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멍청한 판타지 모음집 2 터보

17. 귀족 영애

높은 귀족의 영애로 전생한 그녀는 자기보다 하위인 귀족의 초대를 받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사람들한테 인기도 별로 없고 영지 하나에 광산 하나 가진 게 전부인 귀족이라던데. 차라리 내 이미지 개선용으로 소모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극진한 대접과 환영식, 관광코스를 준비했다는 서신을 적당히 영애는 자신을 초대한 귀족의 영지를 방문해 영주를 만나는 대신, 고아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귀족의 권유를 대놓고 무시한 결례 중의 결례였으나, 일개 시민인 고아들과 원장이 그걸 어떻게 알까. 그들은 갑자기 전달받은 따뜻한 수프와 많은 선물에 고마움을 느낄 따름이었다.

한편, 인류 왕국의 기사단이자 최대급 언론사인 튜버 타임즈 소속의 기사들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그들은 사진을 찍은 시점에서 자신들의 기사가 나간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다.

***

다음 날, 영애가 자기 초대를 무시하고 봉사활동을 갔다는 기사를 받은 영주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신문을 갈기갈기 찢었다.

“얼씨구? 지방 귀족이라고 아주 교류가 좆으로 보였다 그거지? 집사!”

“여기 있습니다. 본보기로 고아원을 폐쇄할까요?”

“뭐? 아니, 그러면 우리 영지 사람만 피 보잖아. 피를 보려면 저쪽 사람들이 봐야지. 당장 광산 담당관에게 연락하시오. 이번 달 그 지방으로 가는 석탄 마차는 단 한 대도 없을 거라고!”

마구간 문이 굳게 닫히고,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위로는 눈이 소복이 쌓였다.

영애가 인기 없다고 평가한 그 영주는 비록 하위이기는 했지만 똑 부러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칼 같은 일 처리가 장점인 사내였다.

또한 그가 소유한 광산은 일대에서 가장 질 좋은 광물을 대량으로 생산해냈는데, 주변 영지는 사실상 이곳에서 유통하는 석탄에 의존하지 않으면 겨울을 버틸 수 없었다.

물론 그건 영애의 영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영지보다도 사정이 훨씬 심각했다.

평소 영애는 전생의 기억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해요!’라고 주장했고, 임업이나 농업을 ‘따위’로 취급하며 제조업 육성에 힘썼다.

식량과 땔감 따위는 유통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게 영애의 평소 주장이었고, 주변과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 말이다.

그해 겨울, 영애는 자신을 초대했던 영주의 별명이 ‘겨울 심장을 가진 북부 대공’인 이유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겨울이었다. 눈은 전년보다 더 거세게 내렸고, 그녀의 영지에서 생산된 사치품은 눈에 파묻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