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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미드필더 삼촌의 미친패스가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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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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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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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르가즘

DUMMY

3화



서울 조광의 감독 김재승은 오늘 경기가 무척 중요했다.


리그 잔류 여부가 결정되는 날이다.


리그 전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도 쓰라린 일인데, 강등까지 된다면 생에 최악의 커리어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런 재승은 며칠 전 구단으로부터 아예 통보를 받았다.


팀이 2부 리그로 떨어진다면, 남은 기간과 상관 없이 계약 해지 당할 거라고.


한마디로 조건부 해고 통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승격 매치 2차전이 시작됐고.


감독 재승은 자신이 생각하는 베스트 멤버로 출전했다.


시즌 내내 그랬듯 중앙 미드필더 정호성의 출전은 고려되지 않았다.


물론 재승은 알았다. 호성의 오늘 경기가 그의 생에 마지막 경기라는 걸.


호성은 올해 은퇴를 선언했다. 주전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팀에 있었고, 필드에서 자주 뛰지는 않아도 카리스마가 있고 또 연장자여서 동료들이 따르는 선수였다.


그래서 감독 재승은 잔류를 확정하면, 끝에 몇 분 호성을 출전시켜 그의 은퇴를 나름 기념하려고 했다.


예컨대 1점도 아니고 2점 차로 이기고 있어서 잔류가 정말 안전하게 확정이 되면.


하지만 스코어는 계속 무승부였다가 결국 한 골 먹히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재승의 머릿속에 호성의 은퇴 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한데 주전 수비 미드필더가 부상을 당해 들것에 실려 나갔다.


벤치에는 수비수는 물론 다른 수비 미드필더도 있지만, 재승의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은 중앙 미드필더인 호성이었다.


공격수도 한 명 있었지만, 수비 미드필더가 빠져 허리가 얇아졌는데 공격수를 집어넣는 건 지나치게 모험 같았다.


그러다가 한 골 더 실점하면 어쩔 텐가? 그렇게 되면 희망은 사라지고, 패배가 그대로 확정되고 만다.


그래서 감독은 호성을 출전시켰는데.


이 같은 판단은 김재승의 감독 생활 중 가장 뛰어난 선택이 되었다.


*


나는 필드로 나와, 가볍게 달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의 시야인지 머릿속인지, 하여간 직사각형의 도형 위에 열 한 개의 점이 분주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니, 보였다고 표현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입력됐다고 표현해야 하는지 하여간 실시간으로 그랬다.


나는 이것이 즉각 축구 게임에 나오는, 필드 위 선수 레이더 즉 미니 맵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열 한 개의 점은 우리 팀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현재 내가 달리고 있는 움직임과 필드 위 한 점이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 진영이 아니라 우리 진영 쪽으로 점이 열 한 개 있는 것도 그렇고.


그래도 그렇지, 현실이 게임도 아니고, 내 눈에 미니 맵이 보인다고?


심지어 내가 직접 보고 있지 않은 뒤편까지 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자리에 멈춰 손으로 눈을 비비고 뒤통수를 몇 번 때리기까지 했다.


“형.”


그러자 뒤편에서 지혁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해요?”

“···”


나는 답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 지혁이를 나타내는 점 하나도 움직인다.


삐익-!


이러나저러나 휘슬이 울리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뭐가 보이든 말든 일단 뛰어야 한다.


팀이 강등될 위기에 빠졌다.


하위권으로 시즌을 마친 적은 몇 번 있었던 우리 팀이지만, 강등 위기는 또 처음이라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마지막 경기가 아닌가.


생각지도 못하게 필드를 밟게 됐지만, 이왕이면 좋은 활약을 보여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삼촌-!”


그런 생각으로 뛰고 있는데, 관중석 한가운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초희였다.


그러니까 어제 부로 내 삶에 등장한, 나의 조카라는 정초희.


그 애가, 나를 부른다.


초희는 한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지혁이가 재빠르게 경기장에 부른 여자 즉 그의 아내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여자다.


초희를 경기장에 데려왔을 때, 사람들은 물론 모두 놀랐다.


결혼 같은 거 하지 않은 내가 아이를 안고 왔으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나는 지혁이에게 말한 대로, 짧게 사정을 설명했고.


그러자 사람들은 금세 이해하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래도 경기 당일 날 아이를 데려온 건 너무하다 싶었는지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근데 뭐 어쩔 텐가, 애를 봐 줄 사람이 없는데.


더군다나 나는 오늘이 마지막 경기다. 좋든 싫든, 이렇게 와야 했다.


그리고 애를 좋아하는지, 초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웃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경기장에 온 지혁이 마누라도 그렇고.


“삼촌!”


아이가 계속 날 부른다.


난 슬쩍 아이를 한 번 봤다가는 경기에 집중했다.


뭐가 어찌 됐든 내 머릿속 필드 위의 점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경기는 진행 중이다.


우리 팀이 공격 중이고 경기 종료까지 몇 분 남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대로 게임이 끝나면 우리 팀은 팀 역사상 최초로 2부 리그로 강등되고, 나는 그와 함께 내 생의 쓸쓸한 마지막 경기를 마치게 된다.


역시, 그건 싫다. 이왕 출전한 거, 어떻게든 잘 뛰어서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


공은 전방에 있다. 우리 팀의 공격수들이 돌파를 시도하다가는 여의치 않는지 후방으로 공을 돌린다.


그러다가는 내게도 패스가 왔는데.


“···!”


나는 놀랐다.


오늘, 초희가 찬물이 묻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만져 잠에서 깼을 때 나는 몸이 전체적으로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곳 필드에 나오자마자 잠깐 달려 보니, 확실히 컨디션이 좋았다.


아니, 단순히 컨디션이 좋은 것을 넘어 이런 적이 있었나 느꼈을 정도로 몸이 달랐다.


가벼우면서도 힘이 넘쳤다. 필드의 끝에서 끝까지 아주 금방, 동시에 강력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경기 시작 전엔 필드 위에서 거의 훈련을 하지 못했다.


초희 때문이다. 신발도 없는 초희를 안고 나름 케어하느라, 제대로 몸을 풀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필드 위로 나와 공을 가져보니.


다르다, 달라. 내 몸이 달라졌고, 발 끝에서 공을 컨트롤 하는 감각 자체가 달라졌다.


원래 축구 공이 이렇게나 미세하게 잘 느껴지던가?


거기에 의문의 미니 맵.


내 머릿속에 보이던 그 맵 위 열 한 개의 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나는 그것들 점 하나 하나의 방향은 물론 순간 밝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분명 밝기였다. 어느 점은 원래의 색과 다를 바 없었지만, 어떤 점은 확실히 평소보다 밝게 빛났다.


심지어 그 밝기는 시시각각 계속해서 변했다.


한편으로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머릿속의 미니 맵에 정신을 집중하면서도 공을 갖고 드리블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물론.


나의 머릿속 흐름과 신체적 활동이 완벽히 혼연일체가 되어 자연스럽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래 왔듯.


이 모든 게 워낙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내게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그 모든 게 완전히 익숙하고 또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일단 공을 갖고 전방을 향해 달렸다.


상대 미드필더 한 명이 내 공을 빼앗으려고 하기에, 몸을 살짝 틀어 볼 키핑을 했다.


나는 드리블이 화려하거나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 선수를 제치는 유형의 선수가 아니다.


그보다는 공을 어떻게든 지키며, 전방 쪽으로 패스를 뿌리는 역할을 주로 한다.


내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익숙한 방식으로 볼 키핑을 하는데.


확실히 모든 면에서 내 신체 능력이 좋아진 것을 느끼는 가운데, 상대 선수와 몸 싸움을 하게 됐다.


원래 이 정도가 되면 나는 패스를 한다. 공을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신체 균형과 힘이, 좋아졌다. 확실히 좋아졌다.


상대 미드필더는 나 이상으로 덩치가 좋은데, 어쩐지 내가 전혀 밀리지 않는다.


나는 자신감을 갖고 좀 더 적극적으로 몸 싸움을 하며 볼 키핑을 했고.


“···!”


한순간 상대 선수가 자리에서 넘어진다.


내가 따로 뭘 한 건 아니다. 공은 어차피 나의 소유이기에, 태클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선수가 쓰러졌다. 순전히 내 몸 싸움에 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 명의 선수를 쉽게 따돌리고, 전방으로 더욱 빠르게 달렸다.


확실히 속도 또한 달라졌다.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와아아-!”


관중들이 크게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형!”

“호성이 형, 여기 패스!”


동료들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아직 패스할 때가 아니다. 내가 상대 선수 한 명을 제치고 노 마크가 되었기에, 상대 수비진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 혼란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비록 평소 벤치를 뜨겁게 달군 나지만, 이 정도 쯤은 잘 알고 있다.


보통은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이런 식의 경기 운용을 하지 못했을 뿐.


확실히 내가 전방을 향해 빠르게 쇄도하자, 뒤늦게 상대 선수가, 그것도 중앙 수비수 한 명과 미드필더 한 명이 나를 막기 위해 다가온다.


순간 나는 놀랍게도, 이 두 명의 선수들 또한 따돌리고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러지 않기로 한다.


그건 평소 나의 플레이가 아닐 뿐더러, 무엇보다 그 미니 맵이.


정확히 하면 우리 팀의 선수를 상징하는 점들이 사정없이 깜빡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 수비진은 갑작스러운 나의 쇄도로, 라인이 무너졌다.


한마디로 우리의 기회다.


나는 머릿속 미니 맵과 전방의 상황을 눈으로도 모두 확인하며, 중앙의 공격수가 아닌 왼쪽의 윙 포워드에게 패스를 찔렀다.


사실 평소의 나였다면 중앙으로 공을 줬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앙 수비수 한 명이 나를 막기 위해 전방으로 나와 빈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미니 맵에 나타난 중앙에 있는 동료도 깜빡거리긴 하지만, 왼쪽 윙포워드가 훨씬 더 빛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그에게 패스를 찔렀다.


쾌감이 인다. 나는 스스로 이 느낌을 패르가즘이라고 칭한다.


나는 사실 이 패스를, 그것도 스루 패스를 사랑한다.


필드 위 그 어떤 행위보다도, 이 패스를 할 때 큰 쾌감을 느낀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니, 살아 생전 가장 큰 쾌감인 것 같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정교한 볼 터치에 이은 내 패스는, 상대 풀백의 뒷공간을 가로지르며 패널티 박스 왼쪽으로 빠르게 향했고.


“오오오오-!”


그 공을 윙포워드가 달려와 완벽하게 받더니 크게 툭- 툭- 두 번 터치하고는 오른 발로 강하게 슈팅을 때렸다.


“···!”


그리고 그 슛은 이내 골이 되었다.


“와아아아아-!”


승부를 원점으로 만드는 골이었다.


동시에, 내 삶을- 앞으로 완전히 달라질 내 삶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골이기도 했다.


“우오오오-!”


관중들이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나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패스의 쾌감에 이은 골의 전율이 아직까지도 내 몸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동료들이 마구 뛰고 역시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골을 넣은 윙포워드가 필드를 마구 뛰다가는 거의 전속력으로 달려와 나를 안는다.


나는 그렇게 녀석을 시작으로 동료들에게 겹겹이 안겨 있다가는.


“삼촌-!”


소리를 들었다.


초희, 그러니까 내 조카 초희의 목소리를.


동시에 그 말이 떠올랐다.


“초희가 형의 삶에 큰 힘이 될 거야.”


꿈에 나타난 병신 같은 동생 놈의 말이.


그 말은, 여지없이 사실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시절 헬멧이라도 하나 사 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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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돈도 안 되는데 +1 24.06.04 3,090 4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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