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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쓰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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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작품등록일 :
2021.05.12 19:01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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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82,298

작성
23.09.2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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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평화를 끝낼 준비4

DUMMY

“아가씨, 기상하실 시간입니다.”


아침을 맞아 새가 지저귀고 맑은 햇살이 온몸을 간질이며 하루가 시작되는 활기찬 소리가 들리... 긴 개뿔.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에게 그런 게 어디 있겠는가. 아침은 그저 저주받은 시간일 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몸은 알아서 스르르 움직였다. 비누로 머리를 깨끗이 감고 세안을 한 뒤 간단한 화장을 그냥저냥 끝마친 그녀는 천근 같은 다리를 애써 움직여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먹었다고 해야 할지 입속에 구겨 넣었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결과는 같았다. 그 후 간단히 양치하고 옷장을 벌컥.


“음...”


평소라면 ‘에이, 대충 입고 가자.’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부서를 옮긴 첫날. 아무리 그래도 첫날부터 대충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에게 따라붙는 시선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고민 끝에 그녀는 흰색 속옷 위에 얇은 속저고리. 새로 구매한 철릭까지 입고 거울을 보자 나름대로 봐줄 만한 몰골이 나왔다.


상의 부분은 자연스럽게 비쳐 보였고(팔 부분이 아주 약간 비쳐 보이는 수준. 몸통은 속옷부터 철릭까지 모두 하얗기에 비쳐 보임에도 비쳐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위에 얇은 치마를 덧입자 철릭에 있던 꽃무늬가 은은한 푸른빛에 맴도는 느낌이 썩 인상적이었다.


마치 투명한 바다 가운데에 꽃밭이 보이는 느낌? 신경 써서 차려입자 이전에 차려입었던 옷들은 모두 거적때기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거기에 노리개까지 잘 어우러지니 이만하면 첫인상에서 까일 일은 없겠다 싶었다.


“... 에이, 이 얼굴로 무슨.”


그녀가 생각하기엔 이 얼굴로 적어도 사내놈들에게 첫인상이 망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남편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만나온 사내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붉히기 바빴으니까.


나름대로 발해 제일미까지는 아니어도 서울 제일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아, 물론 어릴 때 일이긴 하지만.


아침인데도 퍽 따가운 햇볕에 양산을 펴니 이제야 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걸어서 이십 분 정도에 직장이 있다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그만큼 아침에 더 잘 수 있다는 거니까.


지긋지긋한 출근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휘갈긴 그녀는 사무실 문 앞에서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새로 발령받은 6급 사무관, 이지은입니다.”


“허이구, 이거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지는구만! 자자, 이리 오게나. 아, 난 예산계획과장 최염이라 하네.”


그녀가 안내받은 자리로 향하자 최염은 웃으면서 한 명씩 부서원들을 소개했다.


다행히 소개받은 이들은 적어도 그녀의 외모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불쾌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들이라는 것이 참 맘에 들었다.


“전에 거시경제과에 있었다고 그랬지?”


“예”


“그래도 하는 일이 그나마 비슷한 곳에 왔으니 다행이구만. 모르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게나. 우리 사무실은 다 가족같은 사이니 말일세.”


실로 그의 말대로였다. 흐르는 분위기만 봐도 가족까지는 아니어도 퍽 친밀해 보였다.


근데 예산계획과면 재무부 내에서도 중요한 부서 아닌가? 당연히 위로 올라가려는 욕심 하나씩은 있을 거고 그러면 이렇게까지 친밀할 수 없는데?


그런 그녀의 의문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그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예산기획과가 요직이라 말하면서 부러워하지만 그건 반만 맞다네. 항상 온갖 부서에서 예산을 달라고 떼쓰며 매달리거든. 뭐, 맷집 하나는 충-분히 길러갈 수 있을걸세. 하하하!”


그녀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교육받으며 오전 업무시간이 끝나고 대강 식사마저 마치자 그녀는 눈치를 살살 보며 정원으로 향했다.


“사무관님, 이곳은 출입 금지... 어? 공주님을 뵙”


“아, 무슨 공주님이에요. 촌수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냥 산책만 하다 갈게요.”


진심으로 질색하며 손을 휘휘 내젓자 시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비켰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한두 대가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몇 대가 차이 나는데 무슨 놈의 공주는 공주.


물론 그녀의 상황이나 지영의 상황은 일반적인 것이 아닌 만큼 그녀도 엄연히 공주로 불릴 만했다. 지영을 제외하고 본다면 (지영의)장녀의 적통이었으니 훌륭한 공주인 셈이다. 거기에 지영이 뿅 하고 껴서 족보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서 그렇지.


애초에 발해의 왕자, 공주를 따지는 건 굉장히 복잡했다. 현재로선 지영을 기준으로 6촌 이내의 왕족들이면 왕자, 공주라고 대강 인정을 해 주는 추세였다. (1촌+기혼자인 본가 최연소 후손과의 촌수=6촌)


이렇게 계산하면 얼추 왕실 본가의 자손들이 왕자, 공주의 범위에 들어오고 사실상 지영이 없었다면 왕위 계승권에서 유의미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 속하게 된다.


사실... 이렇게 복잡하게 계산해도 의미는 없었다. 지영은 명확하게 생존해 있고 앞으로도 생존할 테니까.


“에휴, 허울뿐인 칭호가 뭐 그리 좋다고...”


솔직히 왕자, 공주? 의미가 없는 수준이 아니면 무슨 일 터지면 줄줄이 엮어 들어가기 참 좋다. 일부만 이렇게 계산하지 대중이 보기엔 이 복잡한 사정을 알 리가 있을까. 그냥 종친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녀는 공주였지만.


그 사실이 그녀를 퍽 슬프게 만들었다.


...


“아, 어서 오게. 앉지.”


“예, 감사합니다. 전하.”


서신일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날 도대체 왜 찾으셨지?’라는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발해은행 총재. 분명 중요한 자리고 무거운 자리지만 의외로 지영과 독대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탓이다.


“아... 다름이 아니라 총재를 부른 이유는 전쟁 자금에 대해서 할 말이 있기 때문이오.”


그 말에 신일의 궁금증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차관급 관료 혹은 관련자들은 이제 다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물론 어지간한 사람은 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전쟁에는 당연히 막대한 전비가 필요하다.


“예, 채권 판매에 대한 준비는 이전부터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음, 아니야. 아니야.”


“... 예?”


전쟁에 쓰이는 돈을 가장 확실히 조달할 방법은 바로 채권이었다. 이는 발해 백 년 역사가 증명하며 발해의 채권은 신용이 증명되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쓰지 않겠다니?


“총재, 전쟁은 사업이야. 그리고 사업은 원래 내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네.”


“아니... 채권도 빌린 돈 아닙니까?”


“대부분 우리 신민들에게서 빌린 돈이지. 결국엔 발해의 돈 아닌가? 이자도 붙고 말이야...”


“무슨 묘책이라도 있으신지”


지영은 장난스러운 기색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자네도 학교를 나왔으니 대강 기억하겠지? 밀도에 관한 실험과 그 표일세.”


“예... 헌데 이건 왜...”


기억이야 한다. 서로 부피가 같은 물질을 물에 퐁당 넣어서 물이 얼마나 넘치나 하던 그 실험. 그런데 그게 왜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 발해의 도금기술은 정평이 나 있지. 그렇지?”


“전하... 설마.”


“이 두 개와 우리 발해의 실력을 잘 버무리면 진짜 은과 거의 유사한 가짜 은을 찍어낼 수 있지 않겠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납과 철, 수은과 은 등을 잘 이용하면 비율만 잘 맞춘다면 은과 유사한 비중을 가진 합금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그리고 잘 도금하면 어지간하면 구별하기 쉽지 않은 가짜 은 덩어리들의 탄생이다.


중국은 이미 이 시기부터 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고 표준적인 지위를 가졌으니 사용하기도 편하겠지.


“그럼 거기서 식량, 옷감, 인력을 모조리 긁어오면 그만이지. 왜 굳이 우리의 돈을 쓰려 하나?”


“하지만, 들킨다면...”


“하! 저 제 집안 하나 간수 못 하는 놈들이? 천만에! 이미 밑 준비는 어쩌다 보니 완료되어 있네. 자네가 믿을만한 사람을 꾸려서 일을 진행해 보게나.”


지영은 강력하게 고구려 정벌을 추진하고 있다. 지영의 성격과 현 상황을 고려한다면 몇몇 상단에게 사기를 치는 그런 순한 맛의 작전은 아닐 게 뻔했다.


“전하, 일이 시행될 경우 당나라의 곡식과 옷감 가격은 말 그대로 폭등할 겁니다.”


“뭐... 그렇겠지. 은을 찍어낼 수 없는 한 구매하기 힘들어질 거야.”


“... 제일 먼저 백성들이 죽어나겠지요. 집을 잃고 노예가 되거나 아니면 굶어 죽을 것입니다. 그것이 풍년이 되었건... 흉년이 되었건 말입니다.”


굉장히 순화해서 말하긴 했으나 만약 일이 시행된다면 이보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리란 건 확실했다. 지영은 말 그대로 발해의 전력을 다해 고구려를 침공하려고 하니.


“그럼 우리의 인력이 늘어나겠군. 당의 실책으로 삶이 어려워진 신민을 우리가 구하는 것 아닌가? 당장 진행하게나.”


신일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눈앞의 국왕은... 잔혹해질 땐 한없이 잔혹해질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평소에 워낙에 소탈하게 다녀서 그렇지 무려 백 이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발해를 다스린 국왕인 것이다.


“전하,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이러지 않아도 아국은 고구려를 꺾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진행한다면 더 값싸게 일을 진행할 수 있지. 안 그런가?”


“... 전하의 말씀대로 식량과 옷감을 긁어모은다면 모르긴 몰라도 몇백만 명의 부랑민이 발생할 것입니다.”


숫제 애걸하는 듯한 신일의 말에 지영은 그저 가벼운 답변을 남길 뿐이었다.


“대신 우리 몇백만 신민은 미소짓겠지.”


이건 단순히 전비를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저들은 풍년임에도 굶주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리라. 그 어디에서도 곡식은 찾아볼 수도 없고 저들의 분노는 상인과 황실에 향하겠지.


향후 몇 년, 아니 어쩌면 더 긴 기간 동안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낙인을 찍고자 함이다.


적의 자본으로 적을 꺾고 강대한 적에게 한동안 재기할 수 없는 치명타를 남긴다니. 이보다 더 좋은 계획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 물론 그 와중에 몇 백만 명이 굶주림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애초에 저건 내 이상일 뿐이다. 실제로는 그저 전비를 충당하는데에 그칠 수도 있고 아니면 뭐 그 이상일 수도 있고. 난 모르지. 대략적인 결과만을 짐작할 뿐.


물론 의도는 꽤 잔인한 것이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다. 근데 자급자족하는 사회에서 은을 일반 신민들이 쓸 일은 없을 테니까... 솔직히 몇백만 부랑민은 오바다. 몇만도 아니고 몇백만이라니.


아무튼 이런 내 뜻을 알아챘는지 처음 들어올 때랑은 완전히 다른, 비쩍 마른 고목처럼 생기를 잃은 눈으로 그는 겨우겨우 물어왔다.


“이렇게까지 하셔서...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십니까...?”


아, 다른 건 몰라도 그 질문엔 확실히 답해줄 수 있지. 그것도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승리”


작가의말

돈이 복사가 된다고!(아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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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7 루이미너스
    작성일
    23.09.26 12:08
    No. 1

    당나라 : 가짜돈으로 인플레이션 발생 - 히틀러 등장(?)
    고구려 : 전쟁 패망으로 이등국으로 전락(?)
    발해 : 혼자 잘 먹고 잘 삼
    작가 : 곧 시험기간이 다가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몽쉘오리진
    작성일
    23.09.27 09:23
    No. 2

    뭣...! 당장 맥주집을 폐지하고 예술대학의 정원을 늘려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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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평화를 끝낼 준비5 +2 23.09.29 14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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