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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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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0.05.20 17:38
최근연재일 :
2022.04.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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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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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지는 청나라 -6-

DUMMY

청국에 흑사병 유행이 시작된지도 어언 반년이 흘렀다.


그 맹렬하던 흑사병도 장강 이북에 사는 청국인 1/3 이상을 죽인 이후에는 서서히 잠잠해지고 있었다. 일단 증상이 나타났다 하면 절반 이상은 죽여버리는 병의 특성상, 병을 널리 퍼뜨리기 전에 숙주가 죽어나가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병이 널리 퍼지기에는 좀 심하게 치명적이었던 때문에, 집단농장과 집단급식소가 없었더라면 흑사병 대유행도 없었을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조선의 흑사병 유행은 일단 끝난 상황이었다. 산지가 많고 길이 험한데다 물류의 이동조차 쉽지 않은 조선의 상황이 오히려 흑사병의 유행을 막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었다. 애초에 가장 많은 사람이 살던 평양성은 사실상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었고, 청국군도 더 이상 남하하지 않고 철수한데다, 남아있던 식량과 재물은 싹 다 쓸어갔고 불까지 질렀던 때문이었다. 한때 풍부한 시체 덕에 번성하던 쥐들조차 지금은 살아남기 힘든 곳이 되어버린 평양성과 그 일대는 흑사병을 퍼뜨릴 수 있는 매개체가 없었고, 그렇게 흑사병의 불길도 사그라들었다.


물론 청나라라고 해서 이러한 흑사병에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청나라 초기 순치제조차 천연두에 감염되어 죽은 적 있었고, 강희제는 곰보 황제로 유명할 정도였으니 감염성 질병과 청 황실의 악연은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었다. 물론 그쪽은 천연두였고 지금 도는 것은 흑사병이었으니 다르기는 했으나, 감염성 질환이라는 것에 주목한 황제는 천연두에 대한 대비책을 참고하여 대응하기로 한 것이었다.


”흑사병에 걸렸다가 죽지 않은 자의 피나 고름을 얻어 독한 술에 섞은 후, 작은 상처를 내어 바르게 해 보라.“


천연두에 걸렸던 사람의 고름이나 딱지 등등을 작은 상처에 발라 약하게 천연두를 앓고 지나가게 시도하는 방법, 인두법을 시도한 것이었다. 물론 생백신이라고 하여 살아있는 병원체를 약화시킨 후 접종하는 백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연구소와 공장에서 적절한 용량과 품질관리가 되는 과정 하에서 만들어지는 생백신과 인두법을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황제의 명은 명이었고, 명이 내려져 흑사병 유행지역까지 그 명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을 자들은 다 죽은 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은 명이었던지라, 멀쩡하던 사람에게 흑사병에서 회복한 사람의 피나 분비물을 술과 섞은 후 바르는 시술이 행해졌다. 그 시기가 미묘했던 때문에, 어떤 자들은 황제 덕분에 흑사병의 끝이 보인다고 주장하게 되었고, 다른 자들은 사후약방문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후약방문이라고 비난하던 자들은 조용히 사라졌고, 얼마 뒤 잘 썩은 거름으로 밭에 뿌려졌다.


“해치웠나?”

“그런 것 같습니다.”

“매우 좋다. 이제 우리는 외부의 적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되겠군.”


해상 봉쇄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전쟁같지 않은 전쟁이 계속되는데다 흑사병의 확산도 저지된 것 같아 보이자, 그 무서운 흑사병의 두려움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위험 지역에 투입된 자들이 약을 복용하지 않거나 일부만 복용하고 빼돌리기 시작하는 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흑사병을 치료하기 위해 배급된 스트렙토마이신은 다른 질환에도 그 효용을 입증하면서 자기 몫의 약을 빼돌리는 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스트렙토마이신을 복용했던 자의 소변으로도 치료 효과가 꽤 있다는 것이 소문이 나면서 청국에는 약과 소변, 두 가지 모두 밀거래가 왕성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흑사병은 대유행은 끝난 듯 보였지만 아직도 환자는 꾸준하게 발생 중이었고, 그에 대한 치료약은 오직 한 곳에서만 나오는데다 그 공급량 또한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약의 가격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소변 또한 ‘진품’일 경우 꽤나 고가로 거래되었다. 그러다보니 시장에 가짜 약이 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짜 스트렙토마이신 분말에 쌀가루나 밀가루, 흙가루를 섞는 경우는 흔했고, 전혀 그런 것이 들어가지 않은 것들도 암시장에서 흔하게 돌기 시작했다. 오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물이나 다른 사람의 오줌을 타는 것은 약과였고, 그냥 아무 오줌이나 받아다 팔아먹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다.


예전의 아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약은 고가로 거래되었고, 그 약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 해군 장졸을 납치해서 소변이건 피건 짜내려는 시도가 있었을 지경이었다, 영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프랑스나 독일, 혹은 다른 국가의 사람들조차 심심치 않게 실종되곤 하였으니, 청국은 바야흐로 대 짝퉁약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예의 그 역병으로 인해서 하북, 강소, 절강의 집단 농장 상당수가 필요 최소 인원을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쟈라다면 다른 지역에서 끌어다 쓰면 되지 않는가?”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지역에는 농민들의 강제 이주 정책을 통한 집단농장이 다시 세워졌고, 방역이나 위생의 개념이 제대로 없던 상황에서 Yersinia Pestis, 즉 흑사병균 또한 유리한 환경을 다시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진 각종 짝퉁 약들, 특히 진짜 스트렙토마이신이나 그것이 포함된 오줌을 희석해서 만든 약들은 흑사병균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워낙 광범위하게 퍼졌던 흑사병은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었고, 돌연변이가 발생할 시간과 숫자도 넓었던 때문에 변종이 생겨나고 있었다. 낮은 농도의 스트렙토마이신이라고 하더라도 변종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흑사병균에게는 치명적이었으나, 몇몇 돌연변이는 이 스트렙토마이신을 무력화 할 수 있는 방법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해지게 한다.“

”어떻게?“

”대대로 이어져 온 괴로움을 버티다 보니 어느 세대에서 불현 듯 깨달음이 오더라고.“


그 깨달음의 방법은 다양했다. 개중에 몇몇은 스트렙토마이신 분자 자체를 깨고 뒤트는 방법을 깨달아 그에 해당하는 효소를 획득했다. 다른 몇몇은 세포막의 투과성이 뒤틀린 개체로 태어나는 방법을 깨달아 해당 항생제의 세포내 침입 자체를 약화시켰다. 더 나아간 녀석은 아예 리보좀의 구조를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항생제가 결합할 부위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몇몇 돌연변이들은 그들의 깨달음을 담은 유전정보를 아낌없이 주변 다른 균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물론 이러한 돌연변이에는 대가가 따르기는 했으니, 저런 돌연변이들은 추가적인 유전 정보를 얻고 해당하는 효소, 막 투과성 변화, 혹은 리보좀 구조 변화로 인해 연비가 나빠지거나, 성장 및 분열이 느려지거나, 혹은 독소 방출량이 적어지는 등의 너프를 맞은 것이었다.


‘오히려 좋아.’


그러나 이러한 너프로 인해 장점도 생겼으니. 잠복기가 엄청나게 길어진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죽는 사람은 줄어들었으나, 대신 가벼운 감기정도의 증상만 보이면서 병균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강제 이주와 집단 농장의 형성으로 인하여 청국 각지로 골고루 다시 확산되게 되었고, 그 곳에서 다시 재유행이 일어나며 2차 흑사병 대유행 시대를 열게 된다. 또한, 황하의 제방 붕괴로 인한 기근과 전염병, 강제 이주와 집단 농장 및 집단 급식소 등등의 문제가 쌓이고 쌓이자, 마침내 청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 중 안휘성에서 일어난 반란은 그 세를 강남까지 퍼트릴 정도로 급속도로 불리며 성장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스스로를 ”주방(朱防)“이라고 부르며 한족의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을 부르짖는 조직이었다.


한편, 나는 석달정도 굴리던 증기기관차 중 한 대를 다시 배로 가져와 상태를 보는 중이었다. 강철을 단조해서 조립한 터빈을 넣고 굴리던 기관차는 이 근방의 물류를 책임지는 핵심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터빈 기술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전력과 동력을 확보하여 일단 저 배의 기능을 완전히 회복시켜야 했고, 그 중심에는 원자로 출력을 원래 수준, 즉 지금의 10배 이상으로 올려도 그것을 받아낼 수 있는 터빈과 발전기, 각종 동력전달수단의 복구가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제작 난이도가 높은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바로 터빈이었다. 차라리 내가 생물학 베이스가 아니라 공학 베이스를 가진 인간이었으면 할 정도로 골치아픈 것이 저 터빈이었다.


”매주 분해해서 정비하는데도 이 정도로 부식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나보군요.“

”회전축도 그렇고 베어링도 생각보다 손상이 심합니다. 이런 식으로라면 거의 1년에 네 번씩은 터빈을 새로 만들어 통째로 갈아치워야 할 판입니다.“

”아...“


저쪽 배를 해체하면서 들여다 본 터빈을 바탕으로 좋게 말하면 역설계, 사실 그대로 말하면 그냥 사이즈 재서 축소하여 비슷하게 흉내내어 만든 터빈으로는 역시 한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름 강도를 높인답시고 이름난 대장장이들을 불러 날개 하나하나를 단조하고, 무게와 사이즈를 맞추어 가며 대칭으로 조립하고, 방청작업을 하는 것 자체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그걸 3개월마다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있지도 않은 심장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 공대를 세워야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청국쪽에서 귀환하는 영국 함선이 승선 허가 신호를 보내왔다.


”사영! 큰일이오. 그대가 말하던 일이 일어났소.“

”무슨 일입니까?“

”더 센 약이 필요하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성균이 나온 것 같았다.


”약이 안 듣는다구요?“

”그렇소.“


영국군 사이에 새로 도는 그 병은, 흑사병과 증상은 비슷했지만 진행속도가 느렸으며 진행되더라도 치사율은 낮아 보였다. 대신,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최종 단계에 진입하면 피거품이 섞인 기침을 하면서 주변에 병원균을 퍼뜨리게 만들고, 몸 어딘가를 한두 곳 가져가는 것으로 끝나는 듯 했다. 운이 좋으면 손가락이나 발가락, 코 끝이나 귀와 같이 몸 중심에서 좀 멀고 혈류량이 좀 적은 곳 위주로 괴사를 일으켰고, 운이 좋지 않은 자는 모세혈관이 많은 장기 중 한 두곳을 날려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듯 했다.


균을 분리하여 배양해 본 결과, 확실히 그것은 스트렙토마이신이 포함된 배지에서도 성장하는 것이 보였고, 생김새는 흑사병균 그것과 같았으니 내성을 가진 변종이 생긴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해야 할 일이 더 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식이 있는데 말이오...“


누가 그랬던가.


불행과 일거리는 혼자 오는 법이 없다고.


작가의말

오랜만에 다음 편 올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벌써 새해도 일주일 가까이 지났군요.


참 파란만장한 2020년이었습니다.


새해에는 부디 이 코로나 이새끼가 꺼지고 좋은 일이 연달아 오는 한 해가 되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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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50 페퍼로니즘
    작성일
    21.01.06 14:48
    No. 1

    청나라도 슬슬 기울어가는데 황제는 어찌될까 궁금하네요. 여기서 보내버리기엔 너마 강렬한 설정인데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9 madscien..
    작성일
    21.01.06 17:52
    No. 2

    대장정 시즌2를 찍고 중원을 한바퀴 돌아 부활할겁니다ㅋ 문화대혁명까지는 해주고 퇴장해야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al******..
    작성일
    21.01.06 19:00
    No. 3

    압도적인 기술력과 죽지않는 몸을 주인공이 가지고있는데 40,000년 후의 미래에서 인류황제 되는것도 쌉가능일듯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9 madscien..
    작성일
    21.01.07 09:40
    No. 4

    혹은 끝까지 구르면서 필요한 것 만들어내는 도라에몽같이 되거나...말이죠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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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쪼개지는 청나라 -5- +4 20.12.26 52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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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쪼개지는 청나라 -2- +4 20.12.05 570 10 10쪽
70 쪼개지는 청나라 +8 20.12.01 616 11 11쪽
69 반격 -4- +5 20.11.25 696 8 15쪽
68 반격 -3- +8 20.11.21 597 11 14쪽
67 반격 -2- +2 20.11.13 605 11 9쪽
66 반격 +2 20.11.11 697 11 9쪽
65 조선을 공격한다 -조선 원정의 끝- +5 20.11.06 754 11 12쪽
64 조선을 공격한다 -6- +2 20.10.26 590 7 10쪽
63 조선을 공격한다 -5- +4 20.10.24 548 7 11쪽
62 조선을 공격한다 -4- +6 20.10.22 574 8 9쪽
61 조선을 공격한다 -한편, 공충도에서는- +8 20.10.15 591 9 9쪽
60 조선을 공격한다 -3- +11 20.10.13 594 12 9쪽
59 조선을 공격한다 -2- +8 20.10.10 600 11 11쪽
58 조선을 공격한다 -조선의 사정- +3 20.10.05 64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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