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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킬 님의 서재입니다.

이번 정류장은 마왕성입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헌킬
작품등록일 :
2020.04.08 21:25
최근연재일 :
2023.12.15 22:47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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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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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글자수 :
787,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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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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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Chapter 11. 이번 정류장은 오만의 층입니다 (2)

DUMMY

크로크 시는 페로몬 숲과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도시이면서, 수도와는 가장 먼 지방 도시이기 때문에 여행객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제재 없이 도시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곳은 다양한 종족이 모여 살고 있어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시골 도시 같았다.


락슨은 왜 이 도시를 도망쳐 나왔을까.


탈주민들이 마을을 이룰 정도라면 어떤 이유가 있는 건 확실했다.


아쉽게도 락슨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걸 꺼리는 눈치였다.


락슨은 지인이 운영하는 주점에 데려다주겠다며 앞장섰다.


인간인 나도 나지만, 큰 키에 화려한 외모를 지닌 미온의 모습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나는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 했으나, 의외로 시민들은 우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피하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것은 주점의 입구에서 확실해졌다.


방금까지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던 서큐버스가 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서큐버스가 남성을 거부하다니.


쾌락의 층에선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때 앞장서 걷던 락슨이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고디크!”


“락슨!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점장으로 보이는 뱀인이 주방에서 나타나 그를 반겼다.


그러나 고디크라 불린 사내는 락슨의 굳은 표정을 보곤 낌새를 눈치챈 듯 목소릴 깔고 말했다.


“사정이 있어보이는 군. 안으로 들어가지.”


그는 자연스럽게 락슨을 주방 안으로 들이려다 우리를 보고 흠칫 놀랐다.


적어도 평범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락슨은 오해가 커지기 전에 우리 소개를 대신 해주었다.


“이분들은 쾌락의 층에서 넘어온 여행객들입니다. 곤경에 빠진 절 도와주었죠.”


그러자 고디크는 순식간에 얼굴이 풀어졌다.


“내 친구를 도와줘서 고맙소. 시찰 나온 공물 감독관인 줄 알았지 뭐요.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을 사과하오.”


“괜찮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소. 안으로 들어오시오.”


공물감독관? 그게 뭐지?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대놓고 물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고디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테이블이 아니라 왜 주방 안으로 안내하나 싶었는데,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디크가 주방의 서랍장 옆면을 몇 번 노크하자 갑자기 서랍장이 들썩이더니, 그곳에서 전갈족 처럼 보이는 덩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비밀 통로를 지키는 문지기로 보였다.


그는 우리를 슥 훑어보더니 터짓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통로엔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지하 공간이 나왔다.


창문 하나 없는 지하였는데, 그곳에서 수십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저마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는 주점에만 있는 게 아닌 듯, 지하 벽에 뚫린 공간으로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거대한 지하 시설이었다.


“이게 다 뭐에요?”


내가 묻자 고디크가 답했다.


“시민들의 아지트요.”


“아지트라고요?”


왜 이런 공간이 필요한지까지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때 문지기가 빈 탁자와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별말 없이 둘러앉자, 문지기는 다시금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고디크는 굳은 얼굴로 락슨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건가?”


“풀 마을이 어제 습격을 당했습니다.”


락슨은 고디크에게 우리도 아는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와이번 무리라니! 어쩌다 그런 일이!”


“로벅 씨 가족들과 당신 어머니의 행방은 안타깝게도 알지 못합니다.”


“빌어먹을 리게일 자작의 소행이 틀림없어!”


쾅!


고디크는 냅다 탁자를 내리쳤다.


그러자 일순간 주변의 떠드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최근에 자작이 성안에 술사를 들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참이었네! 또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을까 했더니! 젠장! 놈의 짓이 틀림없어!”


그가 씩씩거리며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뭔일 났수?”


“왜 소리 지르고 그래?”


그러자 고디크는 락슨과 함께 풀 마을이 습격을 받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졌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그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구먼!”


“어찌할꼬. 드겐 가족들은 살아남았을지 모르겠네.”


“조만간 풀 마을로 이주할 생각이었는데, 망했어.”


모두 저마다 화를 내거나 슬퍼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놀랍게도 모두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고디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뜸 우리에게 말했다.


“이거, 친구의 은인이 있으신데 음식도 대접하지 않고 있었군 그래. 미안하게 됐소. 혹시 맥주 한잔하겠소?”


“전 괜찮아요.”


“나도 필요 없다.”


“저는 한 잔 주십시오.”


고디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따라 주방으로 올라갔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나는 락슨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이리 침착한 거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러자 락슨은 어두운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밤이 되면 왜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락슨은 그 말만 남기며 더 이상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락슨은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이리 꽁꽁 숨기지?


미심쩍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고디크가 쟁반 가득 따끈따끈한 요리를 들고 내려왔다.


락슨이 수상하긴 했지만, 일단 밥은 밥이다.


나는 방금 구워진 빵에 야채수프를 푹 찍어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지금껏 고기 요리만 질리듯이 먹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느껴보는 탄수화물의 맛은 최고였다.


고맙게도 미온이 그사이에 하고 싶었던 질문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지도 가지고 있는 거 있나?”


“저는 제 물건이 모두 불타 없어졌는지라···”


락슨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온이 고디크를 바라보니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지도? 그게 뭐요?”


“지도를 모르나?”


“처음 듣는 단어요.”


나와 미온이 동시에 락슨을 쳐다보았으나, 그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혹시 오만의 층에선 지도라는 걸 다른 단어로 알고 있는가 해서 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종이에 지형 지물이나 도시 또는 나라를 간략하게 표시해 놓은 그림을 지도라고 하거든요.”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종이는 귀족들이나 가지고 있는 거요. 우리 같은 서민들은 종이를 전혀 취급 안 하오.”


“저도 그런 걸 가져본 기억은 없습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마왕성으로 가는 길이나 방향은 아시나요?”


“마왕성? 한평생 여기서 지내다 죽을 텐데 그리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소?”


몇차례 비슷한 질문을 더 던져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미온도 그들의 답변을 듣더니 더 이상 질문하는 걸 그만두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삶 이외의 것에는 완전히 무지했다.


식사를 마치자 고디크가 묵을 장소가 없다면 건물 위층의 빈방 하나를 내준다기에 냉큼 받아들였다.


물론, 대금은 확실히 치렀다.


금화 2닢.


고디크는 펄쩍 뛰었지만, 내가 금화가 가득 든 상자를 보여주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어차피 다른 곳에 묵을 생각도 없으니, 여기에 투자하는 게 맞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미온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들이 거슬렸다.


음욕에 번들거리는 눈빛.


미온의 외모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긴 했다.


하지만 노골적인 그들의 행위는 굉장히 불쾌했다.


어떤이는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대놓고 자신들의 성기를 잡고 흔들기 까지 했다.


미온은 그들의 존재 자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나는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고디크의 안내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방은 정갈했다.


2명이 누울 수 있는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그리고 거리가 보이는 베란다가 딸린 2인실.


거의 일주일을 숲에서 지냈기 때문에 따듯한 공기가 감도는 방과 푹신한 침대가 너무 반가웠다.


미온은 거리가 보이는 베란다로 나가 밖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와 함께 밖을 구경하면서 락슨과 고디크, 그리고 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침대에 눕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


---


눈을 뜨자 주변이 어두웠다.


“이런··· 자버렸나.”


꽤 오랫동안 잠을 잤는지 배가 고플 정도였다.


방에는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미온은 어디 간 거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자연스레 그녀가 있던 베란다로 나갔다.


시골 도시라 그런지 밤이 되니 매우 어두웠다.


그만큼 거리에 보이는 횃불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저게 뭐 하는 거지···?


횃불을 든 사람은 하나같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거구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거리를 따라 이어진 긴 시민들의 행렬을 감시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대열을 이탈하면 고성을 지르며 욕설하는 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휘둘렀다.


밤이 되면 알게 될 거라는 게 이거였던 건가.


락슨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들이 공물감독관일게 분명해 보였다.


공물이 내가 아는 그 공물이라면, 저 긴 행렬은 공물을 바치기 위한 행렬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민들은 저마다 물건이 든 주머니나 상자를 들고 있었다.


이제야 퍼즐이 마쳐지기 시작했다.


락슨이 왜 귀족을 두려워하는지.


왜 탈주민들이 발생했는지.


지하 시설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두 이 도시의 영주가 시민들에게 필요 이상의 공물을 바치도록 강제했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이 쌀쌀맞은 태도를 내게 보인 것은 내가 뱀파이어와 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는 걸 왜 락슨은 우리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않았던 걸까.


그때였다.


쾅!


거칠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들렸다.


그리고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곧 발걸음 소리와 함께 옆방의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다시금 발걸음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번엔 내 방일 것 같았다.


목적은 모르겠으나, 일단 침대 밑으로 숨었다.


쾅!


방문이 걷어차지며 손잡이가 벽에 부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대 밑의 틈으로 난데없는 불청객을 몰래 지켜보았다.


침대 밑이라 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날카롭게 돋아난 발톱과 매끄러운 갑피를 지닌 걸 보니, 종족은 전갈족으로 보였다.


그는 방 내부를 걸어 다니며 살피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탁자 앞에 멈춰 섰다.


그제서야 나는 탁자에 풀어 둔 보자기를 떠올렸다.


아. 맞다. 보자기!


놈은 보자기를 발견한 게 틀림 없었다.


스륵.


무단침입도 죄인데, 도둑질이라니.


나는 불청객을 상대하기 위해 침대에서 나왔다.


그러자 놈은 날 발견하고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누구냐.”


“난 리게일 자작님의 직속 공물 감독관이다. 네가 바로 그 놈이로군.“


녀석은 나를 아는 눈치였다.


놈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얼굴은 드러낸 상태였다.


어디선가 봤다 했더니, 주점의 문지기와 매우 흡사한 외모였다.


뭔가 느낌이 싸하다 했더니.


“내 물건 돌려줘.”


“고디크가 말하더군. 초록색 보자기에서 금화가 나왔다지?”


그 순간 검은 로브 속에서 녀석의 날카로운 꼬리가 나타나 내게 날아왔다.


나는 곧바로 몸을 던져 피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리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머리통이 날아갈 뻔했다.


놈의 꼬리는 침대를 단숨에 꿰뚫고 박살을 냈다.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검은 돌을 집었다.


내가 악마가 되자 거들먹거리는 놈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 당신은 배, 뱀파이어?!”


그것이 녀석의 단말마였다.


내가 칼날을 거두자 놈의 목이 떨어졌다.


나는 그대로 서서 죽은 놈의 손에서 보자기를 빼앗아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단숨에 주방으로 내려가, 서랍장을 발로 걷어찬 다음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단도가 나타났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꺾어 피한 뒤, 단도를 휘두른 문지기의 복부에 주먹을 내질렀다.


뻐억! 꽈직!


전갈족의 피부 갑피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들렸다.


“쿨럭!”


피를 토하는 문지기의 목을 잡고 그대로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오전에 봤던 사람들이 숨죽인 채로 숨어있었다.


“무, 문지기가 당했다···!”


“뱀파이어?!”


“귀족이다!”


그들은 내 모습을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부 다 닥쳐!”


내가 마력을 실은 목소리로 강하게 외치자 모두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들이켰다.


쿠웅!


뒤이어 거구의 문지기를 한손으로 휙 던져버리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도망칠 생각조차 잊어버린 듯 겁을 집어먹고 주저앉았다.


나는 테이블 밑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그들 틈에 숨어있는 락슨의 멱살을 집어 그대로 들어 올렸다.


“히, 히익!”


“너. 날 속였지.”


“아, 아닙···!”


나는 더 들을 것도 없이 락슨의 왼손가락을 모두 반대로 접어버렸다.


꾸드득!


“끄아악!”


“조용.”


“흐읍!”


살기가 서린 내 목소리에 락슨은 비명이 터져 나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속인 건 아니지. 넌 거짓말을 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알고서도 모른 척 했지.”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나는 숨죽인 채 떠는 시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너희들의 수법인가? 순진한 여행객을 아지트로 불러들여 안심시키곤 음식에 약을 타서 재운 다음, 공물 감독관에게 팔아먹는 거 말이야.”


그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락슨을 돌아보았다.


“락슨. 너한테는 실망이야.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이 도시에서 탈주는 곧 사형입니다··· 저는 이 아지트의 거주 자격을 갖춰야만 했습니다··· 탈주민인 제가 살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요···!”


“그럼 이 사람들도 다 너랑 비슷한 처지란 이야기군?”


“그, 그렇습니다. 고디크는 이곳의 브로커들 중 하나입니다. 공물 감독관에게 뇌물을 바쳐서 공물을 바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숨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물론 저 같은 탈주민을 보호해주기도 하구요.”


우득!


난 락슨의 손목뼈를 으스러뜨렸다.


“으으읍!”


락슨은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다.


”네가 아무리 불쌍한 척해도 결국 넌 우리를 팔아먹으려 했어. 만약 나한테 이런 힘이 없었다면, 속절없이 당했겠지. 너희도 죄가 없는 건 아니야.”


나는 그대로 락슨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이 누군지는 알겠어. 너희가 두려워하는 리게일 자작은 오늘 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그러니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락슨 뿐 아니라, 이곳에 숨어있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하나둘씩 입을 열며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남을 팔아먹고 살아남은 사람들치고는 순수한 눈빛이었다.


평생 악행이라곤 저질러 본 적 없는 평범한 시골 아저씨, 아줌마들을 보는 것 같았다.


만약 생존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 남을 팔아넘기는 행위라면, 나역시 이들과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스릉!


내가 양손에 칼날을 뽑자,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아까 미온을 음란한 눈으로 쳐다보던 남정네를 발견하고 놈들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너넨 용서해 줄 수가 없다.”


푹! 촤악!


“끄으윽!”


나는 놈들의 아랫도리를 차례대로 찌르고 그대로 지하 시설을 벗어났다.


그리곤 지붕을 타고 영주성으로 움직였다.


공물을 바치는 시민들의 행렬을 따라 이동했다.


시민들의 공물을 통해 호사를 누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 듯, 영주성 근처에 다다르니 휘황찬란한 저택으로 가득한 부자 동네가 나타났다.


공물 관리관들이 특히 많은 것을 보니, 그들의 집으로 보였다.


곧 영주성이 보이고, 행렬은 성문 너머까지 이어졌다.


그때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손동현.”


미온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악마화한 나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해?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잖아.”


“지도를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지도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군.”


이미 고디크와 락슨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이젠 확실해졌다.


서민의 정보격차가 매우 심각하다는걸.


“그렇다면 너도 귀족을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거야?”


미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온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이해했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같군.”


우리는 시선을 영주성으로 돌렸다.


“손동현. 악마화를 풀어라. 이제부터는 내가 처리하지.”


“알겠어. 근데 방식은 내가 정할게.”


나는 시민들의 행렬을 보면서 떠올렸던 아이디어를 미온에게 설명해 주었다.


“너 다운 방식이로군. 알겠다. 그렇게 하지.”


나는 악마화를 풀고 보자기 속에서 금화 상자를 꺼냈다.


그리곤 우리는 지붕에서 내려와, 슬쩍 시민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공물 감독관들은 행렬 속에 숨어든 우리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곧 성문을 넘자 넓은 공터가 드러났다.


그곳에는 공물 감독관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행렬의 선두에 선 시민들을 두 분류로 분리하고 있었다.


왼쪽으로 이동한 사람은 안도한 표정을 지었지만, 오른쪽으로 이동한 사람은 새파래진 얼굴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왼쪽으로 이동했지만, 오른쪽도 스무 명 중 한명꼴로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분류된 시민은 저항했지만, 공물 감독관들이 억지로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곳이 어딘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단두대가 달린 처형대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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