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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최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공포·미스테리

니콜라스최
작품등록일 :
2018.04.30 19:07
최근연재일 :
2018.07.02 19:15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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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6,817

작성
18.05.1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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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산자와 죽은 자(14)

과학과 미스테리가 만난 본격 SF 소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입니다




DUMMY

감식키트의 우선 보급 순위에 대해서는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쪽으로 논의방향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물론 각 나라마다 기본적 보급량은 배급하되, 감염사태로 인해 위기를 맞은 나라들에게 우선 투입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특별한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견이 있다면 그 지역을 포기하자는 발언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단지, 그 사용에 대해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예를 들어 중국 운남성 같은 경우에는 워낙 지역이 넓고 사람이 많아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 키트만 충분하다면 감염자를 분류하는 것은 얼마든지 완료가 가능하다.

즉, 출입 통로를 몇 군데만 열어놓고 주민들을 차례로 밖으로 나오게끔 유도하면서 몸에 전혀 좀비에 물린 상처가 없는 사람은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있는 사람도 키트 측정 후, 반응이 음성이 나오면 통과 시켜도 된다.

물론 좀비에게 물린 상처도 있고, 양성반응이 나오면 무조건 강제 격리구역으로 이송할 것이다.

이 원칙만 지킨다면, 성안의 사람들을 모두 구별해낼 수 있다.

그 후에 성안에 남은 좀비들에 대한 대규모의 소탕작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냐에 다들 촉각을 세우겠지만.


그런데 시에라리온이나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아니면 마다가스카르 같은 곳은 이미 정부가 통제능력을 잃은 상태였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집안에 고립되어 불안에 떨면서 굶주리고 있었고,

영화에서 흔히 본 장면처럼 거리에 습격자가 되어버린 좀비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1주일만 지나면 좀비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때문에 잘 숨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평균적으로 이 세 나라의 국민들이 머무르는 집은 견고하지도 않고 1주일 이상 버틸 수 있도록 저장해놓은 식량도 별로 없다.


평소에는 계절의 구분 없이 춥지는 않기 때문에 짚으로 지붕을 덮은 흙담집에 살아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힘을 가진 좀비를 대상으로는 전혀 보호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집안에 있다가 잠금장치도 없는 어설픈 문을 부수고 들어온 아드레날린이 충만한 좀비를 맞이하거나,

아니면 양식을 구하러 밖에 나갔다가 좀비에 물린 채 집으로 돌아와 다른 가족들에게 감염을 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키트를 충분히 보급한다고 해도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어렵다.

누가 감염자인지 좀비로 각성하기 직전일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키트만으로 검사를 실행하고, 검사지 주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좀비들의 출현에 대해 검사인력의 안전을 지켜내는 일,

그리고 감염자들을 후송하는 일과 그들을 격리수용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실행 자체가 어려운 나라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첸 총장과 카를로스, 그리고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 토론에 올려놓자는 얘기를 메르켈과 같이 공유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의 질문에 대한 첸 총장의 답변이 이어졌다.

“결국 키트를 어떻게 우선 배분하느냐는 문제는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감염의 여부는 육안으로 상처를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먼저 판단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좀비에게 물린 상처는 인간의 악력으로 물어뜯은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남기고 몸통보다 목과 팔다리 등 비교적 물기 쉬운 곳에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그 깊은 상처는 좀비로 각성하기까지의 3일 동안 아물기도 불가능하므로 감별에 대한 충분한 지표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것이 확실한 사람들은 보통 1~3일의 위기 기간 내에 있다고 보고 바로 신체 억제대로 결박한 후, 키트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검사를 위해 줄을 서 있는 도중에도 각성시기가 도래할 수 있는 감염자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음성반응이 나오면 바이러스가 감염시킬 수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까지의 지식으로는 매우 희박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상처를 입은 것이 확인되면 무조건 결박한 채로 검사를 해야 합니다.“


첸 총장은 빠르게 말을 쏟아놓은 후, 물을 반 컵 정도나 마셨다.

보통 때와는 다르게 매우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들 인정하시겠지만, 단순히 키트의 배급만 가지고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습니다. 당장의 치안 상태도 유지하기 어려운 나라에 키트만 던져 준다고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감염자를 가려내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인권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감염자로 분류되더라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감염을 택한 사람은 없고, 모두 피해자일 뿐입니다. 이 피해자를 돕고 그들이 필요 이상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과정의 투명성을 지켜가야 합니다“


그리고 첸 총장은 카를로스의 전매특허처럼 참석자들 전체를 한 번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다음으로 눈을 한 번 감고 잠시 고뇌를 보여주다가 다시 눈을 떴다.

나는 이 동작을 깊숙이 기억했다.

첸이나 카를로스처럼 베테랑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취하는 동작은 분명 배울만한 가치가 있었다.


첸 총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그래서 이 어려운 일을 스스로 감당하기 곤란한 나라에게는 국제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착하고 힘없는 국민들한테는 총칼을 휘두르면서 그들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던 통치자들이, 국민들 일부가 좀비가 되어 돌아오자 제일 먼저 자취를 감춰버린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 나라들의 남은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세계는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적극적 개입에 관한 문제를 UN에서 다루어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이미 구테헤스 사무총장님께서도 이 문제를 UN 안보리에 긴급의제로 상정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마 취재가 허용되었다면 이쯤에서 첸 총장은 무수히 많은 플래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참석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서구권을 포함하여 자국의 안보를 스스로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라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하는 정도였고,

중국, 러시아, 인도처럼 나라가 넓어 커버해야 될 지리적 영역이 부담이 되고, 국민들이 워낙 많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셈법이 복잡한 나라의 대표들은 굳은 표정 일색이었다.

반면, 지금도 시시각각 자국 속으로 감염의 위험이 침투하고 있을 것에 대해 걱정이 태산 같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대표들의 표정은 또 달랐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듯 안도하는 표정과 함께 만약 UN에서 자국에 직접 개입하는 여지를 준다면, 주권에도 상처가 나지만, 자신들의 통치역량에도 흠결이 생기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이 되는 듯한 모습이 숨김없이 보였던 것이다.


첸 총장의 발언은 이어졌다.

메르켈 총리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키트의 보급의 우선순위와 배분에 관한 모든 결정, 그리고 생산관리를 책임질 통합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물론 여기 계신 각국 정상들이 그때마다 모여서 격론을 벌여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요. 그래서 각 나라의 전문가 대표들로 기구를 구성하는 방법도 고려해보았지만 역시 시시각각 변하는 긴박한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것은 무리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그 역할을 우리 WHO에 일임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사무총장인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결정으로 세계인들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 드리겠습니다“


잠시 각국 대표들의 표정에 스쳐 지나가는 고민의 음영들이 보였다.

그러나 결국 첸 총장의 이 마지막 제안에 대해서 반대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권위 여부를 떠나서 이 어려운 결정을 혼자 책임지고 하겠다는 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누군가 책임져야 할 결과가 발생했을 때, 그녀가 희생양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누가 그 역할을 하더라도 그녀보다 잘할 자신은 없을 터였다.

그리고 책임질 생각은 더더욱 없을 테고.


짧다면 짧은 침묵이 흐른 후에, 캐나다의 저스틴 트뢰도 총리가 벌떡 일어나서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이것은 시나리오에 없었다.

“발표부터 토론까지 쭉 지켜봤지만, 결국 알렉스 박사와 첸 총장의 의견 이상의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록 현재의 수준으로는 회복불능의 감염자가 되어 사회에 위협을 준다고 하지만, 현재도 우리의 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감염자들에게 존엄성은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사심 없이 공평하게 감당할 수 있는 곳도 현재로서는 WHO 밖에 없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통해서라도 지구상 단 어떤 곳이라도 버려진 땅이 되지 않도록 UN에서 빠른 논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트뢰도 총리의 선제적인 발언 후, 역시 짧은 정적이 있긴 했지만, 참석자들은 어느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박수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좁은 회의장을 어느새 가득 메운 박수소리로 그날의 회의는 일단락되었다.

나의 가슴 떨리는 발표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첸 총장의 결론까지 우리가 예상했던 모든 것들을 건진 것은 분명 기대이상의 수확이었다.

만약,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이 이기적 입장을 견지했다면 이 회의는 표류되었고, 힘없는 나라들은 생존을 보장받기 어렵거나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감염자들에 대해서 강력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UN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통제하기 어려운 감염확산에 대해서도 WHO에 직접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이날 회의를 끝으로 나는 트뢰도 총리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가 호의적으로 발언을 해줌으로써, 회의가 평화롭게 마무리된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가 발언하는 중에도 그의 운이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야 하는 일이 바로 옆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초기 실책인 늦은 대응으로 인하여 발생한 감염자중의 한 명인 데릭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인 미국에 감염을 전해준 슈퍼스프레더가 됨으로써 결국 도의적으로 무한 책임을 걸머져야 했던 탓이다.


미국에로의 감염의 시작은 뉴욕에 도착한 데릭이 노숙자들과 접촉을 하면서부터였다.




우리가 아는 좀비는 과연 사실일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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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적자생존(4) +4 18.05.07 1,223 25 10쪽
13 적자생존(3) +3 18.05.05 1,277 30 10쪽
12 적자생존(2) +10 18.05.04 1,331 30 10쪽
11 적자생존(1) +1 18.05.03 1,463 37 9쪽
10 좀비가 손을 물었다(10) +8 18.05.03 1,504 39 10쪽
9 좀비가 손을 물었다(9) +7 18.05.02 1,566 35 9쪽
8 좀비가 손을 물었다(8) +5 18.05.02 1,681 48 10쪽
7 좀비가 손을 물었다(7) +4 18.05.01 1,711 52 9쪽
6 좀비가 손을 물었다(6) +7 18.05.01 1,813 4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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