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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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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0.05.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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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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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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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공격한다 -조선의 사정-

DUMMY

조선군은 붕괴했다.


청국군이 쳐들어와서 붕괴한 것은 아니었다.


청국군의 훈련을 빙자한 무력시위가 청-조선 국경 근처에서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청국 관리가 조선인에게 사상당한 사건도 있었던 조-청 국경은 분위기가 좋을 수 없었다. 당연히 조선은 청나라의 침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비해 국방력 증강을 위해 힘썼다. 아니, 힘쓰려 했다.


비변사에서는 오늘도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이대로는?”

“청이 쳐들어오면 전멸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조선에는 5군영도 있고, 군적에는 수백만의 양인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성을 쌓고 정병을 키워 청의 총공격을 대비해야할 때가 아닌가!”

“죄송합니다만 저희도 그러고 싶습니다.”

“왜 안하는 건가!”


“하지만...”

“하지만, 뭔가!?”


“쌀이 없슴다.”

“....Aㅏ”


그렇다.


조선은 원래 가난한 나라였다.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왜의 침략을 우려해 10만 양병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을 때에도 양병 계획으로 올렸던 여섯 가지 계책 중 대부분에 돈이 필요한 것이었다. 군민을 양성할 것, 재용을 풍족하게 갖출 것, 변방을 튼튼히 방비할 것, 전마를 갖출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무려 류성룡이 나서 반대를 하였으니, ‘아무 일이 없는데도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곧 화근을 기르는 것입니다’ 했다. 이에 율곡은 크게 실망하여 개돼지들이야 그럴 수 있지만 공도 또한 그런 말을 하는가 하여 슬퍼하였으나, 류성룡 또한 10만명의 병사를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고려하면 당시 국력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반대를 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 쌀, 지금으로 치면 돈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그나마 조선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기강이 제대로 서 있던 때라던가, 왜란과 호란을 겪고 군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던 당시에는 사정이 그나마 조금 나았었다. 물론 그 때도 조선은 가난했고 군대에 돈이 없던 것은 여전했지만.


오죽 돈이 없었으면 왜란이 끝난지 7년 후, 선조가 체찰사-군과 관련한 중요한 업무를 위해 파견하는 종 1품 직급-한효순과 직접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체찰사 한효순이 아뢰기를


“정유년에 신이 체찰 부사로 되었었는데, 왜적이 호남으로부터 호서로 넘어왔습니다. 이때 신은 내포에 있었는데 종군하는 군사가 모두 집에 편지를 부쳐 함께 도피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얼마 안 되어 과연 모두 도망쳐 돌아왔습니다. 그때 군관들이 말하기를 ‘출신자들이 모두 본가로 돌아갔다.’고 하기에, 신이 곧 사람을 시켜 부르기를 ‘오지 않으면 참하겠다.’ 하고, 또 조정에서 중률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회유하였습니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어떤 여인이 신에게 정소하기를 ‘내 아들도 도망친 군졸에 속하는데 지금 듣건대 조정에서 무너져 흩어진 군졸을 모두 처벌한다 하니, 내 아들도 의당 법에 의해 처형될 것이다. 미태(米太, 쌀과 콩) 5백 석을 관에 바치고 속죄할 것을 원한다.’고 하기에, 신이 곧 허락하고 위에 아뢴 다음 결제하여 주었습니다. 8일 후에 그는 다시 장계를 가지고와서 호소하기를 ‘서울에 올라가 들어보니 무너져 흩어진 군졸은 2석의 쌀로 속죄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2석으로 속죄하는데 나만이 유독 5백 석으로 속죄하는 것이 어찌 원통하지 않은가. 이로 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찾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군대는 사지인 것입니다. 만약 2석의 쌀로 사명(死命, 죽을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면 누가 군율을 두려워하여 사지로 나가려 하겠습니까. 기율이 없으면 한두 사람이라도 다스릴 수 없는데 더구나 천만 명의 군사를 어떻게 말로만 유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제일 상책은 기강을 확립하고 호령을 엄히 하는 데 있고 다른 일은 모두 그 다음인 것입니다.“


선조가 이르기를,

“최영의 일로 말하건대, 그는 일보를 퇴진하는 자도 반드시 참하였기 때문에 싸움에 임할 때마다 모두 승첩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 왜노들의 말이 ‘고려에는 두려운 자가 없는데 오직 백발의 최 만호가 오면 제군이 돌격하여 오니 이것이 두렵다.’고 하였다. 마속 역시 제갈양이 아끼는 장수였는데, 참수에 임하여 구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제갈양은 눈물을 흘리면서 참하였다. 마속이 군령은 어기기는 하였으나 그 장재로 말한다면 어찌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이겠는가. 그런데도 반드시 참하고 말았으니 옛사람들의 용법이 이와 같이 엄하였다.


도망한 군사에게 쌀을 바치게 한 일은 나 또한 알고 있다. 당시 도망한 자가 많아 베려 하여도 다 베일 수 없었고 또 중국군이 때마침 군량이 고갈되었다고 하여 경솔히 쌀을 바치는 일로 처리하였다. 무너져 흩어진 군사가 쌀만 마련하여 베개를 베고 누워 태연히 ‘내가 도망쳐 왔으나 쌀 섬이 있으니 나는 걱정이 없다.’고 하니, 이것이 국세가 어려워 한 일이지만 요는 우리나라의 군령이 시행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양대 왜란 기간동안 적을 피해 탈영하고 도주하더라도 쌀과 콩 두 섬이면 용서를 받을 수 있었고, 심지어 도망친 아들 대신 5백섬을 바치고 용서를 받은 엄마가 나서서 서울하고 비교해보니 이쪽 죄값이 너무 비싸다고 환불까지 받아가는 개막장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전쟁이 한창이라 왜군들이 호남에서 호서러 넘어가던 때에 말이다. 거기에다, 그렇게 탈영하고 적전 도주를 한 것에 대해 쌀을 받고 용서받는 것을 왕이 흔히 보고 들어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군 재정이 얼마나 개막장이었는지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나 저 개막장 상황이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왜란 중에도 저러했으니 현재는 어떠하였겠는가.


호란까지 연거푸 쳐맞으며 참교육을 당했던 것도,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다.


다시 긴 평화가 찾아오고, 조선의 군대가 가지고 있던 시스템적인 결함에 상부의 의지조차 없어지자, 조선군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한 줌 정예라고 있는 중앙군은 사실상 사병으로 전락했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쓰레기들 이 뒤섞인 것이 중앙군이었다. 그나마 중앙군은 쓰레기 가운데 정예라고 좀 있었으나, 지방군은 서류상에만 올라 있을 뿐,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자는 백에 하나가 될까 말까 한 것이 전부였다.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 조선의 마지막 리즈시절이라 할 수 있었던 영조 시기에도 이미 조선의 국방력이라는 것은 처참한 것이었다.


건륭 8년, 영조 19년 때의 일이다.


한양 외곽이 어수선하여 뜬소문이 크게 떠도니, 임금이 몹시 근심하여 도성을 지키는 것과 강도(江都, 강화도)에 들어가는 것의 편의 여부를 당시 경기 감사이던 유엄에게 물었다. 이에 유엄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외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우리 나라는 약소 국가입니다. 몽고가 공격해 오면 청나라의 경우와 같이 접대해야 하고, 비록 서달(西韃, 타타르)이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또한 이와 같이 할 뿐입니다.“


그 영민한 왕조차 잠시 말을 잃고 있다가 이를 옆에서 기록하고 있던 사관에게 명했다.


"이런 말들은 모두 기록할 필요가 없다."


물론 사관은 그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그대로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백여년이 흘렀다.


이미 더 붕괴할 것이 있을까 싶은 조선군이었으나, 여기에 삼정의 문란, 즉 토지세, 군역, 환곡제까지 개판나자 내려갈 조선군은 내려갔다.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최정예는 이제 5군영에서도 얼마 남지 않았고, 실력 좀 있는 무인들은 군적만 중앙군에 두었을 뿐, 대부분 세도가나 주색가의 호위 무사, 암살자, 또는 왈패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공충도로 출동해서 양민들의 수급을 베어 탑을 쌓고 학살을 벌이다 박규수를 포함한 7명의 공충용병단이 주축이 된 촌민들에게 괴멸당한 그들이 바로,


조선의 최정예였던 것이었다.


물론, 내려간 병력 중 정예의 비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한낮 촌구석에서 이양선에게 빌붙어 사는 촌것들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병력인 것도 사실이었다.


무과에 급제한 자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정예 병력이 포함된 천여 명의 진압군 VS

겨울에 얼어죽지 않고 버티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가난한 무토불농지민 (無土不農之民)


누가 보더라도 반란군을 진압하고 거저 수급 수백여 개를 얻는 군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던 터라, 각 세도가에서 찔러넣은 도련님들도 한무더기였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저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얻은 수급이 2천여개에, 군공을 세워 높은 벼슬 자리에 오른 자들도 부지기수가 아니었던가. 그 조그마한 가산군의 군수였던 정시는 죽은 이후에 병조판서,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서되었고, 그 동생과 수청을 든 기생에까지 벼슬과 전답을 하사하였으니, 눈이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돈푼 깨나 있고 힘 좀 있는 집안 중, 자식이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관직에 나설 수 없는 폐급이라 생각하는 부모들은 너도나도 버스를 태워 공짜 관직렙업을 시키기 위해 나섰다.


그렇게 소수 정예 집단과 그냥 병사, 그리고 쩔 받던 도련님들까지 포함된 그 집단은 그렇게 조정의 골칫거리가 되고야 말았다. 공충도에서 올라온 일종의 포로 교환을 청하는 문서이니 평소같으면 무시하고 더 많은 병력을 내려보내 깡그리 초토화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5대 독자 귀하디 귀한 내 손주님이 그 깡촌 무지렁이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는데, 털끝만큼이라도 상했다가는 어찌 하시려구 그러십니까?“

”맞습니다. 이번에 잘 부탁한다고 받아 먹은 것들이 얼마인데, 잡혔으면 당연히 무슨 수를 써서라두 구해야지요?“

”게다가 그 이양선은 불씨들이나 하던 화장을 한다지 않습니까? 혹시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곱게 챙겨서 와야지요!“


그렇게 쩔(?)을 보냈던 도련님들의 안위와 사실상 거의 남지 않은 정예 병력의 회수, 그리고 돈도 없고 청국의 침략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장기전을 벌이기 힘들었던 조선 조정의 사정이 겹쳐져 정약용과 홍희근은 공충도로 돌아올 수 있었고, 토벌군들도 한양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사지 멀쩡하거나, 뒷배가 빵빵하거나 돈 깨나 있는 자들만 말이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계절, 몸 온전히 건강하게 있는 자들도 움직이기 만만한 계절은 아니었다. 조선의 외상의학 기술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었고, 부상자나 시체를 옮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마차가 필요했다.


그 외의 다친 자들은 별 수 없이 마을에 남아야 했고, 죽은 자들은 땅이 얼어있었기에 화장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 상당수는 원한 어린 마을 사람들의 손에 분쇄되어 실종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양에 무사히 돌아간 자들도 오래 웃을 수는 없었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다시 글 쓰기 시작했습니다.


추석 연휴들은 잘들 보내셨나요?


차례도, 성묘도 없는 추석을 보냈더니 추석이라는 느낌도 제대로 들지 않더군요.


이번주부터는 다시 주 2~3회씩 꾸준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셨던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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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고철아주큰
    작성일
    20.10.06 11:33
    No. 1

    ㅋㅋㅋ 저나 친척들도 마왕님의 말씀에 따라 이번 추석은 그냥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막내 작은아버지께서는 산에 가셨지만 추석 10일 전 죽어도 별 상관 없는 나이 많은 분들이 모이셔서 고기 구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일찍 오려고 저와 서울어머니께서는 운전 하려고 술을 안 먹었습니다만
    마왕님께서 "잠 자고 내일 간다."라는 한마디에 저는 술 한잔을 홀짝일 수 있었습니다. 뭐 다들 사장님들이니 늦게 간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엄꼬. -_-
    그래도 중딩 초딩 갓난쟁이를 데려오는건 아니다라는게 맞는 말이었고
    엄청 잘 쉬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9 madscien..
    작성일
    20.10.07 15:20
    No. 2

    그래도 모여서 재밌는 시간 보내시고 쉬시기도 푹 쉬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렇죠..애들은 위험을 감수하게 할 필요 없죠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온조동
    작성일
    21.01.18 16:32
    No. 3

    조선에 쌀이 부족한게 아니고 세금 제도가 잘못 되어 특정계층만 호화롭게 살고 나라와 서민들만 가난 했었죠 물류 이동도 어렵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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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쪼개지는 청나라 -4- +7 20.12.16 556 10 13쪽
72 쪼개지는 청나라 -3- +4 20.12.10 534 10 14쪽
71 쪼개지는 청나라 -2- +4 20.12.05 570 10 10쪽
70 쪼개지는 청나라 +8 20.12.01 616 11 11쪽
69 반격 -4- +5 20.11.25 696 8 15쪽
68 반격 -3- +8 20.11.21 596 11 14쪽
67 반격 -2- +2 20.11.13 605 11 9쪽
66 반격 +2 20.11.11 697 11 9쪽
65 조선을 공격한다 -조선 원정의 끝- +5 20.11.06 754 11 12쪽
64 조선을 공격한다 -6- +2 20.10.26 590 7 10쪽
63 조선을 공격한다 -5- +4 20.10.24 548 7 11쪽
62 조선을 공격한다 -4- +6 20.10.22 574 8 9쪽
61 조선을 공격한다 -한편, 공충도에서는- +8 20.10.15 591 9 9쪽
60 조선을 공격한다 -3- +11 20.10.13 594 12 9쪽
59 조선을 공격한다 -2- +8 20.10.10 599 11 11쪽
» 조선을 공격한다 -조선의 사정- +3 20.10.05 64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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