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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호랑이의 꾸지람

호랑이의 꾸지람(호질虎叱)

 

 2012년 출간된 [작품으로 읽는 연암박지원 소설편]에서 발췌.

 

 

 

 

 

 

호랑이는 착하고 성스럽되 아름다운 무늬 옷을 입었는데 싸움도 잘한다.

자애롭고 효성스러우며, 슬기롭고 어질며, 엉큼스럽고 날래고, 기운차고도 사나워서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그러나 원숭이의 일종인 비위는 호랑이를 잡아먹는다.

검은빛 짐승 죽우도 범을 잡아먹고,

말과 같은 짐승으로써 산해경 몸은 희고 꼬리는 검으며 외뿔에 호랑이처럼 생겼으며, 어금니와 발톱을 가졌고, 호랑이와 표범을 먹는다.” 라고 설명되어있는 박도 호랑이를 잡아먹고,

누런 털에 다섯 가지 색깔이 찬란하게 섞였으며, 꼴은 사자와 같다는 오색사자는 호랑이를 큰 나무구멍에서 잡아먹고,

꼴이 말 같으며, 톱니가 날카로워서 호표를 먹는다는 자백이란 짐승도 호랑이를 잡아먹는다.

거수국에 있는, 일명은 노견이라고 하는 표견은 호랑이와 표범을 날아가서 잡아먹고,

개는 갠데 표범과 비슷하고, 허리 이상은 누렇다는 황요는 호랑이와 표범의 염통을 꺼내어 먹고,

뼈가 없는 동물인데 호랑이의 입에 들어가도 호랑이를 물지 못하지만 호랑이의 뱃속에서부터 호랑이를 먹어 나온다는 활은 호랑이와 표범에게 일부러 삼켜졌다가 그 뱃속에서 간을 뜯어먹고,

호랑이만 먹는 호랑이같이 생겼으면서 호랑이보다 크고 꼬리도 호랑이보다 길다고 하는 추이는 호랑이를 만나기만 하면 곧 찢어서 먹는다.

호랑이가 맹용을 만나면 눈을 감은 채로 감히 뜨질 못하는데, 그런데 사람은 안 그렇다.

그 맹용 겁낼 줄 모르면서도 호랑이만 나타났다하면 벌벌 떨어댄다.

호랑이 위풍이 실로 대단하질 않는가?

 

호랑이가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린다.

호랑이가 한 번 사람을 먹으면 잡아먹힌 사람의 귀신인 창귀가 굴각이라는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어산다. 그러면서 호랑이가 남의 집 부엌엘 들어가도록 꼬드겨 솥전을 핥게 한다. 그 집 주인이 갑자기 배가 고파 아내에게 야식을 짓게 하고, 그래서 호랑이는 두 번째 사람을 먹게 되고, 남편 밤참 먹이려다 잡아먹힌, 그 아내 창귀는 이올이란 이름으로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어살게 된다. 이올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사냥꾼의 행동을 살피는데, 만일 깊은 골짜기에 함정이나 화살을 감췄다면 먼저 가서 그 틀을 벗겨 놓으려고 그런다. 호랑이가 세 번째로 사람을 먹으면 그 혼은 육혼이란 이름의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턱에 붙어살되 한평생 알고 지내던 친구들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

 

하루는 호랑이가 창귀들을 모아놓고 의논했다.

오늘도 벌써 날이 저무는데 무슨 음식으로 배를 채울꼬?”

굴각이 대답했다.

제가 일찍이 점쳐 보았는데, 아마도 그 음식이 가장 적당하지 싶습니다. 뿔도 없고 날개도 없고 머리 빛깔은 검은 것이,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겼는데, 비틀비틀 엉성한 걸음에다 꼬리가 뒤통수에 붙어서 꽁무니도 못 감추는 그런 놈이 있습니다.”

 

이올이 높은 데서 관찰한 바를 조목조목 늘어놨다.

저 동문 쪽에 먹을 것이 있습죠. 이름을 의원이라 한다는데, 그는 입에 온갖 풀을 머금어서 살코기가 향기롭습니다. 또 서문 쪽에도 먹을 것이 있사온데, 이름은 무당이라 한답니다. 그는 온갖 귀신에게 아양을 떠는 게 직업이라 날마다 목욕재계하는 까닭에 고기가 깨끗합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서 마음대로 골라 잡수시죠.”

그러자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감추려고 수염을 훑던 호랑이님,

허 참! 병 고칠 란 의심할 나 마찬가지란 걸 모르느냐? 의원이란 의심나는 바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시험을 해대는 통에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 명인지 셀 수도 없다. 무당 또한 업신여길 나 마찬가지다. 귀신을 속이고 백성들을 기만하여 해마다 앗아가는 목숨이 수만 명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의 노여움이 그놈들의 뼛속 속속들이 스며들어있다. 그것이 변하여 누에는 누엔데 금빛 나는 누에, ‘금잠이 된다는구나. 금잠의 똥을 받아 음식에 넣으면 그 음식을 먹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더라. 나 역시 그 독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마다.”

 

육혼이 생전에 알던 친구 하나를 소개했다.

유학자 무리라는 유림에 수풀 자가 있어 숲속이라고 통하는 저곳에 고기가 있사옵니다. 그는 인자한 염통에 의로운 쓸개에 충성스런 마음에 순결한 지조까지 지녔으며, ‘은 머리에 이고 는 신고 다닌답니다. 그뿐 아니라 입으로는 백가의 말들을 외며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그의 이름은 높은 덕망을 지닌 유학자라 하여 석덕지유라 하옵니다.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시고 쓰고 짜고 맵고 달달한 맛의 오미를 갖추었습니다.”

그제야 호랑이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침을 흘리다가, 하늘을 향해 싱긋 웃었다.

내 그놈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겠노라.”

창귀들이 앞다투어가며 호랑이에게 아뢰었다.

한번은 음이 되고 한번은 양이 되는 걸 라 하옵는데, 선비 가 그 이치를 꿰뚫었습니다. 오행이 서로 낳고, 음과 양과 비와 바람, 그리고 밝음과 어둠인 육기는 서로 이끌어 주옵고, 저 유는 이것들을 조화시킨답니다. 아마도 이보다 좋은 음식은 없지 싶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그만 안색이 노래지며 불만을 불퉁거렸다.

아니다. 음양이란 죽음과 삶을 표시하는 하나의 기운에 불과한 거다. 게다가 음과 양, 둘로 나뉘었으니 고기가 잡스럽겠다. 오행도 그렇다. 제각각 특성이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관계가 아니거늘, 이제 그들은 구태여 자식과 어머니로 가르고, 심지어는 짜고 시고 맵고 달고 쓴맛에 이르기까지 배분했으니 그 맛이 순수하지는 못하겠다. 육기 또한 제 스스로 행하는 특성이라 남이 이끌어 줄 필요가 없거늘,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이 재성이니 보상이니 하면서 사사로이 제 공만 세우려 하질 않더냐. 주희라는 사람은, ‘재성은 지나친 것을 덜어내기 위한 행위로, ‘보상은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 보았다지만, 아이고, 안 먹고 말지, 그런 고기는 너무 질기고 딱딱하여, 십중팔구 체하거나 구역질나겠다.”

 

 

때마침 정나라 어느 고을에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선비가 하나 있었으니, ‘북곽선생이었다. 나이 마흔에 손수 교감한, 다시 말해서 같은 종류의 여러 책을 비교하여 차이나는 것을 바로잡아놓는 등 정리한 책이 1만권이요, 또 역경 서경 시경 춘추좌전 예기 주례 효경 논어 맹자 아홉 경전의 뜻풀이를 하여 책을 엮은 숫자가 15천권이었다.

천자가 그를 가상히 여기시자, 제후들은 그 이름을 흠모하였다.

 

같은 고을 동쪽에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아리따운 과부 한 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름이 동리자였다. 천자가 동리자의 절개를 갸륵히 여기셨고, 제후들은 동리자의 어진 덕을 칭송하여 그 고을 사방 몇 리의 땅을 주고는 동리과부지려(동리과부의 마을)’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듯 수절과부로서의 평판이 자자한 동리자에게는 성이 모두 제각각인 아들이 다섯 있었다.

하루는 어미 방문 앞에 다섯 녀석이 모였는데, 그들은 서로 번갈아가며 문틈으로 안을 엿보면서,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읊어댔다.

 

 

강북엔 닭이 울고

강남엔 별이 반짝이는 이 한밤

방안에서 들리는 저 목소리

어째서 북곽선생을 저리도 닮았을까.

 

가만히 듣자하고 있으니 동리자가 북곽선생에게 뭐라 뭐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흠모하여 왔습니다. 원컨대 오늘밤 선생님의 글 읽는 소리를 음미하고자 합니다.”

조용히 옷깃 여미고 꿇어앉아 북곽선생이 시 한 편을 읊는다.

 

병풍에는 원앙새요,

반딧불은 반짝반짝,

가마솥과 세발솥,

무얼 본떠 만들었나.

흥이라.

 

그 모형이 각각인 발 없는 가마솥과 세발솥을

성이 각각인 다섯 아들에게 비유하였다.

 


댓글 9

  • 001. 마당쇠

    16.03.14 23:58

    다녀 갑니다.
    작가님!
    화이팅 입니다..........^^

  • 002. Lv.49 난정(蘭亭)

    16.03.15 15:28

    아, 마당쇠님 반갑군요. 감사합니다.

  • 003. 남한산성

    16.03.15 07:18

    난정님!
    영웅스케치 연재 축하 드립니다.
    대하역사 화이팅!
    난정님!
    화이팅! ........^^

  • 004. Lv.49 난정(蘭亭)

    16.03.15 15:28

    아, 남한산성님 반갑고 고맙고 기뻐요^^

  • 005. 흰바우

    16.03.15 16:44

    난정님!
    영웅스케치
    축하 드립니다.

  • 006. 갯마을

    16.03.16 23:15

    난정님!
    축하 드려요~~~~~~^^

  • 007. Lv.20 소휼

    16.03.20 00:44

    옛날에 국어책에서 본 것 같습니다.

    저 자식들이 가마솥인가? 로 비유하고 다섯아들의 성씨가 다 달랐다라고 했던가요?
    북곽이는 공부를 잘해 관직까지 내려왔는데 청렴으로 거절해놓고 유부녀와 놀아나는 것을 좋아하는 음탕한 놈 이라는.......

  • 008. Personacon 김우재

    16.04.05 02:28

    저는 호랑이하면 이말이 생각납니당~
    " 떡하나주면 안 잡아먹지 ~!! " ^^;;

  • 009. Lv.52 사마택

    16.10.14 21:03

    사람들이 호랑이를 얼마나 무서워 하고 싫어 했으면 호랑이를 별미로 여기는 몬스터들이 많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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