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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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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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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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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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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71화 불문불권

DUMMY

471화 불문불권


산둥 농민 공씨가 사는 땅에 찾아온 이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이라고 증명하듯 생김새며 복색이 거기 사는 사람들과는 다소 달랐다.


또한 그 숫자도 수백에 이르렀으니, 공씨는 물론이고 그들을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계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가장 앞에 있는 이들 셋이 사방 둘러보다가 공씨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황하며 도망할까 생각하기도 잠시, 그 가운데 가장 앞에 있는 이가 입을 열어 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조선에서 온 사람으로, 이름은 정연이라고 합니다. 당분간 산둥을 명과 청 양국에 위임받았음을 알리기 위해 왔소이다.”

“예? 예?”


알아들은 것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조선에서 왔고 정연이라는 것뿐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도통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던 공씨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사방을 보아서 누가 좀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슬그머니 시선 돌리며 조금씩 멀어지기 바빴다.


그런 이들을 보면서 서운함을 느끼기도 잠시, 정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다시 하는 말에 공씨는 묘한 얼굴이 되었다.


“하여 이곳 지현께 일단 말씀을 드리고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관청이 어디에 있습니까?”


관청에 가서 지현을 만날 것이라는 말에 전에 보았던 광경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 공씨는 이들이 헛수고하겠구나는 생각을 담아서 대답했다.


“이리로 가면 있기는 한데, 가도 지현 나으리는 뵈지 못할 겁니다.”


공씨는 눈앞에 있는 정연이라는 사람이 당황하리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반응을 보이면 바로 전에 있던 일을 일러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이나 보이는 반응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또야?”

“에?”


공씨가 예상과 다른 반응에 얼빠진 얼굴로 소리 내고 있자니 나섰던 셋 가운데 나머지 둘이 입을 열어 말을 보탰다.


“이놈의 명나라 관리들은 명색이 관리가 되어서 무슨 책임감이 이렇게 없어?”

“그보다는 겁이 많은 거겠지. 나참, 이곳은 분명 우리 조선의 중재로 인해 전투가 없을 것이거늘.”


연이은 영문 모를 말에 공씨가 두 눈을 껌벅거리고 있자 먼저 입을 열어 말을 보탰던 초관 이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는 그렇게 조선에 베풀어주고 중화 자처하던 대명이 이꼬라지라니, 참으로 슬픕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놀랍지도 않지만 그래도 슬프고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그려.”


동료의 말에 초관 정부현은 그리 말하고는 주변 사방을 살폈다.


“그래도 이만하면 나쁘진 않지요. 적어도 열에 일곱에 그치고 열에 둘에는 해당하지 않는 곳이 아닙니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하지만 이건 아무리 그래도 아니지 않소.”


정부현이 하는 말에 복잡함을 담아서 말한 정연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내에 공씨에게 다른 걸 물었다.


“관청에 가면 충분하고, 여기 어른들하고 유지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소식을 전하려고 하시면 저기 가운데 큰 집에 묵씨가 몇몇 사람들하고 항상 대기하고 있는 곳이 있긴 합니다.”

“그건 한결 낫군. 유지들도 거기에 있습니까?”

“재물 좀 있고 유식한 체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라면 거기 없습니다.”


전에 겪은 일이 있기 때문인가, 공씨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평이하나 그 어조에는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걸 어렵지 않게 안 정연은 내심 고소를 짓고는 모르쇠로 물었다.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 그럴싸한 집들이 모인 곳이 보이시죠? 거기 가운데 있는 큰 창고에 가보시오. 거기에 몇은 있을 터이니.”

“고맙습니다.”


공씨에게 가벼이 예를 취한 정연은 곁에 있는 이계영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이계영은 재빨리 허리춤에서 자루 하나를 끌러서 공씨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쌀이오. 안내한 대가라고 생각하시오.”


받을지 말지 고민하기도 전에 세 사람은 그대로 몸을 돌려서 함께 온 다른 이들과 함께 관청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공씨는 슬쩍 걱정이 들어서 걸음을 옮기니, 그가 가는 곳은 묵씨가 있는 곳이었다.



***



“아주 깔끔하게 사라졌구만그래.”


관청에 도착한 의정주 주부 정연은 패물이며 집기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전임 지현의 행실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행정에 대한 문서는 그대로 둔 것을 보니 확실히 이곳은 열에 일곱일지언정 열에 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부 나으리, 곳간이 그냥 텅 비었는데요?”


그러던 중에 이계영에 찾아와서 이르는 말에 정연은 전임 지현에 대한 평가를 하향 수정한 후 대답했다.


“그럼 기록으로 남겨두시게. 모두 기록하고 명과 청 그리고 이곳 사람들에게 일러주어야지.”

“역시 올해 세는 거두지 못한다고 봐야겠죠?”

“어렵겠지. 그건 이미 양국에 양해를 구하였다고 들었으니 별문제 없을 거요.”


예정대로 할 것이라고 말한 정연은 행정 기록을 살피다가 돌연 이맛살을 찌푸렸다.


“제길, 여기도 그렇군.”

“또 다릅니까?”

“그렇소이다. 이거 여기서도 며칠을 지내며 고생 좀 하게 생겼군그래.”


적당히 그럴듯하면 넘기겠지만 오면서 본 사람들 숫자만 생각하여도 기록이 한참 부족하다고 여긴 정연은 골머리를 앓았다.


이미 몇 번이고 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좋아하거나 익숙해지기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응?”


그러던 중 정연은 고개를 돌려서 멀리 관청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이계영 역시 그러하니, 정연은 그걸 알고 그에게 물었다.


“이 초관, 이거 소동이 있는 거 같은데.”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나가봅시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어야 해결될 리가 만무함을 잘 알고 있는 정연은 못마땅한 얼굴로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거기에는 어느새 모였는지 저마다 하인 여럿을 거느린 유지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지현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네놈들은 누구길래 이렇게 우릴 막고 있는 게냐!”

“당장 비켜라! 그간 밀린 일로 인해 청할 것이 많다!”

“내 재산을 가난한 놈들이 몰래 도적질 하였거늘 어찌 대명천지에 이리도 늦게 대응한단 말이냐!”


저마다 말을 내는 이들을 본 정연은 저들을 막는 이들 가장 앞에서 정부현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는 걸 보았다.


“정 초관, 내가 상대하지.”

“예, 나으리.”


정연이 하는 말에 정부현은 잘 되었다는 얼굴로 물러났고, 유지들 역시 이제야 지현이 나왔나 싶어서 시선을 주었다.


그들이 다시 말을 하려고 입을 뗀 순간 정연이 크게 외쳤다.


“정 초관, 이 초관! 발포 준비!”

“발포 준비하랍신다!”

“훈련도감 별정군은 조총을 하늘로 겨눠라!”


명령과 함께 훈련도감 별정군 병사들이 저마다 탄을 재어 허공을 겨누고 있기를 잠시, 화약 특유의 커다란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으악!?”

“새로 온 지현이 사람 죽인다!”

“으아악!”

“사람 살려!”


허둥거리며 속속히 거리 벌리기를 잠시, 소란이 가라앉고 저들이 그를 향해 시선을 보내자 정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조선에서 온 의정부 주부 정연으로, 조선이 명과 청 양국에 당분간 산둥을 위임받았음을 알리는 바요!”


귀는 소리를 듣고 머리는 말을 이해하나 심정은 그러지 못하니 유지들은 당황하며 웅성거렸다.


그러나 저들이 무슨 일을 말하는지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정연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고로 이곳은 당분간 산둥 자치구임을 알려드리며, 행정과 치안은 우리 조선에서 맡게 되었소!”

“조, 조선인?”

“조선에서 여기를 다스린다고?”

“이게 무슨 말이야?”


정연이 외친 말을 그제야 온전히 이해한 이들은 저마다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한 사람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는 심정으로 나서서 외쳤다.


“그러면 지현이 하던 일을 조선에서 보낸 그쪽 분께서 대신할 것입니까?”

“당장은 그러하지만 계속은 아니외다. 이 사람은 먼저 소식을 알리고 상황 살피기 위한 사람으로, 달리 또 사람들이 올 때까지만 머물고 떠날 것이오. 그동안이라면, 뭐 그렇소이다.”

“허면 이 정가의 원통함을 풀어주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정 대인이라 불리는 유지가 엎드려서 말하니 정연은 이 일을 가벼이 넘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오?”

“이 정모,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나 전임 지현이 떠난 후에 이곳 사람들이 앙심을 품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라 재물을 도적질하고는 작당하여 이 사람을 핍박하니 도무지 하루하루가 두렵고 피가 끓습니다!”

“거짓부렁을 지껄이긴!”


화가 잔뜩 나서 말을 막은 목소리에 정연이 시선을 주니 거기에는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보았던 공씨와 사람 여럿이 있었다.


“그대들은 누군가?”

“그러는 당신은 누구시오?”


공씨를 제치고 앞으로 나선 묵씨의 물음에 정연은 한숨을 작게 내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못 들은 모양이군. 방금 외친 것을 다시 말하자면, 조선에서 온 관리다. 이곳을 포함한 산둥 전체를 명과 청이 합의하여 우리에게 관리를 맡겼기에 그 소임을 다하려고 찾아온 참이네.”

“진짜로 조선 사람이라고?”


공씨에게 들은 말이 있으니 아주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여러모로 믿기가 어려운 일이니 묵씨는 직접 듣고도 쉬이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이해는 하네. 하지만 자네가 믿건 말건 상관없네. 우리는 기록대로 이곳에서 행정과 치안을 맡을 것이니, 그것이 싫다면 당장 짐을 싸고 저기 남경으로 가시게. 가는 길은 우리가 도와줄 터이니. 재산도 전부 가지고 가게 해주지. 아, 물론 토지는 논외야.”

“으으음.”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불쌍한 백성을 도와주시오!”


묵씨가 고민하는 사이 유지 정가가 나서서 외쳤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묵씨는 수백에 이르는 병졸들이 여기에 있다는 걸 뒤늦게 떠올리며 낯빛을 굳혔다.


“나도 믿습니다. 그러니 조선 지현께서는 우리 말을 살피어 올곧게 판단해 주시오.”

“난 지현이 아니네만······휴, 자네들에게는 그게 그거겠군.”


지현이니 아니니로 설왕설래하기에는 이미 겪은 일이 적지 않았던 정연은 고개를 흔들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처결할지 고민하는 건 아니었다.


이미 조정에서, 특히나 성상께서 주도해서 이런 일을 어떻게 대할지 논한 바가 있으며 그 구체안 또안 그들에게 내려진 바 있었다.


다만 그 방안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다르다 보니 혹시나 과하게 반응할까 봐 우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누가 억울하고 누가 정당한지 우리는 모른다! 하여 과거의 일은 조선에서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이후의 일은 산둥에 산다고 호구를 등록하지 않으면 관여하지 않는다!”


정연 본인으로서는 영 불편한 일이나 이미 정해진 일이니 그가 변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앞으로 일을 생각하면 이렇게 공언하는 게 나음은 여러 번 경험으로 알았기에 정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반론을 받지 않겠다고 하듯 다시 외쳤다.


“물론 과거에 대한 소를 하고자 한다면 받을 것이나, 앞서 이른 것처럼 호구를 먼저 등록해야 그러한 권리가 생길 것이다! 이는 오늘이 가기 전에 방을 붙이고 포고할 것이니, 그대들은 그리 알고들 물러가시오!”


단호한 정연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주듯 이계영과 정부현이 손짓하니 훈련도감 별정군 병졸들은 일제히 조총을 겨누었다.


“으악!?”

“아, 알겠습니다. 그리 알고 물러가겠습니다.”

“이런 폭거라니, 남경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 남경에서 맡긴 건데.’


유지 한 사람이 물정 모르고 하는 말에 쓴웃음을 지은 정연은 그를 내색하지 않고 크게 외쳐 경고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방이며 포고를 할 때까지 그대들이 무법하게 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하는 꼴을 보이면 가만히 두지 않고 죄를 물을 것이다! 알아들었으면 모두 이만 물러나시오!”


유지들이며 묵씨와 공씨를 비롯한 농민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내에 슬금슬금 관청 앞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정연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렸다.


“이 초관, 정 초관. 바로 방을 준비할 터이니, 포고할 이들을 고르시오. 전에 하던 대로 하면 되오.”

“예, 나으리.”

“말씀대로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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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477화 황충 떼 +5 24.01.26 198 14 13쪽
477 476화 나쁜 예감 +3 24.01.25 195 14 13쪽
476 475화 궁한 사람들 +4 24.01.24 194 17 12쪽
475 474화 조선의 의무 +3 24.01.23 219 14 15쪽
474 473화 경자유전 +6 24.01.22 192 15 12쪽
473 472화 땅의 주인 +3 24.01.21 191 16 14쪽
» 471화 불문불권 +4 24.01.20 208 15 13쪽
471 470화 법 없이 사는 사람들 +3 24.01.19 211 14 16쪽
470 469화 고뿔과 등창 +2 24.01.18 193 15 11쪽
469 468화 그녀의 이름은 +2 24.01.17 206 15 12쪽
468 467화 가장 달콤한 말 +3 24.01.16 204 13 13쪽
467 466화 때로는 남보다 못한 사이 +2 24.01.15 208 14 12쪽
466 465화 쇼군의 가족 +3 24.01.14 216 16 12쪽
465 464화 옛 왕조 +5 24.01.13 217 13 14쪽
464 463화 쌍방의 관계 +2 24.01.12 209 13 13쪽
463 462화 태종대왕의 훌륭함 +4 24.01.11 230 15 15쪽
462 461화 멀리 보아야 유연하다 +4 24.01.10 201 14 11쪽
461 460화 귀한 피 +2 24.01.09 207 12 13쪽
460 459화 우위에 서는 수단 +3 24.01.08 210 16 12쪽
459 458화 죽은 사람의 소원 +3 24.01.07 220 11 11쪽
458 457화 인륜지대사 +4 24.01.06 225 15 12쪽
457 456화 사방의 괴로움 +4 24.01.05 211 12 12쪽
456 455화 황하의 분노 +2 24.01.04 193 15 12쪽
455 454화 거북이와 겁쟁이 +3 24.01.03 195 13 13쪽
454 453화 사람을 움직이는 힘 +3 24.01.02 195 14 13쪽
453 452화 보신을 위한 지혜 +7 24.01.01 210 17 12쪽
452 451화 공백 +8 23.12.31 218 18 12쪽
451 450화 기대 +3 23.12.30 219 17 12쪽
450 449화 쥐기 위해서는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5 23.12.29 204 15 12쪽
449 448화 호의의 뒷면 +1 23.12.28 209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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