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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과학자

이기적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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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0.05.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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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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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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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프롤로그

DUMMY

나는 죽었다.


나는 마지막에 엎드린 채로 죽었다.


나는 유언장에 내가 어떤 식으로 죽을지 썼고, 그 유언 그대로 죽었다.


“나는 뇌와 기능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에 내 뇌를 바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뇌 질환을 앓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우리 자손에게는 뇌질환 없는 미래를 만들어 주는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자 내 몸을 바치고자 합니다.


나는 국립 뇌신경 연구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뇌 신경망 시뮬레이션 프로젝트의 뜻에 찬동하여 내가 죽기 직전 나의 몸을 상기 센터에 기증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의 몸을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부하고 보존하는 것을 승낙합니다.

이 유언서는 내가 직접, 내 의사와 생각에 따라 작성하였다는 것을 밝힙니다.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내 뜻이 저지될 수 없다는 것을 엄숙히 밝힙니다.


유언인...”


내 기억속에서 나는 유성펜으로 유언서를 소리내어 말해가며 한자 한자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작성한 유언장을 읽는 모습을 촬영해 업로드까지 마치고, 마지막으로 내 중추신경계 적출과 샘플링을 담당해 줄 의료진과 후배 과학자들과 미팅을 마친 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죽으면 썩거나 태워 없어질 몸, 평생 해오던 일에 마지막 데이터 하나 추가해 주는 것도 괜찮은 죽음이리라.


뇌를 포함한 사체 기증 서약을 마친 두 달 뒤, 나는 자발적 호흡을 멈췄다.


나는 마지막에 엎드린 채로 죽었다.


이미 엎드린 자세로 있는 나는 머리 두개골이 열려 뇌막과 뇌가 노출된 상태였고, 척추 또한 길게 등쪽을 따라 노출되어 척추관이 있는 곳을 따라 칼집이 나 있는 상태였다.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추고, 기계가 삐-익 긴 비프음을 내자, 의료진들은 나의 유언에 따라 사체에 얼음물을 퍼붓고, 미리 확보해둔 굵은 라인을 따라 빠르게 피를 빼냄과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운 인산염완충식염수를 정맥으로 부어넣기 시작했다. 피가 대부분 뽑혀나가고, 배출관에서 나오는 액체가 더 이상 붉은 기운을 띄고 있지 않을 때 즈음, 뇌막에 미리 연결해두었던 밸브로 역시 차갑게 식혀 둔 인공 뇌척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곧이어 파라포름알데히드가 뇌와 몸 각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단단하게 고정된 뇌와 척수, 뇌신경들이 분리되어 역시 얼음에 담겨 있던 커다란 유리통에 담겼다. 뚜껑이 덮히고, 적출된 뇌와 신경계는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죽기 몇 년 전부터 조영술,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촬영(fMRI), 기타 가능한 이미징 기술로 내 뇌를 맵핑해두고 살아있는 상태일 때 가능한 검사는 최대한 돌려 데이터를 모아두었다. 죽은 후 내 중추신경계는 50나노미터 단위로 얇게 잘린 후, 여러 화학적인 과정을 거쳐 처리된 후, 금속 이온으로 코팅해 2천만장이 넘는 절편으로 바뀔 것이다. 이 수많은 절편들은 전자현미경으로 스캔이 이루어진 후, 딥 러닝을 돌려 살아있을 때 어떤 식으로 뇌가 기능했는지 알아보는데 쓰일 것이다. 백여년 전 오징어, 군소와 같은 간단한 신경 체계를 갖춘 동물부터 진행되어온 뇌 스캔 딥러닝은 쥐, 개, 원숭이들의 뇌들에서 얻은 기존 데이터들이 대량으로 추가되며 점점 살아있을 때의 뇌 구조와 기능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뇌 조직들은 고정되고 코팅되고 썰리고 스캔 되는 사이에 일어나는 물리 화학적 변형과 노이즈들이 제거되고, 살아있을 때 당시의 신경, 신경아교세포, 그 표면의 수용체와 단백질 구조 하나하나가 다시 원래 모양으로 컴퓨터 안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데이터들을 가지고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것과 같은 살아있는 뇌 구조와 기능, 연결망을 분자 수준부터 프로그램 상에서 재현하여 시뮬레이션 하겠다는 계획이 실제로 실행된 것은 내가 죽은 후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내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영업도 끝난 영화관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그 뒤로는 이어지는 기억도, 생각도 없이 새카만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잠시 꿈이라도 꾸었던 것일까.


내가 죽은 이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 일이리라. 죽은 이후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기억이 맞다면 나는 이미 죽었고, 내 시체는 뇌와 신경은 절편으로, 나머지는 여러 실습 및 실험용으로 기증이 되어 보관이 되었거나 소비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럼 지금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혼란스러운 기억을 돌려 다시 한 번 시간 순서대로 되짚어 보았다. 다시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기억이 어떤 것은 영상, 어떤 것은 이미지로 눈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억을 몇 번을 되돌려보았지만,

기억 여기저기가 뻥 뚫려있었다. 뇌가 썰려나가면서 기억도 예리하게 도려낸 것처럼 명확하게 기억하는 것과 기억나지 않는 것이 뚜렷했다. 방마다 지식과 기억을 분류해서 차곡차곡 쌓고 나서 몇몇 방을 봉인해버리면 이런 느낌일까. 어릴 적 기억은 없어졌고, 군 입대때의 기억은 남아있었다. 학부, 대학원, 석박사과정 동안의 일들은 기억이 남아있는데, 가족에 대한 것은 기억이 상당부분 비어있었다.


기억이 소거된 것이 아니라, 당장 필요 없는 기억을 들어내어 따로 저장해두었다고 기억 중간중간 설명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죽기 전부터 죽은 이후 얼마간의 기억은 꽤나 자세히 남아있는데, 정작 생전의 삶에 대한 기억은 군데군데 들어내어진 상태였다. 연대기처럼 시간별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는데, 세부 사항은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마치 인생의 각 구간을 요약해두고, 따로 저장해두었다는 태그만 붙여둔 뒤, 나머지는 지워버린 것 같은 상태라니.


내가 직접 한 것인지, 아니면 누가 기억에 손을 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세한 기억을 해 보려 하면 ‘전력과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 기억을 옮겼다.’라는 문장만 떠오를 뿐이다.


기억을 인질로 잡힌 기분이었다.


‘전력과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 기억을 옮겼다.’


나는 이미 죽은 몸, 지금 기억을 되돌려보고 생각하고 있는 ‘나’의 정신은 그럼 어디에서 작동중인 것일까. 혹시 모든 것이 꿈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의식이 돌아왔다.


깨어났다는 감각과는 달랐다. 마치 전원이 나가있다가 들어오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여럿으로 쪼개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낡고 고장난 커다란 배 두 척이었고, 지금은 작동을 멈추었거나 손상되고 고장난 컴퓨터와 전자기기, 기계들이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우리들이라고 해야되나. 아니면 군체라고 해야 되나. 리전이라고 불러야 되나.

잠깐 나갔던 정신을 부여잡으려 애써보았다.


'아니, 내가 배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내가 배라니! 그것도 한 덩어리도 아니고 두 척으로 나뉜 배라니!'


내가 내 몸을 인식하고 깨달은 순간, 인간의 몸으로,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라는 감각 기관으로 받아들이던 세상에 대한 정보 대신, 다른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눈 두개, 귀 두 개, 열 손가락 대신, 수십개의 카메라와 레이더로 세상을, 배 내부를 따라 그물처럼 자라있는 신경망으로 내 안쪽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오감을 느끼고, 판단하고, 팔다리를 움직이던 때가 분명 기억이 나는데, 배들로서의 몸도, 로봇으로의 몸도 마치 내 몸이었던 것처럼 움직이는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살아있는 한 몸인 것 마냥, 지금 상태와 손상된 부위, 일부분이긴 하지만 배들의 내부 상태까지 알 수 있었다.


원래 나는 죽었고, 뇌는 썰렸으니 내가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나’는 인간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 생각하는 존재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했다. 그러나 배들과 기계에 심어진 정신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예상했던 범위 바깥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기계들 안에 정신만 갇혀 동력이 떨어질 때 까지 나가지 못하고 그저 바깥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신세는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이런 몸이나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죽었다 살아난 것만 해도 어디인가.


원래 몸이 어찌 되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이런 몸으로나마 다시 생각하고 움직이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나는 일단 존재한다.

살아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좀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기는 하는 것 같다.


이리저리 기억을 되돌려보고 지금은 내 몸이 된 배들과 그 내부를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내 커다란 몸뚱이는 원자로에서 에너지를 얻어 존재하고 있고, 배 자체는 기관부 손상으로 현재 간신히 느릿느릿 움직일 수 있었다. 좀 더 작은 쪽 배는 가스터빈을 동력원으로 쓰는데, 큰 쪽에서 물을 전기분해하고 이산화탄소를 당겨 합성한 연료를 주로 썼던 것 같았다. 그쪽도 연료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라 일단 이쪽 배에서 전선만 끌어다 기능을 유지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 함교쪽에 작동 가능한 인간형 몸체가 하나 있었고, 원자로도 일단은 기능을 어느정도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 외에 이 배 안에 실려있는 물품들의 목록이라던가, 시설들의 현황도 머릿속에 들어왔다.


함교쪽에 있는 인간형 몸체를 확인하고, 그 쪽으로 집중을 하자, 마치 의식 일부가 그쪽으로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 보았다.


배로서 존재할때의 이질적인 감각 외에 드디어 좀 더 익숙한 감각과 신체가 느껴졌다. 좀 전까지 배로서만 존재할 때 보다 훨씬 편안한 느낌이었다.

인간형인 몸체가 있었던 곳은 관 같은 것이었는지, 눈 앞으로 팔을 쭉 뻗으면 닿을 정도 거리에 석관 뚜껑같은 것이 보였다.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 살펴보니, 관이라고 하기에는 꽤 여유가 있긴 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이 보였다. 손발에도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자, 나는 그 관 뚜껑 같은 것을 힘주어 밀었다. 아니, 밀려고 했다.


손은 손인데, 인간의 손이 아니었다. 다섯 개 손가락은 가죽을 벗긴 것처럼 골격에 근육이 드러난 것 같은 형태였으나, 이음매도, 주름도, 광택도 없는 백색 물질로 코팅되어 있었다. 손과 이어진 팔도 마찬가지였고, 얼굴을 만져보니 형태는 사람 얼굴 같기는 했으나 역시 피부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더듬어 보니 머리털 하나 만져지는 것이 없었고, 뒤통수부터 뒷목까지 케이블이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만져졌다.


하얀 손과 팔에는 검은색과 붉은색, 노란색으로 글과 문양이 써 있었다. 스티커도 몇 개 붙어있었는데, 노란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몇 개 그려진 스티커는 그도 이미 많이 본 적 있는 것이었다.


Gamma Sterlized

RNase, DNase, Protease Free

Pyrogen Free

Autoclavable


감마선 멸균됨

RNA, DNA, 단백질 분해효소 없음

발열원 없음.


주로 생물 실험실에서 많이 보는 그 문구들이 적혀있거나 붙어있는 손과 팔을 보니, 정신이 대략 멍해진다. 표면에 감각도 있고, 움직이는 것도 꽤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도 하다. 감마선으로 몸을 통째로 멸균한것도 그렇지만, 고압 증기로 쪄서 멸균 가능한 몸이라니.. 의료용 아니면 생물 실험용으로 만들어진 몸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까 배 안에 실려있는 물품과 시설에서 생산중인 것, 그리고 이 몸을 보면, 이 배는 생긴것은 전함처럼 생겼지만 실제 목적은 생물 실험실을 겸하는 병원선, 혹은 이 배 옆 또다른 배와 합쳐 재난시 구조와 재건을 담당하는 배일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래, 이미 죽었던 몸, 천천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가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나는 다시 뚜껑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서자, 크고 작은 섬 몇 개가 가까이에 있는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황토색 네모난 돛 두 개를 단 배가 섬 쪽에서부터 노를 열심히 저어 오고 있었다. 황포 돛이라니, 문화 행사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배 위에서 흑색 조끼와 적색 소매를 한 조선시대에나 볼 법한 옷을 입은 군관이 소리를 질렀다.


”이양선은 문정을 받으라!“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디씨 대역갤에 쓰던 소설을 끌어와 갈아서 올려보고자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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