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1회차 - 동전 뒤집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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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바보.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바보들은 옛부터 약간 멍청하거나 어리석다는 이유로 항상 놀림받고 비난받아왔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은은한 조명이 켜지면서 중후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ㅡ하지만 바보라고 놀림받고 비난받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약간 어리숙하고 남들보다 서툴 뿐이죠. 하지만 여러분 자신은 알 겁니다. 그 바보 이미지에 가려진 당신의 진가를. 그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여기 있습니다. '바보 게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꺼져있던 모든 조명이 환하게 비춰지면서 '바보 게임'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깜깜한 어둠에서 갑자기 환하게 빛나니 타원꼴로 줄지어 있던 사람들은 눈이 부셔 앞도 제대로 못 볼 지경이었지만 박수를 쳐주었고, 내레이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ㅡ'바보 게임'은 여러분의 두뇌를 100% 발휘하여 진짜 여러분을 마음껏 발휘하는 게임입니다. 10명의 플레이어들은 총 10 라운드 동안 치열한 두뇌 게임을 통해 누가 진짜 바보인지 가려내게 됩니다. 각 라운드마다 승리한 플레이어는 '바보 게임'을 떠나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누가 최고의 바보인지 겨루는 역서바이벌입니다.
연예계에서도 시끌시끌한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다보니, 내레이션의 말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자신들끼리 조잘조잘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내레이션은 아랑곳하지않고 '바보 게임'의 전체적인 룰을 설명해주었다.
ㅡ각 라운드마다 본 게임에서는 두뇌를 활용하는 치밀한 게임을 하여 우승자를 가려냅니다. 우승자는 지금까지 얻은 상금에 추가로 그 라운드의 플레이어 수에 100만원을 곱한 만큼 상금을 얻고 나가며, 나머지는 전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합니다. 그렇다고 우승을 못한다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각 라운드의 최하위자는 지금까지 얻은 상금을 몰수당합니다.
파격적인 규칙에 사람들은 동요했다. 각 라운드마다 우승자가 나간다는 역서바이벌이라는 규칙은 이미 제작진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돈까지 걸려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ㅡ각 라운드의 우승자나 최하위자가 여러 명일 경우, 간단한 규칙의 '서든 데스'에 들어가 최종 우승자나 최하위자를 가려냅니다. 어찌됐든 상금은 여러분의 동기를 북돋아낼 수단에 불과하며, '바보 게임'의 최종적인 목적은 명예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럼 '바보 게임'에 참가하신 10분의 플레이어들을 소개합니다!
쓸데없이 반짝이는 꽃가루들이 휘날리며 본격적인 출연진들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전형적인 진행이었지만, 각자 각기 다르 의미로 '바보'로 칭해지는 만큼 거기에 치중해 한명한명을 소개하였다.
소개를 하는 동안, 이런 예능이 익숙치않은 아이돌 박대가는 눈만 끔뻑끔뻑거리며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수많은 예능을 나와봤지만, 그는 신기하게도 요즘들어 숱하게 많아진 서바이벌 예능은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서바이벌 예능이라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의 등용문 비슷하게 진행되거나, 기성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떨어지면 얼굴을 못 비춘다는 점에서 조금 꺼려지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사실 대가는 서바이벌 예능에 나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뭔가 어설프고 어리숙해 항상 놀림받았지만,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보드 게임 같은 것을 할 때에는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기가 막힌 플레이를 보여주며 실력을 자랑하곤 했었다.
자신이 어리숙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이번 기회에 이미지 변신을 꿰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섭외가 들어왔을 때 단번에 수락을 하였다. 그리고 제작 발표 때부터 입소문을 모아왔던 그 명성답게 자신과 마찬가지로 각종 방송에서 '바보'같은 이미지로 비춰지는 유명한 사람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처럼 진짜 조금 어리숙한 사람들도 있었고, 방송에서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도 있었으며, 오늘 촬영에서 처음 봐서 전혀 파악이 안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나마 대가가 친분이 있는 사람은 같은 아이돌인 유자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자는 사석에서도 자주 만날 정도로 꽤나 친한 또래 친구였기 때문에 그녀가 바보같이 띨띨한 면은 있지만, 누구보다 순수하다는 것을 대가는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녀만큼 대가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유자 옆에 서있는 개그맨 강지로였다.
사실 지로는 비단 대가 뿐만 아니라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알 정도로 방송에서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완전히 상반된 자였다. 방송에서는 바보같고 어리숙한 모습은 내내 보여주지만, 카메라만 꺼지면 자신보다 급이 낮은 사람들과는 말도 제대로 섞지않을 정도로 냉혹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화기애애하고 어디서나 분위기를 띄우는 활력소였기 때문에 오늘도 어김없이 소개가 끝나고나자 지로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진짜 어마어마한 바보들만 죄다 모아놨네요. 저도 만만찮은데 진짜 골고루 다 모아놨어요."
"지로 씨가 생각하는 여기서 최고 바보는 누구죠?"
"다방면에서 바보들을 골고루 모아놔서 꼽기도 애매해. 이 사람들 데리고 방송이 되겠어요? PD 정신 나간 거 아니야?"
지로의 첫 시작에 재빠르게 맞장구쳐주며 받아주는 사람은 평소 다른 예능에서도 항상 지로와 붙어다니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최형영이었다. 사실 대가는 형영의 출연에 처음부터 굉장히 의문이 들었었는데, 지로가 나온 것을 보고 바로 지로가 부탁해 방송에 꽂아줬다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형영이 여러 방송에서 아나운서치고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 웃음을 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나운서치고'였다. 지금 하나같이 뭔가 나사 빠진 사람들만 모아놓은 '바보 게임'에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출연자였다.
하지만 그래도 형영과 지로가 진행을 도맡아 하다보니 시작하기 전 어색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과 같은 진행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근데 표절 아니에요? 그 T 방송사에서 똑같은 프로그램 있잖아요. 그 지 뭐시기···. 완전 똑같은데. 세트장도 비슷하고 사람 수도 비슷하고."
그들의 첫 시작에 뒤이어 입을 연 사람은 나름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느낌이지만 나올 때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바보 이미지가 제대로 박힌 황철도였다. 사실 바보라기보다는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보는 것이 맞았는데, 한 번 어떤 퀴즈 프로그램에서 꼴등을 해버리는 바람에 어찌보면 '바보 게임'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못하면 떨어지는 거고, 이건 잘하면 떨어지는 거잖아요. 완전 틀린데요?"
"네. 많이 틀리네요."
"뭐 퀴즈 푸는 거에요? 저 퀴즈는 진짜 자신 없는데."
"퀴즈가 아니라 무슨 마피아 게임 같은 거 하는 것 같은데."
조금만 가만 놔두자 조잘조잘 정신없이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통에 정리가 안 되자 내레이션이 나서서 마저 진행을 했다. 아무리 지로와 형영이 이끌어나간다 해도 그들 역시 참가자여서 대화가 만담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아닌 내레이션이 나서는 것이 맞았다.
ㅡ'바보 게임'은 여러분의 두뇌, 판단력, 지능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게임을 통해 승부를 가려내게 됩니다. 일단 가장 먼저 오늘 여러분들에게 분배된 상금을 공개하겠습니다. 이 상금은 게임 시작 전, 끝난 후, 그리고 게임 중간 중간 얻을 기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하위자가 될 경우 몰수당한다는 것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화면에는 각자 100만원씩의 상금이 표시되었다. 어차피 출연료는 따로 받고, 거기에 얹혀서 가상으로 존재하는 상금이기에 아직까지는 그리 큰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이런 것이 공개될 때의 특유의 리액션들을 다 같이 해주었다.
같은 그룹의 멤버들과가 아닌 오랜만에 혼자 나온 예능이기에 대가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불타올랐다. 하지만 대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이겨야겠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대 오늘, 1라운드에서는 우승하면 안된다.
아무리 상금이 탐난다한들, 제작 발표 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입소문을 모은 만큼 허무하게 1라운드부터 떨어지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수였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러 최하위를 기록해버리면 돈을 몽땅 다 잃어버리는데다, 그것보다 더한 여론의 몰매를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대부분 각종 방송에서 요즘도 얼굴을 자주 비추고 있는 사람들인만큼 상금이 크긴 해도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1등과 꼴등을 피하면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적절하게 활약을 내비춰주는 것이 중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데다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예능에서 쉽게 보기 힘든 우승을 갈망하는 그들의 진짜 내면. 하지만 그들은 절대 자신들의 진짜 내면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 무조건적으로 1등을 하고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대망의 1라운드 게임이 공개되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게임의 이름에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다.
ㅡ1라운드 게임은 동전 뒤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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