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니콜라스최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공포·미스테리

니콜라스최
작품등록일 :
2018.04.30 19:07
최근연재일 :
2018.07.02 19:15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60,935
추천수 :
1,451
글자수 :
316,817

작성
18.05.12 00:10
조회
865
추천
20
글자
11쪽

산자와 죽은 자(2)

과학과 미스테리가 만난 본격 SF 소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입니다




DUMMY

CCR5 유전자 돌연변이를 이용하여 당장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이 돌연변이를 감염이 가능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에 골몰할 여유도 없었다.

일단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감염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별이었다.

즉, 감염자에게 양성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간이 키트의 대량 생산이 가장 중요했다.


내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책임자인 도노반 박사와 역학조사관 카를로스는 세계보건기구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생산시설 확보에 나섰다.

그 결과, 키트 생산이 가능한 제약회사 전부와 바이오 벤처 전부의 생산라인을 확보했다.

정확도와 정밀도를 장담할 수 없겠지만, 여건상 제품 개발의 목표를 딱 두 가지로 정했다.


하나는 현장에서 피 한 방울로 즉시 검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과,

비감염자가 양성으로 진단되는 일은 용납할 수 있어도,

감염자가 음성으로 진단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형광색으로 나타나는 반응의 감도를 최대한으로 조정해야 했다.


면역세포에 특이적으로 작용하여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시대에

이렇게 엉성한 키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다소 부끄럽기도 했지만,

자존감 운운할 때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단 비감염자들 부터 확실히 지켜주는 것이 첫 번째였다.


생산된 키트의 초기 샘플을 점검하고 있을 때,

역학조사관 카를로스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알렉스, 할 얘기가 있는데...”

그 말 이후에도 카를로스는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유난히 검은 눈이 무엇인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의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격의 없이 가까워진 사이에 이렇게 뜸을 들여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불현 듯 나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내 가족들한테 무슨 일이...”

“무슨, 그건 아닐세”

내 말에 오히려 카를로스가 더 놀랐다.

“다름 아니라 자네에게 어려운 손님이 찾아오셨어.”

나에게 어렵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내가 잠시 근무했던 한국에서 마침 국정감사 기간이 시작되면서,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불려나가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일이 어렵긴 했다.

한국정부가 국제백신연구소의 건물과 부지를 제공하고, 예산의 상당부분을 부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운영의 자율성에 대한 간섭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긴 했었다.

더 의외인 것은 국정감사가 끝나고 연구소에 대한 기사가 순위에서 내려가자,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혹시 여기에서도 위기상황에 자신을 돋보이려 하는 정치 지도자가 있는 것일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못 만나겠다고 마다할 상황은 아니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내 일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과 일일이 맞서지 않으면서 실리를 챙기는 눈치도 한국에서 많이 배웠다.

어쨌거나 지금은 한 발을 벼랑 밖으로 내놓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좀비에게 물린 마당에 마음에 상처받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어디 계시는데?”

“접견실에 계시네, 같이 가겠나?”

카를로스를 따라 들어간 접견실에는 나이가 지긋한 중국계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 사람이었다.


“우리 사무총장님일세, 처음 뵐 텐데 인사드리지”

그 순간, 기억이 났다.

세계보건기구인 WHO의 사무총장 마거릿 첸 여사.

합리적이면서도 단호함은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외유내강의 인물.

그런데 왜 이 바쁜 상황 속에서 첸이 나를 만나러 왔을까?

그것도 아무 예고 없이 왔을 때는 나에게 무거운 얘기를 전할 것 같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거릿이라고 불러주세요”

첸은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아 주었다.

“알렉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쩐 일로?”

“듣던 대로 성격이 급하시군요. 과연 그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하신 분 답네요”

환하게 웃는 마거릿의 미소에 잠시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그래도 워낙 긴박한 상황인지라 궁금증은 계속 꼬리를 물었다.


첸 총장이 방문한 이유는 내 예상보다 더 큰일 이었다.

내일 당장 세계보건기구가 위치한 제네바에서 전 세계 보건장관을 대상으로 한 긴급회의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 회의에서 여태까지 확인된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대책에 대해서 통일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건장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사스 유행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그 때의 회의는 분명히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10개 국가의 보건장관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모여서 만든 합의문은 여태까지와 달랐던 것이다.

즉, 사스의 유행을 통제하기 위해 각 나라마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은 출국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적외선에 의한 발열검사 등을 통해 입국자를 통제했지만, 이번에는 각 나라가 책임지고 출국자체를 통제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사스 유행은 극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첸 총장은 나에게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밝혀낸 연구결과를 브리핑 해줄 것을 요구했다.

“제가 정리는 해드리겠습니다. 하루밖에 여유가 없다보니 화려한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은 어렵겠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는 해드리죠. 아마 서론 빼고 한 세장 정도의 그림과 한 장 정도의 결론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WHO의 일이니 발표는 WHO에서 직접 하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카를로스같은 베테랑이 하는 것이 어떨까요?”

카를로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론을 펼쳤다.

“어쩜 그렇게 내가 생각한 대로 답을 하는지 모르겠네”


순간 나도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돌려 말할 줄 모르고 시간 끌지 않는 나의 급한 성격이 카를로스한테 금방 파악된 것 같았다.

하긴 좀비에게 물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기톱을 들고 죽은 좀비의 가슴을 열어 심장하고 폐가 뛰고 있는지부터 확인했던 내가 아닌가?

분명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사람을 다 보았던 카를로스의 눈에도 내가 특이하게는 보였을 것이다.


“자네 말이 다 맞아, 하지만 그 자리가 여느 학술대회처럼 일부는 졸고, 일부는 스마트폰이나 쳐다보고 있으면서 끝나자마자 외국에 출장 온 김에 여행이나 일찍 시작할 궁리를 하고 있고, 아주 몇몇만 발표자한테 귀 기울이고 있는 곳은 아니라는 거지”

그렇긴 하다.

“분명 브리핑이 시작되자마자 비수 같은 질문들이 쏟아질 걸세. 아마 시작할 때는 물론이고, 발표 중간 중간에 좌장이 한 열 번쯤은 제발 발표 다 끝나고 질문 해달라고 신신당부해야 할 것일세”

안 봐도 뻔한 그림이긴 하다.


“자네 말대로 브리핑은 간단하게 하는 것이 좋겠지. 그 대신 그렇다 아니다가 명확해야겠지. ‘앞으로’ 라든지 아니면 ‘향후’ 같은 단어를 썼다가는 그 자리에서 차라리 좀비의 편으로 서는 것이 낫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살벌한 말들이 쏟아질 거야”

오죽하겠는가. 내가 당사자만 아니었다면, 카를로스의 말에 장단이라도 맞춰주고 싶었다.

“좌장이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 마치 경매장에라도 온 것처럼, 손들고 나오는 사람들 천지일거야. 이 사람, 저 사람 당장 확인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대부분 질문이 서로 오버랩 되어 있을 것이고. 노회한 장관들 옆에 있는 실무자들이 수시로 쪽지를 전해주고 있을 거야”

국정감사장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그 자리는 인류 전체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얘기할 것이고, 앞으로 인류가 생존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일세. 그렇지만 그 자리에 와있는 장관들이나 실무자들은 자신의 나라가 통쾌하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장면을 원할 거야. 아마 실수를 하거나 중복된 질문을 해서 발언 기회를 빼앗기면, 실무자들은 자기네 장관 뒤통수라도 후려치고 싶을 걸세”

장관은 어디까지나 정치인이니까.

“결국 질문들은 학술적 관심사보다는 가치 판단에 중점을 두고 쏟아질 것 같네. 바이러스 수용체가 어떻고, 돌연변이의 확률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좀비는 사람인가, 아닌가. 좀비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생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좀비는 다시 생환이 가능한가 같은 것들이지”

나 같아도 그런 질문을 하겠다.


“그럼, 그 자리에서 연구결과에 대해 분명한 지식을 갖고 배짱 있게 얘기할 전문가가 발표를 해야겠나, 아니면 나 같은 책상물림이 질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해 계속 전문가에게 물어보면서 대답을 우물쭈물 하다가 융단폭격을 맞는 게 맞겠나? 신경이 곤두 선 사람들 앞에서 발표자와 전문가 둘 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서로 영어로 통역하는 것도 아니고 그 꼴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아마 둘이 버벅거리고 있으면 잘난 장관님들이 산 채로 집어삼키려고 할 걸세”

그렇다. 어차피 통제 못할 상황이라면 그들에게는 제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목숨을 걸고 결과를 찾아낸 자네가 소신 있게 발표를 하고, 그들과 쭉 주고받는 관계를 가진 내가 좌장을 본다면, 질문을 적절히 걸러내면서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인 질문은 막고, 서로 도움이 되는 질문 위주로 자네가 답변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 아닐까?

참 말 잘한다. 어쩌면 저렇게 논리가 명확할까?


“내가 발표를 함세. 자네가 좌장을 맡는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네”

“생각 잘 했어. 어차피 취재진을 통제 한다고 해도 결국 그 자리의 얘기는 다 나갈 텐데, 할 얘기는 하고, 막을 것은 같이 대응하지”

나는 내가 고집이 무척 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를로스의 달변 앞에 단 5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첸 총장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최초의 한국 출신 사무총장이었던 고 이종욱 박사가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출혈로 사망한 이유는 조직 내부에 있었다고 들었다.

사무총장이 되면서 WHO의 관료적인 행태를 바꿔 보겠다고 했다가, 그럴수록 높은 벽에 부딪히면서 생긴 스트레스로 인해 운명을 달리 했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런 조직을 이끄는 첸 총장에게 카를로스 같은 능력 있는 인재는 분명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내일 장관들 앞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발표를 할 나에게도 그렇다.


“참, 내일 청중석에 각국 정상들도 와서 참관을 한다던데, 참고로 알고만 있게”

발표준비를 하러 성격만큼 급히 돌아서던 나의 등 뒤로 흘린 카를로스의 한 마디가 칼날이 되어 꽂혔다.

“정상들이 다 온다고?”

“그렇다는데, 하지만 발언권을 꼭 줘야 한다는 법은 없네, 옵저버로 오는 것이니까. 물론 꼭 필요한 질문이라고 사전에 판단되면 막을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르지만”

정상들 앞에서 나를 메인 요리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는 얘기구나.


카를로스, 이 개자식.

첸 총장은 어느새 내 눈길을 피해 딴 청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좀비는 과연 사실일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좀비가 손을 물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인간의 경계(1) +8 18.05.18 879 18 10쪽
34 산자와 죽은 자(14) 18.05.18 843 24 11쪽
33 산자와 죽은 자(13) +5 18.05.17 890 19 10쪽
32 산자와 죽은 자(12) 18.05.16 811 22 10쪽
31 산자와 죽은 자(11) +1 18.05.16 843 20 13쪽
30 산자와 죽은 자(10) +4 18.05.15 833 20 14쪽
29 산자와 죽은 자(9) 18.05.15 844 21 13쪽
28 산자와 죽은 자(8) +1 18.05.14 817 22 13쪽
27 산자와 죽은 자(7) +6 18.05.14 878 22 14쪽
26 산자와 죽은 자(6) +1 18.05.13 889 23 15쪽
25 산자와 죽은 자(5) +1 18.05.13 849 21 12쪽
24 산자와 죽은 자(4) +2 18.05.12 854 22 12쪽
23 산자와 죽은 자(3) +2 18.05.12 881 24 11쪽
» 산자와 죽은 자(2) 18.05.12 866 20 11쪽
21 산자와 죽은 자(1) +4 18.05.11 961 21 12쪽
20 적자생존(10) +2 18.05.10 972 22 12쪽
19 적자생존(9) 18.05.10 957 16 10쪽
18 적자생존(8) +2 18.05.09 1,053 16 10쪽
17 적자생존(7) +3 18.05.09 1,014 20 12쪽
16 적자생존(6) +4 18.05.08 1,041 22 11쪽
15 적자생존(5) +2 18.05.07 1,112 25 10쪽
14 적자생존(4) +4 18.05.07 1,223 25 10쪽
13 적자생존(3) +3 18.05.05 1,276 30 10쪽
12 적자생존(2) +10 18.05.04 1,331 30 10쪽
11 적자생존(1) +1 18.05.03 1,463 37 9쪽
10 좀비가 손을 물었다(10) +8 18.05.03 1,504 39 10쪽
9 좀비가 손을 물었다(9) +7 18.05.02 1,566 35 9쪽
8 좀비가 손을 물었다(8) +5 18.05.02 1,681 48 10쪽
7 좀비가 손을 물었다(7) +4 18.05.01 1,711 52 9쪽
6 좀비가 손을 물었다(6) +7 18.05.01 1,813 49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