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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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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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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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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1.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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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2쪽

475화 궁한 사람들

DUMMY

475화 궁한 사람들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항상 점잖케 있기를 좋아하던 유지 정립은 근래에 화재 이후 그 점잖음이 제게서 떠나버린 듯하다고 여겼다.


아니면 그날 같이 타버렸든가 말이다.


그러나 주변 상황이 그며 친하게 지내던 이들에게 여의치 않게 흐르고 있음을 생각하면 딱히 그가 변했다고 말하기도 뭐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솔직히 말해서 유지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오히려 사람들은 타박하지 않고 공감했다.


“그러게 말이외다. 이래서야 당장 하인들을 더욱 부려서 땅을 일구어야 하겠습니다.”

“일주일이면 얼추 모양새는 나오겠지요. 서두릅시다.”

“끙, 이 중요한 시기에 일주일이나 겉모습 내는 걸로 시간을 허비하게 되다니.”


유지들이 하는 이야기에 정립은 이들이 아직 상황을 쉽게 보고 있음을 알고 쓰게 웃었다.


정립에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이 일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이 일은 그런 식으로 잠시 눈을 가려서 넘어갈 일이 아니오.”


유지 곽봉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이르는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노는 땅을 몰수하겠다고 하였으니 놀지 않게 보이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정히 어렵다면 과실이라도 몇몇 심어서 우기면 그만이외다.”

“과실이라. 그게 더 편하고 금방 끝날 거 같기는 하군. 가지라도 꺾어서 심는 게 낫겠습니다그려.”

“오, 듣고 보니 그런데. 나뭇가지로 하면 당장은 수확은 몰라도 한 그루도 제법 많은 땅을 채울 수 있겠소이다.”

저마다 좋은 수라고 이야기하는 유지들을 보며 곽봉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이 대체 뭘 들은 건지 원. 조선 놈들이 한 말을 기억하는 분은 정녕 여기에 한 분도 아니 계신 것이오?”

“이 사람은 똑똑히 들었소이다.”


곽봉이 하는 말에 정립은 가만히 입을 열고는 제게 시선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유지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이니 정립은 사람들을 차례로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그 세를 내기에 충분하다고 증명하라고 하였지요. 아니면 땅을 거두어 직접 관리할 것이라고 말이외다.”

“그래도 한 사람은 제대로 들으신 모양이구만.”


저 혼자 아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적잖이 안도한 곽봉은 이내에 사람들을 보며 찌푸린 얼굴로 외쳤다.


“아시겠습니까? 그저 땅을 놀리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세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전제 조건이란 말입니다!”


곽봉이 말과 함께 갑갑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눈으로는 한껏 담아서 쏘아보니 그 뜻을 얼추 안 몇몇 사람들이 불쾌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과실나무든 뭐든 심으면 그걸로도 당장은 아니지만 세는 낼 수 있지요.”

“당장 수익이 나오지 않아도 놀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쓰고 있는 걸 강제로 거두어 가는 건 아니며, 당장 과실이 나오지 않는다면 저들이 뭘 어쩌겠소이까?”


여전히 뜻을 고수하는 말에 곽봉은 한껏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런 그가 터지기 전에 정립이 나서서 차분한 어조로 일렀다.


“뭘 어쩌긴. 땅을 가져가든, 아니면 소출도 없는 땅의 세를 내라고 하겠지.”

“나온 게 없는데 무슨 세를 냅니까?”

“그건 강도나 다름이 없는 짓거립니다.”

“그런 짓을 하면 당장에-.”


사람들이 반발하자 정립은 그들이 아직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딱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어디에 찾아가서 하소연하실 생각이오? 남경에? 아니면 저기 오랑캐 손에 들어간 북경에 가서 하시겠소?”


정립이 이르는 말에 아직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던 유지들은 일제히 말문이 막혔다.


대답이 궁하여 눈치만 살피는 사람들을 보며 정립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면 우리끼리 힘을 모아서 저들을 대적하겠소? 혹여나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꿈 깨시오. 예로부터 조선은 이 나라 다음으로 치는 번국이니 이 산둥 전체가 제나라 시절로 돌아가서 싸우면 모를까 지금은 적대하는 순간 우리네 목숨이며 재산을 가져가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소이다.”

“힘을 모으면 그래도 저들이 물러나지 않겠습니까?”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말에 정립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나도 한번 용을 써 보겠는데, 저들이 죽고 소식이 끊어지면 과연 조선에서 가만히 있겠소? 당연히 다시 사람을 보내서 사정을 살필 것이고,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나겠지.”

“혹시나 북쪽이든 남쪽이든 황상께 청하여 보신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조선 사람들이 말한 걸 기억하시오. 그들은 양국에 부탁을 받아 이곳에 있는 것이니, 조선을 배제하고 무엇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외다.”


정립에 이어서 어느 정도 감정을 다스린 곽봉이 말을 덧붙였다.


이에 정립은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을 입에 담았다.


“그렇게 되면 이곳은 무법한 지대가 될 것이니 전과 같은 일이 아주 빈번하겠지. 그뿐인가, 명이며 청에서 이곳을 손아귀에 넣고자 싸울 것이지 산둥 전체가 전장이 되는 것이오.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지요.”


전쟁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여기 있는 누구에게도 없는 건 확실하니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 전쟁이 벌어지면 누가 죽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이들 역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고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길을 딱 두 가지요.”


두 가지 길을 고를 수 있다는 말에 유지 대다수는 기대감을 담아서 정립을 주목했다.


허나 곽봉을 비롯한 몇몇은 이제 나올 말을 어렴풋이 짐작했기에 안색을 어둡게 하였는데, 때로는 소수가 정확함을 증명하듯 정립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예 창칼로 반발하는 건 제하고 말하자면 오로지 이 둘, 땅을 내어놓거나 아니면 일굴 사람을 구하든가 둘 뿐이오.”

“땅을 내놓다니!”

“이 땅은 우리 선조가 물려주신 귀한 땅이란 말입니다!”

“맞습니다! 이 땅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데, 그걸 이렇게 가벼이 내줄 수야 없지요!”


정립이 하는 말에 사람들은 대번 반발했다.


이러한 반응은 정립 역시 익히 예상하였고, 또한 그도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허면 답은 하나군. 당장 소작할 사람을 구해야 하오. 아니면 하인을 더 구하던가 말이외다.”

”상당히 지난한 일이겠지만 어쩔 수 없지요.”


곽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유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가운데 다수는 곽봉이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소작이야 얼마든지 구하고자 하면 구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지금도 심심치 않게 집을 찾아와 소작을 다시 받아들아고 청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관아에, 조선에 이번만 한 수 물러준다고 여겼을 따름이었다.


“그러면 이제 각자 할 일이니 다들 가보시오. 일주일, 아니 오 일 후에 다시 봅시다.”


정립이 하는 말에 유지들이 저마다 소작 모을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


이윽고 자리에 남은 것은 금세 정립과 곽봉만이 되었으니, 둘만 남은 자리에서 곽봉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머저리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나도 별로 다르지는 않았어. 화재 후에나 이런 생각을 좀 하게 된 거지.”

“꼬투리 잡으려면 자네는 나중에도 잡힐 여지가 있어. 적어도 당분간 법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지 않나.”


곽봉이 걱정스럽게 이르는 말에 정립은 전에 그가 분기에 차서 성급하게 나섰던 일을 떠올렸다.


“제길, 고작 그만한 재물에 내가 눈이 돌 줄이야.”


화재로 인해 집이 불타고 재물을 도적질 당하였다고 하나 정립은 여전히 유지였고 재산도 대부분 멀쩡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전에 그가 하인들까지 동원하여 주변 사람들을 닦달하던 일은 정녕 마가 끼었다고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남이 가진 천금보다 제가 가진 은전 하나인 법이지. 그리고 재물이 대순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거 자체가 대수였지. 법 없어졌다는 걸 체감하면 남은 건 오로지 힘이 다니, 얕보이면 무슨 일을 더 당했을지 누가 알겠나.”


위로하는 말을 던진 곽봉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더 함께하여 대항할 생각은 없겠지?”

“그런다고 무슨 득이 있나?”


진심을 담아서 되묻는 말에 곽봉은 고개를 저었다.


“없지.”

“그럼 일 없네. 내 전에 한 멍청한 짓을 수습하고 하려면 아무래도 이 일로 만회를 조금은 해야 할 거 같으니까.”

“자네 뜻은 잘 알았네.”


잘 알겠다고 한 곽봉은 바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문을 나서기 전, 그는 고개를 슬쩍 돌려서 말을 덧붙였다.


“모레에 관청에 들릴 거야. 내가 앞장설 테니, 그 후에나 오시게.”


말을 남긴 곽봉은 더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듯 미련 없이 걸음을 옮기니 정립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맙네. 덕분에 자존심은 조금 챙기겠어.”



***



“장씨, 안에 있나!”

“어이구, 왕 대인이 부리는 귀한 개가 아니쇼? 이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이시오?”


전에 왕 대인 아래서 소작하던 농민 장씨는 그가 보낸 하인을 보며 대번 입술을 비쭉이며 비꼬았다.


전날만 하여도 당장 고개 숙이며 문 앞에서 소작을 다시 하게 해달라고 하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랄 태도였다.


그러나 왕 대인이 보낸 하인은 전에 있었던 일들을, 소작 내어 쫓긴 일이며 찾아오면 문전박대하던 일을 알고 있었다.


당장 그 문전박대 하라고 한 말을 시행한 것이 본인이니 어찌 모를까 싶었다.


허니 하인은 이런 태도를 불쾌하게 여길지언정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험험, 왕 대인께서 자네 말을 듣고 다시 소작을 받아주시기로 했네. 내일 아침 일찍 찾아와서 관아에 신고하러 가자고 하시네.”

“일 없수다.”

“응?”


아니꼬워도 이만한 일이면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었던 하인은 크게 당황했다.


그런 하인을 보며 장씨는 꼴 좋다는 둣이 웃었다.


“흐흐, 내 앞으로 그쪽 향하여 오줌도 누지 않을 겁니다.”


소작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각보다 단단한 듯 보이니 하인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먹고사는 일은 어떻게 하게? 아예 여길 떠날 생각인가?”

“떠나? 뭐 하러? 일주일만 있으면 소작을 하게 해준다고 하더만.”

“일주일?”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하인은 더욱 자세하 캐어묻고자 했지만 장씨는 그와 더는 얼굴도 마주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알았으면 썩 물러가쇼! 내 지난 수모를 생각하면 해코지하고 싶은데, 당신도 남의 밑에서 빌어먹는 처지인 건 같으니 그냥 보내드리리이다!”

“자, 장씨!”


다급히 부르나 장씨는 뒤도 보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당황하여 떠날 생각도 못 한 하인은 이내에 장씨의 아들래미가 호기심에 문을 빼꼼히 열어서 살피는 걸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장씨네 부인이 자식을 화급히 안으로 끌어당기고 문을 닫아서 그치게 되었다.


그렇게 사람 하나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하인은 현실을 자각하게 되니, 그는 사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다 이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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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63 g9******..
    작성일
    24.01.24 21:27
    No. 1
  • 작성자
    Lv.65 ageha19
    작성일
    24.01.24 21:37
    No. 2

    조선 관리들이 몰수한 땅으로 직접 소작을 놓으면, 아무래도 중간에 '마름'도 없으니 세가 무거워진다 해도 체감상으로는 오히려 가벼울 듯. 장기적으로는 자립을 위해 돈으로 소작하던 땅을 구매하도록 유도할 것이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5 비르지니
    작성일
    24.01.24 21:42
    No. 3

    땅 포기하기 싫으면 소작료라도 깎아주고 소작농들 모셔와얄듯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24.01.28 10:41
    No. 4

    공격적m&a는 "합법적"입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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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 479화 때로는 서로 간절하다 +2 24.01.31 176 15 13쪽
479 478화 화복 +3 24.01.30 182 15 12쪽
478 477화 황충 떼 +5 24.01.26 199 14 13쪽
477 476화 나쁜 예감 +3 24.01.25 196 14 13쪽
» 475화 궁한 사람들 +4 24.01.24 195 17 12쪽
475 474화 조선의 의무 +3 24.01.23 223 14 15쪽
474 473화 경자유전 +6 24.01.22 192 15 12쪽
473 472화 땅의 주인 +3 24.01.21 191 16 14쪽
472 471화 불문불권 +4 24.01.20 209 15 13쪽
471 470화 법 없이 사는 사람들 +3 24.01.19 212 14 16쪽
470 469화 고뿔과 등창 +2 24.01.18 194 15 11쪽
469 468화 그녀의 이름은 +2 24.01.17 207 15 12쪽
468 467화 가장 달콤한 말 +3 24.01.16 205 13 13쪽
467 466화 때로는 남보다 못한 사이 +2 24.01.15 209 14 12쪽
466 465화 쇼군의 가족 +3 24.01.14 216 16 12쪽
465 464화 옛 왕조 +5 24.01.13 217 13 14쪽
464 463화 쌍방의 관계 +2 24.01.12 209 13 13쪽
463 462화 태종대왕의 훌륭함 +4 24.01.11 230 15 15쪽
462 461화 멀리 보아야 유연하다 +4 24.01.10 201 14 11쪽
461 460화 귀한 피 +2 24.01.09 207 12 13쪽
460 459화 우위에 서는 수단 +3 24.01.08 211 16 12쪽
459 458화 죽은 사람의 소원 +3 24.01.07 220 11 11쪽
458 457화 인륜지대사 +4 24.01.06 226 15 12쪽
457 456화 사방의 괴로움 +4 24.01.05 211 12 12쪽
456 455화 황하의 분노 +2 24.01.04 194 15 12쪽
455 454화 거북이와 겁쟁이 +3 24.01.03 196 13 13쪽
454 453화 사람을 움직이는 힘 +3 24.01.02 196 14 13쪽
453 452화 보신을 위한 지혜 +7 24.01.01 211 17 12쪽
452 451화 공백 +8 23.12.31 218 18 12쪽
451 450화 기대 +3 23.12.30 220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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