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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모르는 사람

사랑은 어째서 돌려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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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되는게뭐야
작품등록일 :
2016.07.25 01:45
최근연재일 :
2016.09.11 23:51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7,935
추천수 :
78
글자수 :
132,401

작성
16.08.21 22:09
조회
152
추천
2
글자
8쪽

24

DUMMY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세아에게 이 소식을 알려줘야 하나 싶다. 그것이 고민 될 만큼 좋지 않은 소식이였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이 곧 코 앞인데 걱정에 휩쌓이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아도 알 권리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 시간이 넉넉할 때, 세아를 따로 불러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선생님에게서 무엇을 듣게 되었는지 털어놓았다. 그리고 쪽지를 들어 찾아가볼까 하고 묻자 당연하다는 듯이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고, 사실 지금도 와 닿지 않는다. 현실감이 없었다. 아마 병실에 가서도 멀뚱멀뚱하게 상황을 바라만 볼 것이다.

학교가 끝마치고, 세아랑 같이 백병원 찾아 가보게 된다. 가는 동안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침묵과 함께 찾아간 그곳엔 응급실 앞의 벤치에 앉아 있는 지훈이 뿐이였다.

짧게 인삿말을 건네고 곁에 앉는다. 저 문 너머로 지훈이의 부모님이 누워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진땀이 난다. 옆에 앉아서 지훈의 등을 토닥여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런 행동은 너무 생색내는 것 같고 그의 자존심을 헤치는 일인 것 같기도 해서이다.

고개를 숙인 지훈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이 알려줬어?"

"응"

이곳의 주소가 적힌 종이 쪽지를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이곳 백병원에 들어오면서 온갖 상상을 다 했었다. 지훈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애답게 펑펑 울고 있는 상황, 우리가 지훈이 쪽으로 가는 것을 막는 의사나 간호사. 소란스러운 병원.

하지만 우리가 지훈이에게 도착한 시점에, 응급실 문 앞은 지독한 고요함 뿐이였다.

괜찮아 하고 건네볼까 하다가도 그만둔다. 말없이 지훈의 곁에 있어준다 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인 것 같았다.

지훈의 옆에 앉은 세아가 작은 생수통을 건넨다. 그것을 받아 든 지훈은 뚜껑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내려놓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흘렀다. 고요함은 심장박동으로 가득차고, 불안함과 불길함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집에 가도 돼"

정적을 먼저 깨뜨린 건 지훈이였다.

"하지만.."

"혼자 있게 해 줘"

세아와 거의 동시에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었지만 지훈의 간절한 심정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혼자 있게 해 달라'는 말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지훈이가 말하니 심각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의 안이 걱정과 슬픔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다고 짐작 할 뿐이다.

눈이 잘 감기지 않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도 지훈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세아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지하철을 타고 백병원으로 갔다. 이번엔 응급실 앞도 아니였고, 놀랍게도 병실도 아니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생전 처음와 보는 곳에 들어와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화단이 줄줄이 놓여있으며, 가운데 커다란 나무 상자와 액자가 둘 놓여있는 것은 나에게 너무 생소했고, 만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현실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그 일이 일어났고, 그 당사자가 바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입구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저기 저사람들처럼 곡소리를 내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들어갈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였다. 지훈이의 표정은 무덤덤 했다. 우리가 있는 걸 눈치 챈 지훈이 다가온다. 평소와 다름 없는 교복차림 이였다.

"어서와"

"이..이게.."

말을 더듬거리다가 하려는 말을 멈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하려는 데 자꾸 목이 매여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하고.."

"어머니도 같이 돌아가셨어"

통곡을 하며 말할만한 내용을 무심하게 말하는 지훈은 겉으로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초연하게 부모님이 고인이 되었음을 알릴 뿐이었다. 혹시 지훈이도 지금의 나처럼 이 상황이 와 닿지 않는 걸까?

너무도 현실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 한 구석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지훈이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았다면, 같이 화재에 휩쌓여 죽었을 지도 모른다. 지훈이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만약 지훈이가 죽었다면 이렇게 얼떨떨하며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멍하게 나무 상자를 쳐다보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것만은 확신 할 수 있었다.

이런 지경이 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 했던 나는 정신없이 그곳에서 또 다른 양복을 입은 사람을 따라 하였다. 그러다가 밥을 먹길래, 뭔가 얻어먹으로 온 것 같아서 그만둔다. 액자에 걸려 있는 두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지훈에게 '가 볼께'하고 나온다. 나오는 순간에도 지훈의 표정은 처음과 같았다. 통곡하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조용히 영정 사진을 바라 볼 뿐이였다.

그곳에 있을 때는 옆에 세아가 있는 것도 깜빡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지훈은 다시 학교를 나왔다. 커다란 충격을 받아 정신이나 인격에 커다란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상상까지 했지만 돌아온 그는 지극히 멀쩡해 보였다.

평소처럼 장난치고, 시비걸고, 못난 짓만 골라서 하는 지훈이였다. 그런 지훈에게 오늘도 집에 놀러와도 되냐는 부탁을 받았다. 다른 애들은 지훈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전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방과 후, 오늘도 부모님은 집에 계시지 않았다. 우리집에 들어온 지훈은 오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게임기를 들었다. 나는 말없이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고 잔에 따라서 티비 앞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회색 카펫 위에 털썩 앉은 나는 옆에 앉아 있던 지훈에게 말했다.

"괜찮냐?"

"어쩔 수 없지 뭐.."

"미안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현실 같지가 않아"

있는 그대로 그에게 털어놓자 지훈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거 물어봐도 될 지 모르겠지만, 두 분 다 돌아가신 거야?"

그냥 확인 차 묻고 싶었다.

"어, 응...어?'

조이스틱을 현란하게 누르던 지훈의 동작이 멈춰선다. 갑자기 창문 쪽을 바라보는 지훈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유리벽, 열려진 커튼, 벽으로 부터 'ㄱ'자로 유리 벽까지 연결된 소파,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이불 뿐이였다.

"저..저기 엄마아냐?"

그대로 조이스틱을 살포시 내려놓고 천천히 소파로 걸어간 지훈은 소파위의 이불을 약간 들춰본다.

"여..여기, 엄마가 있잖아.. 살아 있어, 살아 있다구!"

"뭐..뭐?"

지훈이가 계속 이불을 들춰내며, 한줌한줌 집어내며, 마치 지푸라기를 잡듯이 계속해서 움켜쥔다. 그리고 들어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소파.

"봐봐! 여기 누워있어! 엄마! 일어나 봐!"

"어..?"

당황스러웠다. 지훈은 소파를 잡고 살살 흔들었다.

"일어나 봐, 응? 엄마~, 일어나 봐, 일어나 봐"

그리고 지훈이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지훈이의 어깨를 잡고 소파로 부터 뜯어냈다.

"저건 소파야, 니네 엄마가 우리 집에서 자고 있을리가 없잖아"

"무슨 소리야! 저기 누워있잖아! 안 보여!?"

거세게 내 팔을 뿌리친 지훈은 다시 소파로 달라붙는다. 내동댕이 쳐진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 장면을 쳐다본다.

"여기..여기 누워있잖아..여기..흑.."

소파를 어루만지던 지훈의 손짓이 멈춘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어..엄마..엄마..엄마! 으으..제발..이렇게 살아있잖아.. 내 눈 앞에 누워있는데..아아.."

그 말을 끝으로, 엄마만을 외치며 울부짖기 시작한 지훈을 보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눈을 비벼보니 눈물이 찔끔나왔고,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침과 콧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훌쩍훌쩍해도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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