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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투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22
최근연재일 :
2023.06.24 22:2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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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42
추천수 :
4,256
글자수 :
254,220

작성
23.06.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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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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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글자
18쪽

28화 북한산으로

DUMMY

다시 방문한···.

아니, 실제로는 처음 찾아온 의정부 부대찌개거리는 아포칼립스에서 봤던 빛바랜 광경과는 다르게 활기가 넘쳤다.


평일인데도 유명 맛집을 찾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연인이나 친구끼리 혹은 휴가 나온 군인들이 심심찮게 보였고, 점심 장사가 한창인 여러 부대찌개 전문점은 손님들로 꽤나 북적였다.


서은후는 인파를 가로질러 계속 나아가다가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


해창빌딩이라고 이름 붙은 7층 빌딩.

아포칼립스의 시작 지점이었던 바로 그 장소다.

그때 본 화재와 파괴의 흔적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어서일까.

같은 건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상태에 위화감부터 들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1층 편의점에 들어선 은후는 음료수가 진열된 냉장고 앞으로 갔다.

최초로 로그아웃했던 지점, 창고와 이어진 문이 이쪽에 있어서다.


그 자리에 서니 불현듯 상반신만 남은 좀비를 대면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무척 당황했었던 그때가 겨우 3개월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은 수백이 넘는 좀비와 마주해도 어떡하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궁리부터 먼저 하게 되는데.


턱-


냉장고에서 아무 음료수나 꺼내 계산대에 올렸다.


"1,200원입니다."


값을 치르고 문을 나서려는데.


"또 오세요."

"······."


의례적인 인사인데도 묘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궁금했다.

저 알바생은 3년 뒤에 좀비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여기서 일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 상반신 좀비가 아니었을까.


'무슨 생각을!'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망상을 떨쳐내고선 건물 입구로 걸어갔다.

빈 점포였던 위치에 지금은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분식점과 부동산 사무실을 지난 은후는 계단 통로로 꺾이는 모퉁이 부근의 미용실과 꽃집을 잠시 신기한 기분으로 쳐다봤다.


아포칼립스 초창기 시절을 회상하듯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했다.

엉망인 시체들과 악취로 고생했었던 2, 3층은 평범한 상가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뭐가 다르고 또 어느 부분이 비슷한지 속으로 비교해 가며 그렇게 한 층씩 오르길 한참.

드디어 6층에 도착했다.


"······."


은후는 몸이 가는 대로 걸음을 맡겼고, 이내 한 장소에 다다랐다.


[SJ어패럴]


시작 지점이었던 곳이다.

불에 전소됐었던 공간에는 사무실이 자리 잡았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업체다.


덜컹-


"?!"


마침 택배 포장한 박스들을 카트에 가득 싣고 나오던 직원이 문 앞에 선 은후를 보곤 놀란다.

은후는 살짝 묵례한 후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이후로도 한 시간 가까이 안을 돌아다녔다.

옥상 문은 아포칼립스와 마찬가지로 굳게 잠겨있었다.

다만, 망가진 구석 하나 없이 새것 같은 형태가 인상적이다.

6층 화장실 도구 칸에는 안전화 같은 건 없었다.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은후는 밖으로 나와 건물을 올려다봤다.


최근 며칠 새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 때문에 머릿속은 과부하 상태.

정리 못 한 생각들을 미뤄두고 여길 찾은 이유는 사실 별거 아니다.


시작점에 오면 뭐라도 느껴지는 게 있을까 봐.

그게 조금이나마 앞으로의 행동에 도움이 될까 봐서.

그런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무작정 나선 걸음이었다.


딱히 크게 와닿는 건 없었다.

그저 현재 상황을 재차 확인했을 따름이고, 각오를 한층 더 단단히 다질 뿐이다.


눈앞의 빌딩이 아포칼립스의 그곳과 같은 건물이지만, 다른 미래가 그려지는 것처럼.

자신도 4년 뒤에 이미 죽고 없는 서은후와 다른 길을 가겠다.


지금껏 걸어온 것보다 더욱 험난할 길이 될 것이다.

숱한 위기와 절망, 상실을 경험하게 되겠지.

그렇다고 해도 포기할 수는 없다.

자신이 무엇을 짊어졌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으니까.

그걸 되새기게 해준 것만으로도 이번 방문은 만족스러웠다.


다신 찾아올 리 없는 7층 건물을 뒤로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졌다.



* * *



오전 일찍 찾아온 은후에게 한다솔이 공책을 내밀었다.


[아빠 어디 있어요?]

"······."


은후는 자세를 낮춰 아이를 마주 봤다.

구로동으로 떠나기 전 봤을 때보다 눈두덩이는 가라앉았지만, 뺨에 눈물 자국은 여전하다.

한다솔은 공책의 빈칸에 또박또박 글씨를 또 채워나갔다.


[돌아가신 거 알아요. 전 괜찮으니까 알려주세요.]

"···그래."


혹시 몰라 시신은 미리 단장해 뒀었다.


"아저씨가 들었는데, 엄마랑 오빠를 옥상에 모셨다며?"

"······."


한다솔은 살짝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도 거기에 모시는 건 어떨까 싶은데···. 다솔이 생각은 어때?"


다시 공책에 뭔가를 적는다.


[그렇게 할게요.]


은후는 쓴웃음을 짓고선 눈물을 억지로 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10분 뒤에 올라올래? 아저씨가 먼저 올라가서 장례 준비라도 해놓을 테니까."

"······."


한다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집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옥상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수페인트가 벗겨진 바닥과 난간 끝에 자리한 낮은 봉분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근처 화단의 흙이 파헤쳐진 걸 보니 그걸 퍼 날라서 만든 무덤으로 보였다.

눈과 비에 씻겨 내려갈 법도 한데, 한명식이 생전에 신경을 많이 썼는지 유해가 내비치는 불상사는 없었다.


은후는 그 옆의 비어있는 곳에 가서 섰다.


"인벤토리."


먼저, 총알 배송으로 받은 오동나무 관을 반듯하게 놓았다.

그 안에 정장으로 잘 차려 입힌 한명식을 뉜 후, 흙 포대를 줄줄이 꺼냈다.

주둥이를 풀어 내용물을 다 쏟아내자 금세 작은 흙산이 쌓였다.

마지막으로 삽 한 자루를 꺼내 흙산 중턱에 꽂고는 상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


10분쯤 지나서 올라온 한다솔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준비된 장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관에 누운 한명식을 보고는 눈물을 머금었다.

은후는 아이에게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줬다.

십여 분이 흐른 뒤에 한다솔이 일어나 관에서 떨어졌다.


"······."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무언의 허락에 은후가 관 뚜껑을 닫았다.


"한 삽 떠서 관 위에 뿌려줘."


아이는 어른이 알려준 대로 삽으로 최대한 많은 흙을 떠 관에 흩쳤다.

본격적으로 봉분을 만드는 일엔 은후가 나섰다.


'한명식 씨, 편히 쉬세요. 다른 세상에서는 절대 이런 미래가 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한다솔도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 놓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봉분을 단단히 다졌다.


"······."


엄마와 오빠의 빈약한 무덤이 신경 쓰이는지 한다솔은 연신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걸 알아챈 은후는 남은 흙과 화단의 자투리까지 싹싹 긁어모아 둘의 봉분도 볼록하게 올려줬다.


[정말 고맙습니다.]


공책을 펼쳐 보이며 감사를 표하는 한다솔에게 은후는 가족사진이 든 한명식의 일기장을 건넸다.

사탕 껍질은 아이에게 필요 없을 듯하여 따로 빼뒀다.


"아빠가 쓰던 일기장이야. 유품이니까 네가 챙겨야지."

"······."

"다솔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을 거야. 그래도 언젠가 다 알게 될 날이 올 테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아이는 그걸 받아 책가방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럼, 이제 가자."

"······."


어디로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아이의 물음에 은후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북한산. 거기 생존자들이 모여 산대."


둘은 아파트를 나와 마포대교가 있는 동쪽으로 향했다.



* * *



"왔군."


강변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마포대교와 연결된 경사로를 타고 다리 위에 올랐다.

두 추종자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황동욱은 은후 옆의 작은 존재에 적잖이 놀랐다.


"아이···?"


요즘 들어 찾아보기 힘든 연령층이 아이와 노인이다.

건장한 성인들도 살아남기 힘든 환경에 그들이 먼저 도태되었었다.


"그쪽 딸?"


마찬가지로 놀란 반응을 보이며 김진섭이 물었다.

은후는 고개를 저었다.


"지인의 딸이야. 북한산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괜찮지?"

"아아···. 얼마든지."


동욱과 진섭도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어떤 사연일지 대충 그려졌다.

둘은 한다솔을 안쓰러운 듯 바라봤다.


"?!"


검정 롱코트 차림에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

아이의 눈에는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보였다.

한다솔은 고개를 슬쩍 돌리며 은후의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알려준 대로 잘 차려입고 왔군."


동욱은 은후의 옷차림을 품평했다.

끝단이 닳은 면바지와 구겨진 셔츠, 때가 덕지덕지 묻은 바람막이 재킷을 입고, 올이 군데군데 나간 버킷 모자까지 눌러썼다.

전에 한명식이 보여줬던 생존자의 궁색한 외형과 다를 바가 없었고, 아무리 잘 봐줘도 노숙자 그 자체였다.


지금부터 은후의 신분은 지나가던 추종자들에게 우연히 구원받은 생존자다.

북한산에 오르려면 그렇게 위장해야만 한다고 지난번에 동욱이 설명했었다.

자세한 이유를 말해주진 않아 모르기는 해도 에덴이란 집단명처럼 이상적인 곳은 아닐 것 같다는 짐작만 해볼 뿐이다.


"아이가 딸려있다고 하면 경비대에서도 딴지를 걸진 않겠네. 우리 같은 괴물들과 달리 인류애가 넘치는 분들이잖아?"

"···복서, 너도 허밍버드 닮아가? 그 입 좀 닥치지."

"예이, 예이."

"···대답은 한 번으로 충분해."


역시 문제가 있는 곳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댁들은 한 명이 비네? 그 여잔 먼저 출발한 거야?"


동욱과 진섭은 동시에 머리를 흔들었다.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이틀 전 저녁에 오리배 타고 강가에 닿았어. 오늘 새벽까진 5층 상가 건물에서 지냈고. 102동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까지 다 확인했지."


임미연이 나타난 곳은 은후와 한다솔이 지나온 방향이었다.


"···날 미행했군."

"당연하지."


동욱은 긍정했다.


"아무 안전장치도 없이 형씨를 풀어줄 순 없었다. 우리 비밀까지 알게 된 마당이니까."

"대단하네···."


비아냥이 아닌 솔직한 심정이었다.


<와아···. 어떻게 된 게 길동이한테 한 번도 안 잡히냐?>


접속한 뒤부터 상공에 드론을 띄워 주변을 실시간으로 감시했지만, 도준명은 방금까지도 미연을 눈치채지 못했다.

카메라가 잡아내기 힘든 그늘로만 이동한다고 해도 이렇게 감쪽같이 움직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에 봤던 스피드만큼이나 은밀한 기동성이다.


"사돈 남 말 하네."


반면, 미연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은후를 쳐다봤다.


"저 드론 조종하는 양반은 도대체 어디로 숨어다니는 거야? 아무리 찾아봐도 털끝 하나 찾을 수가 없었어."


미연의 보고에 동욱은 심각한 얼굴로 은후를 봤다.


"네 동료도 동행하는 게 아니라면 인제 그만 드론은 치우지? 에덴을 아무에게나 보일 순 없다."

"그럴게."


은후는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위로 손을 크게 두 바퀴 돌렸다.


<라저!>


준명은 힘찬 대답과 함께 드론을 제자리에서 빙빙 돌리고는 곧 동쪽의 빌딩 숲으로 날렸다.

아마 200m 이상 벌어지면 추락할 테지.

그 사실을 들키기 전에 드론은 요령껏 빌딩 사이로 숨어들어 추종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됐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비밀이 외부로 퍼지는 날엔 형씨 동료가 한 짓으로 간주하고 끝까지 쫓아가 단죄할 거다. 물론, 보증을 선 형씨도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동욱의 엄포에 은후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그럴 일은 없어. 나나 내 친구가 그랬다는 확증이 나오면 무슨 벌이든 달게 받을게."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확인해 볼까? 증거는 가져왔겠지?"

"여기 있어. 사진이야."


은후는 어제 병원에서 찍은 것 중 고르고 골라 인화한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헤에- 대장에게 이런 귀여운 시절도 있었네?"


사진이라는 말에 미연은 물론, 진섭까지 동욱 옆으로 바짝 붙었다.

사진을 뒤적이던 동욱은 잠시 후에 은후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 사진들, 언제 찍었나?"

"···4년 전."

"그런 것치고는 형씨 얼굴이 전에 봤을 때랑 별반 다르지 않은데?"


은후는 마른침을 몰래 삼키며 태연스레 대꾸했다.


"내가 워낙에 동안이라서."


셋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미친! 제정신인가. 본인 입으로 동안?"

"흠- 사진만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데···?"

"따까리는 좀 닥쳐."


날 선 반응들에 은후는 부연하듯 얼른 덧붙였다.


"사진발도 잘 받는 편이라서."


오히려 더 역효과를 내는 말이었다.

셋은 상대의 뻔뻔함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내저었다.


"금방 뽑은 듯한 상태도 미심쩍지만···. 대장의 명령도 있으니, 확인은 이쯤 하지."

"대장의 명령? 설마 은호와 연락을 한 거야?"

"그때 들은 이야기는 전했다."

"뭐래? 은호가 전하라는 말은 없었어?"

"······."


기대에 찬 은후를 보며 동욱이 말했다.


"에덴으로 데려오라는 명령뿐이었다."

"아, 그래···."


실망한 듯한 그에게 동욱은 덧붙였다.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대장 앞에서 허튼짓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널 주시하는 게 우리만은 아닐 테니까."

"충고 고마워."

"······."


대답을 들은 동욱은 몸을 돌렸다.


"이제 출발하자."

"집으로 고고-."

"햐! 얼마만의 귀환이야."


그런데 은후가 보기엔 셋이 나아가는 방향이 이상했다.


"북한산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쪽은 여의도로 가는 방향이잖아."

"거기가 출발점이니까."

"뭐?"


은후의 의문은 얼마 안 가 풀렸다.


마포대교를 건너고, 여의도 한강공원을 따라 여의나루역에 도착해 보니 다른 추종자들이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다가오는 좀비들을 단숨에 쓰러뜨리면서.


"여기서부터 종로3가, 또 거기서부터 녹번까지 안전하게 길을 뚫어놨지."


일명 세이프 로드.

5호선과 3호선 선로를 이용한, 에덴으로 가는 안전 경로라며 동욱이 운을 띄웠다.


"꼬박 반년이나 걸렸지. 그때 죽어나는 줄."

"덕분에 지금은 편하잖아. 여길 통해서 구해낸 생존자들도 많고."


어떻게 그 길을 뚫었는지 듣는 순간, 은후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폭약 정도는 경찰서나 군부대를 뒤지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에덴은 그걸 가지고 여의나루에서 녹번까지 이어지는 모든 역의 플랫폼 출입로를 무너뜨렸다.

지하 선로만 남기고는 외부 침입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당연히 좀비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러면 역 안에 이미 자리를 잡은 놈들은?

더 물어 뭐 하겠는가.

방금 미연이 표현한 꼬박 반년이 그놈들을 때려잡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당시의 수색대원 30명 전원이 투입된 결과 지금의 세이프 로드가 완성되었다.


'그게 말처럼 쉬워?'


은후로선 놀랍기만 했다.

서울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노선이니만큼 좀비 수도 만만치 않을 건데, 그걸 다 정리하고 이걸 만들다니.

아무리 가공할 만한 신체 능력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머? 조금 늦었네."

"아아, 오늘따라 오는 길에 좀비가 좀 많아서."


킥보이로 불리는 수색대 5조 조장이 뒤쪽을 살피려 고개를 쭉 내밀었다.


"이번에 발견한 생존자가 저들이야?"


그도 곧 동욱과 진섭이 그랬던 것처럼 놀란 듯 탄성을 내질렀다.


"호오? 아직도 서울에 살아남은 아이가 있었을 줄이야!"


조장의 외침에 5조 조원들도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좀비를 쥐 잡듯 하던 조금 전과 달리 다들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한다솔에게 보냈다.


"······."


검붉은 피를 덕지덕지 묻힌 추종자들은 아이에게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 다름없었다.

한다솔은 은후의 뒤로 숨어 몸을 덜덜 떨었다.


"이 화상들아! 애 놀라잖아. 다들 꺼져버려!"


미연이 단도까지 꺼내 들고 윽박지르자 다들 낄낄 웃어대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에 동행할 사람은···. 저들까지 해서 다섯이 단가?"


동욱의 물음에 킥보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깡마른 남성 셋이 추종자들이 두려운 듯 눈치를 보며 앉아 있었다.


"더 시간 끌 것도 없으니 우린 바로 출발하지."

"그래, 대장한테 안부 전해주고."

"무전기 뒀다 뭐하나. 직접 말하라고."

"직접 얼굴 보고 하는 거랑은 다르지. 우린 파견 기간이 2주도 더 남았잖아. 부탁 좀 하자고!"

"음."


동욱은 턱을 까닥이는 것으로 킥보이와의 대화를 마쳤다.


이미 이 길을 셀 수 없을 만큼 지나갔던 동욱과 진섭이 앞에 서고, 은후와 한다솔을 비롯한 다섯 생존자들이 중간에, 미연은 맨 끝에서 일행을 따랐다.

여의나루역을 시작으로 먼 길을 나선 여덟은 손전등 몇 개에 의지해 가며 캄캄한 지하 선로를 더듬었다.

간혹 보이는 좀비 시체와 반쯤 파묻히다시피 한 몇몇 플랫폼 말고는 이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건 없었다.

녹번역까지 이대로 가게 될 거란 동욱의 말을 은후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종로3가역에 도착하고 3호선으로 환승하려던 도중에.


탕!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은후와 동욱 일행은 단발의 총성과 함께 불청객을 맞이했다.




※ 본 작품은 픽션이며, 실제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일부 설정은 현실과 다소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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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상봉 +8 23.06.16 3,059 103 14쪽
30 30화 에덴 +3 23.06.14 2,991 105 15쪽
29 29화 인턴십 +3 23.06.13 3,129 106 17쪽
» 28화 북한산으로 +5 23.06.10 3,287 114 18쪽
27 27화 추종자들(2) +6 23.06.09 3,323 117 17쪽
26 26화 추종자들(1) +4 23.06.08 3,360 125 16쪽
25 25화 시작점의 진실 +6 23.06.07 3,391 128 16쪽
24 24화 뜻밖의 만남(4) +8 23.06.06 3,401 124 17쪽
23 23화 뜻밖의 만남(3) +6 23.06.03 3,499 10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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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대비책 마련(2) +4 23.05.23 3,884 117 15쪽
13 13화 대비책 마련(1) +5 23.05.21 3,955 111 16쪽
12 12화 귀국 +5 23.05.20 4,003 1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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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도서관으로(2) +5 23.05.13 5,003 131 14쪽
4 4화 도서관으로(1) +8 23.05.12 5,307 137 13쪽
3 3화 당첨 +12 23.05.11 5,725 134 14쪽
2 2화 아포칼립스 +5 23.05.10 6,221 161 13쪽
1 1화 로그인 +8 23.05.10 7,685 16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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