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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양말

나는 어디든 실내에 들어가기만하면 양말을 먼저 벗을 궁리부터 한다. 지나치게 답답해하기 때문이다. 발에서 열기도 피어오르고 땀도 차기 때문에 양말을 벗는 것은 곧 해방이요 자유실현의 만끽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마구잡이로 벗어제낀 양말을 아무데나 던져두는 바람에 어떤 곳에서는 양말을 찾을 길이 없이 맨발로 귀가해야 했던 적도 많았다. 그것 때문에 어릴때에는 부모님에게 혼났고,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에게 매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경산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셋째처형댁에 늦은 저녁에 방문을 했다. 나는 어김없이 실내로 들어서면서 양말을 벗었고, 과거와 달리 양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 넣는 습관을 들였다. 그것은 좀 불결한 일일 수도 있지만 꽤 유용하고 편리한 습관이었다. 한참 신다 호주머니에 넣은 양말은 약간의 습함과 악취를 머금고 있다. 오랜시간 주머니에 넣어두면 주머니 안이 악취와 무좀균으로 오염이 되고마는 것이다.

막내 처제는 술만 마시면 지나치게 솔직해져서 울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은 오래된 습관이며 막내로서의 정체성을 어김없이 만방에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위는 가족이지만 더불어 남과 다름없기도한 포지션이라서 자매들의 가족사에 쉽사리 끼어들지 못한다. 이날도 막내 처제는 술이 과하게 취하기 시작하면서 감정의 텐션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쏟아져내릴 소나기처럼 울음보가 터질 것이라는 경고신호였다. 막내 처제의 울음은 항상 신세한탄과 억울함을 동반한다. 그런 감정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매들이 없을 것이지만, 자매들이 이래저래 달래고 얼버무리려 하지만 처제는 막내로 자라온 오랜 습성탓인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사십줄에 거의 근접했지만 여전히 대단한 미모를 자랑하는 막내 처제의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었다. 보다 못한 내가 저 지긋지긋하고 난감한 울음보를 끊기 위해 손수건을 건냈다.

"처제! 이걸로 닦아!"

평소 내 손수건 관리가 어떤지 잘 알고 있는 집사람이 기함을 한다. 그 양말은 손수건이 들어있는 호주머니에 같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사람 얼굴 닦으라고 주는거야?"

머쓱했지만 나는 처제의 울음보 타이밍을 끊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밀어붙였다.

"고마워요. 형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처제의 울음보 타이밍을 잠시 끊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처제는 더러운 손수건을 화장실의 세면용 수건처럼 꼼꼼히 눈물을 닦아냈고, 그것은 잠시간의 막간휴식용 잔꾀밖에 되지못했다. 막내 처제는 이후에 더 가열차게 울어댔고, 자매들은 난감함 속에 늦은 새벽까지 늪에 빠진 것처럼 막내의 울음보에 갇혀 있어야했다. 덕분에 그 암울한 피로감은 연 이틀을 따라다녔고, 막내 처제는 울고 난 다음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우리 가족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외로움과 평상시의 대화단절이 큰 원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가족간의 일도 그렇고, 세상 모든 일들은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하는데에서 모든 갈등이 조장된다고 생각한다. 리스너로서 소양을 갈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다음번에는 양말과 손수건은 서로 다른 호주머니에 따로 넣어 보관해야 겠다...


댓글 2

  • 001. Lv.52 사마택

    19.06.20 21:34

    다한증이 있으시군요. 저도 수족 다한증이 있는 편입니다.
    다행히 나이가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는데요.
    그 기분 잘 알죠.
    특히. 겨울에 발에 땀이 나면 뜨끈해지고, 땀 때문에 발가락 사이가 미끈해지죠.
    찝찝하죠. 그러다가 땀이 식으면 발이 엄청 시려워요.
    벗으면 양말은 축축하게 습하고 냄새도 고약하고.
    그래서 저도 집에 있으면 맨발로 히히.
    아, 제 서쟁에 남긴 댓글 봤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막내 처제분께서 시집 가셔야겠네요.
    저란 연령대가 비슷한거 같은데. 저도 가끔 울컥할 때가 있더군요
    혼자 꽤 자주 울었죠.

  • 002. Lv.45 유나파파

    19.06.20 23:45

    ㅜㅜ 좋은 말씀 공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한증이었군요. 그런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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