이, 노인, 여자, 개,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도 군포를 내도록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며, 이를 견디다 못한 대상자가 도주라도 하게 되면 그 근처 친척들이나 이웃들에게 그 할당량을 부과하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에서의 삶은 불지옥 난이도였는데, 이제는 관에서 환곡이라는 이름의 사채까지 강제로 쓰게 하였으니, 그 삶의 난이도가 어떠했겠는가. 본래 환곡이라 함은 보릿고개 시기에 굶어 죽는 경우를 최대한 막아보고자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때 최대 약 1할가량의 이자를 얹어 받는 일종의 사회복지제도였으나, 전정과 군정이 박살난 상황에서 이런 합법 사채를 내버려 두는 선량한 관리가 있을 리 없었다. 아예 수령이나 지방관이 새로 부임하게 되면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시켜 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 쌀이 복사가 된다니까.“

”거 어떻게 하는 거요?“

”요즘은 곡식을 빌리면 눈탱이 맞는다는 것을 아니까 무지렁이 백성들도 환곡을 잘 안쓰려고 하거든.“

”그렇지요. 한 해만 겪어보면 아는 일 아닙니까.“

”그러니 빌리지 않겠다고 뻗대는 놈들 적당히 잡아다 두들겨서 강제로 곡식을 떠안기고 대충지장 찍게 하는거지.“

”...아, 이건 좀.“

”더 들어봐봐. 빌려줄 때는 적당히 모래하고 왕겨, 그리고 하얀 돌 같은걸 섞어서 묵은 쌀이나 조, 수수같은 것으로 빌려주는거야.“

”...그리고요?“

”요즘 추세는 대충 반년에 5할정도 얹어 받으면 될 걸세. 다 못 갚으면 복리로 불리는거지.

대충 잡곡 한 섬을 빌려주고 한 2년만 못 갚으면 백미 다섯 섬이나 집, 혹은 예쁘장한 여아가 있으면 그것으로 받아올 수 있을 것이네.“

”..??“

”PROFIT!!“


아마 사탄이 와서 보더라도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 울면서 떠날 정도로 현재 조선에서 농민들의 상황이란 불지옥 수준이었다. 그러니 야반도주가 성행했고, 산속에 들어가 호랑이 밥이 되어가면서 화전을 일구고 버티다 얼어죽거나 굶어죽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정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곳이 있다? 당연히 도망쳐 오는 자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조선 초였다면 물론 이러한 상황이 되기 전에 사헌부와 사간원, 서원과 향교에서 당장 상소와 탄핵으로 치고받고 싸우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을 모색했을 것이나, 그게 가능했으면 당장 얼마 전에 있었던 홍경래의 난이 터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사실 조정에 있는 자들도 등신들만 있는 것들은 아니었기에 이양선과 접촉한 자들, 그리고 그 근처 마을까지 홍경래의 난 때처럼 모조리 도륙해버리려 했었으나, 결과는 긁어 부스럼, 아니, 평지풍파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름 고르고 골라 내려보낸 정예 병력이 한 줌도 되지 않는 지방 병력에 참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청의 침략까지 불러왔으니 이제 공충도에서 역으로 한양 러시를 시도한다 해도 막기가 힘든 것이 조선 조정의 현 사정이었다. 그래서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좋게 지내고자 하는 것이 조정의 솔직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하여간, 이런 상황덕분에 마량진 일대는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이 근방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동서양이 혼합된 형태의 2~3층집과 공장, 철로, 상점, 학당등이 생겨나고 있었다. 비단 조선 사람들 뿐 아니라 신기술의 습득과 개발을 위해 들어오는 유학생들도 하나 둘 들어오고 있었고, 자원과 자본의 흐름을 보고 들어온 서양 상인들도 점차 늘고 있었다. 새로운 엔진과 장갑을 갖춘 배를 타 본 후 그 뽕맛에 취한 영국 해군과 그 영국 해군을 보고 따라 들어오는 각국의 배들, 그리고 그 배를 타고 오는 군인들 또한 늘고 있었다.


사람이 늘고 물자가 늘자, 물동량을 소화할 수 있는 수단도 급히 필요해졌다. 일단 영국 해군을 통해 샤이어(Shire)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말 품종을 몇 마리 받았다. 대략 키 130~150cm정도에 몸무게 3~5백 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조선말과는 달리, 키 2미터에 몸무게 1톤이 훌쩍 넘는 터프한 근육질 말은 자기 몸무게의 두세배는 되는 수레를 끌 정도로 힘이 좋았으나, 문제는 숫자였다. 지금의 물동량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지게와 인력거, 소 달구지는 애시당초에 이미 포화 상태였던데다 공장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자 짐의 무게도 톤 단위로 세는 것이 빨라질 정도였으니 저런 것들로는 택도 없었다. 그렇다고 철도를 항구부터 공장마다 싹 다 깔아버릴 수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조선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였기에 여름 장마와 겨울 추위를 모두 버티면서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고, 하고 있는 일도 많았으나, 이 또한 시급하다면 시급한 일이었고,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차량을 제작하기에 앞서, 시제품 겸 기술 축적을 위한 수단 겸 실제 필요로 하는 운송 수단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일단 지금 철도에서 쓰고 있는 석탄-가스/증기 복합터빈은 그 크기가 어마무시하기 때문에 제외, 엔진은 만만한 것이 경운기 엔진이었기에 그걸 가져다 쓰기로 했다. 석유가 나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가솔린을 정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가솔린 엔진은 점화 플러그와 전기 설비가 반드시 필요했기에 디젤 엔진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기름이래봐야 식용 기름이 아니라면 열합성이나 경유와 비슷한 탄화수소를 합성해 내는 대장균 배양을 통해 얻는 것이 전부였던 터라 연료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기도 하고, 연비도 괜찮은 대형 실린더를 갖는 경운기 엔진이 딱이었던 것이다. 현재 기술과 생산 설비로 만들기에 제일 만만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 경운기 엔진에서 플라이 휠을 쳐내고, 실린더 두 개를 달아 2기통으로 업그레이드 한 엔진은 대략 20마력정도 출력이 나와줬으나, 대신 시동 또한 두배로 빡세졌기에 시동용 크랭크 크기를 키우고 2~3명은 달라붙어 합을 맞춰 돌려야 시동을 걸 수 있는 원시적인 형태였다.


고무를 아직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전이었고, 고무를 대량으로 합성할 기술도 없었기에 바퀴 또한 문제였다. 조향장치와 현가장치에 대한 지식 또한 거의 없었고, 그나마 써먹을 수 있었던 것은 저번에 배를 해체하면서 좀 알아둘 수 있었던 변속기어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택한 것은 전통적인 판 스프링을 이용하는 현가장치를 차체 바닥에 세 쌍을 대고 각각 축에 철제 바퀴를 물린 후, 그 주변을 철 궤도로 둘러싸는 무한궤도 형식으로 만들어 겨울 눈길이나 빙판길, 장마철 진창을 모두 다닐 수 있도록 고안했다.


방향 전환에 대한 것도 고민이었다. 아직 차량이나 모터바이크 따위는 없던 시절이었고, 운전도, 정비도 해 본 사람이 없던 때였다. 앞쪽에는 오토바이처럼 바퀴 하나짜리 철제 조향륜을 달고, 조향 핸들과 조향륜을 연결하는 축에 와이어를 달아 일정 각도 이상 핸들을 꺾으면 궤도와 엔진을 연결하는 구동륜 클러치가 풀어지도록 해서 조향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핸들을 조금 꺾으면 자전거나 오토바이처럼, 그리고 많이 꺾으면 탱크가 조향하는 것처럼 궤도 자체의 회전을 줄여 방향을 바꾸도록 한 것이다. 거기에다 일부러 공기 흡입구를 높게 빼서 사람 허리정도까지 오는 하천이라면 그냥 도하가 가능하게 하였다. 궤도가 있었고, 바퀴도 3개가 차체 하중을 분산시켜 궤도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던데다 차체 중량에 비해 엔진 출력이 괜찮은 편이라 꽤 험한 경사나 어지간히 울퉁불퉁한 지형을 다니는 것도 가능은 했다. 현가장치가 아주 푹신한 편은 아니라 엉덩이가 못 버틸 가능성이 클 뿐이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마치 오토바이와 전차를 결합한 것 같이 생긴 하프트랙이었다. 원본인 경운기 엔진이야 이미 전기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어지간한 폐급 연료와 윤활유를 넣고 돌려도 돌아가는 신뢰성 하나는 끝내주는 물건이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최대한 단순하고 오랫동안 써 왔던 방식인 판 스프링 현가장치에 사실상 자전거와 같은 조향장치를 붙인 그것은 생각보다 시제품이 쉽게 만들어졌다.


1톤이 채 나가지 않는 무게에 사람 3명을 태우고 짐 200kg정도를 싣거나 수레 2~3톤 정도를 견인할 수 있으면서 크기는 달구지보다 작은, 꽤나 쓸만한 반궤도차량이 나온 것이다. 처음에야 하나씩 주형 만들어서 주물 뜨고 쇳덩이 하나씩 깎아가며 절삭으로 만들어서 만드는 데 든 인력과 비용은 만만하지 않았지만, 대량으로 만들면 생산에 필요한 품은 꽤 떨어지리라. 산길 많고 건너야 할 하천도 많은 조선 지형에서 쓰기에도 딱이고...


그렇게 한달여 정도의 시운전을 마친 후, 자경단 업무를 하기 위해 한창 교육을 받던 중이던 포수들이 이 차량의 실전 테스트를 하게 되었다. 바로 100여리쯤 떨어진 곳에 심각한 호환을 당해 사람들이 많이 상했다고 하는 산으로 열 명 남짓한 포수들이 궤도바이크를 타고 호랑이 사냥을 나선 것이었다. 예비 궤도와 여벌 엔진, 변속기 뭉치, 추가 연료와 충분한 탄약 및 폭발물까지 가져 갔던 그들은 얼마 뒤 보무도 당당하게 사냥한 호랑이 몇 마리와 늑대 수십여 마리, 그리고 사람 열 명 남짓을 잡아서 돌아왔다.


”범 포수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궤도바이크’도 퍼진 것 없이 다 돌아왔구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범 사냥은 성공했다던가요?“

”네, 벌써 영국군 장교들이 자기들끼리 입찰하겠다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뭐라구요?“


사냥해 온 목록에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에 나는 심한 불안감을 느끼며 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기적 과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거 옆에서 개정판 쓰고 있습니다. 22.10.21 77 0 -
86 파병 -8- +6 22.04.29 213 7 22쪽
85 파병 -7- +9 22.01.29 234 8 23쪽
84 파병 -6- +8 21.10.20 296 10 14쪽
83 파병 -5- +8 21.09.19 277 9 34쪽
82 파병 -4- +12 21.07.17 300 9 19쪽
81 파병 -3- +6 21.06.01 317 8 14쪽
80 파병 -2- +6 21.04.30 361 9 16쪽
» 파병 -1- +6 21.03.31 502 13 21쪽
78 쪼개지는 청나라 -9- +8 21.02.26 486 11 12쪽
77 쪼개지는 청나라 -8- +11 21.02.11 431 10 11쪽
76 쪼개지는 청나라 -7- +6 21.01.20 498 15 16쪽
75 쪼개지는 청나라 -6- +4 21.01.06 484 10 11쪽
74 쪼개지는 청나라 -5- +4 20.12.26 525 15 12쪽
73 쪼개지는 청나라 -4- +7 20.12.16 556 10 13쪽
72 쪼개지는 청나라 -3- +4 20.12.10 535 10 14쪽
71 쪼개지는 청나라 -2- +4 20.12.05 570 10 10쪽
70 쪼개지는 청나라 +8 20.12.01 616 11 11쪽
69 반격 -4- +5 20.11.25 696 8 15쪽
68 반격 -3- +8 20.11.21 597 11 14쪽
67 반격 -2- +2 20.11.13 605 11 9쪽
66 반격 +2 20.11.11 697 11 9쪽
65 조선을 공격한다 -조선 원정의 끝- +5 20.11.06 754 11 12쪽
64 조선을 공격한다 -6- +2 20.10.26 590 7 10쪽
63 조선을 공격한다 -5- +4 20.10.24 549 7 11쪽
62 조선을 공격한다 -4- +6 20.10.22 574 8 9쪽
61 조선을 공격한다 -한편, 공충도에서는- +8 20.10.15 591 9 9쪽
60 조선을 공격한다 -3- +11 20.10.13 594 12 9쪽
59 조선을 공격한다 -2- +8 20.10.10 600 11 11쪽
58 조선을 공격한다 -조선의 사정- +3 20.10.05 641 1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