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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모르는 사람

사랑은 어째서 돌려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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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되는게뭐야
작품등록일 :
2016.07.25 01:45
최근연재일 :
2016.09.11 23:51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7,936
추천수 :
78
글자수 :
132,401

작성
16.08.31 21:47
조회
230
추천
1
글자
7쪽

34

DUMMY

이후로 지훈과 나 사이엔 말이 없었다. 물 속에서 하루종일 허우적거린 이 몸은 말 한마디 하기가 귀찮아진 상태였다. 카펫위에 앉은 채로 소파에 기대었다.

티비 속에서 최유미 아나운서가 9시뉴스를 하고 있었다. 멍하게 지구의 소식들을 경청해 본다. 서서히 시야가 흐릿해져 갈 즈음에 옆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머리에 그대로 수건을 감은 채인 세아는 나랑 똑같은 가운을 입고 옆에 다가선다. 어느새 바닷물에 절여진 채로 자고 있는 지훈을 발로 툭툭 건드려서 깨운다.

"끄으응ㅡ"

양로원 할아버지 비올 적 뺨치는 신음소리를 내며 샤워실로 기어가는 지훈. 코를 찌르는 과일향과 세아가 내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에 다시 눈이 떠진 나는 다시금 지구촌 소식을 시청한다.

가끔씩 티비를 켜고 자는 아버지를 목격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리모컨만 빼앗으면 귀신같이 일어나는 느낌이 바로 이건가 보다. 반수면 상태.

"하아~ 재미있었다"

"그러게"

"너 때문에 바닷물 많이 마셧어"

"그러게"

"...듣고 있는거야?"

"그러게"

"에휴.."

갓 목욕하고 가운만 걸치고 나온 세아를 곁에 둔다면 정신이 바짝 들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니였다. 설레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극도의 노곤함에 덮쳐진 몸의 말초신경이 좀처럼 작동을 하지 않았다.

아나운서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마운더 빙하긴가 미니 빙하기 하는 목소리를 들을 즈음에, 눈을 감고 떠보니 날이 밝아 있었다.

손등에서 카펫의 부드러운 느낌이 이는 걸 보니 어젯 밤에는 그대로 뻗어서 잔 모양이다. 일어나려고 하다가 근육의 통증에 멈칫했다. 노인네 마냥 온 몸의 뼈가 구석구석 저려왔다. 뻐끈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농구로 단련한 몸은 금방 적응하여 일어났다. 주변의 환경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큰 키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카펫위에 대자로 뻗어있는 세아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가운을 입은 채라 쇄골이 살짝 들어난 부분에 저절로 눈이 갔다가 세아의 눈이 정신 말짱한 듯이 끔뻑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아..아무것도 안 봤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던가,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세아는 내 시선의 향방을 별로 신경 안 쓰는 듯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부탁을 해 왔다.

"크흑!..도와줘.."

"응?"

"온 몸에..쥐가 났어.."

"쥐?.. 쥐는 안 보이는데?"

"..."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듯한 표정을 짓는 세아를 보고 웃음이 흘러나온다. 말 하는 사람만 재미있다는 아재 개그였다. 평소에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는 민간요법을 실시해 본다. 그대로 세아의 발을 잡고 다리를 들어올린다.

"으힉ㅡ!"

"참아, 풀어주는 거니까"

경험담인데, 다리가 뭉칠 때는 무릎을 펴고 발가락을 본인 쪽으로 당겨주면 3초 있다가 제법 상태가 호전된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도 사용하는 방법이니 야매는 아니였다.

그렇게 들어올리다가 허벅지 위의 가운자락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 나는 다리를 놓았다.

쿵ㅡ

"으아악ㅡ! 뭐 하는 거야!"

"아..실수"

쥐난 채로 내던져진 다리의 소유자인 세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나는 세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발가락만 잡고 세아쪽으로 끌어당겼다.

"으으..."

발 따로 손 따로 당겨진 세아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뒹굴고 힘겹게 일어섰다. 세아의 매끄러운 피부를 만질 때의 흥분이 가시자 갑자기 피부가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손을 보니 타도 단단히 탔다. 선크림으로 떡칠을 했는데도 피부가 약간 그을려 있었다. 그을린 피부를 향해 입김을 불어보지만 통각을 더욱 재촉할 뿐이였다.

세아의 피부는 전혀 안 탔는데 어째서. 여전히 하얀색으로 덧칠한듯한 세아와 그을린 내 피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왜 내 피부만 탄 거지?"

"세아의 피부는 새하야니깐 햇빛을 다 반사한 거 아니겠어?"

어기적어기적 문 손잡이를 지팡이 삼아 침실에서 나오는 지훈이 말했다.




아침부터 굶주린 배를 잡고 몸을 삐걱이며 레스토랑을 향한다. 지훈이 덕분에 호화로운 생활을 공짜로 누린다. 하지만 언뜻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렇게 호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지훈의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였다. 지훈의 부모님의 빈자리를 대신해 우리가 온 셈이였다.

지훈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비앙코 까라라로 도배된 코너를 돌고 펼쳐진 만찬에 측은해졌던 마음이 싹 날라갔다.

배가 등짝에 붙었기 때문에 집히는 음식이란 음식은 다 쓸어 담는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이 호화로운 레스토랑은 고기를 준비해둔다. 육즙이 자글자글 흐르는 등심 스테이크를 집어온다. 그릇을 들고 음식을 담던 사람들 중에는 비즈니스 맨처럼 보이는 정장차림의 사람들도 돌아다녔다. 방학인데도 일하는 구나. 에어컨 내음과 육즙냄새가 뒤 섞인 식탁에 접시를 안치한 나는 세아 쪽을 스윽 훔쳐본다. 접시를 보니 나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다.

어느새 앉아서 잡채를 주스 마시듯 집어넣는 지훈을 따라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를 집어든다. 입가심으로 스테이크라니, 황홀했다. 집에 있었으면 냉동피자나 구워먹었을까. 사람 사는 느낌이 났다. 혀 끝에서 달아오르는 전율. 산뜻하면서도 아늑한 고기의 맛. 두꺼운데도 부드러운 고기를 살짝 베어 물자 입안에서 터져나오는 육즙은 노릇한 냄새와 함께 코와 입안을 만족시켜 주었다. 식탁에 앉아있는 세아와 지훈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그 날 아침은 닥치는 대로 먹은 것 같다.

돌이켜보니 중2끼리 와서 하고 있는 식사라고는 말도 안 되었다. 이게 다 지훈의 부모님에 의해 호텔 예약이 되어있었고, 거금이 지불되 있던 덕분에 가능한 식사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짐을 든 체 걸어 나왔다.

"그런데 지훈아. 너네 부모님은 집이 코 앞이면서 뭐하러 여기 호텔에 예약했어?"

"진정한 휴가를 만끽하기 위해서지"

"부자구나"

"남말하시네"

양 옆에서 나를 사이에 티격태격 겨루는 지훈과 세아를 번갈아 보니 왠지 모르게 향수에 빠져든 느낌이였다.

오랜만에 맡은 호텔 냄새는 그리운 것이였다. 옛날 옛적에 중국의 good view에서 묶은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아른 거렸다. 유수풀이 일품이였는데..

"집에 가는거지?"

아쉬운 것은 세아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쉬움 만만가득인 세아에게 말했다.

"더 놀았다간 뼈가 안 남아날 것 같다. 피부도 따끔거리고. 그래도 또 부를 거니까 시간 비우고 있어"

"시간은 항상 빈단 말이지.."


작가의말

조금 더 기무기훈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더 지체하면 하루가 넘어가 버릴 것 같아서 어영부영 글을 끄적여 본다. 아! 마지못해 적는 건 아니다.


완결이 다가온다.


참고로 제 작품들에서 뽕빨을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왠만해서는요.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 쪽 취향이 아냐..


피부가 하얗다고 해도 타는 건 똑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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