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게임

19화 2회차 - 트럼프 결투 (1)

1회차와 다르게 2회차부터는 프로그램 소개를 딱히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조명이 켜진 상태로 촬영을 시작했다. 정해진 순서상 촬영장에 가장 먼저 들어온 대가는 왠지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순서는 항상 바뀐다고 했기 때문에 이제 자신이 첫번째로 들어오는 일은 꽤 오래 지나야 할 것 같아 첫 순서의 산뜻함을 마음껏 느끼고 있었다. 원래는 들어와서 대사를 쳐야 하지만, 딱히 할 얘기가 없어 1회차 때 미처 보지못한 스튜디오를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타 방송국의 비슷한 프로그램을 표절 아닌 표절을 했기 때문에 꽤나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심지어 스튜디오마저도 어설프게 따라해 굉장히 뭐가 많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대가는 그 프로그램의 애청자였기 때문에 '바보 게임'에 섭외되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솔직히 섭외를 받아들인 것이 잘한 결정인지 살짝 의문이었다.

아직 방영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촬영만 한 상태였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기대감에 비해 대가가 직접 바라본 이 프로그램의 모습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그것과 굉장히 달랐다.

아무리 출연진들이 바보라는 컨셉을 잡고 나왔다지만, 이미 사람들이 기대하는 치열한 두뇌 게임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렇다고 이런 서버이벌 류의 매체에서의 흥미진진한 정치, 심리 싸움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물론 자신도 결국 저번 화에서 이기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회차의 서든 데스를 보면서 1화만에 벌써 결국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들 우승을 하지 않으려는 본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번 2회차는 또 어떤 식으로 아무 이유 없이 난장판을 만들고,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올지 벌써부터 예상이 되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와중에 유자와 철도가 동시에 입장했다.

저번 화에서 나름의 연합이 만들어졌었기 때문에 이번 화는 일부러 이런 식으로 순서를 잡아놓았다. 사실 같은 연합이었어도 유자와는 원래 친했고, 철도와는 아직도 서먹서먹해서 셋이서 오디오를 채우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유자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우리 세명은 결국 20 만원도 먹고, 살아남았네요!"

"진짜 뭘 딱히 한 건 아닌데, 3등을 했네."

"에이. 아무것도 안 하긴요. 필승법 오빠가 발견했잖아요."

"그게 말이 필승법이지, 아무 의미가 없어서···."

유자가 첫 시작을 열어놓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갔고, 나머지 사람들도 차례차례 들어왔다. 하지만 저번 화에 대해서 얘기하던 건 처음 그 대화 뿐이었고, 사람이 늘어나자 점점 쓸데없는 얘기로 변질되어갔다.

"어제 감자탕을 먹었는데 속이 너무 안 좋아. 중간에 화장실 가야될 것 같아. 오늘 아침에도 계속 설사가 나가지고."

"형님, 또 거기 가셨어요? 그 감자탕 좀 이상하다니깐요."

뭔가 이끌어나갈 생각은 없고, 잡담만 계속 나누고 있자 보다못한 내레이션이 결국 이들의 대화를 끊고 진행을 시작했다.

ㅡ바보 게임 2회차의 날이 밝았습니다. 박철배 씨가 우승하여 나간 뒤, 이제 9명의 참가자만이 남아있습니다.

"아. 걔 탈락했지?"

"탈락이 아니라 우승이에요."

ㅡ현재 각 참가자의 상금은 다음과 같습니다.

ㅡ

강지로 : 100 만원

강태왕 : 200 만원

권나애 : 120 만원

네온 : 120 만원

박대가 : 120 만원

유자 : 120 만원

최형영 : 0 원

최희요 : 120 만원

황철도 : 120 만원

ㅡ

"와. 200 만원이 독보적이긴 하네. 이게 1등은 좀 손해인데, 2등은 또 괜찮네. 이거 쌓이면 나중에 대박일 것 아냐."

그렇게 말은 해도, 모두들 불안하게 2등을 노려 그런 상금 조금을 더 받는 것보다는 계속해서 방송에 노출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걸 속으로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가는 이 프로그램 자체가 1화에 시청자들에게 욕을 한사발 먹고 거하게 망할 것 같아 이젠 그런 것들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1등을 하고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대가도 마찬가지였다. 1등을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문제였다. 모두가 1등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아무렇게나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플레이를 하다보니 1등을 하는 것 또한 의도치않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오늘 게임은 뭐죠? 이거 은근히 재밌던데?"

"전 이번에 1등 하려구요. 다들 막지 마세요."

"저번 화 꼴등이 뭘 1등을 한다고 그러세요."

이번에도 역시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로와 형영이 거의 모든 흐름을 이끌어 나갔다. 형영은 이번엔 정말로 1등을 해 우승해서 나갈 생각이었고, 지로 역시 1등을 하고싶지는 않아도 저번 서든 데스에서 이 프로그램의 망조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최선은 다할 생각이었다.

ㅡ2회차 게임은 '트럼프 결투'입니다.

"이런 게임은 어디서 만드는 거에요? 이것도 표절인가?"

"게임들 하나같이 엉성하던데 급조한 것 같던데요."

"이번 것도 이름이 되게 엉성해보이는데."

ㅡ'트럼프 결투'는 모두들 익히 아는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하는 게임입니다.

"오. 저거 자체제작을 한 것 같은데."

진행 요원이 들고 나온 견본 트럼프 카드는 뒷면에 바보 게임의 마크가 새겨져있는 뭉치였다. 그래도 저번 화보다는 나름대로 신경를 쓴 것 같아 어떤 게임일지 기대가 되었다. 무슨 게임이든 사람들이 제대로 할 지는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동전만 뒤집다가 끝난 저번 게임보다는 흥미를 이끄는 데에는 성공했다.

ㅡ각 참가자가 받을 뭉치에는 1부터 10, 그리고 J, Q, K, 조커 이렇게 14장의 카드가 들어있습니다. 카드 뭉치를 받은 참가자들은 1시간동안 자신의 카드 순서를 각자 구상하여 제출합니다. 그 순서는 주어진 1시간이 지난 후에는 바꾸지 못합니다.

"뭔 카드 하나 섞는 데 1시간을 줘? 여기 시간 개념이 저번부터 좀 이상한 것 같아요."

ㅡ제출한 카드는 진행 요원이 맡아 관리하며, 게임이 시작하고나면 앞에 있는 이 두 테이블에서 결투를 할 수 있습니다. 결투는 양쪽이 원할 경우에만 할 수 있으며, 결투 도중 한명이라도 더이상 하기 싫다고 선언한다면 진행하지 않습니다.

스튜디오 앞에는 보란듯이 테이블이 나와 있었다. 저번보다 조금 많아진 진행 요원이 이 이유였다. 테이블 자체는 저번 서든 데스 때 쓰던 테이블과 같았기 때문에 별다를 것이 없었다.

ㅡ원할 때까지 가장 위에 있는 카드부터 동시에 오픈해 높은 숫자의 카드를 가진 사람이 승점을 따는 식입니다. 이 게임의 결과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화면에 표시되며, 시간이 지나더라도 계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승점을 따는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와 복잡하네."

ㅡ

2부터 10의 카드로 이겼을 경우 : +1점

J, Q, K의 카드로 이겼을 경우 : +3점

조커로 이겼을 경우 : +5점

1로 조커를 이겼을 경우 : +20점

ㅡ

ㅡ보시면 알겠지만 높은 숫자가 낮은 숫자를 이기며, 단 하나 예외가 1이 조커를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규칙의 반대 상황은 마이너스 1점씩 하게 됩니다. 가령 Q로 2한테 이겼을 경우, 2를 가진 참가자는 1점을 잃고, Q를 가진 참자가는 3점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1로 조커를 이겼을 경우 20점을 얻고, 조커로 1에게 졌을 경우 20점을 잃습니다.

1과 조커에서 승부가 갈렸을 때의 승점이 워낙 어마어마해 모두들 그것에만 시선이 갔다. 아무리 나머지 13장의 카드로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잃었든, 조커 한방으로 단번에 뒤집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게임이 이해가지않는다고 해도 조커가 중요한 것만은 다들 알 수 있었다.

밀폐된 방에 들어가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저번 게임과 달리, 이번엔 환하게 열린 공간에서 누가 무엇을 냈었는지까지 친절하게 계속 화면에 표시되기 때문에 쓸데없는 짓을 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더군다나 자신의 카드 순서 또한 곧 있는 준비 시간동안만 꾸리고나서 다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이 1시간동안 생각을 잘 해놓지 않으면 이번 게임 내내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ㅡ그렇게 해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카드를 모두 털어내고 나면 게임이 끝이 납니다. 가장 높은 승점을 가진 참가자가 우승자, 가장 낮은 승점을 가진 참가자가 최하위자 됩니다. 물론 두명 이상의 1등, 혹은 꼴등이 생길 경우 간단한 미니게임인 서든 데스를 시행합니다.

다들 뭘 어떻게 카드 순서를 구성해야 자신이 원하는대로 할 수 있을지 감도 제대로 못 잡고 있는 가운데, 카드를 구성하기 위한 1시간이 시작되었다.

***

*트럼프 결투 게임 규칙

-각 참가자는 1부터 10, J, Q, K, 조커가 있는 총 14장의 카드 뭉치를 받고 카드 순서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구성한다.

-주어진 1시간 동안 카드 순서를 꾸린 뒤에는 순서를 다시 바꿀 수 없으며, 카드는 진행 요원이 관리한다.

-서로 합의가 된 경우 준비된 테이블에 와서 결투를 할 수 있다. 결투는 각자 가장 위에 있는 카드부터 동시에 오픈해 높은 숫자를 가진 사람이 승점을 가져가고, 더 낮은 숫자를 가진 사람이 승점을 잃는 식이다. 승점 계산 방식은 화면에 항상 표시되어있다.

-둘 중 한명이라도 도중에 결투를 중단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누구와도 결투를 할 수 있다.

-한 번 결투에 쓰인 카드는 폐기하며, 모든 카드를 소모한 시점의 승점이 자신의 최종 점수가 된다.

-점수는 0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

2부터 10의 카드로 이겼을 경우 : +1점 (졌을 경우 -1점)

J, Q, K의 카드로 이겼을 경우 : +3점 (졌을 경우 -3점)

조커로 이겼을 경우 : +5점 (졌을 경우 -5점)

1로 조커를 이겼을 경우 : +20점 (졌을 경우 -2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