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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로불사
작품등록일 :
2024.03.1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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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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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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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40. 2022 플레이오프(3)

DUMMY

“성운아, 컨디션 괜찮지?”

“응, 걱정하지마.”


나영이로부터의 전화.

포스트시즌 기간동안은 모두 합숙이다.

서울팀끼리의 경기더라도 호텔을 잡아두고 합숙을 한다.

물론 마음 먹으면 가족을 만나고 오건 애인과 데이트를 하건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호텔에 머문다.

특히 3차전 선발인 나는 더욱 그랬다.


“내일 올거지?”

“당연하지, 내일 반차냈어. 일찍 갈게.”

“그래. 알았다.”

“성운아, 부담갖지 말고 던져, 나 보지도 말고.”

“알았어.”


나영이한테 표를 구해주었다.

나영이가 부모님을 모시고 올 예정이다.


나는 일부러 나영이를 만나지 않고 하루종일 운동과 이미지 트레이닝에만 몰두했다.



****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고척돔에 나와있는 KDS입니다. 플레이오프 3차전, 저는 오늘 중계를 맡은 이상용이고요. 제 옆자리에는 박영택 해설위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양 팀 1승 1패, 오늘이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양 팀이 1승 1패의 상황에서 서로 국내파 에이스들을 내 건 자존심을 건 싸움인데요. 음··· 아마도 오늘 시합으로 한 80%는 결정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하하”

“자, 진성운 대 안우정이란 말이죠. 양쪽 다 15승씩을 거둔 국내파 에이스들입니다.”


캐스터의 말에 박영택 해설이 기록지를 보며 이야기한다.


“그렇습니다. 두 선수 모두 15승을 기록했죠. 최고의 강속구 투수대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 방어율은 안우정 선수가 좋지만 승률은 또 진성운 선수가 좋거든요? 오늘 재미있는 시합이 될 것 같습니다.”


“자, 양 팀 오늘의 키 맨은 누가 있을까요?”

“네, 역시 뭐 양 팀의 선발투수, 안우정 대 진서운이라는 빅매치가 최고의 관전 포인트고요. 타자는 역시 각 팀에서 해줘야할 선수들, 히어로즈의 이창후와 푸이드, 그리고, 트윈스의 김헌수와 채은별 선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럼 양 팀 국민의례를 시작하겠습니다.”


***


경기에 나가기 전 내 몸은 적당히 고양되어 있었다.


‘허억~ 허억’


적당히 호흡이 올라온 상태, 돔구장의 따듯한 기온과 함께 불그스레해진 내 뺨, 빠르게 도는 혈류, 내 감각은 발가락 끝에서부터 머리털 끝까지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성운아, 오늘 특히 이창후랑 푸이드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보조 투수코치인 김강삼 코치의 조언대로 수 만번도 더 시뮬레이션 해봤다.


“이창후 뭐에 약해?”

“바깥쪽으로 흘러 떨어지는 볼, 그리고 몸 옆구리로 파고드는 볼이요.”

“그래, 근데 너 체인지업 없잖아? 흘러나가는 체인지업 없으니까 네 그 빠른 커브로 몸쪽에 붙여버려, 그리고 몸쪽 인하이 너 잘 던지자나? 거기 직구로 때려 박아.”


“네.”

나는 김강삼 코치를 쳐다봤다.


“코치님 걱정마세요, 저 오늘 봉인도 다 풀 겁니다.”

봉인을 푼다는 말, 심연의 끝자락에 밀봉해 두었던 스플리터를 던진다는 소리다.


“성운아, 너 무리하게 많이 던지면 안 돼. 한국시리즈 가서도 던져야지?”

“네, 걱정마세요.”

“그리고 스플리터만 던지면 상대가 안다. 스리쿼터로 스플리터 온다고..”

나는 말없이 씨익 웃어보였다.


내가 웃자 김강삼 코치도 웃으며 엄지척을 해보인다.


“그래, 오케이, 자. 다들 화이팅 하자!”


3차전부터는 히어로즈의 홈인 고척돔에서 시작한다.

상대투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 안우정,

192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160km까지 나오는 강속구가 일품이다.


우리 팀 1번타자는 박재민 선배, 거액의 FA로 우리팀에 합류한 수비가 일품인 중견수.

포스트시즌에 항상 부진한 상기형이 아예 빠지고 빅가이 이태원이 하위타선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재민 선배가 선두타자, 심지어 안우정을 상대로 통산타율이 4할중반대를 넘는다.


나는 몸을 풀면서 안우정의 투구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올 해 많은 이닝을 던지며 지쳤을 것이다.


‘안우정은 시즌에만 196이닝을 던졌어, 게다가 준플옵 1차전과 5차전, 이미 200이닝을 훌쩍 넘었어. 분명히 체력적으로 힘들거다.’


스트라이크 아웃!!


“뭐?”


안우정에게 강한 박재민 선배가 손도 못대고 헛스윙 삼진을 당한다.

2번 타자는 이번 포스트시즌에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이평종 선배.

나는 개인적으로 평종이형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시즌에는 부진했지만 평종이형은 1번타자 박재민 선배와 함께 팀내에서 빠른 볼을 가장 잘 친다.

사이드나 언더 상대로는 형편없지만 빠른 공이라면 평종이형을 이겨낼 수 없다.


스트라이크 아웃!!!


두 타자 연속삼진,

안우정의 공을 가장 잘 칠 수 있는 두 명이 연속삼진을 당했다.

안우정은 빠른 공에 변화구를 핀포인트 제구로 섞어가며 던지고 있었다.


김헌수 선배의 바가지 안타가 나오긴 했지만 오래 끌지 못하고 1회 종료.


이제 1회말 수비를 위해 적진의 마운드로 뛰어나간다.

구장안에는 내 등장곡인 Evanescence의 Bring me to life가 흘러나오고 우리 팬들이 환호하기 시작한다.

나는 불펜을 열고 나와 전주가 흘러나오는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How can you see into my eyes like open doors?

(어떻게 열린 문처럼 내 눈을 볼 수 있지?)


Leading you down into my core

(너를 내 중심으로 끌어당겨 인도해)


Where I've become so numb

(내가 너무 멍해져 무감각해진 그곳으로)


Without a soul

(영혼 없이)


My spirit's sleeping somewhere cold

(내 영혼은 추운 곳에서 자고 있잖아)


Until you find it there and lead it back home

(네가 다시 나를 찾아 집으로 되돌려 보내 줄 때까지)


Wake me up inside (save me)

(안에서 나를 깨워줘 (구해줘))


Can't wake up (Wake me up inside)

(깨어날 수 없어 (안에서 나를 깨워줘))


Save Me~!

(날 구해줘)


Call my name and save me from the dark (wake me up)

(내 이름을 불러 어둠 속에서 날 구해줘 (깨워줘))


Bid my blood to run (I can't wake up)

(내 피가 들끓도록 (깨어날 수 없어))


Before I come undone (save me)

(내가 망가지기 전에 (구해줘))


Save me from the nothing I've become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나로부터 나를 구해줘)


웅장한 리듬의 락앤롤이 고척돔을 휘감는다.


"휴우~"


나는 숨을 내쉬고 호흡을 고른다.

발로 마운드의 흙을 고른다.

내 모든 신경을 손 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턱을 들어 도도한 자세로 오로지 강북이형의 포수미트만 내려봤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긴다.’


나 역시 힘차게 공을 꽂아넣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잉

팡!!


“스트~~~~라이크!!”


고개를 들어 포수 뒤를 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

인기아이돌 유세아였다.


‘유세아가 야구를 보러 왔다고?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게 우리 팀 저지를 입고 있었다.

나에게 사인을 받은 그 저지 말이다.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나를 보고 있다.


‘집중하자.’

나는 다시 포수 미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박영택 위원, 역시 양 팀이 한치의 양보도 없군요. 안우정과 진성운, 똑같이 삼진 2개씩 솎아내며 주거니 받거니 1회를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하하, 두 투수의 구위를 보니까 오늘 점수 내기 쉽지 않겠는데요? 공이 너무 좋네요. 안우정 선수는 구속이 많이 나오진 않지만 지금 제구가 상당히 좋잖아요?”

“많이 안 나와도 154가 찍히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죠. 거기에 진성운 선수도 지금 148의 직구가 휘어져 나가거든요. 천하의 이창후 선수가 사이드암을 상대로 내야플라이를 치는일이 상당히 드문데 말이죠.”


일진일퇴의 공방전


양 팀 투수들은 살얼음같은 출발속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그대로 뽐내고 있었다.


***


“지훈아, 야~~ 안우정 직구에 밀리면 안 돼, 포인트 앞에서 잡어 야~, 최대한 앞에다 잡으면 공이 빠르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붙어부려서 맞는다고, 심플하게 스윙하자 잉?, 큰 스윙 말고~”


이호순 타격코치의 걸걸한 목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린다.


2회에 우리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훈이 형의 타구를 푸이드가 무리하게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가 2루타로 만들어 준 것이다.


“오케이, 가자!! 나이스, 나이스!!”


동료들의 환호에도 나는 덕아웃 가장 구석, 선발투수가 앉는 자리에서 벽에 머리를 대고 오른쪽 어깨에만 유광점퍼를 걸친채 차분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돔구장은 따뜻하기 때문에 점퍼를 걸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냥 그건 나의 루틴같은 것이었다.

오늘의 난 단 1초도 방심할 수 없었다.


딱!


2차전 마지막 타석을 병살타로 끝낸 문보성이 6번타자로 나와 안우정의 바깥쪽 직구를 그대로 밀어친다.

오지훈 형을 불러들이는 깨끗한 선제 적시타.


“오케이!! 오케이!!!”


3회에는 은별이형이 안우정의 한가운데 낮게 떨어지는 커브를 받아쳐 솔로홈런을 만들었다.

맞자마자 알 수 있는 볼 것도 없는 홈런.


와아아아아!!! 채은별!!!! 채은별!!!! 채은별!!!!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2차전 패배는 단순한 오류에 불과했다는 듯이 우리는 초반부터 상대를 압도했다.


‘역시 안우정이 지쳤어.’


지금도 여전히 155km를 던지지만 시즌 한창 좋을때에 비하면 공이 풀려서 들어간다.

안우정도 사람이다.

요새 KBO 리그에서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는 선수는 없다.


안우정은 금새라도 무너질 것 처럼 위태위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나의 투구,


****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입니다!! 진성운 압권의 투구!!”

“이창후도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아.. 진성운 선수 오늘 엄청난데요?”

“지금 잘 보세요, 이창후 선수한테 말이죠. 1스트라이크 1볼에서 이창후 선수에게 스리쿼터로 스플리터를 던져서 헛스윙을 이끌어냈단 말이에요? 그런데 2스트라이크 1볼에서 자세히 보시면 다시 스리쿼터로 던집니다.”


해설자 박영택이 느린화면을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을 한다.


“그러면 이창후 선수입장에서는 아!! 포크볼이 한 번 더 오는구나라고 순간적으로 느낀다는 거죠. 왜? 스리쿼터로 던지니까요. 그런데 바깥쪽 꽉차는 직구가 들어온거죠. 그래서 저런 표정으로 스윙 한 번 못해보고 들어가는 겁니다.”


박영택의 해설에 캐스터 이상용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 그렇군요. 확실히 야구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창후 선수답지 않게 루킹삼진을 당하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네, 배터리의 볼 배합이 아주 좋았네요. 저러면 타자가 시동이 안 걸려 버리거든요, 진성운 선수 준비를 많이 해 온 것 같네요.”



****


“나이스, 나이스!!, 성운이 잘 했다.”


4회가 끝났다.

스코어는 여전히 2-0 우리의 리드다.

나는 완투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실제로는 어렵겠지만 의지만은 그랬다.


이미 2점을 뽑은 만큼 이 점수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킨다고 생각했다.


“성운아, 너 팔을 왜 이렇게 떨어?”


보조 투수코치인 김강삼 코치가 와서 내 팔을 잡는다.


“아.. 아니에요. 그냥 좀.. 갑자기.. 긴장했나 봅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급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김강삼 코치 뒤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김종일 트레이너와 눈이 마주쳤다.

김강삼 코치는 모른다.

동료들이나 코치들은 아무도 내 병에 대해 모른다.


나는 눈으로 김종일 수석에게 말했다.

‘안 돼요, 나는 던질 겁니다.’


5회초 공격도 허무하게 끝났다.

강북이형이 안타를 치고 나갔지만 후속타자가 불발이었다.


“역시.. 안우정은 안우정이라 이거지?”


무너질 듯 하면서도 위기가 되면 구속을 끌어올리며 타자를 압도해 버리는 안우정이었다.


'저 괴물새끼.'


나도 질 수 없었다.

나는 5회도 잘 막아냈다.


사사구없이 피안타는 겨우 2개, 5회까지 거의 완벽한 피칭이었다.


그리고 6회말 우리의 수비.

나는 마운드를 고르다가 다리와 팔이 동시에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 안돼··· 제발..’

앞으로 2이닝 정도만 막으면 된다.

투구수가 적기 때문에 7회정도까지는 막을 수 있다.

그러면 영우와 오석이가 올라올 것이다.


선두타자는 9번 3루수인 좌타자 성송문.

바깥쪽으로 빠져서 들어가는 백도어 슬라이더를 엉덩이가 빠지며 툭 건드린다.


‘아.. 젠장.’


타구는 지훈이 형의 키를 살짝 넘겨서 중견수 박재민 형과의 사이에 톡 떨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야구를 하다보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텍사스 히트였다.


“치잇.”


다음 타자를 잘 잡으면 된다, 별 거 아니다.

다음타자는 1번 김준관.


‘번트인가? 강공?’


‘청룡섬격 풀파워’


나는 좌타자인 김준관의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청룡섬격을 던져 3루나 유격수 땅볼로 병살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손이 덜덜 떨린다.

'젠장.. 제발.. 움직여, 조금만 더, 조금만..'


쉬우우우우우욱

딱!!


파울!!!


슈우우우우욱

딱!!


파울!!!


‘젠장할.. 파울을 몇 개를 치는 거야?’


짜증이 올라올 무렵 손이 점점 더 떨리고 있었다.


‘아이 씨.. 미치겠네, 정말!!!’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마운드 주위를 빙빙 돌며 눈으로 강북이 형에게 사인을 보냈다.

마운드로 올라와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포수자리에서 일어나 미트를 팡팡치며 나에게 기운을 돋구워 주는 강북이 형.

“괜찮아, 성운아!!! 차근차근 잡자.”


‘하아.. 환장하겠네.’

나는 손의 떨림이 조금이라도 진정되게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주자를 견제하는 척 발을 빼며 1루주자를 몇 번 쳐다본다.

보다 못한 심판이 타임을 걸고 양손을 허공에 돌린다. 빨리 좀 하라는 거다.

이 때 우리 감독이 튀어나와서 심판에게 양 팔을 벌리며 항의를 한다.


소위 말해 ‘뭔데 우리 애 기죽이는 겁니까?’를 시전하는 것이다.


‘다행이다. 시간을 벌어 주었어.’


나는 열심히 손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1루 관중석을 봤다.

부모님과 나영이의 얼굴이 보인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영이와 눈이 마주친다.


“휴우.. 정신 차리자, 정신.”

내 스스로에게 나지막히 읊조렸다.


다행히 김준관을 2루수 앞 느린땅볼로 아웃처리했다.

하지만 타구가 느렸던 탓에 1루주자는 여유있게 2루로 갔다.

결국 번트와 같은 효과였다.


‘젠장할.. 김준관한테 공을 8개나 던졌어.’


다음타자 이영규에게도 공을 5개나 던졌다.

결과는 1루땅볼 아웃.


“됐어, 이제 2아웃이다.”


다음 타자는 이창후.

나는 여기서 아껴두었던 마지막 구슬치기랑 수룡승천을 모두 쓸 각오였다.

어차피 이번 이창후 타석만 이겨내면 이창후는 더 이상 안 만난다.


2사 주자 3루, 투구수는 아직도 82개로 여유가 있다.

나는 계속해서 어깨를 털며 손을 오므락 펴락 하고 있었다.



이 때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호헌 투수코치가 걸어나온다.


‘뭐 하는 거지? 뭐하냐고?’


경호헌 투수코치는 주심에게 걸어가며 뭐라뭐라 한다.

그리고 공을 받아들고 마운드로 올라오고 있었다.


"피처교체!! 진태수!!"


심판의 콜에 나는 순간 돌이 되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니, 대체 뭔 짓거리야?’


내 영혼은 이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수고했다, 성운아. 너 팔 많이 아파?”

경호헌 투수코치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뭐 하시는 겁니까? 제가 마무리 할게요. 하나만 잡으면 되잖아요.”

“야, 한 방 맞으면 동점이야.”

“아니, 아까도 이창후 삼진 잡는 거 보셨잖아요? 네?”


나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졌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어제 클럿코는 6실점 할 동안 안 바꾸더니 왜 나한테 와서는 이러는가?


“야, 감독님 오더야, 그냥 태수 믿어.”

경호헌 코치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투수, 내려가요, 시간 지났어.”


뒤에서 심판이 시계를 들고 재촉한다.


“하아..”

“성운아, 수고했다.”

강북이형도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


내 짜증이 뭉쳐진 땀이 귓가에 쉴 새없이 흘러내린다.

이미 좌투수인 진태수 선배가 마운드에 다 올라왔다.

나는 부르르 떨리는 팔을 주먹을 꽉 쥐며 내려왔다.


진성운!!! 진성운!!! 진성운!!!


우리 관중석에서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울려퍼진다.

내려가며 왜 포수 뒤를 쳐다봤을까?

유세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박수를 치고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1루 덕아웃 위에서는 부모님과 나영이가 신이나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영이는 아예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환호에 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렇게 내려가면 안 되는데..'

마치 집안에 가스 안 잠그고 비행기 탄 걸 자각한 사람마냥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성운이 수고했어.”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개박수를 친다.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지만 쳐다도 보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감독의 말을 무시한건 이번 삶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머리로는 안다.

6회고, 내가 팔을 절고 있고, 이창후, 김이성 모두 좌타자니까 사이드암인 나를 세 번 만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작전상으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타월로 얼굴을 닦으며 그라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 슬픈 예감은 어긋나지 않았다.

좌완 진태수 선배는 이창후에게 몸에 맞는 볼, 김이성에게 우전 적시타를 맞고 원아웃도 잡지 못하고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정영우도 마찬가지, 푸이드에게 3루쪽 내야안타, 김태준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으며 순식간에 스코어는 3-2로 역전이 되었다.

2사 3루에서 원아웃도 잡지 못하고 3점을 준 것이다.


감독의 얼굴이 벌게졌지만 나는 외면했다.

나 혼자만 이 열광의 그라운드내의 다른 이공간에 있는 듯 멍했다.

이닝이 끝나고 화장실을 다녀와서도 떨리는 오른팔을 왼팔로 잡아 진정시키며 그라운드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역전에 역전을 다시 거듭한 결과,



따악!!!

"임시열 선수 큽니다. 큽니다!! 넘어갑니다!! 역전 투런 홈런!!



필승조인 이성용이 1할 타자인 대타 임시열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다.

임시열은 지난 4년간 홈런이라고는 딱 1개를 쳤던 타자였다.

그리고 연이은 이창후의 쐐기포까지..

성용이는 공 2개를 던지고 홈런 두 개를 맞았다.


"아아아아악!!!!!!"

로진백을 던지며 자해하려고 하는 성용이,

"야, 성용이 잡아, 빨리!!!"


투수코치가 소리지르자 불펜포수가 달려가 성용이를 껴 앉는다.

"성용아, 안돼!! 게임 안 끝났어!!!"

"으아아아아아아악!!!!

성용이는 라커 뒤에서 머리를 찧으며 괴로워했다.


7회가 끝나자 정신적 지주인 김헌수 선배가 타자들을 모은다.

"야!! 정신 차려!!!! 할 수 있어!! 안 끝났어!! 2점 원찬스야!! 원 찬스!!!"


헌수 선배는 팀의 리더답게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모아놓고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는 8회에 마지막 찬스를 잡았다.

4번과 5번의 연속안타로 만든 무사 1,2루, 그리고 타자는 팀내 리딩히터 문보성.


벤치에서 나오는 번트 사인,

번트가 떴다.


"어?"


1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멈췄다.

상대 마무리 투수인 김세웅이 갑자기 앞으로 날아 올랐다.

투수의 미친 다이빙 캐치, 심지어 김세웅은 다이빙 캐치후 2루로 공을 던져 더블아웃을 이끌어냈다.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 끈이 그렇게 끊겨버렸다.

결국 시합은 4-6 우리의 대역전패로 끝났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시합이었다.

100번을 복기하더라도 우리가 이겼어야 할, 이겨야 마땅한 시합이었다.


투수교체는 번번히 실패하였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에러와 상대의 호수비,

그리고 결정적인 실수와 상대 1할타자의 뜬금없는 홈런까지..

거기에 더해 8회 결정적인 찬스에서의 번트 미스와 상대의 슈퍼플레이.

이 거짓말같은 일들이 모두 더해져서 우리는 역전패했다.


‘끝났다. 여기까지구나.’


나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더 이상 마운드에 설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어흑, 어흐으윽, 흑, 흑"


1차전의 영웅 문보성은 2, 3차전의 역적이 되어 시합중에 엉엉 울고 있었고, 백투백을 맞은 성용이는 분을 못참아 미쳐 날뛰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게 남의 일처럼 현실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멍하니 덕아웃 그자리에 줄곧 앉아 있었다.

그저 땀이 비오듯이 계속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라커룸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두번 연속 이렇게 역전패를 당하면 그 누구도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다.

단기전은 기세싸움인데 완전히 끝나버렸다.


"뭘 어떻게 해야되지? 누가.. 말 좀 해봐?"


감독은 얼굴이 벌게진채 코치들에게 물었지만 다들 침울한 분위기 그대로였다.

결국 벤치는 무당에게 굿하는 심정으로 1차전 승리 로스터를 그대로 넣었으나 투타 모두 무기력했다.


파이팅은 없었고 덕아웃은 조용했다.

그야말로 석이 죽어버렸다.

벼랑에 몰린 우리는 에이스 켈슨이 다시 나왔지만 6승 8패 ERA 4.30의 애슬러를 공략못해서 4-1로 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무기력하고도 일방적인 시합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전혀 예상치 못하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우린 15승 트리오 세 명을 연달아 투입하고도 시리즈 스코어 3-1로 탈락해버렸다.

나의 한국시리즈 우승도, 감독의 재계약도 이렇게 모두 날아가 버렸다.


“괜찮아, 잘했어 성운아, 끝은 또 다른 시작이야. 내년에 잘 하면 돼. 응?”


오랜만에 만난 나영이는 나를 이렇게 위로하고 있었다.


“그래, 끝은 또 다른 시작이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반쯤 넋이 나가 있었지만 그래도 정신줄을 잡으려고 애썼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번 삶은 갑작스러운 사고사가 아니라서 삶을 돌아보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시간여유가 있었다.


'하아~~ 사는게.. 쉽지 않네.'


<계속>




작품내의 모든 인물/지명/단체는 허구이며, 우연히 겹친다 하더라도 현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작가의말

이번 화는 중요한 회차라서 끊지 않고 2화분의 분량을 한 번에 실었습니다.

2화로 나누어 연참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몰입감을 위해 끊지않고 그냥 한 화에 담았습니다.

여러분께서 성원해 주시면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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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0. 인간이 밤 하늘에 하얀 별을 쏘아 올릴 때 +6 24.06.01 83 5 12쪽
79 79. 우주전쟁 +2 24.05.31 91 5 13쪽
78 78. 대망의 한국시리즈(4) +4 24.05.30 93 7 14쪽
77 77. 대망의 한국시리즈(3) +6 24.05.29 90 6 14쪽
76 76. 대망의 한국시리즈(2) +4 24.05.28 91 7 12쪽
75 75. 대망의 한국시리즈(1) +4 24.05.27 100 5 13쪽
74 74. 마지막 데이트 +4 24.05.26 108 5 12쪽
73 73. 정규리그 우승 +4 24.05.25 106 8 11쪽
72 72. 팔씨름 달인 홍지상 +8 24.05.24 104 8 12쪽
71 71. 마지막 과제 +6 24.05.23 110 7 12쪽
70 70. 마이 네임 이즈 제임스 딘 +4 24.05.22 111 8 13쪽
69 69. 오빠 화이팅! +6 24.05.21 115 7 12쪽
68 68. 환장하겠네 +6 24.05.20 122 7 13쪽
67 67. 2023 WBC(4) +2 24.05.19 117 6 14쪽
66 66. 2023 WBC(3) +4 24.05.18 122 5 12쪽
65 65. 2023 WBC(2) +2 24.05.17 132 8 12쪽
64 64. 2023 WBC(1) +2 24.05.16 138 9 12쪽
63 63. 윈터리그(2) +4 24.05.15 144 7 12쪽
62 62. 윈터리그(1) +5 24.05.14 145 10 12쪽
61 61. 2022년의 마무리 +6 24.05.13 152 7 14쪽
60 60. Not Fate - Playoff again(6/END) +4 24.05.12 150 6 12쪽
59 59. Not Fate - Playoff again(5) +4 24.05.11 149 6 13쪽
58 58. Not Fate - Playoff again(4) +4 24.05.10 15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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