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헌킬 님의 서재입니다.

이번 정류장은 마왕성입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헌킬
작품등록일 :
2020.04.08 21:25
최근연재일 :
2023.12.15 22:47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247
추천수 :
198
글자수 :
787,032

작성
23.12.14 19:42
조회
33
추천
1
글자
11쪽

Chapter 13. 이번 정류장은 심연입니다 (2)

DUMMY

덜컹―! 드그극―! 드드드―!


꽃밭에 들어서는 순간 버스가 출렁이며 강렬히 떨기 시작했다.


내리막은 끝났으나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여 속도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버스는 정확히 나무집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핸들을 힘껏 꺾었다.


우드득―!


단단한 철 지지대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핸들이 통째로 뜯겨져 나왔다.


아까 구불구불한 코스를 지난 이후로 뭔가 덜렁거리던 게, 지금 터진 모양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멍청하게 핸들을 바라보다가, 점점 가까워지는 나무집과 디메시아를 바라보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피하세요! 당장 거기서 나와요!”


버스가 무섭게 돌진하고 있건만.


마녀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속도계는 120을 가리키고 있었다.


10톤이 넘는 고철 덩어리를 이만한 속도로 들이받힌다면 뼈도 못 추리고 즉사다.


설마 내 말을 못알아듣는 건가?


뒤늦게 손짓해 봐도 여전히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 돼! 부딫힌다!”


집도 그녀도 코앞까지 다가왔다.


충돌하기 전에 안전벨트를 풀고 뛰쳐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찰나에 스치듯 마녀의 손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후우웅―!


강력한 바람 소리와 함께 버스가 공중에 살짝 띄워졌다.


동시에 나를 포함한 버스 내부의 파편들도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떠올랐다.


마치 무중력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주변을 이루고 있는 물체들이 허공에서 회전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후두두둑―! 털썩―!


중력이 돌아오듯 파편이 비처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신체가 좌석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그건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우지끈―! 터엉―!


철판이 어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무바퀴가 땅에 닿으며 버스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버스는 속도를 완전히 잃었다.


긴장이 풀린 나는 계기판 위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따스한 빛과 고요한 바람 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디메시아가 다가오고 있었다.


운전석 높이 때문에 모자에 가려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환상 속에서 들었던 맑고 고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당신이 디메시아인가요?”


모자 끝이 위아래로 가벼이 살랑였다.


“준비되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녀가 나무집 안으로 돌아가자, 곧 향긋한 냄새가 났다.


차를 끓이고 있는 것 같았다.


준비라···


그녀가 말한 준비란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것이리라.


모든 진실을 알게 되겠지.


그전에 나는 버스를 살폈다.


문짝과 창문, 좌석들은 전부 다 날아가 버리고 오크통의 잔해나 플라스틱 부품 따위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뿐.


천장의 철판도 모조리 뜯겨져 나가 골자만 남은, 사실상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날 여기까지 데려다주고서야 버스는 기능을 상실했다.


“고맙다. 버스야.”


마지막 감사를 전하고서 버스에서 내려왔다.


보자기도 잔해와 함께 없어졌기에, 가진 거라곤 입고 있는 옷과 효력을 잃은 환영의 반지, 그리고 푸른 가루가 든 주머니 뿐이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하얀 하늘 아래 피어난 하얀 꽃밭.


잔디가 깔린 언덕 아래 자라난 거대한 나무 한 그루.


중간중간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이 꽃잎을 멀리 퍼트리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서서 지켜볼 뿐인데도 기분이 좋아지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마계의 밑바닥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구경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하나와 책상과 의자, 그리고 부엌과 화로가 전부인 작은 집이었다.


디메시아는 나무로 만든 찻잔 위에 끓인 차를 따르고 있었다.


의자에 앉자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미티스 열매껍질로 만든 차입니다. 피로 회복에 좋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따스한 기운과 함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깜짝 놀라 여러 번 마셨지만, 첫 한 모금 이상의 효과는 없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마주 앉은 디메시아를 바라보았다.


환상 속에선 그 모습이 흐릿했기에, 그녀의 얼굴을 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비단처럼 매끄럽게 정돈된 하늘색의 긴 머리칼.


보석처럼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


고혹적이면서도 자애로운 미소를 지닌 마녀의 얼굴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여신이 존재한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이것은 정신을 차리는데도 꽤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감상은 접어두고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하늘빛 눈동자가 상 위에 올려진 주머니로 향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었다.


가벼운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영문 모를 전율을 느꼈다.


긴장감, 아니 기대감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모든 진실에 대하여.


그녀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한 여인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신을 감동시킨 한 여인의 이야기를.”


---


---


모든 것은 하나의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여인 또한 죽음의 기로 앞에 섰다.


그녀는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무고하게 죽은 이를 위하여.


모든 생명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생존 본능.


신이 설계한 근본적 욕망.


어떤 생명이든 죽음 앞에서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기 마련.


그러나 여인은 달랐다.


그녀는 기도를 했다.


저들만은 구원되기를.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그 열망이 아득한 기도의 바람 속에서 신의 귓가에 닿았다.


유의 신 에스카.


그는 그 유별난 생명체에게 흥미가 동했다.


그래서 차원을 너머 그녀를 자신의 세계에 데려왔다.


여인은 가디언이라 불리는 엘프로 태어났다.


가디언의 수장은 에스카에게 이끌려 숲속에서 발견된 엘프를 양녀로 받아들였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여인은 언어를 배우자 다시 그 두손을 맞잡았다.


그녀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속죄와 구원의 기도를 올렸다.


천년에 가까운 아득한 세월 속에 그것은 다시금 에스카의 귀에 들었다.


애절하고 애절하여 눈물에 젖은 기도에 에스카는 그녀에게 디메시아를 보내어 그 이유를 물었다.


《내 너에게 새 삶을 주었건만, 무엇이 그리 슬프더냐.》


“신이시여. 저로 인해 죽은 이를 구원해 주소서.”


《미래를 바꾸는 것은 운명을 거스르는 것. 그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가가 무엇이든 따르겠나이다.”


《그를 이 세계로 데려와 시험을 치를 것이다. 시험에 따라 그에게 미래를 바꿀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허나 너는 반드시 죽어 그 영혼이 봉인 될 것이다.》


“부디 그리되게 해주소서.”


《가엽도다. 순수한 영혼이여. 너의 영혼은 찬란한 보석이 되어 이 세계에 뿌리내릴 것이다.》


---


---


뚝. 뚝. 뚝.


눈물이 주머니 위에 떨어졌다.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레쉬메프···”


디메시아가 말했다.


“운명을 따라 이곳까지 도달한 당신에겐 미래를 바꿀 자격이 있습니다.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나는 디메시아에게 격정적으로 외쳤다.


“레쉬메프는 어떻게 되는 거죠···?”


디메시아는 주머니를 가리켰다.


“이것이 그녀가 선택한 모습입니다. 그녀의 영혼은 가루처럼 잘게 흩어져 이곳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그렇게 둘 순 없습니다!”


디메시아는 조용히 찻잔을 거두어갈 뿐이었다.


돌아서는 마녀에게 다시금 외쳤다.


“저는 레쉬메프를 살리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미래를 바꾸는 것 따윈 관심도 가져본 적 없어요!”


나는 디메시아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알고 있는 거죠? 레쉬메프를 되살릴 방법을.”


디메시아는 유유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쉬메프를 되살려 주세요.”


“···”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디메시아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한 대가는 묻지 않으시는 군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녀만 되살릴 수 있다면.”


그녀는 곧 자신의 손 위에 푸른 불꽃을 띄웠다.


“저는 생명을 되살릴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일한 영혼의 무게를 지닌 자의 영혼이 필요합니다.”


디메시아는 한 호흡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목숨을 대가로 그녀를 살릴 수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디메시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머니를 들고 일어나 손에 든 푸른 불꽃을 키웠다.


그 순간 불꽃 너머로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에는 포탈이, 오른쪽에는 주머니를 든 디메시아가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시겠습니까. 아니면 목숨을 희생하여 그녀를 살리시겠습니까.”


나는 포탈을 바라보았다.


정원에서 미온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를 위해 살아갈 거야.】


잠시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레쉬메프 덕분이다.


그녀 덕분에 변할 수 있었다.


그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겐 더 이상의 후회는 없다.


이미 나는 그녀에게 두 번이나 구해진 몸이니까.


나는 디메시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군요. 당신도 그녀도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차원 문이 닫혔다.


“레쉬메프는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부탁합니다.”


그 순간 암흑이 찾아왔다.


---


---


디메시아는 정신을 잃은 손동현의 육신을 허공에 눕혔다.


그리고 주머니를 든 손에 푸른 불꽃을 피워 올렸다.


“텍트. 크리에이트.”


시전어와 함께 푸른 빛이 터져 나왔다.


푸른 가루가 불꽃에 의해 녹아들며 여인의 육신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손동현의 육신에서 붉고 강인한 생명력과 영혼의 기체가 솟구쳤다.


그것이 여인의 신체로 흘러 들어가려 할 때였다.


손동현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푸른 가루와 공명하며 디메시아의 눈앞에 거대한 종을 소환시켰다.


“이것은···”


디메시아는 종을 바라보다 반지에 쓰여진 마력의 글씨를 읽었다.


“아르웬 데 베타 엡실론.”


디메시아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9서클에 반응하는 술식이라··· 흥미로운 사람이군요.”


반지는 디메시아의 마법에 반응하여 그 마지막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곧 거대한 종에서 울리는 유의 신 에스카의 창조의 권능.


디메시아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서로를 향한 자기 희생. 이토록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당신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손동현.”


디메시아는 창조의 권능을 바탕으로 손동현의 영혼을 거두지 않고 레쉬메프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엘프 여인이 눈을 뜨자, 그녀는 자신이 어떤 상황 속에 있는 지 알아챘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리 위에 환한 빛이 내리쬐었다.


디메시아도 레쉬메프도 그 축복의 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자. 그와 함께 돌아가세요. 두 분께 에스카 님의 축복이 언제나 함께하기를.”


레쉬메프는 손동현을 부축하며 차원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번 정류장은 마왕성입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기 23.12.15 15 0 -
공지 연재 공지 21.04.05 88 0 -
121 에필로그 23.12.15 43 1 14쪽
» Chapter 13. 이번 정류장은 심연입니다 (2) 23.12.14 34 1 11쪽
119 Chapter 13. 이번 정류장은 심연입니다 (1) 23.12.13 31 1 13쪽
118 Chapter 12. 이번 정류장은 마왕성입니다 (2) 23.12.11 31 1 12쪽
117 Chapter 12. 이번 정류장은 마왕성입니다 (1) 23.12.08 31 1 12쪽
116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10) 23.12.07 31 1 12쪽
115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9) 23.12.06 30 1 10쪽
114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8) 23.12.05 32 1 13쪽
113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7) 23.12.04 33 1 15쪽
112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6) 23.12.01 33 1 14쪽
111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5) 23.11.30 37 1 14쪽
110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4) 23.11.29 32 1 15쪽
109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3) 23.11.27 34 1 13쪽
108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2) 23.11.24 36 1 18쪽
107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1) 23.11.23 37 1 16쪽
106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26) 23.11.22 36 1 13쪽
105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25) 23.11.21 34 1 15쪽
104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24) 23.11.17 33 1 15쪽
103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23) 23.11.16 32 1 14쪽
102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22) 23.11.15 32 1 15쪽
101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21) 23.11.13 32 1 13쪽
100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20) 23.11.10 34 1 14쪽
99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19) 23.11.09 33 1 15쪽
98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18) 23.11.08 33 1 14쪽
97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17) 23.11.07 40 1 14쪽
96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16) 23.11.06 33 1 14쪽
95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15) 23.11.05 36 1 12쪽
94 Chapter 10. 이번 정류장은 쾌락의 층입니다 (14) 23.11.03 36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