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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최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공포·미스테리

니콜라스최
작품등록일 :
2018.04.30 19:07
최근연재일 :
2018.07.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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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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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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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적자생존(3)

과학과 미스테리가 만난 본격 SF 소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입니다




DUMMY

문제의 모리타워 19층에 호버링으로 접근한 두 대의 특수작전군 헬기 탑승자들은

안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18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온 사람이 없었는지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글라스월 덕분에 통창으로 보이는 안의 풍경은 한마디로 사냥터나 다름없었다.

두 명의 사업가는 각성한 좀비가 되어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곳곳에 사건 초기에 습격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사람들 중 다수는 경동맥을 물려서인지 자신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로 굳어가고 있었고,

시신 주변에는 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좀비들은 몇 개의 잠겨진 문을 몸으로 부딪치며 두드리고 있었다.

아마 안쪽에는 피신한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문을 막고 있을 것이다.

의자나 테이블, 쇼파 같은 것을 문 안쪽에 대고 온 신경을 밖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생환한 여비서 히토미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히 기술했다.

처음에 사무실에 들어설 때부터 두 명의 사업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땀을 잔뜩 흘리는 것 같았고, 눈을 계속 비비는 것이 안질환이 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대표이사 집무실에서 사업에 대한 논의가 바로 시작되었고,

두 시간이 넘어가자, 히토미는 두 번째 다과를 준비했다.


평소에도 회사 특성 상 투자에 대한 논의가 집중되기 시작하면,

서너 시간은 기본으로 회의가 길어졌다.

그럴 때마다 히토미는 두 번째 다과를 준비하곤 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두 시간 이상 얘기가 길어지면 혈중 포도당 수치가 떨어지게 마련이고,

그 후부터는 몸에서 가장 많은 탄수화물을 소비하는 두뇌 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법이다.


히토미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늘 맘에 걸리는 장면이 있었다.

놀라는 소식을 들으면 꼭 컵이나 쟁반을 들고 있던 사람이 힘없이 그것을 떨어뜨리면서 몽땅 깨뜨리곤 하는 모습이었다.

비서직을 10년 가까이 맡으면서 히토미의 생각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부주의한 탓이라고 굳게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다과를 들고 들어가면서 히토미는 자신도 그런 실수를 하게 되고 말았다.


홍콩에서 왔다는 사업가 중 한 명은 쇼파에 앉은 채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괴로워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자리에 없었다.

아니,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던 대표이사를 덮친 채로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대표이사의 생명은 이미 끊어진 것 같았다.

히토미의 침착성은 그 때 머리를 쥐어뜯던 다른 한 명의 사업가가 막 좀비로 각성하는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고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히토미의 외마디 비명을 듣고 여러 명의 직원들이 달려왔지만,

그들도 히토미보다 나을 것이 없는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그 순간의 선택이었다고 히토미는 증언했다.

괴물이 되어서 그랬든, 아니면 그냥 사람을 죽이려고 침입했던 간에,

사업가들이 위험인물이라고 판단되었으면 출입문 쪽으로 피신했어야 했다.


그러나 히토미에게 비서수업을 받던 신참 두 명은 순간의 선택을 잘못했다.

그 반대쪽인 사무실 안쪽으로 피했던 것이다.

이 순간적인 반응은 연쇄적으로 다른 직원들의 선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6명의 직원들이 사무실 가장 안쪽으로 피해 들어오자,

다른 20여명의 직원들도 감히 그 반대쪽인 출입문 쪽으로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다.


대표이사 집무실을 서서히 빠져나오던 좀비의 각성한 모습과

그의 입가에 덧칠해진 붉은 선혈을 보고,

여러 명의 여직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그 때, 먼저 각성한 좀비와 나중에 각성한 좀비가 같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피신한 직원들 중 평소 좀비 소설이나 영화를 좀 보았다고 예상되는,

남직원 두어 명이 여직원들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고 싸인을 보냈다.

좀비는 시력이 퇴화되고 청각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소설 속 소재에 생명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좀비의 시력은 정상이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맨 앞의 두 사람이 붙잡히자,

뒤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바이러스의 숙주 본능에 사냥의 본능도 섞여 있었던가?

최초로 바이러스와 공존했던 숙주는 육식동물이었다고 해야 하나?


분명 그렇다고 해야 논리가 맞았다.

좀비로 각성하고 나면, 당장 사람을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쪽으로 금새 방향을 틀어 버리는 것이 나중에 확인된 특징이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에너지농도가 높은 쪽으로 방향을 순식간에 틀어버리는 편모조류의 주화성과도 같았다.


이제 두어 시간만 지나면, 좀비의 강력한 팔뚝과 어깨는

문을 부숴버리고 그 안의 직원들을 도륙할 것이다.

물론 그 중 다수는 삼일 내에 자신을 습격한 자의 일생을 따라갈 것이지만.


헬기에 탑승한 저격수의 상황보고와 그에 따른 명령하달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아파치헬기 조종사의 헤드셋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헬기 하부에 위치한 30밀리 기관포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거의 예술에 가까운 점사로 몇 발씩 날아간 기관포탄이 출입문과 그 옆의 벽을 일부 부쉈다.

사무실안의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라는 명령이었다.


좀비만 기관포로 사살하면 간단히 상황이 종료될 수도 있었지만,

쓰러져 있는 사람들 중 누가 좀비로 각성할지 몰랐고,

피신한 사람들 중의 누가 물렸는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좀비만 쓰러트렸다가는 결국 구조대가 먼저 진입해야 했고,

구조대는 인명구조가 우선인지라 좀비로 각성할지 모르는 사람도 구해야만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었다.

그보다 명령은 더 간단하고 확실했다.

모든 사람을 밖으로 나오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기관포로 좀비를 옆으로 쫓아내다시피 하고, 문을 부수자 길이 열렸다.

개별 사무실안의 사람들은 살짝 열린 문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용기를 내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좀비가 쫓아올까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 사람들이

1층에 도착할 때쯤, 다시 한 번 우노의 신호가 히로토의 이어마이크로 들려왔다.


히로토의 저격은 신속하면서도 정확했다.

후일 그의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을 기억하는 특수작전군 저격수들은 그 상황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최초의 4명이 쓰러질 때까지 히로토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단 한발씩으로 그들의 미간을 뚫었다.

첫 4명의 희생자 중에는 좀비가 없었다.


밖으로만 나가면 모든 악몽이 사라질 줄 알았던 사람들은

앞장섰던 4명의 동료들이 총격을 당하자, 일제히 정지했다.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깐이었다.

바로 뒤에서는 좀비들이 쫓아 내려오고 있었다.

좀비들은 영화에서처럼 비틀거리지도 않았고, 정확히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이제 밖으로 나가서 영문 모르는 총알 세례를 받던지,

아니면 좀비에게 목을 내줘야 했다.

긴급한 상황은 사람들에게 순간적으로 위기를 탈출하게 만드는 능력을 만드는 법인가.

건장한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두뇌의 상대적 크기를 이용한 지혜로 승리했던 호모사피엔스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눈빛으로 뜻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일제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일제히 열다섯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무리를 지어 뛰어 나왔다.

그것까지는 우노와 히로토의 계획에 있지 않았다.


히로토의 눈은 조준경에서 잠시 떨어졌다.

이건 단발사격이 아니라 연사로 조종간을 맞춰놓고,

탄창을 갈아 끼워가면서 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바짝 뒤에서 쫓아오는 좀비 둘을 해치워야 했다.


히로토는 좀비들만 빠르게 쓰러트린 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자신의 앞으로 뛰어드는 열다섯 명의 사람들을 연발사격으로 쏜다는 것은

그냥 살육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명인이 할 일이 아니었다.

히로토가 작전수행을 거부하자, 특수작전군이 수습에 나섰다.


물론 수습이라는 것은 사살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신병을 인수하는 절차였다.

만약을 위해 대기하던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의 간청에 따라 19층 쪽으로도 올라갔다.

우노가 그렸던 작전은 실패로 종료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실패했다고 해도 생목숨을 네 명이나 끊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 누군가에 결국 히로토가 제일 먼저 포함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노도 각오한 대로 독자적인 작전 구상과 지시에 대한 책임을 혼자 져야 했다.

아마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동안 감옥에서 나오긴 어려울 것이었다.

아니 그 과정에서 비밀을 안고 제거될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현장에서부터 연행된 히로토와 우노는 각각 다른 호송차로 실려갔다.

아직 현장과 연결된 이어마이크를 끼고 있던 두 사람에게 그 때,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사무실에서 발견된 시신과 탈출한 사람들을 세어보니,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서 히토미는 다른 경로를 택한 두 명의 생존자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려주었다.

아파치 헬기의 이해가 가지 않는 간접사격에 의심을 품은 두 사람의 남자직원들은,

지하주차장을 거쳐 변전실을 지나 밖으로 통하는 작은 비상구로 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야간 당직자가 야식을 사기 위해 건물을 한 바퀴 도는 것이 귀찮아 가까운 편의점으로 직행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추가로 곧바로 들려온 소식도 있었다.

모리타워에 방문한 사업가들 외에 그들과 동행했던 배우자들이 있었다.

우노의 지시에 따라 그녀들을 잡으러 갔던 요원들이 행방을 놓쳤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짰어도 감염은 그물의 찢어진 틈을 타고 새어나가고 있었다.

우노와 히로토는 다시 풀려날 것을 알았다.

아마 이 일이 종료될 때까지 그들의 효용성은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노는 말로만 듣던 용도폐기라는 것이 실제로 당하는 사람에게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치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골수 우익의 아들로 살아가면서 뼛속에 사무쳤던 대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아는 좀비는 과연 사실일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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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적자생존(9) 18.05.10 958 1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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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적자생존(4) +4 18.05.07 1,223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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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적자생존(2) +10 18.05.04 1,331 30 10쪽
11 적자생존(1) +1 18.05.03 1,463 37 9쪽
10 좀비가 손을 물었다(10) +8 18.05.03 1,504 39 10쪽
9 좀비가 손을 물었다(9) +7 18.05.02 1,566 35 9쪽
8 좀비가 손을 물었다(8) +5 18.05.02 1,681 48 10쪽
7 좀비가 손을 물었다(7) +4 18.05.01 1,711 52 9쪽
6 좀비가 손을 물었다(6) +7 18.05.01 1,813 4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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