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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파파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지난 여름의 어느 주말...

나는 영낙없는 집돌이 방콕 스타일인데, 아내는 둘째 사내 아이 놀린다는 명목으로 주말이 되면 어디든 가야한다고 나를 들깨나 참깨가 되도록 들들 볶는다.

보통 금, 토, 일요일이 되면 휴일이라는 생각이 뇌리 깊디 깊은 곳에 콕 박혀서 영화나 드라마 혹은 내가 관심있어하는 그 무언가를 들여다보면서 늦은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인데, 아내는 느닷없이 아침 일찍부터 온 가족을 깨워서 (사전에 협의된적 없거나, 물어본 적도 없는...) 어딘가에 가기로 했다는 식의 통고를 곧잘 한다.


아니 엄청 자주 한다.

그것은 내게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어린 둘째놈 때문에라는 핑계는 가히 천하무적이다. 그 주장 앞에 어떤 형태로든 거절이 용납되지 않고, 어떤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걸 거부하거나 겉으로 내색하면 장기 전면전을 치를 각오를 해야하는데, 전면전이 시작되면 일단 매끼니마다 내 밥과 국, 수저가 식탁에서 빠져있는 것을 육안으로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보복 조치는 참으로 치졸하고 트럼프스러워 보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 여름 부천에있는 어느 거대한 수영장이 딸린 복합시설에 가기로 했었는데, 차 운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길에서 시간을 소모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내게 옆동네도 아닌 시경계를 넘어가는 일은 더더욱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나게 했다.

결론적으로 그 이동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내내 꽁한 마음으로 나는 쫌생이처럼 수영장에 끌려가야만 했다.

대기줄은 어마무지했고,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도착한 가족들이 천지삐까리였다.

엄마들은 망아지처럼 날뛰는 아이들을 달래고 구스르고, 윽박지르는 모습들이었고, 지난밤에 무엇을 했는지 아빠들은 하품을 하며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모든 것들을 달관하거나 방관하는 눈빛이었다.

아빠들 사이에는 사전에 모의하지 않은, 묘한 유대감이 보이게 않게 형성되어 있었다. 과장하자면 마치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오는 전우들의 끈끈한 유대처럼 그러했다.

수십분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입장표를 끊고, 양손에는 튜브, 구명조끼, 먹거리들을 잔뜩들고 방방 날뛰는 아이들을 달래가며 입장을 했다.

입장하는 곳 직전 입구에는 으레 보험이나 학습지, 카드 영업사원이 여러가지 경품 따위를 늘어놓고, 그것들이 마치 공짜인양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아내는 대장부처럼 어떤 일말의 의심과 저어함 없이, 개인정보를 적고 아이들에게 경품으로 받은 장난감을 쏘쿨하게 넘긴다.

"적어!"

협조하라는 말투가 아닌, 숫체 명령조지만 거역할 수 없다. 아내는 자신의 신상외에 나의 신상마저 세상에 팔아 아이들의 공짜 장난감 하나를 더 마련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저기에 내 인적사항들을 적으면, 이제 밤낮으로 바이러스처럼 퍼져 중구난방으로 오는 스팸문자와 광고전화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아내의 무대뽀적인 강압과 잠시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위해 과감하게 그것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바삐 걸음을 놀린다. 수영장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인파의 모습이 마치 이십수년전 춘천 102보충대에 끌려가는 내 모습을 연상시켰다. PTSD 같은 트라우마가 날 집어 삼키려 했지만, 나는 그 따위 것에 굴복할 수 없었고, 아이들의 유희를 방해할 수 없었다.


수영장 안은 그야말로 사람반 물반.


목욕탕이 따로 없다.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든다. 둘째 놈이 내 손을 뿌리치고 미친 황소처럼 물을 향해 달려든다. 저 저돌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물이 둘째 놈에게 저돌성을 부여하는 걸까? 아니면, 그 나잇대는 원래 저돌성을 타고나는 것인가? 세상에 모를 일 투성이다.


“나오니까 얼마나 좋아.”


아내의 말은 내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좋다’라는 대답을 하도록 유도하는 강압이 담겨있었다.


“아하하. 좋다. 좋아.”


나는 속없는 놈처럼 웃으며 아내의 말에 대답했지만, 입모양만 웃는척 했을뿐 실상 눈은 웃음짓지 않았다. 이것은 고도의 기술로 나의 불만을 아주 작게나마 민주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왜냐고?


난 평화를 원하니까.


아침을 먹어야 일을 할수 있으니까. 참는 거다.


그리고 내 마음은 대양과 같이 넓으니까...


어느 매체에서 읽었는지 모르지만 그곳의 결혼 선배들이 영혼의 바닥까지 긁어내 하던 조언들이 내 귀전에 와서 노래방 에코소리처럼 와 닿는다.

"그러게 내 말듣지 그랬어. 결혼은 지옥이라고..."


그럼 내가 발 디딘 곳이?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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